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세차게도 내린다.
우산을 깜빡 했다는 걸 알아챈 선호가 우울한 듯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센티멘탈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창문에 튄 빗물이 교실로 닥친다.
제대로 한방 먹은 선호가 얼굴에 맞은 빗방울을 슥슥 닦고서 결국 창문을 홱 닫아버리고 만다.
오랜만에 기분전환 좀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안된다.
교실의 앞문이 갑자기 벌컥 열린다.
시끌시끌 떠들고 있던 반 애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들어선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시다.
아마 다음시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 긴급공지다. 내일 예정인 수학여행이 다다음달 중순으로 미뤄졌다. "
오, 이런. 아이들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소리를 지르며 항의한다.
" 뭐예요!! 그런 게 어딨어요!! "
" 시끄러!! 이번에 애 하나 쓰러진 거 때문에 교무실이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알아!? "
별 흥미없는 듯 앉아있던 선호가 애가 '죽은 게 아니라 쓰러졌다'라는 얘기에
화들짝 놀라 홱 선생님을 돌아본다. 아이들은 다들 알고 있었는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일단 눈치를 보자는 생각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데 별 반응은 없다.
" 아무튼 중간고사 후에 가기로 결정났으니까 그렇게 알어. "
할 말만 마치고 자기 임무 다 했다는 듯이 나가려는 담임선생님을 보고
당황한 선호가 갑자기 번쩍 손을 쳐든다. 뭐냐-하는 눈빛의 선생님께 선호가 묻는다.
" 선생님, 저번에 그 애요- 죽은 게 아니라 쓰러진 거예요!? "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수업이 없어서 잠시 쉬는 틈에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계시던 음악선생님이
누가 들어오나 하는 눈길로 문쪽을 바라본다.
어정쩡하게 예의를 갖춘 채 서 있던 선호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한다.
" 안녕하세요. "
" 그래. "
음악 선생님은 별 감흥없이 대답했다.
선호가 문을 조심스럽게 닫은 후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음악선생님께로 다가가 옆에 앉는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음악선생님답게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이 인상적이다.
선호의 기척을 느낀 음악선생님이 시험지를 정리해 꽂아놓고는 슬쩍 선호를 본다.
선호의 말에 음악 선생님이 왠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안경을 살짝 치켜올린다.
선호가 초조한 듯이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진지하게 음악선생님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음악선생님이 자세를 고쳐앉으시며 선호를 향해 말씀하신다.
" 뭔 뚱딴지같은 소린지 모르겠네. 진단결과로는 호흡곤란으로 일시적으로 쓰러진거래. "
" 근데 왜 지금껏 안 나와요!? "
" 폐가 원인불명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치료중이래. "
음악선생님의 말에 선호가 망치가 크게 한대 맞은듯한 표정을 짓는다.
음악선생님이 이상하게 여겨 말을 걸어보지만 선호는 멍하다.
한참 멍하니 있던 선호가 알았습니다 하고선 터덜터덜 걸어나간다.
교무실 문을 나서는 선호에게 음악선생님이 한마디 던진다.
" 음악 시험 잊지마라. "
집에서는 책상 앞에 앉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껏해야 컴퓨터 하려고 앉은 적 밖에 더 있었던가.
턱을 괴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선호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죽은줄 알았던 아이는 잠시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던 거였고, 그제 꾸었던 꿈은 마치 가짜같다.
눈 앞에 일어났던 이들이 진실이 되기도 하고 거짓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느 걸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 지 구분이 안 간다.
-신이 나를 농락한다.
선호의 얼굴에 원망의 빛이 스쳐지나간다.
어느 신인지 모르지만 날 더이상 힘들게 하지 말아줬으면. 귀찮고 또 짜증나니까.
멍하니 그러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린다.
" 아들!! 청소 좀 하지 그래!? "
엄마다. 화들짝 놀란 선호가 의자에 앉은 채로 밀려나 있는데
선호네 엄마가 성큼성큼 들어와 선호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모아 품 안에 가득 안는다.
그리고 홱홱 방 안을 둘러본다.
몇일동안 정신이 없던 탓에 정리를 제대로 못해서인지 방 안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오랜만에 엄마 노릇하시겠다는데 도와드려야지.
선호가 수납장에 들어있는 크리너를 꺼내들고 걸상을 밟고 올라서 창문 틀을 닦는다.
이왕이면 싶어 창문 난간을 닦으려 보니 난간 위에 뭔가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다.
떨어질듯 말듯. 난간 위에 물건을 올려놓은 기억은 없어 제것이 아니려니 하고
무심하게 난간을 북북 닦는데 난간이 흔들렸던 탓인지 그 무언가가 날카롭게 콱 떨어진다.
놀라서 보니 오른손에 상처가 나버렸다.
창틀에 콱 박힌 그 무언가는 단검이었다.
꿈에서 봤던-그 단검.
비가 지겹게도 내린다. 벌써 삼일째다.
이대로 가다간 체육시간에 축구를 영영 못하겠다.
사내녀석들은 이 사실 때문에 기가 죽어 시들해진지 오래였다.
그 중에서도 활약했던 주제에 정상적으로
활동했던 선호도 왠일인지 연못에 빠진 나비마냥 의욕이 없어뵌다.
쉬는시간 종이 울린다.
책상에 늘러붙어있던 선호가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잽싸게 화장실로 직행한다.
