숀 헤어
98년 .206 0홈런 3타점 4볼넷 25삼진
첫 해 광주구장을 보며 '펜스를 넘기면 홈런이냐, 관중석 뒤까지 넘어가야 홈런이냐?'고 건방진 발언을 한 타자. 결국엔 홈런 하나 못치고 돌아섰다.
(제 생각엔 김응룡 감독이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상당한 기대를 가졌던 백인 타자 였죠....그러나 기대는 곧 물거품이 되었던 상당히 거만한....그런 선수....매너도 별로 였던걸로 기억됨...)
트레이시 샌더스
99년 .247 40홈런 94타점 105볼넷 133삼진
트레이시 샌더스. 그는 그 해 활약했던 외국인선수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성적을 남발하며, 한국야구를 호령했던 별난 우투좌타 1루수였다. 타석에서 모든 것을 홈런,삼진,볼넷으로 3등분한 희대의 파워히터다.
그는 자신이 기록한 101개의 안타 가운데 54개를 장타로 채웠고, 9할8푼3리의 OPS를 기록했다. 특히 지방구장에선 거의 장외포를 쏘아올렸고, 뛰어난 출루율로 타율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화끈/시원했던 추억의 강타자다.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상당히 좋았습니다...홈런도 많이 쳤지만 당시 이승엽 선수가 54홈런을 쳐서 그리 큰 스포라이트를 받지 못했던게 아쉬울 정도....뒷 이야기지만 재계약 1순위였지만 실패했다는 소문이....참고로 매너가 좋은편이었음...특히 어린이들에게...)
윌리엄 브릭스
99년 .283 23홈런 74타점 13볼넷 85삼진
브릭스는 발이 빠른데다 외야수비 범위가 넓고 타격도 꾸준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엔 김응용의 원산폭격식 다루기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출장을 금지하자 곧 말을 듣기 시작했다. 잔부상을 달고 살았지만 우익수를 보던 그의 송구력은 한국야구 사상 최고급이었다.
안타가 나와도 2루의 주자들은 3루에 멈추거나 홈에서 횡사, 거의 2개의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수비가 돋보이는 한국의 알렉스 오초아였다.
(처음엔 발이 빨라 1번타자로 쓸려고 데려왔으나 출루율은 생각보다 낮아 1번으로써의 가치가 거의 없었음...또 발은 빠르지만 도루 센스가 부족...횡사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던걸로 기억됨...
하지만 수비하나는 정말 좋았고 가끔씩 쳐주는 홈런 덕분에 시즌 종반까지 버틴 선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
2001년 .310 26홈런 107타점 46볼넷 66삼진
산토스는 96년 대만리그에서 4할타율에 23홈런을 쏜 타자로 이듬해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적응에 실패한 이후 대만과 멕시칸리그 등에서 선수생활을 해왔다. 30대 중반이라지만 실제는 40이 넘어보이는 주름진 풍모에 구식 안경까지 쓴 흑인 지명타자/1루수였다.
부채꼴로 밀고 당기는 스윙이 좋아 계속 3할을 유지하며 홈런도 심심치않게 쳐주었다. 그런데도 당시 해태는 홈런이 적다고 중간에 산토스에게 해고 통지를 하고 투수 다니엘 리오스를 데려오려 했다(미친 놈들-_-)
다행히 리오스가 당시 방광염 증세가 있어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 산토스는 시즌 끝까지 뛸 수 있었다. 수비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걸 제외하곤 타격에선 영양가 만점이었다. 기아로 거듭나기 이전, 해태는 2000~2001년 외인영입 실패만을 거듭하는 데, 그 기간 중 유일한 성공작이 산토스였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김성한 감독이 외인선수를 구하려 도미니카에 오자, 자기 별장에 초대해 후하게 대접한 사람좋은 친구다.
(정말 성실한 선수...해고 통지를 받고도 프로정신을 제대로 보여준 선수였다... 도미니카에 김성한 감독이 오자 선수들의 장단점도 알려주고 스스로 자처해 스카우터 도우미를 했던 그런 보기드문 착실하고 정이 넘치는 선수....발이 느리고 수비력이 약한점이 단점이었지만 상당히 성공했던 선수였다. 광주구장에서는 그가 나오면 해태 아저씨의 주도로 산토끼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티 젠센
이런투수가 있었나...기억도 안난다.
