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를 위한 법화경강의 제8강 1
(無比 큰스님, 문수선원, 2008년 9월 5일)
2. 방편품 1-2
계절적으로 아주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나는 딴 사람이 치는 가 했네? (웃음) 그래서 몇 번을 쳐다봐도 그 사람이라.
한 여름 지나가니까 아주 곡식이 무르익듯이 세월이 지나니까 그 서툰 피아노 소리도 이제 아주 부드럽게 소리가 좋게 그렇게 아주 잘 나네요 하하 이제 처음으로 칭찬해 준다.(웃음) 난 정말 딴 사람이 치는가 그랬어요. 피아노 소리가 그래 부드러워 가지고.
좋은 계절이라, 우리 불자들은 더욱 더 정진에 박차를 가하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 그 공부에 더욱 더 매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 불교 안팎으로 좀 힘들고 어려운 그런 시기인데 이러한 것을 보약으로 생각을 하고 보다 더 가일층 정진하는 그런 약으로 삼아서 더욱 더 내실을 기하고 또 전법 포교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가져 봅니다.
우리 염화실 인터넷에 한 달에 아니 일년에 한 사람 확실하게 교화하는 그런 이야기를 누가 올렸어요. 참 좋은 제안이다 싶은 생각이고 좋은 생각이다 싶어요.
그래서 그분은 매년 한 사람은 확실하게 불자로 만든다 하는 그런 원력하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한달에 한 사람이 아니고, 일년에 한 사람만 확실하게 불자 아닌 사람을 불자로 만든다면은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힘일 것 같습니다.
내가 늘 말씀드릴 때 불자로 만들려면은 1년간 회비 내주고 1년 동안 차 태워다 주고 또 교재 같은 것 구입해주고 일년 동안 그렇게 공을 들여야 됩니다.
공 안들이고 되는 법 없어요.
그렇게 공을 들여서라도 차 태워 주고 회비내주고 교재 사주고, 어디 갈 때 무슨 사찰 순례 갈 때 그 순례비도 1년간은 내 줘. (웃음) 그렇게 공을 들여서 한 사람이 확실히 부처님 제자가 된다고 하면은 그건 뭐 큰 소득입니다. 아주 큰 성과예요 그게.
그 인연으로 세세생생 그 사람은 고마워 할 거예요 세세생생.
참으로 이런 성인 참다운 성인의 가르침 제대로 진리를 깨달으신 그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게 됐고
그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와 보람을 알게 되고
그 가치와 보람을 한껏 누리면서 세세생생 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한다면은 그보다 더 큰 소득이 어딨겠습니까? 일년간 회비 내주고 교재 사준 것 하고 비교가 안 돼죠 그거는. 몇 천 만 배의 그 사람에게는 이익이 돌아가게 되는 그런 일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이 전문 포교사가 되면 더욱 좋지만은 요즘은 또 전문 포교사도 많아요. 일반 불자들이. 그렇게 못한다면은 한 사람만이라도 일년에 확실하게 이 바른 가르침 또 참다운 가르침 바르고 참된 이치를 깨달았고 그 바르고 참된 이치를 전해 주는 그런 가르침
이게 뭐 무슨 불교 신도 늘리자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다운 이치에 대한
인생과 모든 존재의 참다운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전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어리석게 살지 않고
말하자면은 사람으로 태어난 그 가치와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것은 모두가 그런 존재의 참다운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앞세워서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다른 거 아닙니다.
참다운 이치를 알면은 그렇게 안 사는데 이치를 모르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얼토당토 않는 그런 주의주장을 내세우고 그래서 세상에 부조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고 정직하지 못하고 순리대로 살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그래서 불교를 전파하는 것은 불자를 만들어서 뭐 수를 불리자 라고 하는 뜻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에게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주자 하는 것이지 다른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소신을 가지고 일년에 한 사람만이라도 확실하게 불자로 만든다면은 이건 대단한 포교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자기는 그렇게 한다고 하면서 염화실 카페에다가 올려놨어.
