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한 피치 올라가자
바위 앞에 서면 무심히 보았던 바위가 매끄러운 유리처럼 느껴진다. 발을 대면 바로 미끄러질 것 같다. 잡을 곳도 없다. 홀드, 3지점 균형, 마찰력, 오르기 자세 등 지금까지 배운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두렵다.
그러나 누군가 올라갔으니 길이 생긴 것이 아닌가? 선등자가 올라갔으니 내 앞에 등반로프가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굳게 마음먹고 한 발을 딛어 보자. 일단 바위에 손을 대고 한 걸음 내딛어 보자. 그리고 앞에서 배운대로 눈으로 홀드를 찾고 손과 발로 3지점 균형을 이루며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자. 아무리 긴 루트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정상에 이를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 선등자가 설치해 놓은 로프에 몸을 연결하여 후등자로서 슬랩 또는 크랙을 등반하게 된다. 그래도 처음 선등자가 등반을 시작하여 후등자가 따라 오르고 마지막 등반자가 올라와서 확보하여 등반이 모두 끝날 때까지 한 피치의 등반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 등반은 몇 명이 한 팀이 되는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 친구들과 같은 초보자가 포함된 4명의 등반자가 한 팀이 되어 등반하는 경우를 가정하여 첫 피치의 등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자.
※ 루트와 피치 : 등반의 출발 지점에서 종료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 전체를 루트(route)라고 하고, 한 번에 등반할 수 있는 한 구간을 피치(pitch)라고 한다. 한 루트는 여러 개의 피치로 이루어진다.
선등자 등반
선등이 가장 어렵고 위험하다. 팀에서 경험이 많고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선등을 맡는다. 선등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전을 맡기고 바위를 오른다. 그러므로 선등의 확보자(빌레이어)는 경험이 많고 등반 전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맡는다. 확보자 만이 선등자에게 바위 오르기를 안내하거나 지시할 수 있다.
선등자는 등반 로프의 끝에서 로프가 안전벨트(하네스)의 다리 고리와 허리 고리를 모두 통과하도록 되감기 8자 매듭하여 연결한다. 이때 되감기 8자매듭 후 만들어진 로프의 고리는 확보고리(빌레이 루프)와 비슷한 크기가 되도록 한다. 이때 되감기 8자매듭 후 만들어진 로프의 고리는 확보고리(빌레이 루프)와 비슷한 크기가 되도록 한다. 확보자는 확보기구에 등반 로프를 연결하여 선등자 확보 준비를 한다. 선등자와 확보자는 마주 서서 상대방의 매듭, 확보기구, 캐러비너 등이 제대로 되었는지 점검한다. 자기 확보, 선(후)등자 확보 방법은 앞에서 상세히 소개하였다.
확보자는 먼저 자기확보를 하고 선등자에게 확보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선등자는 출발준비가 끝나면 확보자에게 출발을 알리고 등반을 시작한다. 선등자는 중간에 확보기구를 설치하거나 바위에 설치된 고정 볼트에 로프를 걸어 확보하면서 등반을 계속한다.
선등자가 한 피치의 등반을 끝내고 확보지점에 자기 확보를 끝내면 확보자에게 등반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확보물은 바위에 설치된 앵커 체인을 이용하거나 큰 나무나 암각 등을 이용하여 만든다. 확보자는 선등자의 등반 완료를 확인하고 선등자 확보를 해제한다. 선등자는 후등자 빌레이 준비를 하고 아래 출발점의 후등자는 등반을 준비한다.
2번 등반자 등반
선등자가 등반을 마치면 다음 등반자는 등반 준비를 한다. 선등자 이외의 등반자은 모두 후등이다. 2번 등반자는 중간고리 8자 매듭으로 몸과 로프에 연결한다. 안전벨트의 확보고리와 로프의 8자 고리는 잠금 캐러비너로 연결하고 반드시 잠가 놓는다. 이때 중간고리 8자 매듭 이후에 남은 로프는 등반 거리보다 더 길게 남아있어야 한다. 로프의 중간 지점 표시를 참고하여 길이를 확인한다. 만약 남은 로프가 짧을 경우 이에 대한 판단과 조치는 경험이 많은 팀원이나 지도자가 할 것이다.
