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시 :2010년4 월 10일 토요일) 날씨 :비온후오후갬
2. 산행개요
모악산은 1971년 12월 2일에 전라북도 고시 제133호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전라북도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며, 전주시 중인동, 김제시 금산면, 완주군 구이면의 2시 1군 3개 동.면에 걸쳐있다
전주에서 18Km, 김제에서 19.5Km, 금산사 IC에서 7Km거리이고,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도 02, 북위 35도 42 지점으로 전주와 김제에서 승용차로 약30분이 소요된다. 행정구역상 총면적42.22Km2로 김제시 금산면 29.22Km2, 완주군 구이면 10.87Km2, 전주시 중인동 3.13Km2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모악산의 지형은 협곡형이며 금평저수지에서 집단시설 지구까지는 긴 계곡형 부지이고 대상지의 진입부는 대체적으로 10%미만의 완경사지이며, 최대 경사는 20% 내외이다. 지질은 쥐라기(2억 1천만년-1억 4천만년 전)때 형성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졌으며, 함금석영맥으로 구성되어 김제 금구 등 4개소에 산금광산이 있다.
모악산의 기후는 우리나라 남부 대륙성 기후의 특성을 보이는데, 맑은 날이 많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기도 하나 대체로 온난하다. 연평균 기온 12.8도, 최고 29.4도, 최저 평균 -5.6도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253.7mm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6.25 이전만 해도 아름드리 나무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아름다워서 계룡산과 더불어 민중신앙의 텃밭으로 정기어린 산으로 어깨를 겨루었다. 또 금산사의 봄경치(母岳春景)는 변산반도의 녹음(邊山夏景), 내장산의 가을단풍(內藏秋景)과 백양사의 겨울설경(白陽雪景)은 호남 4경의 중의 하나로서 모악산 도립공원의 자연경관을 대표하고 있다.
또 해발 793.5m의 주봉과 눌연계곡 외 4개, 폭포는 금동폭포(10m)외 1개, 소산식물은 104과 342속 594종 1아종 84변종, 총 683종류로 보고 되고 있다. 포유류는 5종 34개체, 양서류는 2목 6과(9종), 파충류는 1목3과 9종으로 나타났다. 짐승 및 조류는 22과 32종이 서식하고, 곤충류는 5목29과 172종으로 조사.보고(환경처, 90년도 자연생태계 전국조사 및 도민일보 모악산 생태계 조사)되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서는 장군봉, 눌연계곡, 금동계곡, 선녀폭포 등의 자연경관지와 금산사, 대원사, 수왕사, 귀신사, 청룡사, 용화사 등의 주요사찰이 있고, 미륵신앙의 본거지인 오리알터의 증산교 본부등의 문화경관 자원이 있다. 주요문화재로서는 국보 1점(금산사 미륵전), 보물11점(금산사 경내 10점, 귀신사 1점)이 소장되어 있다.
●모악산의 유래 및 지리
[지리]우리나라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땅의 모든 물줄기들과 동.서.남.북의 분기점이 되는 백두대간이 우리나라 산들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에서 북향한 호남.금남정맥이 마이산근처에서 다시 남북으로 갈리고,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금남정맥, 남쪽으로 가는 정맥은 호남정맥이다.
전라도의 땅들과 물줄기들은 호남정맥의 산줄기에 의해 흐름이 나누어지며, 영취산, 장안산을 시작으로 섬진강과 금강을 나누고 전라 우도와 좌도를 가르며 백운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진안 곰티재를 넘어 임실의 슬치를 지나 오봉산과 옥정호 변 초당골 지나며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이때 옥정호 변 초당골을 지나 묵방산을 가기전에 지난 호남정맥이 북쪽으로 모악기맥을 갈라놓는다. 이 기맥은 동쪽 만경강, 서쪽 동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국사봉. 화율봉, 배재, 장근재 등 15.8km를 달려서 모악산 정상인 국사봉에 닿는다.
