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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와 한국경제
과거 경제 현안 토론회에 한 번씩 동참했던 한국경제 주필이 "여러분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우리 회사 문제없습니다"라는 우스개로 말문을 열곤 했습니다. 이 글은 제목의 두 경제지(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서울이 어떻게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입니다.
1988년 서울 인구 천만 달성
서울은 역사가 깊은 수도이지만 본격적으로 덩치가 커진 것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입니다. 전국 인구가 약 2,500만 명이던 1960년 서울에는 10%에 못 미치는 244만 명이 살았습니다. 그 후 인구 유입이 계속되며 88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전국 인구가 4,200만 명이었으니 당시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1명이 서울에서 올림픽을 보았던 거지요. 몇 년 후 인구 증가세가 멈추었습니다.
서울의 면적이 전국 국토의 1%도 되지 않으니 과밀이 불가피했습니다. 1988년에 서울 1제곱km 당 사람 수가 거의 17,000명에 달하게 됩니다. 당시 인구 급증에 따른 주택난 등 심각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경기도 일산, 분당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지요. 이런 정책에 힘입어 인천을 포함한 경기도 인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늘기 시작하며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을 추월합니다.
위의 두 그림은 1985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과 경인(경기도+인천시) 각각의 인구와 지역 총생산, 그리고 해당 값의 합계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인구 비중이나 총생산 비중은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서울의 비중은 완만하게 줄고 있는 반면 경인 비중은 늘고 있고, 수도권 전체 인구 및 경제의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의 약 반을 넘습니다.
제조업 번성한 경기도, 제조업 없는 서울
서울의 인구 구성의 한 가지 특징은 경제활동인구(15-64세)의 비중이 높은 것입니다. 2010년대 초 해당 연령층의 전국 인구 중 비중이 73.4%, 서울은 77%였습니다. 그 이후 조금 차이가 줄었지만 아직도 높은 편이고 특히 서울 인구 중 20, 30대의 비중이 전국에 비해 높습니다. 이에 비해 14세 이하 인구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전국 수준을 하회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분야의 일을 하는가를 보여주는 산업구성은 88올림픽 이후 그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각 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기준으로 제조업 비중이 0.5이던 1988년 우리나라의 5대 산업과 그 비중(괄호 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섬유 의복 및 가죽 제품 제조업’(0.09), ‘전기 전자 및 정밀기기 제조업’ (0.09), 그리고 ‘기계 운송장비 및 기타 제품 제조업’(0.08)이 제조업에 속하는 상위 4개였고, ‘도매 및 소매업’(0.08)이 서비스업 중 비중이 제일 컸습니다. 서울의 경우도 제조업 전체의 비중이 0.3, 그중 ‘섬유 ... 제조업’ (0.09)이 제일 높았습니다. 이를 포함한 서울의 5대 산업은 ‘도매 ...’(0.18), ‘금융 및 보험업’ (0.08), ‘건설업’(0.08), 그리고 ‘사업서비스업’(0.07)이었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와 서울의 전체 부가가치 중 제조업 비중은 각각 0.3과 0.04로 낮아졌습니다. 5대 산업의 내용도 달라졌지요. 전국의 경우 ‘전기 전자 ... 제조업’(0.1), ‘사업서비스업’(0.09), ‘도매 ...’(0.08), ‘부동산업’(0.08), ‘기계 운송장비 ...’(0.06) 순입니다. 1988년에 비해 제조업 산업이 4개에서 2개로 줄었고 서비스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서울의 경우 5대 산업이 모두 서비스업입니다. 1988년 5대 산업에 포함되었던 서비스업종들의 비중이 더 높아졌고, ‘정보통신업’(0.1)과 ‘부동산업’(0.1)이 추가되었습니다.