헤수스 타바레스
2천년 74경기 .334 3홈런 44타점 31도루 21볼넷 32삼진
2001년 .237 1홈런 14타점 16볼넷 26삼진
도중에 들어온 스위치히터 타바레스는 정수근에 이어 도루 2위를 차지했는데, 정수근이 127경기에서 47개를 기록한 반면 타바레스는 74경기에서 31번을 훔쳤다. 단순 수치로 비교해도 타바레스는 경기당 0.42개로 0.37개인 정수근을 앞서고 있다. 3할3푼4리로 타격도 쏠쏠했다. 간만에 나타난 생쥐여서 다음해 도루왕을 기대했지만, 발바닥부상을 당해 쌕쌕이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퇴출당했다. 중도에 떠나도 잔금을 못받는다는 노예 계약을 해태와 한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거의 노예계약을 맺어 문제가 컸던 선수...다리가 상당히 빠른 선수...중간에 교체 용병으로 들어와서 재계약에는 성공했으나 다음해 부상으로 퇴출....작은 키에 빠른발을 가져 투수들이 상당히 싫어했다는 후문이다...)
루이스 리치
2001년 1패 1세 방 6.14 7.1이닝 4볼넷 4삼진
루이스 안두하의 탈퇴 후 급하게 들여왔던 투수인데, 140km도 되지않는 구속으로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다.
루이스 안두하
2001년 2승 1패 방 3.00 24이닝 9볼넷 14삼진
시범경기 때만해도 135㎞에도 이르지 못하는 볼스피드로 조급한 해태 코칭스탭에게 실망을 안겼던 루이스. 그러나 개막을 하자 140km를 넘기며 특유의 스플리터와 슬라이더의 절묘한 배합으로 땅볼을 잘 유도했다. 그러나 김성한과의 궁합이 매우 좋지않았다. 구단에서 시켜먹는 닭튀김대신 파파이스 치킨을 원했고..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지만 한국형 보수색채가 강했던 해태에선 통하지 않았던 요구였다. 결국 잠실경기에서 7회까지 리드하며 잘 던지고 있다가 별 위기도 아닌데 강판당하자 분노, 그대로 팀을 떠나버렸다. 이 시절 해태의 용병다루기는 최악이었다. 구질이 괜찮은 투수였다.
(싸가지 정말 없는 그런 선수.....23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철이 없다고 생각하긴엔 너무 했던 선수...해태 시절 용병 다루기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 선수 자체에도 문제가 컸다...후문으로는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리 성공하지는 못한듯....)
다니엘 리오스
2002년 14승 5패 13세 방 3.14 157.2이닝 44볼넷 102삼진
2003년 10승 13패 방 3.82 188.2이닝 62볼넷 121삼진
에스파냐 마드리드 태생에 쿠바를 잠깐 거쳐 주로 플로리다에서 활동했다. 원래 리오스는 2001년 기아에서 중반 영입하려 했다가 몸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한 바 있다. 시즈 종료 후 삼성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당시에도 몸이 별로였는지 딱지를 맞았다. 결구 기아는 2002년 다시 리오스 영입을 시도해 계약을 하는데,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처음엔 마무리로 기용했는데 선발 출신인 그에게 맞지않는 보직이라, 매 경기 접전과 불쇼를 연출했다. 중간에 최상덕이 부상을 당해 그제서야 선발로 돌렸는데, 리오스는 선발 전환 후 8연승 등 한동안 12연승을 달리는 맹활약을 한다.
145km를 넘나드는 속구도 좋지만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전 변화구가 평균 이상이고 완급조절을 잘해 선발을 할 때는 투구 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몸쪽 컨트롤에 다소 기복이 있어 힛바이피치볼을 많이 내주는 게 흠이다. 스태미너가 좋아 불규칙한 등판에도 잘 견디는 편이고 꾸준히 6~8이닝을 소화해준다. 결국 올해로 3년째 활동하며 워크호스로 불리고 있다.
