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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승을 찾아서 떠나던 날
백순(百順 : 순암 안정복의 아명)은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길을 떠나 한나절이 기운 다음에야 안산(安山) 첨성리에 당도했다. 저녁나절,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내]을 휘휘 헤치며 걸었다. 논밭을 지나 구비구비 돌아간 산자락 밑에 외따로 들어앉은 띠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바깥채는 세 칸, 앞의 한 칸은 토청(土廳), 뒤의 두 칸은 '육영재'라고 명명한 방이었다. 소박하고 누추한 누옥이었다. 백순은 가볍게 흥분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짤랑짤랑 방울소리를 듣고 노복이 달려나왔다.
"오냐, 잘 있었느냐?"
"네, 어르신!"
노복은 백순의 손에서 말고삐와 채찍을 옮겨 받아 헛간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먹이지 못한 탓일까. 조랑말은 털 빛깔이 꺼칠했고 엉치뼈가 사정없이 불거졌다. 백순은 되도록이면 함께 걸으며 말동무나 삼다가 성호 공의 집 사립문이 가까워질 즈음 헛기침이나 좀 하면서 조랑말 등에 올라탔다. 노복 앞에서 체면은 지켜야 했다. 백순은 짚신을 벗고 토청으로 올라가 육영재 방문을 열었다. 성호 공(公)은 보통사람보다 큰 키에 희고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언제보아도 성호 공의 명주실같이 부드럽고 청결한 수염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머리에는 당건을 썼고, 검은 색 명주 끈 두 개가 등 뒤로 두 석자 가량 늘어졌으며 당건 위에는 포건을 겹쳐 썼으므로 그 위풍은 언제 보아도 백순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이내 안도할 수 있는 것은 성호 공의 얼굴에 떠도는 인자함 때문이었다.
"스승님, 평온하셨습니까?"
"잘 왔소, 백순. 먼 길, 번거로웠겠소."
백순은 이마가 방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꿇어앉았다. 꼿꼿하게 풀 먹인 흰 두루마기 자락이 와사사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진작에 찾아 뵈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늦어 송구스럽습니다."
"편히 앉으시오. 먼 길 고역스러웠겠소."
"아닙니다, 스승님."
백순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지럼증 때문에 수시로 눈앞이 가물거렸다. 남다르게 꼬장꼬장한 기질로 버티고는 하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요즈음 어떻게 지냈는가? 복술을 익히고 능하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사실인가? 그 복술이라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네. 괜한 것에 시간 허비하지 말고 내가 항상 권고하는 바이지만 실학에 몰두해야 하네. 실사구시(實事求是) , 실제로 우리 인간이 사는 일과 밀접한 것, 그것에서 가치를 찾고 제도를 만들고 후손을 가르치고 그래야 하네. 해가 어떻고 별이 달이 어떻고 천체 운행이니 물이니 흙이니 태어난 운명이 어떻고 다 잡소리라네."
백순은 못들은 체 고개를 돌리고 소맷자락 속에서 두루마리 종이를 꺼냈다.
"제가 스물여섯 살, 그러니까 12년 전 정사년에 쓴 글입니다. 읽어보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십시오. 그해 정사년 가을, 저는 과거를 보려고 서울을 들락거렸습니다. 될 리도 없는 과거에 더 매달릴 수도 없고, 세상사 하 답답하여 차분히 글을 좀 써 보았습니다."
"시(詩)를 짓겠다, 그 말인가?"
"시도 짓고 글을 써서 심금을 누구에겐가 전해 보고 싶습니다."
"그 역시 우리가 사는 일에는 별 도움이 없을 것이네. 심심풀이는 되겠지. 하지만 기왕지사 기록을 했다 하니 자네의 의중을 읽을 수는 있겠네. 내 읽어 봄세."
백순과 성호 공은 개다리 소반에 들여 온 점심 끼니로 간단하게 시장기를 때웠다. 성호 공은 두루마리를 펼쳐 까맣게 총총히 쓴 한문 붓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글 제목이 '아기설'이라?"
