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에 정경이 추가로 저술될 가능성은 없는가?
(4)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교회의 터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다른 토대적인 사도들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바로 바울이 속해 있는 사도의 등급입니다. 이 서열에 들어 있는 사도들의 특징은 그들도 역시 신약성경의 교리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1987년 방문에서 예수님은 또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대적인 사도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들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이 등급 또는 수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신약성경의 교리적 토대를 놓기 위해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와 선지자들은 토대적인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간주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복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토대적인 신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인 이 세 번째 서열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썼으며,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한 계시를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3:4-5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바울은 복음의 계시를 초기 신약 성도들에게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기초를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신약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놓여진 토대 위에 쌓아올리기만 합니다.
에베소서 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신약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놓은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토대 위에 쌓여져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아무도 오늘날 복음의 기초에 무언가를 더하기 위한 부가적인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새 언약의 계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바울은, 이미 놓여진 기초 위에 우리가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고전3:10). 우리는 그것에 뭔가를 더할 수도 뭔가를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방문에서 예수님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에는 기초를 놓는 사도들도 없고, 기초를 놓는 선지자들도 없단다. 오늘날에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동일한 수준 또는 권위와 같은 서열, 또는 같은 정도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아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에 속해 있지 않다.'"
기가 막히지요! 정경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도 더 이상 추가되지 않습니다.
한편, 어떤 분들은 오늘날도 존재하는 비토대적인 사도들에 대해 "초대 교회 이후에도 사도들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하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아주 명백하게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용례를 조사해보면, '제자'라는 용어가 12제자에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사도'라는 용어 또한 12사도에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12사도나 바울만 사도라고 생각하니까 사도들이 지금은 없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과 다른 사도들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 7절, 사도행전 14장 4절과 14절, 빌립보서 2장 25절, 갈라디아서 1장 19절 등이 그 증거입니다. 그중 로마서 16장 7절을 가지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이 구절에 대해 존 칼빈은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도들이라 부른다. 초대 교회에서는 한 교회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은 원래의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도들'이라 불렸다."
권위 있는 신학자 더글라스 무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첫 번째 기술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사도들에 의해 존중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들 사이에서 존중받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그리고 바울이 그렇게 유니아(스)를 '사도'의 한 사람으로 부르기 때문에 앞 시대의 해석자들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이 남자임에 틀림없다고 논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초대 교회에 서 여자가 그런 권위를 지닌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유니아(스)를 여자로 감정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다. 바울이 여자 사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신약이 여자들의 사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사상에 뒷받침이 되기 때문이다."
WBC주석에서 제임스 던(James D. G. Dunn)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도들 보기에 뛰어나다'라기보다는 '사도들 중에 두드러진'을 확실히 의미한다. "사도들"이라는 직접적인 묘사(고후 8:23과 빌 2:25과 대조하라)와 이어지는 구절은 협력하여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고전 15:7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지명된 사도들의 대그룹(12사도보다 더 큰)에 속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 우리는 기독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 여성 그리고 아내였다는 것을 확실히 결론 내릴 수 있다."
또, 박윤선 박사님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이 문구는, "그들이 사도들 중에 유명한 자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이 번역에 의하면, 그들도 사도들이라는 뜻이 성립된다. 그들은 12사도 반열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사도급 인물들이겠다. 그들은 본래의 사도들처럼 많은 교회에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여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여러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 둘째 해석을 지지한다(Sanday, Ridderbos)."
그리고 이상근 박사님 역시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사도들 중에서 유명히 여김을받고'로서, 그 뜻이 1. 우리 성경처럼 사도들에게 유명해진 것인지(De Wette, Meyer, Gifford). 2. (그 자신 사도로서) 사도들 중에서 탁월한 자인지(Chrysostom, Alford, Bengel, Godet, S & H) 이론이 있으나, 후설이 압도적이다. 사도란 좁은 의미에서는 12제자를 가리키나, 넓은 의미에서 그 범위는 더욱 넓었다."
이처럼 12사도나 바울과는 격이 다른 더 폭넓은 사도 그룹이 존재했습니다. 저는 12사도나 바울 같은 사도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사도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행전 1장 21-22절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오늘날은 사도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 중에 세례 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즉 공생애 기간 내내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지금은 사도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도의 자격이 아니라 어린양 12사도의 자격입니다. 이스라엘이 12지파였던 것처럼 어린양의 사도도 12명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누가복음 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12사도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고 다스릴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나 바나바가 죽은 후에는 그들을 대신할 사도를 뽑지 않았지만 가룟 유다가 배신한 후에는 그를 대신할 12번째 사도를 뽑은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고 순교한 야고보는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므로 그를 대신할 사람을 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주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그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대신할 사람을 뽑아야만 했습니다.
사도행전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또, 어린양 12사도의 사명은 베드로가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행1:22)이라고 명시한 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메시지의 핵심이었고 사도행전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만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생애 내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을 자격 요건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더구나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이것잉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하고 다스릴 자들의 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세례 요한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한 것을 어린양 12사도의 필수적인 자격으로 꼽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어린양의 12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세례 요한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든 사도의 자격이라면 바울도 사도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사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12사도에게만 요구되는 자격을 말하면서 오늘날은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으니 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사도의 직무는 중단되지 않았고 여전히 계속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2) 에베소서 4장 11-12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사명이 성경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양 12사도와 바울이 토대적인 사도들로서 교회의 토대를 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정경의 완성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12사도 중에도 성경을 한 권도 기록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토대적인 사도들 외에도 바나바를 비롯해서 사도지만 정경을 기록하거나 교회의 토대를 놓는 것과 무관하게 부름 받은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빌립보서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여기서 '사자'는 원어에 보면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사도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12사도나 바울과 같은 등급 혹은 수준에 있는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나 세 번째 등급의 사도 즉 토대적인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사도들이 하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럼 이런 사도들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께 받은 그들 각자의 사명도 있지만, 성경은 다른 모든 사역자들과 일치되는 사도들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절)
이것이 사도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일들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성도는 봉사를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현재는 물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필요한 사도들 역시 계속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쉬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설계사나 미장이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기술자들이 힘을 모아야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목사나 교사만으로 제대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모두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만 남겨두고 사도와 선지자는 더 이상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오늘날도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