준비를 마친 2번 등반자는 선등자에게 등반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위쪽의 확보자(선등자)가 후등자 확보 준비를 마치고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등반자는 확보자에게 출발을 알린 다음 등반을 시작한다. 확보, 출발 등 여러 상황에 대하여 서로 알리고 확인하기 위해 약속된 신호 또는 구호가 있는데 이것은 별도로 설명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2번 등반자는 선등자가 설치한 확보기구를 회수하면서 올라간다. 선등자는 안전을 고려하여 등반이 비교적 쉽거나 확보하기 좋은 곳을 따라 등반한다. 그러나 후등자가 모두 그 길을 따라 등반할 필요는 없다. 길이 구부러지기도 하고 추락할 경우 좌우로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번 등반자는 선등자의 길을 따라가며 장비를 회수하면서 등반하지만 다음 등반자에게 방향을 알려 주거나 추락할 때 흔들림을 방지하는 확보기구는 그대로 놓아둔다. 이때에는 확보기구의 캐러비너에 걸린 로프를 빼고 중간고리 8자 매듭 뒤쪽의 로프를 당겨 확보기구에 다시 걸어 놓는다. 이러한 판단은 2번 등반자 스스로 하지만 경험이 많은 팀원의 지시에 따르기도 한다.
2번 등반자도 등반을 끝내면 종료 지점의 확보물에 자기확보한다. 자기확보 후 선등자와 아래의 팀원들에게 등반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그러면 확보자(선등자)는 확보를 해제하고, 3번 후등자는 등반 준비를 한다.
3번 등반자 등반 (초보 등반자의 경우)
4인 1팀 등반의 경우 처음 등반하는 우리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3번 등반자가 된다. 3번 등반자의 등반은 2번 등자의 등반과 거의 같다. 다만 2번 등반자가 확보자가 되는 것만 다를 뿐이다.
로프가 충분히 남아있으면 2번과 마찬가지로 중간고리 8자매듭하여 잠금 캐러비너로 안전벨트의 확보고리에 연결한다. 남아있는 로프가 등반 거리보다 짧으면 로프의 끝에 선등자와 마찬가지로 되감기 8자매듭으로 로프와 몸을 연결한다. 이러한 경우 다음 등반자를 위하여 새 로프를 가지고 등반하여야 한다. 새 로프는 끝에서 클로브히치 또는 8자매듭하여 잠금 캐러비너를 이용하여 확보고리에 걸고 등반한다. 이 과정은 모두 지도자나 경험이 많은 팀원의 지도와 점검을 받는다.
우리 친구들은 지금까지 배운 슬랩이나 크랙 등반 방법을 이용하여 등반한다. 먼저 등반한 사람들의 동작을 참고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 2번 등반자가 회수하지 않은 확보기구가 있으면 확보기구의 캐러비너에 걸려있는 로프를 빼고 중간고리 8자 매듭 뒤쪽의 로프를 당겨 캐러비너에 다시 걸고 계속 등반한다.
로프의 끝에서 되감기 8자매듭으로 몸에 연결하고 다시 새 로프를 달고 등반하는 경우에는 확보기구의 캐러비너에 걸려있는 로프를 빼고 새 로프를 당겨 캐러비너에 걸어 놓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과 같은 초보자들에게는 중간고리 8자매듭으로 연결하여 등반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 로프를 달고 등반하는 것은 조금 더 등반시스템을 익힌 다음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 등반하여 종료 지점에 도착하면 자기 확보를 한다. 그러면 우리 친구들의 첫 등반이 끝난다. 자기 확보가 되면 팀원들에게 등반 종료를 알린다. 그러면 확보자는 확보를 해제하고 4번 등반자는 등반 준비를 한다.
자기 확보점 만들기
등반자가 피치 등반을 끝내고 나면 먼저 종료지점에 설치된 볼트 또는 앵커에 자기확보한다. 그리고 휴식을 하거나 다음 등반을 준비한다. 이때 확보지점이 좁거나 확보물이 작아 복잡할 경우 여러 사람이 확보하고 있기 어렵다. 이때 큰 HMS 잠급 캐러비너를 더 걸거나 주위의 바위나 나무 등에 새로운 확보점을 만들어 보완할 수 있다.