얼마나 고마운지 참 정말 반듯하게 불교를 신행 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좋은 말씀이고 불자로서 아주 정말 본받을만한 생각이라서 그렇게 같이 나누자고 서두에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불교에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만은 그 가르침 중에서도
이 법화경의 가르침은 가르침 중에 왕이다.
또 모든 가르침 중에도 제일이다
이런 표현을 경 안에서 서슴없이 수차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정말 제대로 된 가르침 가르침 중에 왕이며 가르침 중에 제일인 법화경 가르침. 오늘 그 두 번째 품 방편품이 되겠습니다.
方便品 第 二
방편품 제이
이 방편품은 법화경의 28품 가운데 여래수량품과 아울러 그 두 품을 법화경의 눈이다 그래요.
방편품하고 여래수량품 하고 법화경의 안목이다
그렇게 이야기 할 정도로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아주 의미가 심장하고 또 안에서도 말했지만 참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표현을 했어요. 말은 쉽지만은 그 진정한 이치가 우리 마음속 깊이 무르녹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죠. 그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주 중요한 품이고 또 앞에 서품은 서론이고
부처님 말씀은 한마디도 아직 없었어요.
부처님이 광명을 놓으니까 그 광명에 나타난 여러가지 상서로운 모습들을 보고 대중들이 궁금해 하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미륵보살이 대중들을 대신해서 문수보살에게 묻고 문수보살은 과거에 당신이 경험한 바에 비추어서 아마 이러이러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죽 이제 서품에서 해 왔고 비로소 이제 부처님이 입을 떼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왜 방편품이라고 했는가? 우리 불교에서 방편이라는 말 참 자주 써요. 많이 씁니다. 또 좋은 말이예요 이게. 그래 어지간히 불법하고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 방편이라’고 이렇게 또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경우도 있고, 또 방편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넘치는 방편을 써서 사람을 왜곡하게 하는 그런 폐단도 없지는 않습니다만은 아무튼 이 방편(方便)이라는 말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방(方)자는 바르다는 뜻이예요. 우리가 어릴 때 상장 타보면 ‘품행이 방정하다’ 그러죠? 그 때 이 방(方)자 쓰거든요. 방정하다. 그게 바르다 정확하다 올바르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편(便)은 수단이라는 뜻인데 편(便) 기술이라는 뜻도 되고 수단이라는 뜻도 되고 그래서 아주 바른 수단 이런 뜻입니다. 바른 수단.
우는 어린아이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밖에 호랑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한 번도 호랑이 본 적도 없는데 그것도 또 부모로부터 배워온 가르침이죠.
호랑이 왔다 울지마라 이런다고요. 호랑이 왔다 울지마라.
그게 사실은 거짓말이잖아요. 그런데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우는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밖에 호랑이가 왔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울음을 그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참 어머니의 깊은 뜻이 담겨 있죠?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거야 그게. 그걸 이제 아이들은 모르는 거지. 아이들은 몰라. 그냥 아 호랑이 왔는가 보다. 호랑이는 아버지 어머니도 무서워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난들 얼마나 무섭겠나, 이래가지고 그냥 울음을 뚝 그치게 한다 하는
그런 우리가 어릴 때 들어오던 사례를 생각한다면은 그런 말이 하나의 방편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불교에는 그와 같은 어린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는 정도의 그런 수준의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무수한 방편들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 불교가 거의 방편불교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고 그렇게 표현을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 할 만치 방편을 너무 많이 써요 사실은.
방편의 반대말은 실법입니다 실법(實法). 실다운 법이거든요. 방편이라는 것은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이라면은 달은 실법인거야 실체가 되는 거지.
손가락을 가지고 저기 달이 있다 하면은 손가락이 달은 아니야. 그런데 손가락을 통해서 달을 볼 수 있듯이 방편을 통해 실법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방편 문을 열고 실법을 보여준다. 이게 법화경입니다.그동안 불교가 거의가 다 방편 불교인데 그 방편 불교를 열어놓고 실다운 법을 보여주는 거지.