경기도(인천 제외)의 경우는 제조업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1988년에는 0.7, 2018년에도 0.4로 전국의 비중을 상회했습니다. ‘전기 ... 제조업’의 경기도 전체 부가가치 내 비중은 0.2나 되고, 금액으로 보면 경기도에 위치한 업체들이 해당 산업의 우리나라 전체 부가가치의 약 반을 차지합니다. 그야말로 제조업 요새가 되었습니다. 경기도의 제조업 집중과 서울의 사업서비스업의 몸집 키우기는 연관성이 큰 현상으로 보입니다.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경쟁력이 있는 분야로 특화하여 분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혁신과 신생기업의 요람, 미래 서울의 모습
서울은 서비스산업의 중심지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30년 전에는 없었던 물건인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서비스업종의 내용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음식을 파는 식당업은 오래된 서비스업입니다. 그런데 요즘 음식점에 들어서면 방역을 위해 사용하는 QR코드, 식사 중 확인하는 카톡, 밥값을 내면서 쓰는 스마트폰 결제, 휴대폰의 화면 그림 등도 서비스산업의 산출물입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시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시대입니다.
흥미롭게도 아직까지 서울에 남아 있는 제조업 중 제일 큰 것이 ‘섬유 의복 ... 제품 제조업’입니다. 도소매업의 중요한 축인 패션의류산업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규모가 영세한 업체들이 절대 다수인 이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의 일종인 디자인이 핵심적 요소입니다. 서울이 직면한 과제의 핵심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방식, 디자인, 그리고 만드는 물건을 바꾸는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입니다.
결국 서울이 잘 할 수 있는 혁신을 통해 자체적 경쟁력뿐만 아니라 나라의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길입니다. 한 가지 방안은 서울을 창업의 도시로 만드는 것입니다. 신생기업이 희소해진 것은 인구의 저출산 문제만큼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태동한 기업이 커지며 본거지를 서울이 아닌 곳으로 잡는다면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서울경제의 혁신은 한국경제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옮겨온 글] / 출처: 2021년 02월 04일 (목)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허찬국(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입춘날 보리 뿌리 세는 까닭
“오늘이 벌써 입춘(立春)이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은 24절기의 출발점이다. 천체물리학에서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315도 기운 위치에 드는 시점을 가리킨다. 대개 양력 2월 4~5일이지만 올해는 3일이다. 한자로 ‘들 입(入)’ 대신 ‘설 립(立)’을 쓰는 까닭은 ‘봄기운이 막 일어선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절기상으로 ‘봄이 일어서는 때’라지만 아직은 계절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어제와 오늘 전국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찬바람에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졌다. 옛말처럼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 또한 그냥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입춘날 농가에선 보리 뿌리를 뽑아 한 해 농사의 향방을 헤아렸다.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을 예상했다. 호남에서는 “입춘날 눈이 오면 그해 며루(자방충)가 쓰인다”고 하여 해충을 걱정했다. 하필이면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까지 최고 15㎝의 눈이 쏟아진다니,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런 한파 속에서도 들판과 땅 밑에서는 생명의 뿌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 서리 내리는 상강(霜降) 때 파종한 보리도 부지런히 뿌리를 뻗고 있다. 이 무렵에는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느슨해진 흙과 싹이 제자리를 잡는다. 동토(凍土)에 뿌리내린 보리 낟알이 혹한을 견디며 서서히 줄기를 밀어올리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보리 뿌리만이 아니다. 가계와 기업, 나라 살림도 뿌리가 튼실해야 한다. 국가를 경영하고 경제를 살리는 일은 농사짓는 것과 닮았다. 곡식을 잘 키우려면 흙・햇빛・물 세 가지를 잘 맞춰 줘야 한다. 흙속의 많은 미생물은 토양을 풍요롭게 한다. 햇빛과 물은 식물의 광합성 작용에 필수적이다. 거름도 제때 적당한 양만큼 줘야 한다.
나라 살림을 꾸리는 사람을 농부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의 뿌리가 튼실하고 싹이 잘 자라도록 토양을 다지고, 적절한 양의 햇빛과 물을 조절하면서 모자란 부분의 북을 돋워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예부터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했다. 보리 뿌리도 그 소리를 듣고 자라며 한 올씩 여물어갈 이삭을 제 몸에 품는다.
