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방등경 법문
제10장 국왕 · 대신을 상대한 법문
제1절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몸이 위태하다
어느 때에 사위성의 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꿇어앉아 사뢰었다.
"내일은 네거리로 부처님과 대중을 청하여 작은 공양을 베풀고자 하나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극히 높으심을 알게 하고, 공양 올리는 의식을 보여 법식이 되게 하며, 또는 모두 요귀妖鬼를 멀리하고, 부처님의 오계를 받아 나라에 근심이 없게 하겠나이다."
"장하다 대왕이여, 대저 국왕이 되어서는 마땅히 백성을 도덕적으로 인도하여, 오는 세상의 복을 구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도 예전에 왕이 되었을 때에, 모든 부처님과 사문 · 바라문을 받들고, 사무량심四無量心과 육바라밀을 행했습니다."
"참으로 부처님 말씀과 같습니다. 대저 씨를 심지 않고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고, 사람이면서도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로 태어났고, 남자이면서 육근이 구족하고, 또 더욱 큰 복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때를 만났을 뿐 아니라, 법화法化를 내 나라에 펴게 되었사오니, 쌓아 온 선善은 한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왕은 말을 마치고, 곧 돌아갔다. 부처님을 맞이하기 위해 큰 길을 닦되 높낮이가 없게 하고, 장막을 널리 치며, 당번幢幡을 높이 세우고, 네거리에서 정사精舍의 문에 이르도록 길 옆으로 난간을 매고 등을 별처럼 달고, 걸음걸음이 향로를 놓고 풍악을 치며, 부처님의 지극히 높은 복과 사문들의 청정한 덕을 노래하며, 꽃과 보배를 뿌리어 비오듯 분분히 내리게 하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비단을 깔며, 왕은 손수 밤새도록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부처님께 나아가 끓어앉아 사뢰었다."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대자大慈를 드리우사 그림자를 나투소서. 중생을 제도하소서."
부처님은 곧 법복을 입으시고 여러 사문들과 함께 네거리로 가시니, 대왕과 군신들은 좌우에 따랐다.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시자, 부인과 태자는 모두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옷을 걷고 발을 씻어 드린 뒤 손수 음식을 날랐다. 부처님이 식사를 마치시자 머리를 조아 사뢰었다.
"지금 베풀어 드린 적은 음식으로, 원컨대 하늘 · 사람 · 용 · 귀신 · 짐승 ·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세생생에 부처님을 만나고, 법을 만나고, 승가(僧團)를 만나서 세상의 더러운 것은 버리고 부처님의 진정한 도를 알아지이다."
"장하다! 왕은 백성의 부모가 되었으니, 마땅히 사랑으로써 윤택하게 하고, 밝음으로써 인도하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리이다."
"부처님이시여, 온 천하 사람들이 서로 작별할 때에는, 반드시 '스스로 사랑(自愛)하시오, 스스로 사랑하시오'라고 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요긴한 뜻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에 독한 생각을 품고, 입으로 독한 말을 하며, 몸으로 독한 업을 짓습니다. 이 세 가지가 마음과 몸과 말에서 나와, 악을 이루어 중생에게 해독을 입히면, 중생들은 마음에 원한이 맺히어 맹세하고 갚으려 하는 것입니다. 혹은 현세에서 갚고 혹은 죽은 후에 혼령이 천상에 올라갔더라도 내려올 때에는 갚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나 혹은 축생 · 귀신 · 태산 지옥에서도, 서로서로 죽이고 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숙명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공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세 가지, 말에 네 가지, 뜻에 세 가지의 악이 없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함부로 방자하여, 어버이에게는 불효하면서, 요괴한 귀신은 공경히 받들고, 색에 음란하며 술에 패악하여, 하천하고 더러운 짓만 행하다가, 몸이 위태하고 집안이 망하는 화를 당할 뿐 아니라, 죽어서는 태산 지옥의 물에 삶고 불에 굽는 혹독한 죄를 받아, 오래도록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를 멀리하고 정법을 알지 못하며, 사문들의 청정한 계행을 즐기지 않고 항상 어리석은 사람과 사귄 까닭이니, 이른바 위태하고 망하는 화패를 즐긴 것이요 스스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이 옳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도리를 듣고자 하니, 그 법을 들려주소서."
"스스로 사랑하는 법은, 먼저 삼귀의三歸依를 행하십시오. 그리고 법으로써 부모를 봉양하고, 자심慈心으로 사람과 물건을 사랑하며, 비심悲心으로 어리석고 미혹한 이를 불쌍히 여기고, 바른 것을 기르고, 평등하게 널리 두호하여 중생을 건지어 편안하게 하며, 네 가지 은혜를 베풀어 궁하고 없는 이에게 보시하시오. 중생들은 원망이 없고, 하늘은 도와서 여러 가지 횡액이 오지 않으며, 모든 독해는 녹아 부모가 편안하고 집안이 흥성하여, 살아서는 아무 재난이 없고 죽어서는 천상으로 올라가리다. 이것이 이른바 스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교훈만이 성실합니다."
"높은 행을 닦는 현자賢者들이 청정하게 참된 것을 지키고, 더러운 이익과 삿된 즐거움에 마음이 물들지 않으며, 입으로는 네 가지 악을 말하지 않고 몸에는 세 가지 흉한 것을 멀리하며, 목숨이 위태하더라도 행실을 온전히 하면, 모든 부처님은 그를 보배로 여겨서, 부모는 편안하고 집안은 흥성하며, 죽어서는 천상에 올라가 항상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스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교훈이 진실합니다."
"모든 해독이 횡으로 오더라도 참고 말하지 말고, 자비한 마음으로 도리어 그를 측은하고 민망히 여겨, 끝끝내 건져 주며, 정진하여 게으르지 말고, 삼보께 마음을 두어 안과 밖이 모두 고요하며, 도道에 마음을 심어서 성인의 본뜻을 깊이 관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자기 몸을 건지고 대중도 인도하면 항상 복을 받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스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교훈만이 진실입니다."