(작년 재계약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올해 기아 최고의 희망....기아에선 키퍼 이후 최고의 투수 용병으로 뽑고 있다...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선수....토종 선수들과의 사이도 꽤 좋다고 알려짐)
훌리오 마뇽
마뇽은 몬트리올 소속으로 지난 6월 메이저리그에 승격돼 23경기에서 불펜투수로 뛰며 1승 2패 1세이브에 방어율 4.16을 기록했다. 시속 144~148㎞에 이르는 직구와 스플리터가 일품이며, 변화구 제구력 &마운드 운영능력이 뛰어나다. 슬라이더도 괜찮은 편이다.
처음엔 부상으로 시즌 초 다소 늦게 합류한 후 마무리로 나와 첫 경기서 안경현에게 만루홈런을 내주었다. 그러나 기아 선발투수들이 줄줄이 부상당하자 선발로 전환, 호투를 하고 있는 선발형 투수다. (선발투수를 첨에 마무리로 써먹는 기아의 3번째 닭짓) 부상만 피한다면 정상급의 피칭을 할 것이다.
(기복이 조금은 심한 선수....메이저리그 출신으로 마무리로써 기대를 많이 했지만 올해 재개약은 조금 힘들 것 같음...)
마이클 존슨
2003년 8승 1패 3세 방 3.00 69이닝 31볼넷 53삼진 49피안타
캐나다 출신의 존슨은 직구 구속이 140~145㎞에 달하고, 제구력은 물론 낮게 구사되는 커브와 슬라이더 등 변화구 구사 능력도 탁월하다.
역시 처음엔 마무리를 하다가 선발로 돌아선 후 8연승을 달렸다. 브레이킹볼을 매우 잘 구사해 후반기엔 언히터블의 투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시즌 후엔 돈이 맞지 않아 결별했다.
(상당히 좋았던 선수지만 터무니 없는 높은 연봉을 제시해서 결국은 재계약에 실패했다...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선수다...)
마크 키퍼
2002년 기아 19승 9패 방 3.34 202.1이닝 523볼넷 135삼진
2003년 기아/두산 8승 7패 방 3.79 168.2이닝 46볼넷 77삼진
키퍼는 정확한 제구력에 다양한 변화구와 상대 타자의 심리를 읽는 두뇌피칭으로, 외국인 투수로는 처음으로 다승왕(19승)을 차지한 역대 최고의 투수 중 하나다. 그는 타자 방망이의 중심을 벗어나는 공을 구사하는 투수다. 직구구속은 130~135km대지만 스리쿼터폼에서 직구, 싱커, 커터,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를 매우 다양하게 던진다.
190대의 큰 키와 긴 팔, 긴 손가락을 가졌는데, 내려찍지 않고 옆으로 구사해 투수판의 3루쪽을 밟고 던지면 굉장히 많이 휘어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구질은 커터와 커브다. 커터는 잘 구사할 경우 베이비 슬라이더 (Baby Slider)라 할 정도로 빠르고 예리하게 휘어나가는데, 선천적으로 동양인과 전혀 다른 신체를 갖고 태어난 키퍼의 커터는 웬만한 투수의 슬라이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하게 휜다.
따라서 그의 경기에선 빗맞은 텍사스타구가 많이 나와 수비수들의 유연한 수비 시프트를 필요로 한다. 커브 역시 긴 손가락으로 수직에 가깝게 구사해 각도가 매우 크다. 2003년엔 기아에서 쫓겨났지만 두산이 그를 받아들여 그 해에도 Whip(이닝당 출루수)부분에도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활약 중이다.
(올해도 활약중으로 나와있지만 현재 두산에서 퇴출됨....종속도 좋지만 볼끝의 변화가 심해 타자들이 상당히 싫어하는 외국인 투수로 알려져 있다....김인식 감독과의 마찰로 퇴출된걸로 알고 있음...기아의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된 선수..)
루디 펨버튼
2002년 75경기 .255 11홈런 48타점 23볼넷 19힛바이피치 56삼진
펨버튼은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1995년)와 보스턴(96, 97년)에서 52경기에 출전해 130타수 45안타(.350)를 기록한 중장거리타자다.
나름대로 맞히는 재주가 있지만 태도에 좀 문제가 있다. 한국에 와선 경기 수에 비해 상당히 몸에맞는 볼을 많이 맞아 흥분, 임창용이 맞추었을 땐 격분해 뛰쳐나간 바 있다.
(말그대로 맞추는데 재주가 있었다...2번타자 감이라고 해야하나??)