[옮겨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1.02.03 00:22
프랑스 금융가에 '은행'이 드문 이유
프랑스의 은행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정작 ‘은행(Bank)’이란 단어를 쓰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시에테제너럴, 크레디아그리콜처럼 사회라는 뜻의 ‘소시에테’나 신용이라는 뜻의 ‘크레디’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은행이라는 단어가 붙는 곳은 ‘프랑스중앙은행(Banque de France)’처럼 국책은행이 대부분이다.
민간은행들의 이런 관행은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1720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은행이란 단어가 아예 ‘사기’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로 신용이 없었기 때문인데, 프랑스 최초로 중앙은행을 설립한 재무총감 ‘존 로(John Law)’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의 일대기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로는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 도박판에 들어가 천재 도박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1715년 프랑스 국왕 루이14세가 사망하자 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의 차기 군주 루이15세는 고작 다섯 살인 어린아이로 실제 정치는 루이15세의 5촌 당숙인 오를레앙공이 맡게 됐다. 이 사람은 로가 도박판에서 자주 만난 친구였다.
국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오를레앙공은 섭정이 되자 루이14세가 70년 넘게 벌인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빚더미에 앉은 재무 상황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가 친구인 로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자 로는 자신을 재무총감직에 앉혀주면 해결할 수 있다 큰소리쳤고, 오를레앙공은 일개 도박꾼이던 그에게 일국의 재무를 맡겼다.
존 로의 초상화. [이미지출처=대영박물관 홈페이지]
로는 이후 기상천외한 방식의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에서 돈을 무제한 찍어내 정부 부채를 갚고 대신 지폐 가치를 한 공기업의 주식 가격과 연동시켜 가치를 유지하는 꼼수였다. 중앙은행인 방크제너럴과 미시시피주식회사란 공기업은 이런 목표 아래 설립됐다.
로는 미시시피주식회사가 아메리카 식민지 사업을 독점한다고 광고하고 식민지에서 금과 은, 보물을 발견했다는 등 장밋빛 가짜 뉴스를 시장에 흘려 주가를 폭등시켰다. 미시시피 주식과 연동된 화폐 가치도 덩달아 폭등하자 로는 지폐를 남발해 정부 부채를 일부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작 미시시피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주식 가격이 폭락했고 연동되던 화폐 가치도 급락해 물가가 폭등하고 파산한 빈민이 속출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전보다 훨씬 큰 부채를 안게 됐다.
프랑스 왕실은 로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자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지만, 애초 도박꾼에게 나라 곳간을 맡긴 왕실의 인맥 정치는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대중의 투기 심리를 악용한 거품 경기로 경제 문제를 눈가림하려는 꼼수는 결국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신문 이현우(아시아경제신문 기자) / 2021.02.02 11:10
황금 변기솔 시위
공산체제에서 벗어난 구소련 독립 국가들은 저마다 민주화를 위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나라는 조지아였다. 2003년 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에 지친 조지아 국민들은 빨간 장미를 들고 수도 트빌리시의 자유광장에 모였다. ‘장미혁명’의 시작이었다. 장미의 물결은 금세 수만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민주화 바람은 인접국가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듬해 우크라이나에선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집권층의 선거 부정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거리를 뒤덮었다. 이들은 오렌지색 옷을 입거나 목도리를 걸쳤고 오렌지색 깃발을 휘둘렀다. 결국 국제선거감시단의 입회하에 재선거가 치러져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뒤이어 2005년 키르기스스탄에선 ‘튤립혁명’이 터졌다. 여당이 총선에서 매표와 언론조작 등 선거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시위대는 북부 산악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혁명의 상징으로 내걸었다. 수천 명이 대통령궁을 점거했고, 대통령은 러시아로 달아났다.