제2절 마음으로 지은 죄는 과보가 빠르다
사위성의 왕이 부처님을 네거리로 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는 가운데 두 상인商人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의 십육 척 몸은 금빛이시고, 살상투(肉髻)가 있고, 목에 일광日光이 있으니, 참으로 어마어마하시다. 부처님은 마치 제왕과 같고 사문들은 충신과 같아서, 부처님의 설하시는 법을 사문들이 펴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한 제왕이라. 부처님의 높으신 것을 비로서 알겠다.' 하고 부처님은 그의 생각을 알고 바라보니, 그 사람은 마음이 즐거워 마치 무슨 보배를 얻은 것 같았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대왕은 몹시도 어리석고 미혹하다. 국왕이 되어 또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부처님은 마치 소(牛)와 같고, 제자들은 수레와 같구나. 저 소가 수레를 끌고 동서남북으로 가는 것처럼, 부처도 그러하거늘, 무슨 도리가 있다고 저렇게 높이 받들고 있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에, 부처님은 '저 사람은 나쁜 생각이 있으니 반드시 나쁜 앙화를 받으리라.' 하시고 불쌍히 바라보니, 그 사람은 마음이 두려워 마치 무엇에 맞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같이 그곳을 떠났다. 한 삼십三十 리 동안을 같이 가면서, 술을 사 먹으며 시끄러이 지껄였다. 그때에 좋은 생각을 하던 사람에게는 사천왕이 선신을 보내어 두호하고, 나쁜 생각을 하던 사람에게는 태살부군府君의 악귀가 붙어 주독酒毒이 창자에게 들어가게 하여 마치 불이 몸에 타는 듯하게 되므로, 길바닥에서 수레가 지나간 바퀴 자국에서 뒹굴다가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다른 장사치들이 끌고 가는 오백 채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어 버렸다. 좋은 생각을 하던 사람은 그것을 보고 '나는 어찌할까? 만일 집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재물을 탐하여 불의의 짓을 했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다.' 생각하고, 자기 재물도 내버리고 사위성에서 여러 만 리나 떨어진 어떤 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그때에 그 나라의 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는데, 중토中土에 미천한 사람이 이 나라의 왕이 된다는 참서讖書가 그 전부터 그 나라에 떠돌고 있었다. 군신들은 의논하기를 '나라에 임금이 없으면 마치 사람이 머리 없는 것 같으니 오래 있을 수 없다. 전왕前王의 말(馬)이 항상 왕에게 정례하던 것이니, 아마 왕이 될 만한 사람이면 저 말이 반드시 정례할 것이다. 그걸 보아서 왕을 고를 수밖에 없다.' 하고, 곧 왕이 쓰던 옥쇄玉璽들을 말에 싣고 나오는데, 그 사람도 그 나라 백성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태사관太史官이 말하되 '저곳에 누른 구름의 일산이 떠 있으니, 그것이 왕자王者의 기운이다.' 했다. 말은 바로 그 사람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발치에 정례했다. 군신들은 기뻐서 곧 왕으로 청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사치로 백성에게 덕이 없으니, 임금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군신들은 하늘이 덕 있는 이에게 명命을 내리시고 신마神馬가 예방하였다 하여, 왕궁으로 모셔 들였다. 그래서 왕이 되어 국정을 다스리며 생각하되, '나는 조그마한 선善도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반드시 부처님의 은덕일 것이다.' 하여, 새벽이면 용상 위에서 부처님의 무상無上한 덕을 칭찬하면서 군신들과 함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사뢰기를
"천한 사람이 부처님의 두호하심을 받자와 왕이 되었사오나, 이 나라에는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는 줄도 알지 못하고, 또 전하는 책에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크게 밝은 법으로써, 이 나라 사람들의 귀먹고 눈먼 것을 열어 주소서." 하였다.
부처님은 그 왕의 청을 받으시고, 여러 아라한들과 화현하여 천천히 가시며, 그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시고 왕궁에 들어가 앉으셨다. 왕은 사위성의 왕이 공양드리던 법에 의하여 스스로 공양을 드리고, 부처님 앞에 앉았다. 부처님은 왕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다.
"나는 본래 미천한 사람으로 조그마한 덕도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왕은 물었다.
"전날 사위성 왕이 공양할 때에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왕과 같고 사문들은 신하와 같다.' 하여, 왕이 스스로 종자를 심었으니, 오늘 그 과를 받는 것이오. 그리고 한 사람은 '부처님은 소와 같고 제자들은 수레와 같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수레에 깔려 죽을 씨를 심어, 그 과를 받은 것이오. 선을 지으면 복이 따르고, 악을 지으면 화가 따르는 것은,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오. 그것은 천 · 용 · 귀신이 주는 것도 아니며, 조상의 혼령이 하는 일도 아니고, 모두 자기의 마음이 만드는 것이오."
제3절 집에 있는 보살이 행할 일
1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욱가라월 장자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 · 선여인이 위없이 참되고 바른 도심을 발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묻고, 대승을 배우며, 대승에 주住하며, 대승을 권하며, 대승을 행하며, 대승을 알아서, 모든 사람을 구호하되, '제도 받지 못한 자는 내가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자는 내가 해탈시키며, 편안하지 못한 자는 내가 편안하게 하고, 열반에 들지 못한 자는 내가 열반에 들게 하여, 내가 마땅히 모든 사람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리라.' 하여 보살도를 구한다면, 집에 있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고, 집을 떠난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컨대 집에 있는 보살의 계덕戒德과 집을 나간 보살의 계행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욱가라월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만일 보살이 집에 있어서 수도하려 하거든, 마땅히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귀의하여, 이 세 자귀自歸하는 법으로써, 위없이 참되고 바른 도를 구해야 한다.
재가 보살은 어떻게 부처님께 귀의하는가? '나는 마땅히 부처님의 삼십이대인상三十二大人相을 구족하리라.' 하여, 모든 선근 공덕과 무량한 원력으로 항상 정진하되, 삼십이대인상을 얻기 원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라 한다. 어떻게 법에 귀의하는가? 법을 받들어 섬기고, 법을 받들어 가지며, 법의 뜻을 해득하고, 법을 좋아하며, 법을 즐기고, 법을 두호하며, 법보시를 행하고 법보法寶를 구하되, '나는 무상 진정한 도를 얻어 최정각을 이룰 때까지, 마땅히 모든 하늘과 세간을 위해, 법을 설하여 제도하리라.' 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법에 귀의하는 것이라 한다. 어떻게 승단에 귀의하는가? 수다원을 보거나,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을 보거나, 혹은 제자나 범부를 만나더라도 모두 공경하여 예로 대접하고, 말을 공순히 하며, 의심하지 않고, 받들어 공양하며, 마음에 항상 '나는 무상 진정한 도를 얻어 최정각을 이룰 때까지, 마땅히 모든 하늘이나 사람이나, 제자의 무리에 대하여도 설법하며 공경하리라.' 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라 한다.
2 다시 네 가지 법으로 부처님께 귀의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보리심을 버리지 아니하고, 일체 사람에게 권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하며, 대비심大悲心을 끊지 않고, 마음에 다른 법을 즐기지 않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으로 법에 귀의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바른 선비와 법다운 사람을 서로 따르고 익히어, 그의 교진을 받으며, 일심으로 법을 들으며, 들은 법은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지은 바 공덕으로 무상도를 구하기 원하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으로 승단에 귀의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성문승이나 연각승을 지나서 일체지를 구하며, 음악으로 보시하면 다시 법으로 가르치며, 성현의 해탈도에서 물러서지 않는 대중을 인도하며, 제자의 업業(=小乘)으로서 해탈을 삼지 않는 것이다.
3 다시 재가 보살로서는, 부처님을 보거든 마음으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요, 법을 듣거든 마음으로 법을 생각하는 것이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제자들을 보거든 마음으로 불도를 생각하는 것이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다.
또 재가 보살로서 원을 구족하기 위하여 보시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요, 법을 두호하기 위하여 보시하면 법에 귀의하는 것이요, 보시한 뒤에는 일체지를 구하기 원하면 승단에 귀의하는 것이다."