모악산의 줄기는 세 개의 행정구역(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을 나누며 배재, 장근재, 밤티재의 부드러운 능선이 있고, 금산사 방면의 내모악과 동쪽의 구이 방향의 외모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산세는 기운찬 호남정맥의 힘을 그대로 이어 우뚝 솟구쳐서 서해에 닿을 것처럼 길게 뻗어 내리다가 산자락 아래 사방백리가 넘는 호남평야를 펼쳐놓았고 북쪽으로는 천년고도 전주를 품에 안고 있다. 호남평야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금남정맥, 남쪽에는 호남정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남평야 한가운데서 보면 마치 어머니가 양팔을 벌려 사방 몇백리의 너른 들녘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또 여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를 채우고,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흘러들어 호남평야를 넉넉하게 해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유래]옛부터 엄뫼, 큰뫼로 불려져온 모악산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악산이 삼국유사와 고려사에도 ‘금산(金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악산으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로 추측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지/金山寺誌’에는 “조선의 고어로 ‘엄뫼’ ‘큰뫼’로 칭하였다. 엄뫼는 모악이라 의역(意譯)하고, ‘큰뫼’는 ‘큼’을 음역(音譯)하여, 금(金)으로 하고 ‘뫼’는 의역하여 ‘산(山)’으로 하였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산사’의 이름도 여기에 연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망]모악산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보면, 북쪽으로 멀리 동양최대의 절터를 품에 안은 미륵산이 보이고, 여산의 서방산이 다가온다.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을 스쳐지나가면 위봉사이고, 마이산, 운장산, 장안산도 지척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수산, 만덕산 너머 덕유산, 지리산이 아스라하다. 나직이 전주의 한복판에 자리한 완산칠봉과 남고산성을 지나면 고덕산과 경각산이고, 호남의 정맥이 지나는 오봉산이 있다. 남으로는 광주의 무등산, 순창의 회문산, 강천산, 서쪽으로는 정읍의 내장산과 입암산을 지나면 방장산, 변산등 온갖 산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변산을 지나 서해바다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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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누구랑 :식구랑 함께
4.산행코스 :주차장-능선계곡길-모악산794m-능선계곡길-주차장
소요시간3시30분8km
5.산행기
아침06.50분에 출발하여 청주부터 간간히 비가 내리고 2시간20분여만에 편도190km 달려서 모악산 주차장에 도착 산행준비을 하고 09시20분에 산행을 시작 주차장에서 대원사 갈림길에서 계곡길로을지나 폭포에서 떨어지는물소리을 들으며 산행을 한시간여이상 계곡을 끼고오를때 이슬비가 내리더니 정상까지 쉽없이 비가내려 이곳은 전주사람들이 자주찿는 산책 코스 이기도 하다.전주시내 주변 조망을 볼수가 없었고 정상에 이동통신안테나가 흐릿하게 보이고 정상석은 도립공원이 무색하게 헨스 밖에 있어서 정상석 표지석이 성의가 없어보이고 이런곳에 위치 한곳은 처음 보았습니다.
비가내려서 부랴부랴 하산 사진몇장담아 3시30분여만에 하산
오후02시부터 날씨가 맑아지고 금산사 주변 도로 벗꽃이 다음주말이나 볼수가 있을것 같고 금산사에 문화재 는 관람료는1인2.500원 주말에 등산객과 나들이객 이 찿아 금산사에 많았고 1시30분 사찰을 돌아보는동안 경내에는 벗꽃이 올해 날씨 관계로 개화시기가 일주일 늧어서 피기시작을하고 목련꽃 매화꽃이 피고 사찰이 천년고찰써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전주에 왱이콩나물국밥집(063.287.6980) 유명한 55년전통에한그릇에 오천원 손님이 15시30분에
계속 들어오고 맛집추천 드립니다.
전주한옥마을위치 (전주기 완산구 교동65-5) 찿았는데 이벤트 행사도 여러곳에서하고 전동 성당이 (한국 천주교 순교1번지 )엣 성당 건물이 오래되여 재시공 하려고 모금 하는모습을 보았고 완산구 풍납동에 조선시대전각 선조왕에 영정 건축물이 웅장하고 매화꽃나무가 오래되어 아름답고 경내 한시간여 돌아 한옥마을 상가 여러가지 골동품 전통찿집 전통토속음식집.볼거리가 많이 있어서 주말이나 휴일 에 찿는인파와함께 봄내음을 가득 담아 보세요.