이번엔 구소련 종주국이던 러시아의 군중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항의해 ‘황금색 변기솔’을 들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감금된 후 전국 100여 개 도시에서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들 시민의 손에는 황금색 스프레이 물감을 칠한 플라스틱 변기솔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황금색 변기솔은 푸틴 대통령의 호화 궁전을 풍자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나발니는 푸틴이 소유한 1조 원대 대저택에 개당 95만 원짜리 황금 변기솔이 비치돼 있다고 폭로했다. 러시아에서 최저 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 인구는 1000만 명에 이른다.
1921년 레닌은 “공산주의가 온 세상에 도래하면 누구나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에까지 황금 변기가 설치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100년이 지난 후 그의 나라에선 최고 권력자 혼자만 황금 변기의 안락을 누리고, 가난한 국민들은 황금색 변기솔을 들고 절규한다. 붉은광장에 잠든 레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옮겨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배연국(세계일보 논설위원) / 2021-02-03 22:02:51
동아시아 부적문화와 불교문화가 만날 때
언어는 본질을 직접 가리킬 수 있을까? 아니면 한낱 수단이며, 영원히 본질에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일까?
신약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이 곧 하나님이다"로 시작된다. 이는 말을 신과 대비시키는 언어에 대한 깊은 신뢰 문화를 상징한다. 그런데 논어의 '이인'편에는 군자의 덕목으로 '눌언민행(訥言敏行)' 즉 '말은 어눌하되 행동은 민첩하라'고 촉구한다. 또 '학이'에는 '교묘하게 말 잘하는 것은 어짊(仁)이 아니다'라고 아예 대못을 쳐버린다.
니체는 1882년의 '즐거운 지식'에서 "신은 죽었다. … 우리가 그를 죽였다"라고 하여 신의 종말을 선언한다. 이처럼 중국철학의 최고 고전인 주역 '계사상전' 역시, '언부진의(言不盡意)' 즉 '말로는 결코 뜻을 다할 수 없다'는 언어에 대한 단절을 천명한다. 이것이 바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언어에 대한 부정, 즉 침묵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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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자는 과묵하고 듬직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사회가 선호하는 남성상은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즉 침묵의 문화는 이제 적극적인 표현의 문화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냉탕과 온탕의 변화 속에,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붕괴와 서구화가 존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Made In India'인 불교는 언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불교가 동아시아에 정착한 지 2,000년이 되었지만, 흥미롭게도 불교는 오늘날까지 언어에 대한 깊은 신뢰를 견지한다. 미국에 이민 간 지 20년이 돼도 김치를 찾는 한국인과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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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주류 인종은 코카서스산맥에서 발원한 백인의 아리안족이다. 아리안족 하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독일의 게르만과 그리스・로마 그리고 프랑스까지 전부 아리안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한다. 인도・유럽어족 역시 언어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견지한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수사학 논리학 웅변술 등이 발전하게 된다. 즉 유럽은 아리안적인 언어 신뢰에, 헤브라이즘적인 언어 신뢰라는 설상가상의 형세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 신뢰 문화는 종교적으로 축복과 축원 그리고 서원과 발원 등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코드 중 하나가 바로 주문과 주술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도는 진언(眞言), 즉 '진리의 말'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주문과 주술이 어둠의 속성이라면, 진언은 강력한 빛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이 진언 문화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래한다. 그래서 불교에는 '수리수리 마하수리'나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같은 다양한 진언이 존재하게 된다.
또 진언 중에서 장편에 속하는 긴 진언은 '다라니'라 한다. 다라니는 번역하면 총지(總持)로 '모든 좋은 것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진언계의 백화점이라고나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언어를 무너트린 중국문화에는 단지 침묵만 존재할까?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은 왜 보나?'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을 보는 것이 문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대두하는 중국적 해법이 '그림 상징'이다.
주역의 '계사하전'에는 관물취상(觀物取象) 즉 만물을 간취하여 핵심적인 형상을 취하라고 역설한다. 또 '입상이진의(立象以盡意)'라 하여, '상징적인 형상을 통해 본뜻을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태극과 팔괘로 대변되는 주역의 그림 상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 상징의 구조 속에 바로 부적이 존재한다.