4 "거사居士여, 재가 보살은 상사上士의 행을 행하고, 하사下士의 행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상사의 행인가? 재물에 법다워 비법이 없고, 사업邪業을 힘쓰지 않아 정법을 행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하고, 부모를 효양하고 보시를 좋아하여, 집안 친족이나 자식이나 벗 · 손님 · 하인에게 평등히 나눠 주고, 좋은 법을 가르쳐 하는 바가 법다우며, 빈궁한 자를 보거든 재물로 건져 주고, 두려워하는 자를 보거든 무외無畏법으로 구하며, 근심 있는 자를 보거든 근심을 덜어 주고, 용렬한 자를 보거든 욕을 참게 하며, 호강하는 자를 보거든 교만한 마음이 없게 하고, 아만이 많은 자를 보거든 잘난 체하지 못하게 하며, 존장을 존경하고 박식博識을 친근하여 방술方術을 물어 의심을 깨닫는다. 항상 정직한 견해를 가져 아첨과 거짓이 없고, 일체를 불쌍히 여기어 조건 없이 해칠 마음을 두지 않으며, 한 마음을 굳게 가지어 정진하기를 좋아하고, 성현과 자주 모이어 자립自立하기를 생각하며, 자비심에 머물러 법에 평등하고, 법과 스승을 의지하지 않으며, 스스로 방자한 사람을 보거든 자기가 들은 법대로 일러 주어 깨치게 하고, 목숨은 아침 이슬(朝露)같이 생각하며, 재물에는 거품같이 생각하고, 권속은 원수같이 생각하며, 처자는 지옥같이 생각하고, 일체 받는 것은 고苦로 생각하며, 집과 산업은 멀리 여의기를 생각하며, 구하는 것은 불선不善의 근본으로 생각하여서, 실實답지 않은 몸으로 실다운 몸을 받고, 실답지 않은 목숨으로 실다운 목숨을 받으며, 실답지 않은 재물로 실다운 재물을 받아야 한다. 예절로 여러 사람을 공경히 섬기면, 실답지 않은 몸으로 실다운 몸을 받는 것이요, 전에 심은 덕본德本을 훼손하지 않고 다시 더 심으면, 실답지 않은 목숨으로 실다운 목숨을 받는 것이요, 간탐을 버리고 보시를 행하여 은덕을 베풀면, 실답지 않은 재물로 실다운 재물을 받는 것이니, 이것이 재가 보살의 상사행上士行이다."
5 "다시 장자長者여, 재가 보살은 마땅히 오계를 받아야 한다. 첫째, 살생을 즐기지 말 것이니, 손에 칼이나 막대나 돌이나, 무릇 때리고 해롭게 하는 물건을 가지지 말고, 둘째, 주지 않는 것은 취長者하지 말 것이니, 자기의 재물에 만족하고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며, 셋째, 사음을 즐기지 말 것이니, 자기의 아내에게 족함을 느끼어 외색外色을 범하지 말고, 넷째, 거짓말을 말 것이니, 말하는 바가 진실하여 행한 대로 말하고, 두 가지 말이나 악담을 말 것이며, 다섯째, 술을 먹지 말 것이니, 술을 즐기지 않고 맛보지 않으면, 말과 행에 사나움과 어리석음과 부정不定이 없어서, 뜻이 항상 굳세고 생각이 항상 편안할 것이다.
재가 보살은 이러한 오계 공덕으로 무상 정진의 도를 얻기 위하여 오계를 두호하는 것으로 상정진上精進을 삼는다. 만일 싸움하는 이가 있거든 화합하게 하되, 똑바른 말을 쓰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며, 말이 의리 있고 선하여 자비심을 잃지 아니하고, 항상 정견正見을 가지어 사견邪見을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6 "다시 장자야, 재가 보살은 제가 살고 있는 국國 시市 군郡 읍邑을 마땅히 법으로써 두호하되, 믿음이 없는 자는 믿게 하고, 공경이 없는 자는 공경하게 하며, 지혜 없는 자로 하여금 지혜 있게 하고, 부모께 불효하는 자는 효도하게 하며, 들은 것이 없는 자로 하여금 널리 듣게 하고, 빈궁한 자에게는 보시를 행하게 하며, 계행이 없는 자는 계행을 지키게 하고, 진심瞋心이 많은 자는 욕을 참게 하며, 게으른 자는 정진하게 하고, 방자한 자는 마음을 두호하게 하며, 사지邪智가 있는 자는 정지正智에 머물게 하고, 병들어 파리한 자에게는 의약醫藥을 주며, 간호가 없는 자에게는 간호가 되고, 귀의歸依가 없는 자에게는 귀의를 주며, 구원이 없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어, 가사 한 사람이 악도惡道에 들어갔다면 한 번, 두 번, 세 번, 나아가 백 번이라도 그로 하여금 선법善法에 주住하도록 해야 한다. 재가 보살은 마땅히 일체를 위하여 큰 슬픔을 내고, 일체지(智)에 굳게 머물러,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해탈하기 어려운 악폐惡蔽, 개오開悟하기 어려운 사람을 제도한 뒤에 무상 정신의 도를 얻으리라.' 하라. 그러므로 가사 한 사람이 그릇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그것은 저 보살의 큰 허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가 보살은 집에 있어서 도를 닦되 '나는 마땅히 내가 있는 국 · 시 · 군 · 읍의 사람으로는 악도에 떨어지는 자가 없게 하리라.' 할 것이다. 비유하면 국 · 시 · 군 · 읍에 어진 의원이 있으면서, 한 사람이라도 횡사橫死가 있으면, 그 의원에게 허물이 있는 것처럼, 보살이 있는 국 · 시 · 군 · 읍에 한 사람이라도 악도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보살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는 데 있어서 허물이 되는 것이다."
7 "다시 장자야, 재가 보살은 마땅히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을 힘써, 모든 선善을 많이 행해야 한다. 항상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것은 나의 소유所有이지만 재가在家하는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며, 보시는 필요가 있지마는 재가는 필요가 없으며, 보시는 후세에 편하지마는 재가는 후세의 괴로움이요, 보시는 무외無畏의 준비이지만 재가는 근심의 예비가 되며, 보시하면 경호警護할 것이 없지마는 재가하면 경호해야 하며, 보시에는 애욕이 없어지지마는 재가에는 애욕이 보태지며, 보시하면 두려움이 없지마는 재가하면 두려움이 있으며, 보시는 불도佛道를 이루지마는 재가는 악마의 권속을 보태며, 보시는 무진無盡이 되지만 재가는 무상無常이 되며, 보시는 락樂을 지키지만 재가는 고苦를 지키며, 보시는 욕진欲塵을 끊지만 욕진을 더하며, 보시는 대부大富가 되지만 재가는 대빈大貧이 되며, 보시는 상사上士의 행이 되지만 재가는 하사下士의 행이 되며, 보시는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는 바가 되지만 재가는 모든 사람들이 탄식하는 바가 된다'고 생각하라. 그러므로 재가 보살은 보시로써 요긴한 수행을 삼는 것이다.
만일 재가 보살에 구걸하는 자를 보거든 반드시 세 가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선지식으로 생각하며, 불도를 얻는 줄로 생각하며, 후세에 대부大富가 될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생각이 있으니 간탐 · 질투가 제해지고, 소유를 보시할 생각이 나고, 일체지를 버리지 않는 생각이다. 또 세 가지 생각이 있으니 부처님을 위하는 생각이요, 마군을 항복받는 생각이요, 갚기를 바라지 않는 생각이다. 또 세 가지 생각이 있으니 음일婬佚의 생각을 여의고, 진에瞋恚의 생각을 여의고, 우치의 생각을 여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재가 보살이 구걸하는 자를 볼 때에는 음婬 · 노怒 · 치癡가 곧 엷어지는 까닭이다. 어째서 엷어지는가? 자비심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없으므로 음심이 넓어지고, 걸인에 대하여 성내고 한恨할 것이 없으므로 진심이 엷어지고, 보시하여 일체지를 위하므로 우치심이 엷어지기 때문이다."