저 앞에 문은 방편 문이야. 그 다음에 문을 열면은 여기 실제로 공간, 법당이라고 하는 실제 공간이 딱 나타나는 거지.
그와 같이 그동안 이제 삼승(三乘)이라고 하는 세 가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열반(涅槃)이니 공(空)이니 연기(緣起)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무수히 했는데 그런 이야기들,
연기니 공이니 무아(無我)니 이런 성문이나 연각들이 공부한 그런 것들도 좋은 공부는 좋은 공부예요. 좋은 공부지만 그건 이제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짜 들려주고자 하는 그런 법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방편을 통해서 부처님의 궁극적인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 법화경의 가르침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그런 중간 과정으로서의 중간 수단이라.
그런데 그것은 바른 수단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방편이라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은 참 공부할 것이 많아요. 차츰 차츰 자꾸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되고 그렇게 해서 수준이 자꾸 높아지고 무슨 한문도 물론 잘 알고 한문 해석도 잘 알고 교리도 잘 알고 그 다음에 뭐 다른 어떤 이치, 연기의 도리라든지 하는 그런 것들도 잘 알게 되는 그런 입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되는 그런 상황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짐이 많지만은 또 어떻게 보면 그만치 할 일이 많고 할 공부거리가 많아서 불자들은 그것만으로도 부자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예요.
공부할 거리가 많다 얼마나 부자입니까? 이게 진짜 부자예요. ‘아 나는 공부할 거리가 많아서 정신없이 바쁘다’고 그게 참으로 진짜 부자인거라, 정신적으로 대단한 부자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런 것이, 아 이 나는 참 공부에 복이 많다. 그래서 나는 진짜 이제 법에 있어서 정말 진정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어떤 부자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되고 또 그렇게 이해할 줄 아는 마음이 이게 불자들
불교 공부하는 불자들의 특권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얄팍하게 배워가지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하고 그런 정도에 그친다면 그건 이제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면은
아 공부해 볼수록 참 재미도 있고 이치에 맞고 첫째
첫째 이치에 맞아야 돼요. 그리고 이제 공부할 거리도 많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나는 아주 대단한 부자다 그렇게 생각하는 불자가 돼야 될 것입니다.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를 하면은 대단히 장황하지만 간단하게 그렇게 말씀드리고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爾時世尊이 從三昧安詳而起하사
이시세존 종삼매안상이기
그 때 세존이 삼매(三昧)에서 조용히 일어나시어
爾時世尊이 從三昧安詳而起하사
그 때 세존께서 삼매(三昧)로부터 종삼매(從三昧)
삼매로부터 안상이기(安詳而起)라
이기하사 안상한 마음으로 안상한 상태로 일어났다 이 말이야.
삼매(三昧)로부터 일어난 것을 안상이기(安詳而起)라 그랬어. 안상히 일어났다. 그렇게 표현하는데 참 법화경의 많고 많은 낱말중에 요 안상(安詳)이라는 낱말은 정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멋진 말입니다. 안상.
밑에 줄 그어놔요. 안상 편안할 안(安)자 자세할 상(詳)자.
자세할 상자. 요건 이제 찬찬히 또 아주 편안하게 섬세하게 세밀하게 이런 의미가 다 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까 잠깐 입정을 했죠.
그래 이제 입정 끝난 죽비를 치는데 조용히 화두를 들었든 아니면 관세음보살을 속으로 생각했던 나무묘법연화경을 생각했던 조용히 그런 생각을 하다가 죽비를 침으로 해서 그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비로소 법화경 공부할 마음 준비를 하게 되죠.
화두를 들었다면 화두를 스르르 풀면서 방선 죽비를 쳤을 때 그 소리에 맞춰서 마음을 스르르 푸는 거예요.
누구도 옆에서 눈치 채지 못하고 정말 내 마음 속에서 아주 섬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그러면서 아무런 동요도 없이 편안한 상태로 그 어떤 집중되었던 마음을 법문을 듣기 위해서 스르르 푸는 그런 상태를 안상(安詳) 이렇게 합니다.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안상이라는 말을 쓰죠.