아르키메데스 포조
2천년 .213 1홈런 8타점 6볼넷 17삼진
178㎝, 72㎏의 포조는 도미니카 출신으로 99년엔 일본 요코하마에서 뛴 전천후 내야수다. 그런데 동양야구를 거친 왜소한 동양형선수라는 이미지만 갖고 해태에선 그를 마구잡이로 대했다.
화가 난 포조는 고국에 돌아가 에이전트를 통해 항의한 바 있다. 동양야구를 거친 선수는 한국형이니 막 다뤄도 된다?란 이상한 논리로 선수를 푸대접한 케이스.
제이슨 배스
2천년 15경기 .271 3홈런 13타점 9볼넷 22삼진
베네주엘라 출신의 거포형 좌타자인데, 슬슬적응하는 듯 하다가 부상으로 한국을 떠났다. 전형적인 대가족형 중남미인답게 해태 회식때 사촌 여동생을 데려와 람바다춤을 추게 한 넉살좋은 선수였다^^
(거친 인상이 상당히 기억에 남는 선수...기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퇴출된 조금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다.)
키스 미첼
2천년 77경기 .227 8홈런 38타점 38볼넷 51삼진
당시 개비오 규정에 따라 전년도 9월 이전 빅리그 승격자라, 당시로는 부정선수였는데 유야무야 넘어갔다. 흑인외야수로 퍼투켓에서 뛴 바 있다. 적당히 준수했지만, 말 그대로 적당한 선수였다.
워렌 뉴선
2002년 35경기 .209 7홈런 17타점 17볼넷 38삼진
왼손타자 워렌 뉴선은 2001년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3할8푼6리에 홈런 39개를 기록하며 타격왕과 홈런왕을 차지했던 슬러거. 하지만 한국에선 변화구에 애를먹으며 저타율을 보여, 결국 떠나게되었다.
(이 선수 역시 기대가 많았지만 홈런수가 너무 적고 변화구에 너무 약했다....)
개리 레스
2001년 해태 7승 9패 방 4.34 153.1이닝 88볼넷 104삼진
2002년 두산 16승 8패 방 3.87 202.1이닝 77볼넷 154삼진
레스는 국내 투수들이 서툴게 던지는 서클체인지업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체인지업뿐 아니라 직구와 슬라이더 등 190cm의 큰 키에서 오버핸드로 던지는 모든 공이 각이 좋아서 왼손타자뿐 아니라 오른손타자들에게도 잘 맞지 않는다. 국내 좌완투수 대부분의 팔이 스리쿼터처럼 처지는 것과는 다르다. 변화구든 직구든 횡으로 변하는 공보다 종으로 변하는 공이 타자 눈에 더 까다롭게 보이므로 레스는 135km대 직구로도 버티는 것이다.
처음 해태에 왔을땐 입국하자 마자 던지게 해 '120km대 아리랑투수다'라 비아냥을 받았지만, 점차 한국에 적응하며 성적을 올려주었다. 성적은 평범했지만 강팀과 상대해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두산 김인식 감독은 이듬해 레스를 영입했다. 이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레스는 체인지업의 마술사로 불리며 에이스로 활약한다. 2003년엔 일본 요미우리에 입단했는데,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다가 5월에 어깨가 좀 아파 로테이션을 한번 거르겠다했더니 2군에 내린 후 시즌 끝날 때까지 불러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일본실패의 이유다.
결국 그는 기회를 주지않는 요미우리를 떠나 2004년 다시 복귀해 6월 현재 8승으로 다승 1위를 달리고 있다. 의대에서 마취학을 전공한 바 있는 레스는 모험을 하고 싶어 야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해태시절 단순히 성적만을 따져 퇴출시킨 정말 아까운 선수....4강 문턱 군산구장 경기에서 엘쥐한테 패전투수가 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당시 2경기중 1한경기만 이기면 준플레이오프 진출이었지만 2경기 모두 패함) 퇴출되었음....당시 많은 연봉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본인도 재계약을 원했다는 조금은 믿지 못할(?) 뒤 이야기가 있지만 암튼 재계약에 실패 두산과 계약후 이듬해 일본진출함....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두산에서 맹 활약중....)
그외 기아와 해태가 뽑으려 했던 용병들....