제4절 중생의 연기와 체성
어느 때에 위등광威燈光 대선인大仙人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중생은 어디로부터 났으며 그 체體는 얼마나 굶고 얼마나 작습니까? 또 중생의 체성體性은 한 뼘이 됩니까, 한 자(尺)가 됩니까, 한 손가락만 합니까, 또는 보리 · 밀이나 콩 · 팥만 합니까? 또는 참깨나 겨자씨만 합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대선인아, 너는 중생의 체體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로 말로나 문자文字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무명無明 · 행行 등 모든 인연으로 중생이 났으며, 나아가 생 · 로 · 병 · 사 등 모든 인연으로 중생이 났다. 또 중생의 생긴 인연이 있으니, 이른바 어머니로 인을 삼고 아버지로 연을 삼아서 중생이 났으며, 또 부모의 화합으로 인을 삼고 사념邪念 망상이 업풍業風을 일으켜 식識의 종자種子를 불어 태장胎藏 속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연을 삼아 중생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의 사성제가 중생이요, 오음五陰 · 십팔계十八界의 화합이 중생이다. 대선아, 중생을 떠나서 업業이 없고 업을 떠나서 중생이 없다. 중생이 곧 업이요, 업이 곧 중생이다. 중생계는 더해지지도 않고 덜해지지도 않는 것이다."
선인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중생계가 더해지지도 않고 덜해지지도 않는다면, 어째서 중생이 때 낀 몸을 버리고 자재自在한 몸을 얻습니까?"
"네가 한 말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 자재가 참으로 자재하게 얻는 자재라면, 마땅히 타락하지 않고 항상 자재한 중에 있을 것이요, 만일 그 자재하다는 몸이 자재를 얻지 못한다면, 어찌 자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반딧불(螢火)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이 광명은 능히 남섬부주南贍部洲를 비춘다'고 하자, 설사 반딧불이 능히 남섬부주를 비춘다 할지라도, 능히 마음으로 항복되지 않는 자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자재한 것이다. 만일 자재가 참으로 자재를 얻었다면, 마땅히 모든 번뇌의 때가 다하겠지마는, 자재를 얻지 못했으므로 번뇌의 때가 있는 것이다. 만일 모든 번뇌의 때와 자재가 함께 있다면, 그것으로 중생계에 증감이 없는 것을 가히 볼 수 있지 않느냐?"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모든 번뇌가 다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모든 번뇌가 다한다고 하지 않지만, 또한 번뇌가 더해진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땅히 나는 자재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 나도 또한 내가 자재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我가 실實이 없으므로 또한 자재가 아니다."
"이 문제는 그만 둡시다. 그리고 아까 부모의 화합으로 중생이 난다고 말씀하셨는데, 화합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은데 나는 중생은 적으니,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내가 비유로 물을 것이니 그것을 대답하라. 저 종자 하나에서 여러 나무가 나고, 한 나무에 무수한 가지가 돋고 낱낱 가지에 무수한 꽃이 피니, 꽃마다 열매를 맺을 터인데, 어째서 맺는 것도 있고 맺지 않는 것도 있으며, 맺은 것은 마땅히 모두 익어서 종자가 될 터인데, 어째서 익는 것도 있고 익지 않는 것도 있는가?"
"그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에 맺기도 하고 맺지 않기도 하며, 맺었던 것도 떨어지고 익지 않는 것도 있어서 종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생도 그렇다. 업풍業風이 스스로 일어나서, 업의 중생을 불어서 열매가 떨어지게 하므로, 중생이 적게 나는 것이다. 혹은 태중에 있을 때, 벌레가 먹기도 하고, 혹은 업풍이 불어서 부서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무에 재災가 들어서 떨어지는 것은 적지만, 중생에 재가 들어서 떨어지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이다. 대선아, 사심邪心으로 말미암아 중생계가 일어난다. 만일 모든 중생이 능히 얼마만큼 마음을 돌리면 심心 · 심수心數가 없어 후생을 잘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심으로 말미암아 중생계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내가 물은 것은 이미 답이 다 되었습니다."
"아까 중생의 체體에 얼마나 미세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만일 중생의 체를 가히 볼 수가 있다면, 중생의 체를 분석하여 굵다 · 가늘다 · 길다 · 짧다고 말할 수 있지마는, 비유하면 어떤 뱃속장님에게 누가 묻기를 '흰빛이란 어떤 것이냐' 한다면, 그 장님이 보지 못한 것을 능히 이러이러한 것이 흰 빛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 사람은 본래에 색을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그것을 결정적으로 설명하겠습니까?"
"그렇다. 모든 범부들도 뱃속장님 같아서 중생의 체를 못 보았으니, 중생의 체가 이러이러하게 길다 · 짧다 · 굵다 · 가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선인아, 눈(眼)도 중생이 아니요 귀 · 코 · 혀 · 몸 · 뜻도 중생이 아니며, 오음도 중생이 아니요 십팔계 · 십이인연도 중생이 아니다. 중생이란 이름도 얻을 수 없으며, 안의 공(內空) · 바깥 공(外空) · 안팎의 공(內外空)도 중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눈도 거짓 이름이라 잠시도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이요, 귀 · 코 · 혀 · 몸 · 뜻도 거짓 이름이라, 잠깐도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이며, 오음도 거짓 이름이라 잠시도 합하지 않는 것이요, 삼십육종三十六種의 부정한 물건도 거짓 이름이라 잠깐도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중생이라 이름 지을 것이 없다. 색色 따위의 모든 티끌이 서로 화합하지 않으므로 중생에게 색 따위의 모든 티끌이 있으되, 모두 각각 다르고 흩어진 것이니, 그러한 모든 법도 중생이 아니다. 중생이란 목숨도 아니요 양육도 아니며, 임자도 없고, 남도 없고, 또는 '나'라는 것도 없어서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중생이 있다면, 모든 부처님은 응당 네 가지 사제법을 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중생의 성이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은 모든 법을 얻어 이렇게 수순하고 이렇게 수행하여 여래의 몸을 얻은 것이다."
제5절 모든 것은 과거의 인연
부처님이 기사굴산에 계실 때에, 아사세왕의 태자 화휴和休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형용이 단정하며, 여인의 태중에 들어가지 않고 연꽃에서 화생化生하며, 전세의 숙명宿命을 알게 됩니까?"
"보살은 욕되는 것을 참고 성을 내지 않으므로, 후세에 나서 사람이 되면 형용이 단정하고, 음란하지 아니하여 여인과 교섭이 없으므로, 후생에는 여인의 태중에 들지 않고 연꽃 속에 화생하며, 경經과 계행을 가지고 남에게 설해 주기를 좋아하므로, 후세에 스스로 무수한 전생의 숙명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있으며, 남들이 보고 싫어하지 않습니까?"
"보살은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남이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아낌없이 보시하므로 삼십이상을 얻으며, 자비한 마음으로 사람이나 벌레까지라도 불쌍히 생각하기를 어린 아들같이 하여 제도하기를 생각하므로 팔십종호를 얻으며, 원수진 사람을 보더라도 부모를 대하듯 하여 마음이 조금도 다르지 않으므로 남들이 보면 즐거워하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또 보살은 깊은 경經에 지혜가 있고 삼매 중에 편안히 있으며, 하시는 말씀을 사람들이 들으면 모두 즐거워합니까?"
