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도수를 구분하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증류주의 도수를 구분할 때는 사실 두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상 만국공통으로 적용되는 abv, 즉 Alcohol by Volume 입니다. 이는 부피를 기준으로 하며,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심지어는 북한까지도)들이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수를 구분할 때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또다른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거 영국에서 쓰던 Proof 단위입니다.
원래 Proof 단위는 알콜의 정확한 함량을 알 수 없었던 시절 불을 붙여서 불이 붙으면 통과함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선원들에게 럼을 지급했던 영국해군의 경우 함상 보급관들이 술을 조금씩 빼돌리고 물을 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확인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은 배 위에서 럼과 화약을 조금 섞어 불을 붙여 불이 미약하게 붙을 경우 통과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고, 이 도수는 abv 기준 57.5도 가량이 됩니다. 만약 도수가 더 높을 경우 (60도 이상) 럼과 화약이 동시에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러한 Proof 단위가 미국에 올라가면서 단위의 척도기준이 바뀌었고, 결국 미국과 영국은 같은 Proof 단위를 사용하면서도 단위기준이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영국의 100 Proof 는 알콜도수 기준으로 57.5도, 미국의 100 Proof는 이를 1/2로 나눈 50도가 됩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미국 버번들의 경우 US Proof라고 별도의 표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Proof 뿐만 아니라 또다른 부피 단위인 Gallon, Pint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도량형이 미국 도량형보다 좀 더 기준이 큽니다)
따라서 고급 스카치 위스키에 100 proof로 표기가 되었을 경우 이는 영국기준으로 abv 57도라는 의미이고, 대표적인 아메리칸 버번인 와일드 터키의 101 proof는 미국기준으로 abv 50도가 됩니다. 푸에트로리코에서 나오는 바카디 151의 경우도 151 Proof, 즉 abv 75.5도가 됩니다.
<양주는 원래 물을 타서 만드는 것인가>
대개 단식 증류를 마친 양주는 도수가 abv 50~60도 정도가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가 보통 마시는 ‘양주’ 는 이러한 원주에 물을 첨가하여 도수를 abv 40도로 일괄하여 시판하는 제품들입니다. (주로 세금 문제 때문에 이렇게들 합니다)
다만 일반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시바스 리갈, 조니워커, 발렌타인)가 아닌 고급 싱글몰트 위스키의 경우 향과 맛을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들쑥날쑥해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탈리스커 10년의 도수는 47도,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의 도수는 48도입니다.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위스키와 해외 혹은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위스키의 도수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시판되는 발렌타인 17년의 도수는 40도, 면세점에서 파는 발렌타인 17년의 도수는 43도입니다.
이와는 달리 다른 한편으로 물을 섞지 않고 나무통 안에 있던 원주 그대로를 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술이름 뒤에 ‘Cask Strength’ 라고 별도로 표기하며, 높은 도수와 비싼 가격이 특징입니다. CS 위스키는 대개 48~57도의 도수를 가지며 이 중 가장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글렌드로낙 105와 아벨라워 아부나흐인데, 무려 60도의 도수를 자랑합니다.
중국 술들의 경우에도 고도수를 자랑하는 술들이 여럿 있습니다. 기중 고급으로 치는 마오타이나 수정방 등이 53도 정도 합니다. 양꼬치와 함께 즐겨 마시는(?) 이과두주는 56도, 고량주는 40도 정도가 보통입니다. 물론 도수는 업체들마다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물을 첨가하여 맘대로 도수를 조절할 수 없는 고도수의 술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환각과 정신착란으로 악명높은 압생트(absinthe)입니다.
압생트의 경우 도수는 40도에서 70도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도수가 지나치게 높기에 각설탕과 함께 물에 희석하여 마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압생트는 최근 들어 유해한 서양쑥을 쓰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유럽 각국에서 제조규제가 해제되었으며 국내에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정히 맛이 궁금하다면 좀 더 안전한 페르노(Pernod)를 접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