마이클 앤더슨
98년 엘지 4승 7패 21세 방 3.56 55.2이닝 23볼넷 30삼진
99년 쌍방울 2승 9패 방 6.75 69.1이닝 46볼넷 31삼진
용병 도입 원년 엘지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다. 구위는 보통이었는데 낙차 큰 커브 하난 멋졌다. 그럭저럭 활약을 하고 다음해 김성근의 쌍방울로 가서 확 망했다. 당시 이 백인투수는 열악한 쌍방울의 환경과 김성근 감독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2000년에 스페어 선수(?)로 데려오려고 했던걸로 기억된다...당시 전천후 투수로 데려오려 했지만 결국 포기 했다...)
테드 우드
2천년 35경기 .255 1홈런 9타점 11볼넷 20삼진
97~99년까지 대만 프로야구 형제 엘리펀츠에서 활약하며 타격왕 출신의 왼손중견수 우드는 88년 서울올림픽 미국대표팀 4번타자이기도 했다.(한국전에서 박동희에게 안타를 뽑은 것으로 기억한다) 시범경기에서 고감도 타격을 보였으나 막상 개막하자 파워부족을 드러내었다. 시즌 끝까지 뛰었으면 2할8푼~3할은 쳤을지도..그러나 장타력이 없었다. 주자 임수혁이 쓰러지자 바로 달려와 구급진을 요청한 것도 우드다. 자기보다 나이도 적은 치퍼 존스(아틀랜타)를 존경한다고...겸손인지 밸도 없는건지
(해태에서 롯데에게 쉴새없이 트레이드를 제시했던 선수....상당히 신사적인 매너를 가졌던 선수로 알려져있다....끊임없는 노력형 선수로 알려져 있었으나 한국의 특이한(?) 기후를 이기지 못하고 체력 저하로 결국 롯데에서 퇴출 당하였다...)
셰인 베넷
2001년 2패 방 7.32 19.2이닝 9볼넷 16삼진
2천년 시드니올림픽 호주 대표로 나와 쿠바전에서 1실점으로 호투한 베넷은 2001년 중반 두산과 계약을 한다. 그때 얼마나 한국인이 조급한지...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선수를 당일 6시반 잠실경기에 선발로 내보냈다 -_- 갑자기 처음 보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베넷... 그저 사람좋은 인상에 히죽히죽 웃으며 직구와 스플리터, 슬라이더를 구사해 6이닝동안 3실점으로 막다가 7회 무너졌다.
그러고나선 결국 부상을 당해 몇번 나오지도 못하고 퇴출당했다.
(첫 경기가 타이거즈전이었다.....7회에 무너졌지만 후문으로는 퇴출 당한뒤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는 후문이다....(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상당히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젊은 선수였던건 확실했다...)
조 스트롱
98년 6승 5패 27세 방 2.95 58이닝 54삼진 29볼넷
스트롱은 대만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방출된 뒤 한국에서‘새가슴’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마무리투수다. 구속은 145~150km에 이를 정도로 빨랐고 표면성적은 괜찮았지만, 컨트롤이 불안해 매 경기 숨가쁜 모습을 보였다. 국내서 퇴출된 지 1년 후 빅리그에 진출했다. 생애 첫 메이저리그 등판을 한 스트롱은 지난 1960년 피츠버그 투수 디오메데스 올리보(당시 41세) 이후 가장 나이 많은 신인 선수로 기록됐다.
(이 선수도 위의 앤더슨과 같이 스페어 선수 (3순위(?))로 지명했지만 결국은 선택받지 못했다...)
첫댓글 음,...........기아의 용병다루는 수준은 증말 꼴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합니다
루이스 안두하=파파이스 치킨의 압박~ㅋ어디서 파파이스 맛있는건 알아가지고~ㅋ
마티 젠센.. 기억나는 군요. 2000년인가 2001년인가 후반기에 뛰었던 선순데..5이닝을 넘기는걸 보기가 무척 힘들었음..그럼에도 깡은 대단해서 코치가 교체하려구 올라가면 싫다구 고개를 저으며 한참을 버텼던 넘으로 기억남.
전 트레이시 센더스가 기억에 남는군여 그선수 다시왔음 좋겠당..^^ 지금 모하는지 궁금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