요수안상(要須安詳)이라. 반드시 안상히 하라 그랬어요.
편안하고 자세하게 하라. 요 상태로 발우공양을 하라 이말이예요. 그러니까 숟가락을 들고
‘집방(執放)에 요수안상(要須安詳)’ 그렇게 돼 있어요.
발우를 들고 또는 놓고 숟가락을 들고 놓고 젓가락을 들고 놓고 물을 마시고 놓고 하는 그런 하나하나의 동작 우리 식사할 때 하나하나의 동작을 하는데 이 동작의 기본정신이
요수안상(要須安詳)이라.
요컨대 모름지기 안상히 하라. 그래놨어요. 아주 미세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고 찬찬히 정확하게 정확하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상히 하라. 마치 부처님이 삼매에서 깨어나듯이 부처님이 삼매에서 깨어나는데 뭐 후닥딱 일어납니까? 아니면은 후닥딱 앉습니까?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니거든요.
또 마음의 변화지이만은 그 마음의 변화도 전혀 다른 사람이 눈치 채거나 그런 어떤 순간적인 큰 전환이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봄에 앞산에 눈이 언제 녹았는지도 모르게 스르르 한겨울에는 녹을 것 같지 않았는데 언제 녹았는지도 모르게 스르르 녹듯이 우리 마음에 그런 어떤 새로운 어떤 일을 위한 마음의 그 전환.
그런데 그 전환은 이렇게 안상히 하는거야. 발우공양도 그렇게 해야 되고.
다도(茶道)에도 역시 안상(安詳)이라는 이 두 글자면 끝나요. 안상, 다도에도 꼭 같습니다. 모든 행동이 정말 미세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고 찬찬하고 정확하고 그게 다도의 정신이야.
그래 뭐 우리나라에 그런 이야기가 있죠?
일본에 다도가 아주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도 공부를 하러 갔는데 가서 정말 공부하러 갔으니까
그 다도하는 데 뭐 설명도 하나도 듣지도 못하고 첫 자리야.
첫 자리에 탁 가서 참석을 했는데 얼마나 조심스러웠겠어요?
그것도 전통적인 유교 정신에 입각해서 말하자면은 손님으로 갔을 때 남의 나라에 손님으로 갔을 때
또 다도를 배우러 간 그 마음이니까
너무너무 조심스럽고 아주 편안하고 섬세하고 찬찬히 침착하고 정확하게 행동을 따악 이렇게 하니까,
하고서 다도를 배우러 왔다고 정중하게 이렇게 물으니까 다도 하는 대가가 그 사람을 척 보고는
“당신은 다도를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차라리 배워야 됩니다.”“왜 그러냐” 하니까 “바로 당신의 그 태도 그것이 다도의 아주 핵심입니다.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떤 식으로 손을 움직이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그 동작 하나하나 몸가짐 하나하나 말씨 하나하나에 그 정중하고 정확하고 섬세하고 겸손한 그런 마음으로 하는 그것이 바로 다도의 올곧은 정신”이다.
“더 이상 당신에게는 내가 배웠으면 배웠지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라는 그런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어. 실지로.
나머지 뭐 어떻게 해라 차를 어떻게 우려낸다 이건 뭐 여기(餘技)예요. 그건 기술이니까 그건 아무나 배우면 되는 거예요. 아무나 배우면 되는 거지만은 내가 방금 설명한 안상히 하는 이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정말 마음속에서 그런 그 어떤 지성과 감성이 하나가 되어서 우러나는 그런 어떤 모습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이 삼매에서부터 삼매에서 깨어나는 것을 참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그것을 표현한 낱말이 안상(安詳)이야.
부처님이 삼매에 들었다가 요 앞에 무량의경을 설하시고 그 다음에 무량의처 삼매에 들어 계셨다 이래 돼 있었어요 부처님은.