"보살은 항상 경을 읽고 외우기를 좋아하므로 경의 깊은 뜻을 아는 지혜를 얻고, 항상 정定에 들어서 마음이 안정하였으므로 삼매를 얻으며, 항상 지성으로 말하고 남을 속이지 않았으므로 보살의 말은 남들이 믿고 듣기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몸으로 행하는 것이나, 입으로 말하는 것이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모두 청정하고, 마군이 침노할 틈을 얻지 못하며, 여러 사람이 감히 비방하지 못합니까?"
"보살은 부처님을 모시기 좋아하고, 경을 읽기 좋아하며, 비구승을 즐겨 했으므로 모든 것이 청정하고, 주야로 쉬지 않고 정진하였으므로 마군이 틈을 얻지 못하며, 말이 항상 지성스러웠으므로 사람들이 비방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장수하고 무병하며, 이별이 없나이까?"
"태자여, 보살은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았으므로 장수함을 얻고, 흉기로 사람을 상하게 아니했으므로 병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권하여 화합하게 하였으므로 이별이 없는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재물을 얻기 쉽고, 부자 되기가 어렵지 않으며, 재물을 잃지 않고, 남이 도둑질하지 못하며, 존귀하고 부유한 집에 납니까?"
"보살은 지혜가 있어서 우치하지 않았으므로 큰 부자 되기가 어렵지 않으며,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아끼지 않았으므로 재물을 잃거나 도둑맞지 않고, 남의 재산을 보고 탐내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므로 장자의 집에 나며, 살생하거나 교만이 없었으므로 존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또 보살은 천안통과 천이통을 얻어, 중생의 생사의 선악을 압니까?"
"보살은 부처님 앞에 등燈 공양을 하였으므로 천안통을 얻고, 음악音樂을 드렸으므로 천이통을 얻고, 항상 삼매에 들어 선정을 닦았으므로 세간의 나고 죽는 갈래의 선악을 아는 것이다."
제6절 보리심을 발하는 공덕과 세 가지 보리
1 어느 날 왕사성에 있는 가섭 바라문은 밤에 꿈을 꾸었다. 꿈에 보니, 염부제에 큰 천엽千葉 연화가 있는데, 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고 칠보로 되었으며, 연화 속에는 달(月)이 있고 달 속에는 대장부가 있어서 광명을 놓으매, 그것을 보는 중생들은 모두 환희심을 내고 무량한 쾌락을 받았다. 바라문은 꿈을 깨었다. '이게 무슨 꿈인가, 전에 없던 꿈이다. 무슨 길조인가.' 생각하다가, '언젠가 들으니 부처님은 큰 보리를 깨쳐 모든 일을 잘 안다 하니 거기 가서 물어보리'라 하고, 밤이 밝은 후에 카란다 대숲절로 가서, 부처님께 정례하고 몽사를 여쭈었다.
"바라문아, 네 꿈은 대단히 좋은 꿈이다. 세상에 가장 좋은 네 가지 꿈이 있으니, 흰 연꽃과 흰 일산과 달과 불상佛像이다. 만일 이 네 가지를 꿈에 보면 반드시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큰 이익이라 합니까?"
부처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1) 이익 설명할 테니 너는 자세 들어라.
보리심을 발한 이는 양족존兩足尊이 되리라.
(2) 전륜성왕 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고,
대범천왕 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라.
(3) 삼계 제천諸天 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고,
대도사大導士가 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라.
(4) 대광명을 놓으려면 보리심을 발하고,
삼유三有 전도 멸하려면 보리심을 발하라.
(5) 모든 장애 끊으려면 보리심을 발하고,
무명 탐욕 멸하려면 보리심을 발하라.
(6) 욕애浴愛 때를 제하려면 보리심을 발하고
아만심을 없애려면 보리심을 발하라.
(7) 제불 공양 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고,
전법륜轉法輪을 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라.
(8) 단악수선斷惡修善 하려거든 보리심을 발하고
무루도無漏道를 얻으려면 보리심을 발하라
(9) 무상無常법을 설하려면 보리심을 발하고,
중생고가 싫거든 보리심을 발하라.
(10) 법무아法無我를 얻으려면 보리심을 발하고,
열반에 들려거든 보리심을 발하라.
2 바라문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면 얼마만한 복을 받습니까?"
"세계 중생이 모두 여기 모여서 계학戒學을 성취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지만, 보리심을 발한 공덕에 비하면 십육분의 일분도 못되는 것이다. 세계 중생이 모두 신심을 발하여 신행지信行地에 있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묘법을 닦아 법행지法行地에 있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수다원 도道를 닦아 예류과預流果를 얻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사다함 도를 닦아 일래과一來果를 얻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아나함 도를 닦아 불환과不還果를 얻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아라한 도를 닦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전단향으로 불탑佛塔을 수미산처럼 쌓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불탑에 한량없는 장엄으로 공양하더라도, 세계 중생이 모두 일겁一劫을 살면서 중생에게 음악을 원만하게 보시하더라도, 다 이 보리심을 발하는 복덕에 비하면, 각각 십육분의 일분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중생이 보리의 적정寂靜한 과果를 얻기 위하여 보리심을 발하면, 얻는바 복덕은 비할 데 없고 등류等類가 없어서 가장 으뜸되리라. 그러므로 복덕을 닦는 자는 빨리 큰 보리를 증득해야 하는 것이다."
3 "이렇게 보리심을 발한 자도 물러나는 일이 있습니까?" 하고, 바라문은 다시 물었다.
"보리심을 발한 자는 해탈에서 퇴전退轉하지는 않으나, 다만 그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이른바 성문 보리 · 벽지불 보리 · 무상보리가 그것이다. 어떤 것이 성문 보리인가? 비록 보리심은 발했으나, 다만 자리自利만을 즐기고 남을 이롭게 하기는 즐겨 하지 아니하여, 이타利他할 마음을 발하거나 수지修持 · 취입趣入 · 안주安住하지 못하며, 경법經法도 듣기를 즐겨하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하여 설하지도 않으며, 후생의 몸을 받지 않으려 하여, 거래상想을 끊고, 또한 평등한 정지正智도 능히 얻지 못하고 현생에서 해탈하기를 즐긴다. 이것이 성문 보리다. 어떤 것이 벽지불 보리인가? 비록 보리심은 발했으나, 대승법을 닦거나 생각하기를 즐겨 하지 않고, 또한 자기만 빨리 과果를 증하고자 하여, 이타에는 수지 · 취입 · 안구를 즐겨 하지 않으며, 경법을 즐거이 듣거나 남을 위하여 설하지도 않으며, 능히 평등한 정지正智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다만 마음을 내어 모든 인연법을 관하여, 관찰한 법으로 해탈을 얻는다. 이런 것을 벽지불 보리라 한다. 어떤 것이 무상 보리인가? 스스로도 능히 보리심을 발하고, 또 남을 권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하며, 경법도 즐거이 듣고 들은 것을 기억하여 수습하여 기억하고, 다시 남을 위하여 그 뜻을 널리 연설하며, 윤회輪廻를 싫어하지 않고 일체 중생을 즐겁게 하기를 즐기며, 평등지에 주하여 스스로 해탈한 뒤에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해탈을 얻게 하고자 하여, 자리 · 이타에 안온한 락樂을 얻고, 자기의 선리善利로서 널리 인 · 천 대중에 보시한다. 이것이 무상 보리이다. 이 행을 닦는 이는 이름이 보살승(乘)인 사람이다.
