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제1세계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기록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2. 스미소니언 환율 체제.- 조정가능한 고정환율제도, 일부 금, 지폐간 태환제도 유지, 체택
1971년 금과 달러의 태환을 적용하던 브레튼우즈 환율체제의 붕괴 이후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 10개국 재무장관들이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체결한 환율 체제.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환율 제도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선진 10개국(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 재무장관들이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체결한 환율 체제이다. 이 체제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이어나가기 위한 조치였으며 브레턴우즈가 고정환율제도 였다면, 이 체제는 일정 수준 하에서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도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1) 금 1온스에 대한 미국달러의 가치를 35달러에서 38달러로 평가절하하고, 2) 환율체제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되, 미국 달러화를 기준으로 기준환율 제도를 도입하며, 3) 각국 통화의 변동환율폭을 기준율의 상하 2.25%(브레턴우즈 체제 하에서는 1%)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스미소니언 체제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도가 완전히 붕괴되기까지의 과도기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체제가 출범한지 6개월만인 1972년 6월, 영국은 투기세력에 의한 파운드화 파동 때문에 변동환율제도를 택하였다.
3. 킹스턴 환율체제 - 변동환율 제도로 완전히 전환했다. 금, 화페간 태환 제도를 완전 페지했다.
이후 1973년까지 거의 모든 국가들이 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하였으며, 1976년 1월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개최된 IMF 잠정 위원회가 각국에게 환율제도의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스미소니언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IMF가 회원국들에게 환율제도 재량권을 부여한 후의 변동환율 체제를 킹스턴 체제라고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미소니언 체제 [Smithsonian System] (두산백과)
4. 프라자 협정과 플라자 합의는 같은 말입니다
.플라자 환율체제 - 엔화에 대한 달러화 평가 절하, 달러화에 대한 엔화 절상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 또는 Plaza Accord)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선진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들의 모임에서 발표된 환율에
관한 합의를 가리킨다.
경과
당시 미국은 대외 무역수지 불균형과 안으로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것이 레이건 정부의
유명한 쌍둥이적자이다. 그리하여 경제선진국들에 도움을 요청하여 성립한 합의가 플라자 합의이다.
합의에서는 달러화의 가치를 내리고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정책이 채택되었다. 발표일 다음날에 달러화
환율은 1달러에 235엔에서 약 20엔이 하락하였다.
합의의 배경
1980년대 초 미국은 인플레이션의 억제를 목적으로 한 엄격한 금융 긴축 정책이 행하여졌다. 금리는
두 자리에 달하였고 세계의 자금은 미국으로 집중되었다. 그 결과 달러 시장은 호황으로 이어져 수출
감소와 수입 증대를 상계할 수 있었다. 고금리에 의한 민간 투자 억제와 수요·공급 균형이 개선되어
인플레이션 탈출도 성공하였다. 결과적으로 막대했던 무역 적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 후에 인플레이션이 진정됨에 따라 금융 완화가 진행되었다. 경기 회복으로 무역 적자가 증대되었다.
금리 하락에 의하여 무역 적자를 기록하던 미국의 달러는 매력을 잃고 그와 함께 달러시장은 점차
불안정화의 길로 들어선다. 요컨대 1970년대 말기와 같은 달러 위기의 재발을 두려워한 선진국이 협조적
달러 안정화 내지 하락의 실시를 꾀했던 까닭에 이 합의가 이루어졌다.
영향
이 합의로써 일본에서는 급속한 엔고 현상이 진행되어 엔고에 의한 불황의 발생이 우려되어 저금리
정책의 시행이 계속되었다. 이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이나 주식에로의 투기를 가속화하여 거품 경제
가열을 초래하였다. 또 엔고에 의하여 일본 경제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반액
세일”이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미국자산 사들이기, 해외여행의 붐, 자금이 싼 나라로의 공장 이전 등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일본인들은 일억총중류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 지나쳤던
달러화 하락 현상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하여 환율의 안정화를 꾀하기 위하여 1987년 다시금
각국이 협조하기로 하는 루브르 합의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