부적 하면 거부감을 가지는 분도 있다. 그러나 사실 동아시아 부적 문화의 최고봉은 주역과 직결되는 우리의 태극기다. 즉 부적은 생각보다 가까운, 그리고 우리의 전통 문양 속에 두루 녹아 있는 보편적 가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부적과 불교의 진언 문화가 융합되면, 글을 써서 붙이는 부적형 진언이 대두하게 된다. 입춘에 문에 붙이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첩이 바로 양 문화의 적절점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이해하면 무척 흥미롭지 않은가!
[옮겨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 2021.02.03 17:30
달걀은 하루에 몇 개 먹는 게 적당할까?
[윤희영의 News English]
달걀은 영양 덩어리(nutritional powerhouse)다. 그리 비싸지(be expensive) 않으면서 맛도 좋고 영양가 풍부한(be tasty and nutrient-rich) 먹거리다. 널리 쉽게 구할(be widely available) 수 있는 데다 오랜 기간 상하지 않는(last a long time without spoiling) 고단백 식품(high-protein food)이다. 그래서 대부분 가정의 주요 아침 식사(breakfast staple in most households) 거리였다.
그렇기는 한데, 콜레스테롤이 많다는 이유로 달걀에 대한 논란은 지난 수십여 년간(over the past several decades) 급격한 기복을 겪어왔다(experience a roller coaster ride of highs and lows). 하루에 몇 개까지 괜찮은지, 계란말이와 계란탕은 마구 퍼먹어도 되는지 염려스러웠다.
1968년 미국심장학회는 콜레스테롤 섭취를 하루 300㎎ 이하로 제한하면서 달걀을 콜레스테롤 높은 나쁜 식품 목록에 올려놓았다(put eggs on the naughty list). 큰 달걀 하나가 186㎎가량의 콜레스테롤을 함유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3개 이상은 먹지 말라고 했다. 1970~80년대까지도 심장병 관련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raise the blood cholesterol levels linked to heart disease)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be deemed unhealthy).
그런데 콜레스테롤 많은 음식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포화지방(saturated fat)이나 트랜스지방 같은 것이 심장병 일으키는 혈중 지질(脂質)을 높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be far more likely to increase blood lipids)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달걀 등을 통한 식이성 콜레스테롤 섭취(dietary cholesterol intake)와 심혈관 질환・사망 위험(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and mortality)은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달걀은 많은 주요 영양분을 제공해준다(provide many vital nutrients).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뿐 아니라 암탉 섭생을 잘하면 셀레늄, 엽산(folate), 오메가3 지방산(fatty acid), 비타민D와 E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시력 감퇴(macular degeneration), 백내장(cataract), 암 위험을 낮춰주는 루테인과 제아크산틴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possess more pros than cons).
그렇기는 한데(that said), 하루에 한 알 원칙을 고수하는(stick with one egg a day) 것이 바람직하다고 미국심장학회는 권한다. 노른자(yolk)를 뺀 흰자(whites)는 두 개까지 괜찮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by the way), 달걀을 요리하기 전에 껍데기를 물로 씻어주는(rinse the egg in the shell) 건 어떨까. 유익하기보다는 해가 더 많다고(do more harm than good) 한다. 껍데기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구멍이 많은데(be porous), 오히려 겉에 묻어있는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달걀 속으로 밀어넣는 결과를 초래한다고(bring about the result) 한다.
[옮겨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윤희영(조선일보 에디터) / 2021. 02. 04. 03:02
역설
[김범준의 옆집 물리학]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우리의 직관과 상식에 어긋날 때, 이를 역설이라 한다. 결론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역설이 더 재미있다. 역설(逆說)의 영어 단어 paradox에서 para는 반대 혹은 비정상을 뜻하고 dox는 의견 혹은 생각이라는 뜻이다. 역(逆)은 para에, 설(說)은 dox에 일대일 대응한다. 흥미롭게도 para는 가깝다는 뜻도 있다. 역설은 참에 가까워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참은 아닌, 직관에 반하는 주장이다. 얼핏 봐서는 틀린 것을 찾기 어려운.