너는 마땅히 알라.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허망이 없으니, 내가 말한 보리심은 이것이 최상의 뜻이다. 만일 이 큰 보리심을 떠나서, 성문심 · 연각심을 발하여 능히 이타利他하지 못하면, 큰 열반에 이르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저 성문 · 연각은 스스로만이 하려 하고 다시 이타하는 행은 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지 못해서, 비록 보리심을 발하여 해탈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보리심은 능히 이타하는 과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무상 보리심을 발한 자는, 자타自他에 모두 평등하여 자기의 이익으로서 즐거이 보시하며, 이 마음으로서 세간 일체 중생을 포섭한다. 이것은 세간의 최상의 큰 이익이 되며, 또한 세간에 잘 조어調御하는 자라, 곧 평등지에 주하여 최상 · 최승 · 불가사의니, 이것을 이름하여 큰 보리심이라 한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여실하게 알라."
"부처님이 설하신 해탈에 차별이 있습니까?"
"해탈과 해탈에도 차별이 없고 도道와 도에도 차별이 없지마는, 다만 승乘과 승에만 차별이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코끼리의 수레도 있고 말의 수레도 있고 나귀(驢)의 수레도 있는데, 그것들이 차례로 걸어서 한 성중으로 같이 들어간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수레에 차별이 있겠느냐?"
"부처님이시여, 저 모든 수레에는 차별이 있습니다."
라고 바라문은 대답했다.
"그렇다. 성문승 · 연각승 · 대승의 차별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와 해탈은 차별이 없다. 비유하면, 세 사람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가는데, 한 사람은 풀로 떼(筏)를 만들어 거기에 의지하여 건너가고, 둘째 사람은 가죽 주머니나 혹은 가죽 배(船)에 의지하여 건너가고, 셋째 사람은 큰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너가되, 그 배에는 사람을 수백천 명을 실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아들에게 부탁하되, '이 배를 잘 두고 수호하다가, 만일 오는 사람이 있거든, 너는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까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라.' 하였다면, 네 뜻에 어떠하냐? 저 언덕이라는 것에 차별이 있겠느냐?"
"차별이 없습니다."
"타는 것은 차별이 있느냐?"
"타는 것에는 차별이 있습니다."
"그렇다. 성문승 · 연각승 · 대승은 실로 차별이 있는 것이다. 저 첫째 사람이 풀로 떼를 만들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간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요 두 사람도 못 가는 것이니, 성문승이란 그런 것이다. 둘째 사람이 가죽 주머니나 가죽배로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갔다는 것은, 연각승이 그런 것이다. 셋째 사람이 큰 배를 만들어 여러 사람과 함께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간 것은, 여래의 대승이 그러한 것이다."
제7절 집에 있어 살림하고 집 떠나서 수도하는 법
1 어느 때, 급고독給孤獨 장자는 부처님께 이와 같이 물었다.
"집에 있어서 살림을 하려면 재물에는 몇 등급이나 있으며, 출가하여 도를 닦는 데는 행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또는 무슨 법을 받들어야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빨리 얻으며, 다시 어떻게 중생을 교화해야 합니까?
"선남자야, 재물에는 삼三등이 있다. 하재下財 · 중재中財 · 상재上財가 그것이다.
어떤 것을 하재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살림을 살아 돈과 재물을 모으되, 감히 입고 먹지 못하고 경계經戒도 닦지 않으며 부모에게도 효순하게 공양하지 않고, 때를 따라서 처자에게도 넉넉히 주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종들과 하인에게도 다만 옷은 몸을 가리고 밥은 배를 채우기에도 넉넉지 못하게 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아끼고 지키기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벌(蜂)이 꿀을 사랑하듯 하여, 예전 성인도 믿지 않고, 높은 선비 · 사문 · 도인도 받들지 않으며, 보시하여 복을 심고 덕을 닦기도 좋아하지 않으며, 마음에 항상 이러하리라고만 생각하여 원수와 도둑이 올 줄은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모으면 흩어지는 법이요, 복과 화는 서로 따라다니는 것이라. 몸만 생각하고 탐을 내어 번뇌와 걱정이 올 줄은 깨닫지 못하다가, 아차, 죽어지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 어떤 것이 중재인가? 부모를 봉양하되 마음을 편하게 하며, 나갈 때에는 하직하고 돌아와서는 반면返面하되, 얼굴빛을 잃지 않고, 혼정신성昏定晨省에 조심하여 양친의 은혜를 생각하며, 처자에게는 때를 맞추어 의식을 넉넉하게 주며, 은정恩情이 흘러서 함께 즐거워하면 처자들도 그와 같이 사사로운 행실이 없으며, 손님을 공경하고 종이나 부리는 사람에게도 주리고 모자라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뒤에 후생이 있다는 것은 믿지 아니하여, 죽으면 멸진滅盡하여 형용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양하는 것은 다만 젖 먹여 길러준 은혜를 갚는 것이요, 처자에게 넉넉하게 하는 것은 다만 사랑하는 정을 두는 것이요, 종이나 부리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다만 그 힘을 얻으려는 것이다'라 한다. 그래서 능히 사문이나 도인을 공경하지 못하고, 은혜를 베풀고 덕을 펴서 후세의 복을 받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이것을 중재라 한다.
3 상재란 무엇인가? 재물이 있어서 능히 스스로도 입고 먹으며, 부모에게 효순하되, 시절을 잃지 않고, 항상 얼굴빛을 살피어 근심을 품지 않게 하며, 나가서는 법에 범하지 않고, 들어와서는 예를 어기지 않으며, 행실이 청백하여 더럽지 않고, 존장을 공경하고 지혜 있는 이에게 겸손하며, 많이 배우고 널리 들어서 마음이 삿되지 않다. 그러므로 하열下劣하고 빈궁한 이들이 모두 의지하고 덕을 입으며, 처자들을 항상 넉넉하고 풍족하게 돌봐 주며, 삿된 생각을 버리고 바른 도리로 몸을 가지며, 노비 · 사환에게도 모자람이 없게 하고, 무리하게 때리거나 부리지 않아 자비를 더하며,예전 성인이나 바른 선비나 출가한 사문을 공경히 받들면,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여 도덕을 성취하게 하며, 경전을 강독하여 모르는 사람을 교화하되, 좋은 방편으로 때를 잃지 않으며,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두호하되, 마치 암소가 풀을 먹고 젖을 내면 제호醍醐가 가장 부드럽고 묘한 것처럼, 스스로도 편안하지마는 시방을 생각하여, 모든 하늘이나 사람이 이익과 제도를 받는다. 이 사람은 가장 높아서, 위가 없고 비유가 없고 짝이 없어서, 세상의 독보獨步가 될 것이니 이것을 상재라 한다."
4 "출가하여 도를 닦는 데에는 세 가지 품위品位가 있다. 성문과 연각과 대승이 그것이다.
어떤 것을 성문이라 하는가? 고苦를 두려워하고 몸을 싫어하여, 무량한 생사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몸을 원수같이 보며, 사대를 독사같이 오음을 도둑같이 보고, 앉아서 숨 쉬는 것을 세어, 뜻을 지키고 참선하되 몸에 부정한 것을 관하며, 지옥 · 아귀 · 축생의 고와, 인간의 어려움과, 천상의 이별이 수레바퀴 돌 듯 쉬지 않고 옥중에 갇혀 있는 죄수처럼 생각하여, 생사 근로의 죄를 끊고 무위無爲의 락樂과 열반의 편안함을 구하여, 다만 자기만을 위하고 중생은 생각하지 아니하며, 항상 작은 사랑에 집착하여 큰 슬픔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음성에만 의지하고 공空의 지혜는 알지 못하며, 삼계가 환幻과 같다 하여 자기의 몸만 빨리 건지려 하고, 큰 은혜와 사랑은 돌아보지 않는다. 이것을 성문이라 한다.