그리고 나서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의 대화
문수보살의 장황한 설명, 그것이 다 끝난 뒤에
부처님이 삼매로부터 착 깨어나는 그런 모습을 정말 어떤 문필가도 쉽게 그려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화경에서 딱 안상(安詳)이라는 글자 두 자로 표현해 냈어요. 그런데 너무너무 정확하게 표현해낸 거야.
삼매로부터 일어나는 그 광경과 그 모습과 그 마음의 변화 부처님의 그 마음의 변화를 안상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했다.
참 이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뭐 어디에 꽃 한 송이를 꽂더라도 포인트가 있게 마련이고. 또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하루의 삶에도 포인트가 있어요. 아 오늘의 주제는 뭐였다. 늘 같은 정해진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은 그래도 오늘은 아 이 법화경 공부가 오늘의 아주 중요한 내 일생에 있어서 오늘 하루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거 하고 마찬가지예요. 그와 같은 거지.
우리가 이런 낱말들 하나를 모든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면 다 적용이 됩니다. 그런 적용은 전부가 우리 각자의 몫이죠.
2. 告 舍利弗하사대 諸佛智慧는 甚深無量이시고 其 智慧門은
고 사리불 제불지혜 심심무량 기 지혜문
難解難入이라 一切聲聞辟支佛의 所不能知니라
난해난입 일체성문벽지불 소불능지
사리불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일체 성문들이나 벽지불(辟支佛)들은 알 수가 없느니라.
告 舍利弗하사대
그리고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고했다. 사리불에게 고해 말씀하시는 거죠. 사리불은 부처님의 당시로서는 상수제자(上首弟子 ) 최고의 지성인이고 인도 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인이예요.
본래 이분들은 딴 사람 다른 종교를 믿고 자기 제자들이 500명이나 되는 그런 아주 뛰어난 종교가였어요.
그런데 부처님을 만나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또 이 사리불은 얼마나 이(利)와 사(事)에 능했는고 하면은 불교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훌륭한 사찰 그게 기원정사(祇園精舍) 아닙니까?
기타 태자(祈陀太子)의 숲을 급고독 장자(給孤獨長者)가 사다시피 했죠. 떼를 써가지고 사다시피 해서 나중에 이야기가 통해 가지고 기타 태자는 숲을 제공하고 그 분은 급고독 장자는 절을 짓고 이렇게 해가지고 결국은 기원정사라고 하는 정말 훌륭한 사찰을 지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죠 인도 가 보신 분은 다 기억하시겠지만.
참 편안한 터예요. 가보면은 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상당히 넓습니다.
그런 기원정사 그것을 지을 때 자재구입 설계 감리 일체 공사 총책임을 사리불이 맡았습니다. 그런 기록이 있어요.
그런 정도로 이분은 법에만 밝은 것이 아니고 지혜만 뛰어난 것이 아니고 세상사에도 그리 밝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또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 그 인연을 내가 자주 말씀드리게 되는데 또 이런 기회에 한 번 더 말씀드리면은 이분하고 목건련 두 분이 사실은 아난보다도 또는 가섭존자보다도 더 훌륭한 제자였어요.
사실 두 팔과, 오른 팔 왼 팔과 같은 그 제자 역할을 한 사람들은 사리불하고 목건련입니다. 이분들은 평소에 아주 뛰어난 종교가였고, 그래서 어느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노란 가사를 입고 척 걸어, 바룻대를 들고 걸어오는데 너무 품위있는 거야. 마주치게 됐다고요.
세상에 저런 옷도 처음 봤고 머리 깎고 저런 모습을 한 사람도 처음 본 거야. 그냥 고행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지. 노란 가사를 입고 머리를 깨끗이 깎고 발우를 척 들고 걸어 오는데 너무너무 품위 있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어.
