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돋보기> 초고층건물 안전, 길을 잃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news.co.kr%2Fphoto%2Fphoto%2F2017%2F02%2F07%2F201702071125419100290-2-88900.jpg)
건축법과 소방법의 화재 피난기구 규정 일원화가 무산되면서 불이 나도 사실상 대피가 어려운 아파트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부터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실외기실에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하는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다. 줄어든 대피공간 면적은 보조 주방이나 팬트리와 같은 알파공간으로 꾸며, 이를 혁신설계로 포장해 홍보한다.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발코니와 실외기실에 대피공간을 따로 설치하면 30평 아파트 기준 5㎡가량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공간을 제거하고 실외기실에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하면 2㎡ 남짓 공간만 필요하기 때문에 3㎡가량의 공간이 남는다.
이 공간만큼을 다른 용도로 변경해 설계할 수 있고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어 건설사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2017년 표준건축비(㎡당 181만2000원)를 적용했을 때 가구당 543만6000원, 한 층에 2가구인 30층 아파트 한 동을 지을 때 3억2616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합법이지만 화재 시 피난도구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하향식 피난구는 비고정식인 철제 사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방식이다. 장애인은 물론 노약자가 이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토부가 2010년 건축법 시행령 일부 개정을 추진했을 때부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 소방방재업체 관계자는 “피난의 기본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인데, 고층 아파트에서 하향식 피난구를 이용해 1층까지 내려오는 것은 성인 남자도 불가능하다”면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전국의 안전체험관에서 하향식 피난구 체험만 유독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만 봐도 피난기구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결과 대피공간 대신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한 건설사들은 제품 생산업체가 제출한 화재성능 성적서만 확인했을 뿐 실제 대피 가능성 여부는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 방식을 적용한 한 아파트는 주방과 드레스룸 사이 통로에 피난구를 설치했다. 드레스룸은 화재 시 불에 잘 타는 옷과 이불을 보관하는 곳이어서 화재 확산의 위험이 크고 피난구까지 가려면 식탁과 싱크대 등 복잡한 구조를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A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출시된 하향식 피난 사다리의 품질이 많이 개선됐다고 소개받아 적용하게 됐다”면서 “실제로 대피 가능 여부나 화재로부터 안전한지를 직접 실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소방법과 건축법이 인정하는 피난기구가 다르다 보니 관련 기술과 제품 개발 동력도 저하되고 있다. 화재 시 안전하고 누구나 자력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피난기구가 건축법에서 인정하지 않아 시행사와 시공사가 적용을 꺼리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 승강식 피난기다. 이 제품은 아파트 대피공간 내부에 설치해 화재 발생 시 손잡이를 잡고 발로 버튼을 누르면 아래층으로 이동하는 제품이다. 승강식 피난기는 소방법에서는 피난기구로 인정하지만,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피난시설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피난기구 개발업체 관계자는 “소방법에서 인정하는 피난기구는 공기업 신사옥과 민간기업 초고층 사옥에 적용될 정도로 안전성을 인정받고 건축사협회로부터 우수 건축자재 인증도 받았는데 건축법에서 인정하지 않아 유일하게 아파트에만 적용하지 못한다”면서 “상업용 건축물 설계에 반영했던 건축 설계사나 직접 시공한 건설사들이 아파트 현장에 반영하고 싶어도 불법이 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수아기자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