아직 다들 오지 않은 화장실 칸안에 먼저 들어가 칸을 차지한 선호가
털썩 변기 위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아까부터 소중한 것을 지키듯 꼭 감싸고 있던 뭔가를 꺼낸다.
위험한 물건인지 붕대로 꽉꽉 감싸서는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고정시킨 테잎을 떼내고 붕대를 풀러내니 그 모양새가 드러난다.
단검. 몇일전에 발견한 단검이다.
이 단검을 혀에 맞았던 정체불명의 여인은 그 꿈 이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물론 교내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선호의 꿈에 나타난 전적이 있다.
그것은 만남을 예고하는 예지몽이 아니라 여인이 임의적으로 꿈을 조정해 나타난 것,
즉 인위적으로 만든 꿈이다. 그렇다는 것은 꿈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실력가일수록 일면에 직접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뭔가 지능적인 행위를 할 것이다.
예를 들어-기습이라던지. 그렇다면 위험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선호가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방어할 수 있는 비책이 없다.
여인이 또 공격해온다면 그대로 맞아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애초에 그럴 능력조차 없었고 여인이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조차 선호는 예측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단검-이것이 있었기에 호신술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승산은 없다.
" 이선호, 이 자식-!! 어딨냐!? 빨리와, 학주 떴어!!! "
갑작스럽게 소리를 버럭 내지르는 진의 목소리에 놀란 선호가 얼떨결에 단검을 떨어뜨린다.
단검을 받으려다 왼손에 단검이 깊이 박힌다.
그 때 상처가 저절로 아뭄과 동시에 단검이 화상 흉터 안으로 빨려들어가버린다.
오른손에 단검을 감기 위해 꼭 쥐고 있던 붕대가 힘없이 스르륵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버린다.
결국 늦어버렸다. 애써 뛰어가봤지만 걸려버렸고 그 벌로 반성문 3장을 써야만 했다.
학생들이 거의 다 간 5시 무렵. 간신히 다 쓴 반성문을 제출하고 저릿저릿거리는 팔을
주물럭주물럭거리며 나오는데 누군가 덥썩 선호의 팔을 붙잡는다.
진이 슬쩍 눈을 치켜뜨며 그러자 선호가 헤헤거리면서 웃는다.
초등학교적부터 지금까지 쭈욱 같은 학교였던 데다가 늘 등하교를 같이 했던 탓에
진과 선호는 상당히 친한 친구 사이다. 부모님들까지 친할 정도로.
선호가 빙긋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진의 뒤에 여인이 서 있다.
사냥할 먹이를 찾는 뱀처럼 손톱을 세운 채.
" 진아, 도망쳐!! "
" 무스------!! "
진의 목에 길다란 칼같이 날카로운 것이 들어선다.
놀란 진이 사태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움직이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여인에게 잡힌다.
선호가 아드득 이를 간다. 단검은 화상흉터로 들어가버렸다. 꿈에서 그러하였듯이.
게다가 진이 여인에게 잡혔다.
승산은 없다.
지니 님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한 말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던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말을 조심스럽게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화산장호러물 님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맘에 드신다니 감사합니다.
이분들 밖에도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갑작스럽게 약 일주일간의 잠수를 탔는데요, 그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한자경시대회나 겨울여행이다 해서 좀 바빴거든요. 죄송합니다.
따라서 이번편은 그나마 조금 비축해놨던 분을 썼습니다.
수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고 부지런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첫댓글허허 ;ㅅ;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ㅠ ~ 순간 무스~ 이래가지고 뭔 소린가 했답니다 ;ㅅ; 무슨 어쩌구~ [;] 라고 소리치다가 멈춘 거였나 ;ㅅ; 음. 요즘 한자시험 보는 분 많네요 ... 컥. 선호 씨는 목이 떨어지는 걸로 봤는데; 그럼 사실은 뭐였단 말인가 -_- ;; 선호 씨한테만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네요 ;ㅅ; 컹컹.
여튼 ㅠ 목에 칼이 들어온 전진 씨를 으찔까나 ;ㅅ; [;] 그 여자가 그냥 허상은 아니었군요 -ㅅ- ;; 컹컹 ;ㅅ;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왔다고 해서 순간 목을 푹 찔린 건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a] 요즘 왜 이렇게 이해력이 딸리는지; 초등학교를 다시 가야되나 ㅠ [;] 건필하세요~
첫댓글 허허 ;ㅅ;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ㅠ ~ 순간 무스~ 이래가지고 뭔 소린가 했답니다 ;ㅅ; 무슨 어쩌구~ [;] 라고 소리치다가 멈춘 거였나 ;ㅅ; 음. 요즘 한자시험 보는 분 많네요 ... 컥. 선호 씨는 목이 떨어지는 걸로 봤는데; 그럼 사실은 뭐였단 말인가 -_- ;; 선호 씨한테만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네요 ;ㅅ; 컹컹.
여튼 ㅠ 목에 칼이 들어온 전진 씨를 으찔까나 ;ㅅ; [;] 그 여자가 그냥 허상은 아니었군요 -ㅅ- ;; 컹컹 ;ㅅ;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왔다고 해서 순간 목을 푹 찔린 건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a] 요즘 왜 이렇게 이해력이 딸리는지; 초등학교를 다시 가야되나 ㅠ [;] 건필하세요~
어억, 정말 재밌어요. 두근두근, 진이씨는 과연??;; 잘읽었습니다.♥
;ㅁ; 과연 진군은,,, 선호군은....!! 헤헤 ^0^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