이 사리불과 목건련 이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래서 물었어 당신이 누구냐고 하니까 마승비구(馬勝比丘)라고 부처님 제자였어. 그래 당신은 어떤 공부를 하는 사람이고 어떤 스승 밑에서 수행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석가모니 부처님한테서 출가를 해서 그 분의 제자로서 지금 막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사리불하고 목건련은 처음 들은 거야. 인도 사회가 워낙 넓잖아요. 그때 부족국가 작은 나라들이 수없이 많았거든요 그 당시. 그러니까 부처님과 같이 그런 위대한 분도 이 사리불과 목건련이 몰랐는 거야.
그래가지고“아 그래? 그런 분이 있었느냐”고 “그런 뛰어난 종교가가 있느냐”고 “그럼 그 분은 무얼 가르치느냐”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입문한지 얼마 안 되는 초보자라서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사리불과 목건련이 지적인 욕망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 열정이 아주 넘치는 사람들이라 그냥 있을 수가 없죠.
한마디만 일러줄 수 있지 않느냐. 한 마디만 일러주라.
“뭘 배웠기에 당신은 이렇게 인격이 고상하냐?”고 이런 식으로 떼를 쓰니까 마승비구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가 그러죠.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이라
이 세상의 모든 인생사라든지 세상사라든지 부귀영화라든지 일체 것은 전부가 인연으로 인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멸도 모두가 인연에 의해서 소멸한다.
불이 꺼지는 것도 인연에 의해서 바람이 불어서 꺼졌든지 초가 다해서 꺼졌든지 아니면 비가 와서 꺼졌든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런 인(因)과 연(緣)과 이런 조건들이 다 갖춰져서 소멸한다. 부귀영화가 있다가 떠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인연에 의해서 소멸하는 것이다.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우리 깨달으신 대사문(大沙門) 전부 스님들을 사문이라 그러는데 부처님도 사문에 들어가요 대사문 큰스님 이런 뜻이라. 우리 부처님 큰스님도
깨달으신 큰스님께서도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이야 항상 이와 같은 말씀을 주로 많이 하십니다.
다른 가르침도 있지만 주로 이 세상의 존재 법칙은 연기(緣起)의 도리고 인연(因緣)의 도리고 인과(因果)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라고 하는 이 말씀을 주로 자주 하십니다.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나는 그것 밖에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말에 모든 이 우주와 지구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과 모든 성패가 전부 인연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소멸한다 하는 이 가르침을 듣고는 그만 무릎을 탁 치고 눈이 번쩍 뜨인 거야. 벌써 이사람 깨달은 거야 그 말에.
아 그렇다. 자기들은 뭐 신이 지구 땅이 있으라 하니 있고, 해가 있으라 하니 있고, 달이 있으라 하니 있고, 이런 식으로 됐다고 하는 그와 유사한 학설이 또 인도에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 궁금한 거야 그게.
사실은 그게 그런 이치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모든 것이 조건에 의해서 이렇게 이루어졌다 라고 하니까 그 말에 그만, 나를 그 스승에게로 안내 좀 해 달라고 해가지고 그래 마승비구가 부처님에게로 이 사람들 안내를 했어요. 그래 제자들 500명 하고 한꺼번에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됐습니다.
그래 눈 밝은 사람들은 그 뭐 이 종교에는 의리가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세상에 세속법으로는 의리가 중요하지만은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바른 이치의 문제에 있어서는 의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른 이치예요.
이게 바른 이치다 싶으면은 그동안 아무리 인연이 깊었던 종교단체라 하더라도 그것 놓고 바른 이치 따라가는 게
그게 바람직한 거예요.
불교보다도 더 바른 이치가 만약에 있다면 은 당장에라도 가도 됩니다. 상관없어요.
우리 탄허스님께서 늘 그 말씀 하셨어요.
‘나는 불교보다 더 좋은 진리의 가르침이 있다면 오늘도 내가 당장에 가겠다.’
그거 어떻게 들으면 얼마나 의리없는 소리입니까?
그런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의리의 가치하고는 다른 거예요 또.
의리도 물론 가치있는 거죠. 그렇지만
의리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바른 이치를 따르는 일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사리불 같은 분들이 바로 그렇게 된 거거든. 평생 신봉하던 그 종교를 버려버리고 자기 제자들까지 데려간 거예요.