5 어떤 것을 연각이라 하는가? 본래 큰 뜻을 발하여 보살업業을 행하며,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를 닦으나 다만 바라는 마음은 스스로 높아져서 천상천하가 모두 자기에게 돌아오도록 원하고, 삼십이상 · 팔십종호가 어마어마하고 당당하여 능히 미칠 자가 없도록 되기를 구할 뿐이다. 그래서 여래의 색신에 나타나는 것은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대도를 알지 못하여 능히 생사의 흐름을 끊고 근본으로 돌아갈 줄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을 위하여 몸을 나투어, 상호相好의 장엄과 문사文辭 언교言敎로 교화하는 것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참으로 그런 색상色像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사등四等 · 사은四恩 · 육도六度 · 삼십칠三十七품을 닦고, 십이인연을 관하여 그 뿌리를 뽑고자 하나, 본래 희망이 없는 큰 도를 알지 못하므로, 설사 쌓은 덕이 허공계와 같을지라도 부처에게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통달하지 못했다고 하는가?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 · 사등 · 사은에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일체 오취五趣의 생사를 구원하며, 공空 · 무상無相 · 무원無願의 모든 법을 알고, 일체 법이 환화幻化와 같고, 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파초와 같고, 거품과 같아서 모든 있는 바가 없고, 도혜道慧의 형상 없음이 허공과 같아서 증감이 없어 중생 제도하기를 생각하는 까닭이다.
6 대승大乘이란 어떤 것인가?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뜻을 발하여, 대자大慈를 허공같이 행하고 대비大悲를 닦되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자기 몸은 근심하지 않고 다만 오취에 빠진 일체 중생을 모두 편안하게 하고자 하여 사등심四等心을 받들며 은혜와 이익을 베풀어 시방을 구제하며,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에 희망하는 바가 없이 일체 중생에게 베풀며, 삼계를 관하여 가고 오고 두루 돌아다니기에 괴롭고 어려움이 한량없으되,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고 아들 같고 몸과 같이 생각하여, 언제나 다름이 없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로 하여금 고액을 벗어나 대도에 이르도록 하고자 한다. 이것을 대승이라 한다.
7 대승에 이르려면 네 가지 일이 있다. 보시로 모든 궁핍한 이를 도와주며, 높고 낮은 이를 차별하여 마음을 두 가지로 쓰지 않으며, 무엇을 남에게 주면서 무슨 희망이나 갚음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공덕을 중생에게 두루 베푸는 것이다.
또, 계행을 받드는 네 가지 일로 빨리 대승을 성취하니 말을 조심하고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그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출입하는 데 예절을 잃지 않으며, 천상이나 전륜성왕이나 대범천왕 · 제석천왕의 자리를 원하지 않고, 계행으로 중생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또 인욕하는 네 가지 일로 빨리 대승을 성취하니 비록 꾸짖고 나무라는 자가 있더라도 말을 노여워하지 않고, 설사 때리는 자가 있더라도 대항하지 않으며, 훼방하고 욕하는 자가 있더라도 귀에 바람 지나가듯 생각하고, 나를 해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또 네가지의 정진으로 대승을 빨리 성취하니 일찍 일어나서 밤 깊도록 법을 받들되 게으르거나 폐하지 않고,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도법은 어기지 않으며, 좋은 경전을 부지런히 잃고, 모든 액난厄難을 당한 자를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네 가지 선정으로 대승을 빨리 성취하니 정진을 즐겨해 항상 홀로 한가하게 있으며, 몸과 말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요란하게 하지 않으며, 비록 대중 중에 있더라도 항상 정定을 가지며, 마음을 비워서 집착하는 데가 없는 것이다.
또 대승을 빨리 성취하는 지혜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몸은 공하여 사대가 합하면 이루어지고 갈리면 무너져서 주장이 없는 줄 알고, 삼계에 나는 것이 모두 마음으로 된 것인데 마음은 환幻과 같아서 여러 형상에 의지한 것인 줄 알며, 오음은 본래 처소가 없어 착하는 대로 망정妄情이 나는 줄 알고, 십이인연은 원래 근본이 없어 맞서는 것을 따라서 나타나는 것인 줄 아는 것이다.
8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빨리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니 공한 줄 알아 배우되 구하는 것이 없고, 상想이 없는 줄 알아 희망하는 것이 없으며, 원이 없는 것인 줄 알아 나(生)는 데를 생각하지 않고, 평등한 줄 알아 감도 없고 옴도 없는 것이다.
또 네 가지 일로 불도佛道를 빨리 이루니 일체가 모두 본래 부정不淨한 줄 알고, 만물이 모두 환幻과 같은 줄 알며, 생사 단멸斷滅이 모두 인연을 따르는 줄 알고, 그 인연이라는 것도 본래 형상이 없는 줄 아는 것이다.
또 여섯 가지 일로 정각正覺을 빨리 이루니, 몸으로 항상 자비를 행하여 원한도 없고 원결寃結도 없으며, 입으로 항상 자비를 행하여 깊은 지혜를 연설하며, 마음으로 항상 자비를 행하여 인화仁和하고 측은한 마음으로 시방을 불쌍히 여기며, 계행을 두호하여 대승을 생각하고 구하도록 만들지 않으며, 바르게 관하여 시방이 공하고 도道와 속俗이 둘이 아닌 것을 알며, 넉넉히 먹이는 법과 몸을 구하는 약으로 남의 액난을 구원해 주는 것이다.
또 네 가지 일로 불도를 빨리 이루니, 정진을 행하되 착하는 데가 없고, 중생을 교화할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며, 생사에 유희遊戲하여 싫어하지 않고, 대자대비로 방편 지혜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9 중생을 교화하는 데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생사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눈앞에 나타나는 화복으로 비유하고, 삼보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대도를 나투어 보이며, 삿된 길(邪徑)에 미혹한 자에게는 삼승三乘을 가르쳐 불도가 가장 높아서 짝이 없는 것을 알리고, 삼계에 있는 것은 모두 환幻과 같아서 하나도 진실한 법이 없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니 간탐하는 자에게는 보시하도록 가르치고, 악을 범하는 자에게는 계행을 받들도록 하며, 진심瞋心이 많은 자에게는 욕을 참도록 권하고, 게으른 자에게는 정진하도록 교화하며, 마음이 산란한 자에게는 뜻을 정定하도록 가르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지혜 바라밀을 배우게 하며, 때를 따를 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선권善權 방편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8절 가장 가난한 사람과 몸으로 중생을 교화함
1 사위성에 수뢰라는 극빈한 사람이 있었다. 뜻이 견고하여 변하지 않고, 불 · 법 · 승을 믿어서 항상 삼보에 귀의하며 계행을 가지고 십선을 행하며 사등심으로 중생을 부지런히 구제하며, 스스로 안빈을 지켜서 법으로만 락樂을 삼으므로, 남들이 국빈國貧이라고 일렀다.
수뢰는 어느 날, 사위성을 지나가다가 야광주夜光珠 하나를 길에서 얻어 들고 여러 사람에게 외쳤다.
"누구든지 이 사위성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나는 이 야광주를 줄 것이다."
그때에, 부자 · 장자로서 수천 명이 수뢰 앞에 와서 "우리가 곤궁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오."
