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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족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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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와 인물 자료 모음 스크랩 김대중과 김해김씨
봄내인 추천 0 조회 227 08.07.27 22:14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제목: 정변의 역사 2008.5.27.화

김대중과 김해김씨

 김대중(金大中)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후광(後廣)이다. 그는 1924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떨어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호적상 출생일은 1926년 1월 6일이다.

 그는 1943년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인이 운영하던 목포상선에 취직했다. 8·15해방으로 일본인들이 떠나자 이 회사의 관리인으로 선임되었으며 목포일보 사장(1948~50)을 지냈다.

 1954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데 이어 2차례 더 낙선한다. 1961년 5월 14일 4번째로 도전한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강원도 인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나 이틀 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국회가 강제 해산되는 바람에 의원등록조차 못하고 만다.

 그 후 6·7·8대 국회의원에 연속 당선되어 민주당 대변인(1960), 통합야당 민중당 대변인(1965), 민중당 정책위원회 의장(1966), 신민당 대변인(1967)을 지낸다.

 1970년 9월 김대중은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지명되었다.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김영삼·김대중·이철승 의원 등 3파전에서 소수파인 그는 1차 투표에서 김영삼에 밀려 2위에 그친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 이철승이 지지표를 몰아줌으로써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95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1972년 일본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은 10월유신이 선포되자 귀국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반유신운동을 펼친다. 그러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된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12월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데 이어 1980년 2월 사면복권된 그는 1980년 초의 '서울의 봄' 때 김영삼·김종필 등과 함께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12·12사태(1979)로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체포, 수감된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 뒤 군사정권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이어 1982년 12월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열어 활동하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귀국했다.

 1987년 12월로 예정된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독자 출마로 방향을 돌려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와 3파전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고 만다.

 1992년 12월 18일 그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호남지역의 압도적인 지지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190만여 표차로 패배했다.

 그 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대중경제론’‘평화를 위하여’‘민족의 내일을 생각하며’‘공화국연합제’‘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나의 길 나의 사상’‘후광 김대중 대전집(전15권)’‘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등 많은 저서가 있다.

 한편 김대중은 김해김씨 금녕군파(金寧君派=경파) 20세 현(顯)자 항열(行列)이다. 지파는 안경공파(安敬公派)다. 경파는 금녕군 휘목경파를 말하며, 경파는 별칭 혹은 별명이다. 경파는 김해김씨 각 파 중 가장 큰 집이다. 경파는 크게 11개 큰 분파가 있고, 또 이 11개 분파에서 또 지파가 있다. 안경공파는 경파의 분파이므로 표기를 안 하는 자료집도 있고, 표기를 하는 자료들도 있다.

 안경공파는 참판공파, 횡성공파(횡성 현감), 안경공파(대사현), 석성공파(석성 현감, 한성 판윤) 등 경4파 가운데 가장 번창한 파다. 근대 후손 중 두드려진 인물은 김대건 신부,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 등이 있다.

 안경공파의 계통은 중조 금녕군 목경(牧卿), 2세 보(譜), 3세 도문(到門), 4세 근(覲), 5세 효분(孝芬), 6세 진손(震孫), 7세 영정(永貞=안경공) - 세균(世鈞)-익수(益壽)-희효(希孝)-상직(尙直)-수만(守萬)-광성(光聲)-우장(宇章)-정희(挺熙)-익조(益祚)-태현(台鉉)-제호(濟皓)-운식(雲植)-현중(顯中=大中)이다.

 김해김씨의 주요파는 ▲경파(김녕군파)…참판공파. 횡성공파. 안경공파. 석성공파. 호참공파. 참찬공파. 봉상공파. 밀직사공파. 문간공파. 밀직공파. 평장사공파 ▲사군파(감무공파)…생원공련파. 도총관공파. 생원공록파. 찬성공파. 상서공파. 공간공파 ▲삼현파(판도판서공파)…군수공파. 집의공파. 한림공파. 진사공파. 녹사공파. 진의공파. 판서공파. 부호군공파. 판서공유공파 등이다. 

 김해김씨는 2000년 현재 4,124,934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씨다. 4백만명을 넘는 유일한 성으로 서울 인구의 절반 가량에 이른다. 웬만한 시. 도의 인구보다 많다.

 김해김씨는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수로왕의 13세조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그 뒤에 148파로 갈라진다. 그 중에서 고려 때의 ▲김목경을 1세조로 하는 경파와 그의 아우 ▲김익경을 1세조로 하는 사군파, 그리고 ▲김관을 1세조로 하는 삼현파가 주종을 이룬다.

( 정복규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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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7.28 06:44

    첫댓글 김대중이 아니라 제갈대중이라는설이 유력합니다 인터넷상에서 검색해보십시요

  • 08.07.29 06:43

    상당히 번창을 하였습니다? 삼현파의 어느 형제는 100형제가 된다 면서요? 허허허

  • 08.09.17 21:00

    대중경제론은 김대중의 저서가 아닙니다. 저자는 따로 있습니다.

  • 12.10.30 19:07

    글세요... 위 계보는 김해김씨의 최근 족보를 바탕으로 한것 같고요. 호남 지역에 가면 연세 지긋한 분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생이나 본성씨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위에 설명한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시절만 하더라도, 관권 선거운동이 만연하게 있었지요...
    이 무렵 호남지역의 공무원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적을 복사하여 뿌렸습니다... 본래는 김씨가 아니다, 근본이 미약한 신분이다...를 내세우기 위한 모략 이었지요. 그래서, 그 복사본을 보았던 연세 지긋한 분들에 의해 오랫동안 비밀리에 이분 성씨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 되었지요.

  • 12.10.30 19:12

    소문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의원 시절 광주에서 자신은 광산김씨 라고 소개를 한적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광산김씨 문중에서 한때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김대중은 일개 야당 의원이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배되어 쫓겨다니는 인물이니 광산김씨 문중에서 달가워하지 않았겠지요<<< 물론 소문 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해 김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4대 대선 무렵 사석에서 <근마가 무신 김해김씨고 ...? >라며 뿌리도 없는 무슨 대통령이냐 고 조롱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냥 들었던 이야기를 대충 더듬어 기억하는데로 써보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 12.10.30 19:17

    물론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 유포되었던 호적 복사본이 정본을 복사한 진본이냐,,, 아니면 조작한 가짜이냐의 문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 입니다.
    정본을 복사했을 가능성도 있고, 반대로 조작하여 복사본을 유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곳 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김씨이면 어떻고 박씨이면 어떤가요... 그리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성씨를 바꾼 것이면 어떤가요?
    고려시대 최충헌의 노비 만적은 <경인난 이후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했습니다. 신분은 역사 이래 돌고 돌았습니다.
    1700년전에 살다간 어느 노비의 명언이 생각 납니다...

  • 12.12.15 09:38

    우연히 읽어보니 이런 인간말종같은 댓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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