그래서 그런 예들이 사실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그 당시 인도사회에, 인도가 종교의 나라 아닙니까? 얼마나 종교인들이 많다고요. 별의별 종교가 많은 거예요. 그걸 전부 묶어서 힌두교라 그래 인도교 그래 버려. 그래 불교도 힌두교 안에 들어가요. 그 사람들 계산은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그 제자들이 부처님에게로 귀의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으면은 그 스승 되는 사람이 부처님에게 와가지고 막 따지고 항의하고 욕을 퍼붓고 삿대질을 하고 그런 사례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막 그냥 입에 거품을 물고 비방을 하고 욕을 하고 그랬어요. 하도 그렇게 욕을 많이 하니까 부처님이 가만히
그런 자기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 부처님이 아주 명수라. 부처님이 가만히 듣는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제 욕하고 비방하고 하는 사람이 힘이 지칠 거 아니오? 그럼 이제 나중에서야 한마디 하는 거예요.
남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그 집에서 음식을 잔뜩 차려놨다. 아주 맛난 음식을 아주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는데 이 사람은 불행히도 식사를 하고 갔어. 그래서 전혀 먹을 수가 없어. 그 좋은 음식을 보고도 전혀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야기만 나누고 되돌아왔는데 그 먹지 못하고 온 그 남겨두고 온 음식이 누구의 것이겠는가? 그걸 물어요.
아이 그거야 그 음식 차려놓은 음식 주인의 것이지 누구의 것이겠냐고 외도가 엉겁결에 그래 대답을 합니다.
“그래? 지금 당신이 나에게 퍼부운 비난과 욕설과 비난과 화풀이는 나는 한 마디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 당신의 것이요.” 이렇게 지혜롭게 자기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렇게 깨우칩니다. 참 그리고 보면 욕 참 잘한거죠.
그 좋은 가르침을 그 욕한 덕택에 배우게 됐으니까.
욕을 안했으면 그렇게 그런 훌륭한 법문을 듣지를 못했을 텐데. 어쨌든 그래 훌륭한 법문을 그렇게 듣게 됩니다.
외도가 들어 보니까 기가 차거든. 참 욕한 사람 비난한 사람만 잘못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게 돼.
아함경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또 남을 욕하는 것은 부처님이 심한 경우는 그런 표현까지 합니다 부처님도.
입에 피를 물고 남을 향해서 뿌리는 거와 같다 그랬어요.
입에 피를 물고 남에게 뿌리면은 그 피가 상대에게 묻을지 안 묻을지 그거 아무도 몰라요. 가까이서 뿌려야 묻지, 묻는다 한들 그거는 씻쳐 버리면 그뿐이잖아요.
그러나 입에 피를 문 사람의 입속에 그 사람에게 이미 피가 한 입 들어 있다고 하는 사실이 무서운 일 아니냐 이거지.
그러니까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것이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의 것이지 비난받고 욕을 듣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야 절대. 그런데 우리는 비난하고 욕하면 그냥 덥석 받아먹죠 그걸.
안 받아 먹고 그걸 그냥 무심히 잘 삭혀 버리면은 그건 전부 비난한 사람 것으로 돌아가고 말 텐데.
요것도 세상 사는데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무수히 겪는 일인데 이런 것들도 부처님의 지혜에서 우리가 배워서 잘 활용을 해야 돼요.
못 참고 나중에 또 같이 한 마디 거들면 큰 싸움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상황으로 이제 퍼져나가죠.
부처님은 그렇게 안했어. 그냥 묵묵히 잘 들어줬어.
들어주면서도 우리는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은 부처님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 않았어, 고 차이야. 안 끓으니까 오래 들을 수 있었지. 우리는 끓으니까 오래 참고 못 듣는 거지 이제 알아서 하시면 돼요. (웃음) 하하
사리불 이야기가 사리불 출가하게 된 동기
또 인연의 이치
불교의 강점은 두 가지로 딱 요약할 수가 있는데 사리불이 감동 받았던 모든 것은 인연(因緣)에 의해서 생성 소멸 변화 한다는 그 인연의 이치 이것하고 그 다음에 일심(一心)의 이치 그거하고 두 가지가 불교의 제일 큰 강점이예요.
