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문명
몽고족의 역사는 현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에 둘러싸인 몽고의 거친 대초원에서
서기 1167년 '테무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됩니다. 테무진이 9살일 때 그의 아버지인
예스게이는 적대 부족들의 속임수로 인해 살해당했으며, 이로 말이암은 부족 내 힘의
공백은 어린 테무진과 그의 가족들을 부족으로부터 도망자의 신분으로 내쫓기게끔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테무진은 조상의 유산을 돌러 받고 정치적 동맹 관계를 정립했으며,
옛 적대 부족들을 전멸시켰습니다. 서기 1204년 그는 쿠릴타이(몽고의 총 부족장 회의)를
소집하고 지역 내의 모든 유목인 부족들을 힘으로 통합했습니다. 이 때 그는
'위대한 군주'라는 뜻인 '징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셋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셋 중에서 최강의 세력이었던
북경을 수도로 한 북쪽의 금나라; 남쪽에 위치해 있던 남송; 그리고 셋 중에서 가장
약했던 만리장성 서부의 서하.
몽고의 중국 정복사는 서기 1211년 징기스칸의 강력화된 부족연합군이 서하
정벌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막이 올랐습니다. 약한 인접국의 멸망을 무시한 금의 새로운
황제는 테무진에게 공식적인 신하로서의 예를 강요했으나 테무진은 금 제국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으로 이에 응수했고, 23여년간의 전쟁 끝에 금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테무진은 금에 대한 이 역사적인 전쟁에만 전력을 투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더 오래된 적들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금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동안 몽고는 테무진의 통일 전쟁시 도망쳤던 쿠치루크
부족들의 일파인 카라키타이족을 침공했습니다. 카라키타이를 격파한 몽고는 현 이란으로부터
구 남부 소련의 영역인 카스피해와 아랄해에 걸친 이슬람 제국인 하레즘과 본격적으로
국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서기 1219년 몽고의 대군은 몇 차례에 걸쳐 계속된 이슬람과
페르시아인 적들에 대한 침공중 제 1차를 기록하기 위해 집결했습니다. 하레즘의
패배 이후 몽고는 러시아와 접촉하게 되었고, 이 평화로운 이웃에 만족하지 않던
테무진은 그의 장군들로 하여금 겨울철 동안 대규모적인 남러시아 침공을 허락했습니다.
삼 년동안에 걸친 수 많은 승리를 거둔 그들은 다시 몽고의 본군과 합류, 금과 이슬람을
상대로 한 전쟁에 집중했습니다.
몽고의 어린이들은 세 살 때부터 말을 타는 법을 배우고, 다섯 살 때 사냥을
위해 활과 화살을 받았습니다. 전쟁을 이끌기 위해 몽고인들은 말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스피드가 생명인 몽골 기병은 심지어 안장 위에서 잘 수도 있었습니다.
약 4필의 여유마(한 필이 지쳤을 때 갈아탈 말)씩을 보유한 테무진의 군대는 단 한번의
식량 보급도 없이 이틀동안 130 마일(약 210km)를 주파할 수 있었습니다.
몽고군을 규정지을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스피드와 더불어 전투를 준비하고
시행할 수 있게 한 적응력이었습니다. 몽고의 거친 유목 생활은 전쟁의 극한성을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그들은 동 시대의 다른 군사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도록 신체를 발달치켰습니다. 필요시, 몽고군은 말의 피와 젖을 마심으로써 10일
동안 음식 한 번 조리 없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몽고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승리 뒤에는 엄청난 규모의 학살이 뒤따랐습니다.
몽고군에게 유용한 사람들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살해당했습니다. 서기 1221년,
이슬람 도시 메르프(Merv)가 함락당한 후 70만명이 도륙되었으며 여기에서 탈출한
운 좋은 시민들까지 모두 죽이기 위해 배후군이 배치되었습니다.
13세기가 끝날 때까지 몽고군은 폴란드, 일본, 한국, 헝가리, 러시아,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을 침공 내지 정복했습니다.
1227년 테무진의 죽음 이후 전중국을 통일한 쿠빌라이칸을 비롯, 후세의 칸들도 이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서기 1294년 쿠빌라이 칸의 죽음은 몽고에 의한 정복 시대의
조종을 울리는 것이었고, 몽고인들이 이웃 문명들에 흡수됨과 함께 몽고군의 행렬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I Civilization III: Play the World에서 몽고 문명은 확장적,
군사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즉 이 문명으로 플레이시
시작 시점에서 전사 기술과 군사와 탐험 관련 활동시
보너스를 얻습니다.
![Keshik](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iv3.com%2Fimages%2Fptw_cw_21mongolattack.gif)
세 살 때부터 말을 타는 법을 배우고, 다섯 살 때 사냥을
위해 활과 화살을 받는 몽골 기병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전쟁을 이끌기 위해 몽고인들은 말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스피드가 생명인 몽골 기병은 심지어 안장 위에서 잘 수도 있었습니다.
약 4필의 여유마(한 필이 지쳤을 때 갈아탈 말)씩을 보유한 테무진의 군대는 단 한번의
식량 보급도 없이 이틀동안 130 마일(약 210km)를 주파할 수 있었습니다. 몽고군을 규정지을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스피드와 더불어 전투를 준비하고
시행할 수 있게 한 적응력이었습니다. 몽고의 거친 유목 생활은 전쟁의 극한성을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그들은 동 시대의 다른 군사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도록 신체를 발달치켰습니다. 필요시, 몽고군은 말의 피와 젖을 마심으로써 10일
동안 음식 한 번 조리 없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몽골 기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몽고 문명 영역 안에 말을
보유해야 합니다. 이들은 Knight(기사)를 대체하며
어떠한 산악 지형도 평야와 같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공격 |
방어 |
이동력 |
생산 가격 |
일반 기사 |
4 |
3 |
2 |
70 |
몽골 기병 |
4 |
2 |
2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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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 Meier's Civilization?,는 미국 내 등록 상표이고 Infogrames 와 Infogrames logo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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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케쉬크가 아니라 만구다이 아닌가요?
케시크는 점령지 부족장이나 유력자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친위대이고 망구다이는 기병들중 전장경험이 많은 노련한 군인들로 구성된 별동대입니다 망구다이는 에이지2에서도 나오기도하죠 전장에서 망구다이들은 그들 특유의 노련한 경험으로 주로 단독공격 임무,주로 기습을 맡았고 몽골의 승리에 많은 영향을 끼침.
저도 망구다이가 나올줄 알았네염;;케쉬크는 언발란스
스피드가 생명이라면서 왜 안사전사보다 느리지..?
몽골기병 케시크 라고 나오던데.. 그리고 등에 창달고다니길래 창을 던지거나 찌르는지알앗더니 활로..
ㅡ;; 몽고기병 만구다이 아닙니까?
몽골기병이 이렇게 약해서.. 정성기때엔 로마군대도 먹을법한 기병이었건만..
음...몽골기병이라면 이동력 3 정도 줘야 하지 않나...
대신 가격이 싸잔아요
뭔가 잘못된거 아닌가요? 왜 몽고기병이라는 특수 유닛보다 일반기병이 더 쎼죠?
방패가 싸고, 철이 필요 없으며, 산에서 평야처럼 이동하므로 거기서 방어 보너스를 받고, 어차피 기사는 공격유닛이니 오히려 기사보다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