"네, 스승님"
"무슨 뜻인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어떤 그릇을 보게 되었습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평평한데 속은 비었더란 말씀입니다. 꼭대기가 일자(一字)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마부에게 물었지요. 이것이 무슨 그릇이냐?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마부 역시, 벙어리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벙어리라고?"
"그 그릇의 이름이 벙어리이기 때문에 벙어리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오, 말 잘했네."
"이 그릇이 입은 있으면서 말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벙어리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성호 공은 두 귀로는 백순의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종이의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내가 말하기를,
".....거 참, 입이 있으면서 말을 못하는 것이 어찌 이 그릇뿐이냐. 병, 옹기, 항아리가 말을 못한다고 벙어리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였더니, 곁에 있던 여관주인이 듣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이는 조물주의 희극이다. 무릇 조물주가 사람에게 소리나 모습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간혹 아동들의 입을 통하여 노래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기물에 나타내 그릇이 되기도 하니, 이는 모두가 사람으로 하여금 듣고 보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이 그릇이 나온 지가 10년이 못되는데 그 뜻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벙어리와 같음을 풍자한 것이고 하나는 사람더러 벙어리처럼 하라고 훈계를 하는 것이다. 풍자한다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벙어리와 다름이없다는 것이요, 훈계하는 뜻은 사람이 말을 해서는 안 될 때에 말을 하면 재앙만 취하게 되니 마땅히 벙어리처럼 돼야 한다는 뜻이다. ...."
성호 공은 읽기를 끝내고 눈을 들었다. 성호 공의 그 진중한 눈빛을 바라보면서 백순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입이란 우호관계를 맺게도 하고 전쟁을 야기 시키기도 하는 것, 남의 자식과 말을 할 때는 효도에 대해 말을 하고, 남의 신하와 더불어 말을 할 때는 충성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한다. 지위도 없으면서 국정의 장단을 논하고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도 조정의 득실을 말한다거나, 심한 경우에는 공(共)을 등지면서 당(黨)을 위해 죽고 눈을 부릅뜨고 어려운 일을 말하다가, 결국 임금을 배반하는 죄를 저지르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여 몸이 죽고 세상에 화를 끼치는 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잘 알았네. 썩 귀한 후학을 두었다는 생각이 절실하네, 백순."
해가 떨어졌다. 울안의 가랑잎 휘몰리는 소리가 가냘프게 우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뒤섞여 두껍고 질긴 어둠을 조심조심 긁어댔다. 문풍지 틈으로 새어든 바람결을 따라 등잔불이 일렁거렸다. 성호 공과 백순의 그림자가 맞은쪽 벽에 거인처럼 내려앉았다.
"말마다 모두 돈독한 학문으로 실천하려는 의사가 있구려. 우리 당(黨) 사람이 있으니, 무얼 바라겠나. 내 어릴 때 일찍이 안전부(정5품 벼슬아치) 어른을 뵌 적이 있는데 그대에게는 어떻게 되는가?"
"증조부가 되십니다."
"나의 외숙이 그대의 4촌 대부인 진사어른과 동서간이라네. 그래서 그대 집안을 잘 아는데 각기 다른 고을에 살다보니 소식은 물론 생사나 존몰조차 전연 모르면서 지냈지 뭔가. 우리가 가난하고 피폐하여 뿔뿔이 흩어져 다 그렇게 산다네. 그간 충청도 제천에서 살다가 전라도 무주에서도 살다가, 서울에서도 살고 그랬지, 아마? 그러다가 경기 광주 텃골 영장산 아래 선산이 있는 곳으로 오게됐다는 소식은 바람결에 접하기는 했네. 하지만 언제 어느 때라는 것까지는 상세히 알 수가 없었다네."
"네, 스승님."