학생 때 들은 재미있는 역설이 떠오른다. 흰 돌, 검은 돌, 많은 바둑알이 마구 섞여 있는 통에서 내가 몇 개의 바둑알을 집어내도 이들 모두가 같은 색이라는 역설이다. 먼저, 바둑알 하나를 집어내보자. 당연히 색은 하나다. 검거나 희거나 둘 중 하나지, 한 바둑알이 다른 색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 다음에는, 통에서 n개의 바둑알을 마구잡이로 집어냈는데 모두 같은 색이라 가정하고, n+1개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통에서 n+1개를 꺼내고는 그중 1개를 옆으로 살짝 치워놓으면, 가정에 따라 남은 n개는 같은 색이다.
다음에는 방금 꺼냈던 1개를 다시 무리에 집어넣고 다른 1개를 꺼내면, 이때 남은 n개도 가정에 의해 모두 같은 색이다. 즉 n+1개 바둑알에서 처음 꺼낸 1개 바둑알도 무리의 다른 바둑알과 같은 색이어야 한다. 따라서, 결국 n+1개 모두 같은 색일 수밖에 없다. n=1일 때 참이고, 일반적인 n일 때 참이라고 가정해서 n+1일 때도 참임을 보였으니, 모든 임의의 n에 대해 증명이 끝난 셈이다. 수학적 귀납법에 의한 증명이다. 내가 통에서 몇 개의 바둑알을 꺼내도, 모두 같은 색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위의 논리 전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혹시 눈치채셨는지? ‘같은 색’과 ‘한 색’의 의미를 일부러 섞어 만든 눈속임 문제다. 바둑알이 두 개인 경우를 생각하면 위의 엉뚱한 증명이 독자를 어떻게 속였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우리에게 도달하는 별빛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우리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별의 수는 구의 표면적처럼 거리의 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모든 별빛의 세기를 별의 개수와 밝기를 곱해 구하면, 거리와 무관하게 일정한 값이 된다. 결국, 우주의 크기가 무한대라면 우리에게 도달하는 별빛 세기를 모두 더하면 그 총합은 무한대가 된다. 밤하늘은 빈틈없이 빛으로 가득해 대낮처럼 밝아야 한다. 그런데, 왜 밤은 캄캄할까? 바로, 올베르스(Olbers)의 역설이다. 물론 현대 물리학은 이 역설에 답할 수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고 빛의 속도가 유한해, 유한한 거리 안에 있는 별의 빛만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하늘을 보면서, 우주의 팽창과 광속의 유한함을 떠올릴 일이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결과가 논리적인 귀결인데, 이는 우리의 상식이나 실제 실험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 이론에 우리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인식으로 우리를 이끄는 과학 역설은 과학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 여전히 남아 있는 미해결 역설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블랙홀 형성과 정보 소멸의 역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전히 궁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도 아직 해결된 것 같지 않다. 역설을 해결하며 과학은 자연과 우주를 배우고, 미해결 역설로 과학은 겸허를 배운다. 온 길이 뿌듯해도 갈 길이 더 멀다.
그럴듯하다고 진실은 아니다. 백신을 맞지 않았는데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백신이 무용하다는 주장도 그럴듯(似)하지만 진실이 아닌(非) 사이비(似而非) 역설이다. 다른 많은 이가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다. 올겨울 추운 날이 계속 이어진 적이 있다. 그렇다고 지구의 온난화가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럴듯한 것을 진실과 구분하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안간힘의 이름이 바로 과학이다.