일심의 도리 이거 무서운 거예요. 아무리 무아라 뭐 말을 해도 한 바가 없다고 하지만은 화내고 슬퍼하고 말하고 듣고 웃고 울고 할 줄 아는 그놈
그건 뭐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없지만은 너무 크게 있어.
이 우주에 가득 찰 정도로 있는 게 또 그놈이야. 그러기 때문에 이걸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해.
그러면서 너무 확실한 거야. 이것 하나로 우리가 사는 거예요
뭐 인연의 이치도 이것 하나 때문에 사는 거고.
일체가 우리가 인연을 새로 바꾸는 것도 우리가 이것 하나 때문에 사는 거라.
그러니까 내가 전법활동 포교활동을 이제 강조를 하면서 스님들에게도 불교는 복잡한 듯 하지만은 알고 보면 복잡한 게 아니다.
일심의 도리하고 이 세상은 이 연기의 도리 인연의 도리
이거 가지고 전부 해결이 다 되니까
해결이 다 되니까 이걸 소상하게 이해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설명해 주면 간단하다 이거예요.
그걸 이제 불교는 아주 큰 강점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리불 이야기가
사리불은 부처님의 최고 제자고 또 지혜제일이고 또 출가한 동기, 또 사리불은 기원정사를 건립할 때 말하자면 총 책임자였다고 하는 것 그리고 또 아울러서 불교 포교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
인연의 도리와 일심의 도리
그걸 가지고 불교로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_()()()_
우리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생과 모든 존재의 참다운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전함으로 해서 사람들이 어리석게 살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그 가치와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게 참다운 인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혜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_()()()_
날씨가 올들어 최고로 춥답니다. 慧明華님!! 공부 잘하고 갑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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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便과 實法--진정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부자!
安詳而起--바른 이치--불교의 강점 두 가지--모든 것은 因緣에 의해서 생성 소멸 변화 한다는 <1.인연의 이치!>와 없지만은 너무 크게 있고 이 우주에 가득 찰 정도로 있어서,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하는 그러면서 너무 확실한 <2.一心의 이치!>
온갖 마음의 所求所望--초선중선후선되도록 설법해 주시는 <無上士큰스님!!! 堅固無上道 天中天 聖中聖> <拈花室 法華會上 一文一字是眞佛(69,384文字) 妙法蓮華經 無上甚深微妙法 安心法門>오늘도 공부 잘하고 갑니다. 항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무묘법연화경 나무일승묘법연화경 나무실상묘법연화경_()()()_
혜명화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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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詳--마음의 전환을 찬찬히 편안하게 섬세하게 세밀하게... 자신을 가만히 安詳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_()()()_
方便과 實法=정확하고 올버르게 깨달아서 지혜를 실다운 법으로 보여주는것.식사할때 발우 숟가락 젓가락 들고 놓고 동작하나하나행동= 要須安詳. 茶道정신=섬세하고 찬찬하고 말씨와 행동이 예의와 질서가 있고 인격이 고상함을 뜻함,올곧은 정신. 부처님이 삼매에부터 삼매에서 깨어 나는것,삼매로부터 일어나는그 광경과 그모습,변화 부처님의 마음변화를安詳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 했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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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緣에의해서 생성,소멸 한다는 因緣의이치,一心의 이치 이 두가지는 불교의 큰 장점으로 요약 할수 있습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慧明華 님! 정말 감사히 잘 봤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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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연기, 일심의 도리...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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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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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보다 더 좋은 진리의 가르침이 있다면 오늘도 내가 당장에 가겠다.’ 의리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바른 이치를 따르는 일이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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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詳....
인연, 일심의 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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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불교의 핵심
;인연도리와 일심의 도리
인연, 일심 ...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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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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