하고, 또 가난한 사람도 수뢰에게 달려와서, 모두 그것을 달라고 애걸했다. 수뢰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아무도 극빈자가 아니오. 이 성중에 참으로 극빈자가 하나 있으니 나는 그 사람에게 갖다 주겠소."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누가 극빈자냐?"
고 물었다. 수뢰는
"바사닉 대왕이 이 나라에서 제일 극빈자다."
라고 대답했다. 여러 사람들은
"그런 말씀 마시오. 임금으로서 극빈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왕의 궁전 속에 있는 보배만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하였다. 수뢰는 왕궁으로 향해 갔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도 모두 따라 갔다. 마침 그때에, 바사닉왕은 정전正殿에 앉아서 오백 장자들을 잡아 들여 죄를 추궁하며, 그들로 하여금 많은 재물을 바치어 속죄하도록 하는 판이었다. 좌우 신하들이
"수뢰가 밖에 있습니다."
하고 아뢰니 곧 왕은 불러 들였다. 수뢰는 왕의 앞에
"나는 이 사위성으로 지나가다가 이 야광주를 주웠습니다. 이 성 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주려고 성중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왕보다 더 가난한 이가 없으므로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운 빛을 띠면서
"나의 가난이 그대와 더불어 누가 더 심하겠소?"
"대왕이 나보다 더 심합니다."
"어디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수뢰는 게송으로 대답했다.
(1) 밤낮으로 재물을 탐하여 그래도 싫어하는 마음이 없어
임금으로 죄업을 지으니, 사후에는 반드시 고苦가 있으리.
(2) 자기는 안 죽으려 보호하고 뒷일은 생각도 안 하니
이것이 이른바 지극한 가난 또 무법한 행行이라 일컬어지네.
(3) 항상 자비스런 마음이 있고 오만과 게으름을 힘써 끊어서
어진 이를 친하고 색을 멀리해 넉넉할 줄 스스로 알아야 하나니.
(4) 어리석은 탐욕도 내지 않고, 재물을 모아 쌓지도 않으며,
악업도 원수도 없으면 이것이 지자智者의 부자이다.
"그러나 내가 가난하고 경이 부자라는 것을 누가 증명하겠소?"
"대왕도 아마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으리다. 이 일의 증명을 요구하신다면, 지금 가까이 외로운 이 돕는 절에 계십니다."
"나도 이미 부처님을 뵌 일이 있소."
"부처님은 증명하시리다."
"그러면 부처님을 청하여, 만일 부처님이 증명하신다면 나도 바로 그 말을 믿겠소."
수뢰는 땅에 엎드려, 멀리 부처님께 예배했다. 부처님은 곧 오백 비구와 이백 보살을 거느리시고 땅 속으로 화연하여 대왕의 전상殿上에 나타나셨다. 범왕 · 제석 · 사천왕 등, 무수한 하늘들이 모두 따라오며, 왕과 백성들은 부처님의 신통을 보고 황송하여, 모두 예배하였다.
2 그때 수뢰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내가 이 성중을 다니다가 야광주 한 개를 얻으니, 그 값은 염부제 하나로 언론할 만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려고 관찰한즉, 국내에는 오직 대왕이 가장 극빈자이었습니다. 어째서냐 하면 탐욕심이 그칠 줄 몰라 부세賦稅 거두는 것도 쉬지 않으며, 침노하는 것도 쉬지 않아, 백성들은 극도로 피곤하며, 무상無常도 생각하지 않고 정법正法도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야광주를 바쳤더니, 도리어 나에게 빈부의 증거를 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뵙기 원한 것이오니, 이 의심을 풀어 주시오."
"부자 수뢰야, 네 말이 과연 진실하다!"
"부처님이시여, 진정한 말씀으로 저의 어두움을 열어주시오."
하고 왕은 말했다.
"대왕이여, 자세히 들으시오. 인연이 있어서, 대왕이 말하는 부자라는 것은 수뢰에게 없지만, 다른 깊은 뜻이 있어 수뢰를 부자라 한 것이니, 거기는 대왕도 능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오. 이른바 대왕의 부자라는 것은, 국재國財와 금 · 은 · 주옥 · 수정 · 유리 · 진주 · 산호 · 자거 · 마노瑪瑙 · 상象 · 마馬 · 궁전이라, 소유가 넉넉하여 자유자재로 수용하는 것이니, 이러한 대왕의 부자가 수뢰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뢰는 도덕과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과 지혜가 있어서 방일하지 않으며, 선행이 많고 자 · 비 · 희 · 사를 행하고 삼보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배운 것이 많고 뜻이 깨끗하며, 믿음이 바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법의 칠재七財가 만족하니, 이것은 수뢰의 부자로서 대왕으로서는 능히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대왕의 경내에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마하야마와 같은 부자가 되어, 그 사람들의 재물을 전부 합쳐서 수뢰의 도덕 부자와 비교한다고 해도 백분 · 천분 · 억만분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오."
대왕은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의 말씀이여! 나는 이미 복이 있어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법을 가진 제일 부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소! 많은 진인眞人이 대왕의 나라에 있는 것이 대왕의 복입니다."
3 수뢰는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보살이 보시하면 여러 사람이 즐겨 따르는 것은, 능히 간탐하는 자를 교화하여, 보시를 좋아하게 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지계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믿지 않는 사람을 교화하여 죄와 복이 있는 것을 믿게 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인욕하면 여러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진심瞋心이 있는 자를 교화하여 진심이 없게 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정진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기세 없는 자를 교화하여 정진하게 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선정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마음이 산란한 자를 교화하여 한 마음을 지키게 하는 까닭이요, 보살이 지혜 있으면 여러 사람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우치한 자를 교화하여 바른 지혜를 얻게 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자심慈心을 행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이 따르는 것은, 능히 어질지 못한 자를 교화하여 어질게 하는 까닭이요, 보살이 비심悲心을 행하면 여러 사람이 즐겨 따르는 것은, 능히 생사 고에 들어갈지라도 바른 행을 싫어하지 않는 까닭이며, 보살이 희심喜心을 행하면 여러 사람이 즐겨 따르는 것은, 능히 우매한 자를 교화하여 법을 즐기게 하는 까닭이요, 보살이 구호를 행하면 여러 사람이 즐겨 따르는 것은, 능히 사람을 안위하고 권하여 법에 들어가게 하는 까닭이니, 보살은 이러한 덕행이 한 가지가 있을 뿐이 아닙니다.
4 또 혹사라도 나의 한 몸에 대하여 걱정이 없으면, 후에 반드시 큰 죄를 받으므로, 지혜 있는 자는 두려워하는 바요, 얻기(得)에만 탐심을 부려서 많이 간직해 두거나, 제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면 죄가 도둑과 같으므로, 지혜 있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바이며, 몸을 사랑하고 살기를 위하여 스스로 보호하여 죽지 않으려고 주지 않는 것도 지혜 있는 사람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혜 있는 자는, 신명身命이 무상하고 만물이 나의 소연 아닌 것을 관찰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오직 도道뿐이므로 탐욕이나 투쟁이 없고 선善한 것만 지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은, 먼저 자기를 속이고, 다음은 하늘을 속이고, 또한 법을 속이는 것이므로, 몸과 입에 냄새가 나고, 말에 신용이 없어서 비방을 많이 받고, 마음이 항상 괴로우며, 하늘이 생각하지 않으므로 신색도 변해지고 복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법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