[옮겨온 글] / 출처; 경향신문 / 김범준(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2021. 02. 04. 03:03
입춘(立春), 봄의 길목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2월 3일)은 24절기 가운데 첫째 절기로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start of spring)이 시작되는 날이다. 24절기는 입춘으로 봄과 한 해를 시작한다. 이때 지구에서 본 태양의 운행로인 황도(黃道) 상에서 태양의 위치는 동지와 춘분의 중간 지점이며 이때부터 춘분 쪽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24절기 달력인 절기력(節氣曆)의 관점에서 보면 봄의 길목이다. 계절 변화의 근본 원인은 황도 상에서 태양의 움직임인데 그 움직임이 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절기력에서 입춘은 봄의 문턱으로 봄기운이 일어나는 때이며 입춘일은 새봄의 첫 날이며 동시에 새해 첫 달의 첫 날 즉 연초일(年初日)이 된다.
실제의 기후와는 상관이 없이 지루한 겨울을 나며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서는 이때 이미 봄을 맞고 있다. 봄은 감각으로보다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춘’이라는 말에, 그리고 조금은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에 반가움이 앞선다. 감각으로는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겨울이지만 마음으로는 화사한 매화와 함께 봄날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추위도 그냥 추위가 아니라 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 부른다.
입춘은 문자 그대로는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겨울 기운이 꽤 많이 남아 있는 때다. 동짓날로부터 세 개의 절기 즉 약 45일이 지난 시점이고 낮에는 햇볕도 상당히 따뜻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한기와 아직은 한파를 몰아오는 시베리아 기단의 위세가 가시지 않아 ‘입춘한파’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 또는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때 흔히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이 무렵에는 동장군(冬將軍)의 심술이 꽤나 고약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입춘이 되었다고 해서 따뜻한 봄이 된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봄의 길목 입춘에 목련 꽃눈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효성 주필
하지만 이때부터 바람결에 변화가 일어나 매서운 북서계절풍 대신 때때로 부드러운 동풍 즉 봄바람이 약하게나마 불어오기 시작하고 햇볕이 상당히 따스해져 해동이 시작된다. 입춘 한파가 아무리 매섭게 눈을 부라린들 막무가내로 밀려오는 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입춘 어간에 한반도에서는 최남단인 제주도에서부터 자연에 슬슬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여 파죽지세로 북상하기 시작한다. 이제 동장군의 심술로도 어쩔 수 없는 봄의 도도한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부터 산골짜기에는 여러해살이풀인 앉은부채가 언 땅을 뚫고 올라와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산과 들에는 냉이, 꽃다지, 쑥 등의 이른 봄나물들이 돋아나 있다. 이 작은 것들이 추위를 뚫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용맹한 봄의 전령사들이다. 이때쯤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는 한겨울부터 수줍은 듯 나뭇잎 속에 숨어서 피고 지는 동백의 새빨간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춘란(春蘭)으로도 불리는 보춘화(報春化)와 수선화도 그 뿌리에서 꽃대가 나와 꽃이 핀다. 그리고 본래 따뜻한 남녘에서 잘 자라지만 꽃은 추위 속에서 피워내는 매실나무에도 입춘 추위 속에서 단아한 매화가 벙글기 시작한다.
예부터 입춘이 드는 날 입춘이 드는 시간에 집의 대문이나 기둥이나 대들보에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며 한 해의 행운과 건강과 복을 비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봄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과 같은 글귀를 쓴 입춘방(立春榜)을 붙이는 세시풍속이 있다. 입춘에는 입춘 절식이라 하여 움파, 부추, 마늘, 달래, 무릇, 유채, 멧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등의 시거나 매운 푸성귀 가운데 오방색(五方色・오행설에 따라 동쪽은 파랑, 서쪽은 하양, 남쪽은 빨강, 북쪽은 검정, 가운데는 노랑의 다섯 가지 색깔)이 나는 다섯 가지로 ‘입춘오신채(立春五辛菜)’라는 자극적인 생채요리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새봄의 미각을 돋우기도 하였다.
[옮겨온 글] / 출처; 아시아투데이 / 이효성(아시아투데이 주필) 2021. 02. 03. 00:00
제앙 조르주 비베르. ‘놀라운 소스’, 1890년경, 캔버스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