초보자인 우리 친구들도 쉽게 확보점을 만들 수 있다. 슬링을 이용하여 탄탄한 나무 밑둥치 또는 돌출된 암각 등을 슬링으로 둘러 거스히치하면 된다. 여기에 거스히치의 한쪽 끝을 옭매듭한 거스오버(girth and overhand) 매듭으로 쉽게 보강할 수도 있다. 거스오버매듭은 슬링의 어느 한 부분이 손상되거나 다른 사람이 함께 확보해도 안전하다.
4번 등반자 등반
3번 등반자인 우리 친구들의 등반이 끝나면 바로 후등자 확보 준비를 한다. 여러분이 4번 등자의 확보자가 되는 것이다. 중간고리 8자매듭으로 등반한 경우 등반 로프의 남아 있는 부분을 이용하여 후등자를 확보한다. 그러나 새 로프를 달고 등반한 경우에는 새 로프를 이용하여 등반자를 확보한다. 이때 반드시 후등자 확보기구 설치가 끝난 후에 새 로프를 걸어 안전벨트에 연결한 캐러비너를 빼서 다른 쪽에 걸어 잠근다. 바로 이중확보(백업)이다.
후등자 확보 방법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하므로 다시 설명한다. 먼저 하강기의 위쪽 큰 고리에 잠금 캐러비너를 걸어 확보물에 고정한다. 하강기 구멍에 등반자가 연결된 로프를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통과시킨다. 등반자 쪽이 반드시 위에 오고 구멍을 통과해 나온 쪽이 좁고 톱니가 있는 아래쪽에 오도록 한다. 구멍을 통과한 로프 고리에 캐러비너를 걸어 잠근다. 이때 확보기구는 가급적 자기확보 지점보다 위에 설치하는 것이 확보를 위한 행동에 편리하다. 확보기구 설치가 끝나면 아래 등반자에게 알린다.
마지막 등반자는 대개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팀원들의 등반을 지켜보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남은 장비를 정리하고 중간에 회수하지 않은 장비를 모두 회수하면서 등반한다.
4번 등반자가 출발을 알리고 등반을 시작하면 확보자는 이에 맞추어 로프를 당겨 확보한다. 등반자 쪽의 로프가 너무 늘어지거나 팽팽히 당겨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등반이 진행됨에 따라 끌어올린 로프는 자신의 확보줄 좌우로 가지런히 사려놓는다. 그래야 로프가 길게 늘어지거나 엉키지 않으며 다음 피치의 등반이나 하강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 4번 등반자가 등반을 마치고 자기확보를 확인한 다음 후등자 확보를 해제하면 한 피치의 등반이 모두 끝난다.
마지막 등반자의 등반이 끝나고 종료지점에 모두 모이면 다음 피치의 등반을 준비한다. 상황에 따라 마지막 등반자가 등반을 시작하면 다음 피치의 선등자가 등반을 시작하기도 한다. 첫 피치의 종료지점이 다음 피치의 출발지점이 되는 것이다. 다음 피치의 등반도 첫 피치의 등반과 같다. 한 등반 루트는 이렇게 여러 개의 피치 등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날 등반의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휴식을 취하고 장비를 정리한 다음 하강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처음 등반하는 우리 친구들의 입장에서 처음 한 피치의 등반 과정을 설명하였다. 우리 친구들은 대개 2번 또는 3번 등반자가 될 것이다.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는 지금까지 소개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앞에 등반한 팀원들을 보고 그대로 하면 된다. 팀의 구성에 따라 여러분이 선등자가 설치한 장비를 회수할 수도 있다. 후등자 확보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앞에서 익힌 것을 토대로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지도에 따르면 된다.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 대로, 앞에서 익힌 대로 바위에 오르면 된다.
첫 등반은 항상 두렵다.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바위를 올라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처음 하는 일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다 알고, 다 잘할 수 없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다. 누구나 처음은 다 그렇다. 실제 여러분들의 첫 등반은 지도자와 팀원들의 안전한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다. 안심해도 좋다. 설령 우리 친구들이 등반을 하다가 실수하여 추락한다고 해도 50cm 정도이다. 등반시스템과 선배들을 믿고 시작하라. 첫 등반을 끝내고 나면 우리 친구들에게 더 넓고 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