전동 성당과 한국 최초의 순교자
전주시에 자리잡고 있는 전동 성당은 세 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박해 후 전주 지역의 사목을 맡게 된 보두네 신부가 1889년부터 대승리(완주군 소양면)를 중심으로 사목을 하다가 1891년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옴으로써 '전주 본당'(지금의 전동 본당)이 시작된 곳이다. 다음으로 이 자리에는 1914년에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식 성당이 건립되었으며, 이 성당은 1981년에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면서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는 1791년의 신해박해 때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순교 터가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대승리에는 '전동 본당 발상지'라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지금의 전동 성당 터에서는 1791년 11월 13일(양력 12월 8일)에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목이 잘려 순교하였다. 물론 이보다 앞서 1785년의 명례방 사건으로 이벽(요한)이 집안의 박해를 받은 후에 병으로 사망하였고, 김범우(토마스)가 형조의 아전들에게 체포되어 유배를 당한 뒤 배소에서 사망하였지만, 자료 부족으로 아직까지는 이들의 순교를 증명할 수가 없다. 특히 윤지충과 권상연은 초기의 신자로서는 드물게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뒤 혈세(血洗)를 받았으니, 전주교구에서 이들을 하느님의 종으로 선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윤지충은 진산 장고치(현 금산군 벌곡면 도산리)에서 태어나 막현리(현 진산면 막현리)로 이주해 살던 남인 계열의 유명한 집안 출신으로, 조선 시대의 국문학 대가로 알려진 윤선도가 바로 그의 6대 조부이다. 그리고 권상연은 윤지충의 이종 사촌으로 공주 탄방(현 대전시 탄방동)에 살다가 막현리로 이주해 온 집안 출신이었으며, 경기도 양근의 유명한 신자였던 장약종(아우구스티노)과 정약용(요한) 형제는 윤지충의 고종 사촌 형이었다. 윤지충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바로 정씨 형제들과의 학문 교류 덕택이었고, 권상연이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윤지충 덕택이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87-1788년 무렵에 세례를 받은 후 그 동안 배워 오던 학문 대신에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러던 중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상 제사 금지령을 하달하자 신주를 폐하였고, 다음해 윤지충의 모친(권상연의 고모)이 선종하였을 때는 전통 상례(喪禮)를 폐지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당시는 이처럼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전통 상례나 제사를 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때였다. 그러므로 집안 사람들은 물론 이웃과 친지들은 이러한 행위를 묵과하지 않고 널리 알렸으며, 마침내는 지방의 관장과 조정에서가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신해년의 '진산 사건'이었다.
사건이 확대되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잠시 몸을 피하였으나, 윤지충의 숙부가 체포되자 도리없이 피신처에서 나와 진산 관아에 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윤지충 일기"에 따르면 그들은 일단 진산에서 문초를 받은 후 10월 29일에 전주로 압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과 문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11월 8일 조정에서는 윤리강상죄(倫理綱常罪)를 적용하여 그들에게 군문효수형의 판결을 내렸으며, 11월 13일에는 오가는 행인들이 많은 전주 남문(풍남문) 밖에서 형을 집행하였다.
저들은 천주만 있는 줄 알고 임금과 어버이가 있는 줄을 모르며, 신주는 평일에도 부모와 조부모가 살아 계신 것처럼 섬기기 위한 것인데, 신주는 한 조각 쓸모 없는 나무토막이라고 불태워 없애고도 조금도 후회함이 없습니다. 제사를 폐한 일도 그러하거니와 매를 치며 자백을 받을 때에도 유혈이 낭자하였지만 신음 소리 한마디 없이 언제나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여 임금의 명령이나 부모의 명령은 어길지라도 천주의 가르침만은 비록 극형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배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칼날 아래 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이만채 편, "벽위편" 및 "정조실록" 참조).
윤지충과 권상연이 전주 감영에서 형벌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순교를 각오하고 대답한 말이다. 훗날 이러한 순교 의지에 대한 표현은 순교자들에게 하나의 표어처럼 되어 버렸다. 순교한 뒤 그들의 시신은 막현리 인근에 묻혔고, 그들이 남긴 유물은 신자들에게 치유의 은사를 이루는 기적의 도구처럼 여겨져 여러 사람이 지니고 다녔다 한다. 또 이로부터 4년 뒤인 1795년에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전라도 땅으로 내려가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성교를 공부하여 성인품에 이르게 된다면, 마땅히 두 사람의 무덤 위에 천주당을 세워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120여 년 뒤 그들의 순교 터인 전주 남문 밖에 아름다운 성당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뿐이다.
굿뉴스에서..
전통과 문화의 도시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각.
한옥마을 입구에서 풍남문으로 향하는 태조로 옆에 위치한 경기전이 있습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전각으로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고
원래의 전각은 임진왜란 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현 전각은 1614년 광해군때 중건한 것이라 합니다.
경기전의 경역은 정전(正殿)과 조경묘(肇慶廟)로 나뉘는데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고
조경묘는 정전 북쪽에 위치하며 태조의 22대조이며 전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 이한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771년 영조때 지은 것이라 합니다.
경기전은 전주 한옥마을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이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보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첫댓글 감상 잘했습니다...사진도 구경 잘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