백순은 스무 살 약관의 나이를 넘길 무렵까지 무주에서 살다가 아버지(안극)가 서두르는 대로 부랴부랴 짐을 챙겨 광주 텃골로 올라왔다. 백순의 나이 스물다섯, 그러니까 할아버지(안서우)가 죽은 바로 다음 해였다. 백순의 맏아들 경증이 네 살 때였으니 말을 하자면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 손자, 증손자 해서 겹겹의 울타리를 둘러치고 나이 70을 넘게 살다가 이승을 떠났다. 그것도 조부가 극히 아끼고 마음을 주는 심산유곡 무주 적상산 아래 향장에서.
백순은 곁에서 한가롭고 아담한 표정으로 단정하게 앉아서 <<소학>>을 펴놓고 읽는 동자를 눈여겨보았다.
"우리 손자 여달일세. 신해생(20세)이고 만경(성호 공의 외아들 맹휴)의 아들이라네."
"스승님, 저는 나이가 40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학문을 익히는 방법이나 길이 막막합니다. 스승님께서 도를 강론하시고 멀지 않은 곳에 계심을 알고도 정성이 부족하여 이제야 찾아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우러르고 사모했음에도....죄송합니다."
성호 공은 즐겁고 편안한 표정으로 웃을 뿐 백순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속할 뜻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호 공의 아들 맹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백순과 눈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곁에 서 있다가 잠시 후, 방을 나갔다.
"스승님, 옛선비들께서 <<대학>>의 <품격과 운치>는 본래 있던 것으로 주자가 보망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농사를 알차게 지으려면 농사법을 알아야 하고, 그 법에 따라 적절한 공을 들여야 하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합친 것을 말하네."
성호 공은 손자 여달을 불렀다.
"<<대학>> 책을 좀 가져오너라."
"네, 할아버지."
성호 공은 손자 여달에게서 책을 건네어 받아 펴놓고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른바 천하를 편안하게 함이...'에서 윗사람이 늙은이를 늙은이로 대접하는 것과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 모두 '윗사람이 행하면 아랫사람이 본받는다.'는 것이네."
성호 공은 말을 끝내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듯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때 계집종이 저녁밥상을 들여왔다. 성호 공이 수저를 먼저 들면서 식사를 권했다. 백순도 수저를 들었다.
성호 공은 밥을 먹기 전에 밥을 대추만큼 떠내어 울안에 던졌다. 곡신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절차일 터. 백순은 모른 체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라는 데 될 말인가. 밥은 그릇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 크게 서너 번 뜨자 바닥 긁는 소리가 들렸다. 새우젓이 흰 사기 접시에 밤톨만큼 담겼고 나박김치가 한 접시, 박속을 긁어서 만든 토호갱이 전부였다. 그나마 백순의 입맛에는 가당치도 않게 짰다. 그릇들은 청결해서 그런대로 보기 좋았다. 물도 먼저 챙겨주고 주인이 손님에게 차리는 예우가 깍듯하여 백순은 성호 공의 품격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찬이 초라해서 입맛에 맞지 않을 거요. 더러는 자신이 가지고 온 반찬을 먹는 사람도 있지. 선비라면 응당 가난하게 사는 것으로 법도를 삼아야 할 것이네. '나물을 씹는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 그 뜻이 썩 좋은 것이야. 일상 생활 중에서 먹는 일보다 더 긴요한 것이 없으니, 가장 긴요한 일에서 먼저 자신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해서 오랫동안 습관이 쌓인다면 본성과 같이 편안해질 것이네."
"조문을 해야 되겠습니다."
백순은 성호 공의 아들 맹휴에게 청했다. 성호 공은 손자 여달에게 안내하도록 일렀다. 백순은 상차에 들어가 의례를 지켜 조문을 했고 상제는 머리를 조아려 조문을 받았다. 백순은 예절을 끝내고 성호 공 앞으로 돌아와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주자의 구배설에는 머리 조아릴 <고>자의 뜻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할 뿐이네."
성호 공의 아들 맹휴가 등잔불의 심지를 돋워주고 잠자리를 챙긴 다음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삿말을 남기고 나갔다.
밤이 깊었다. 성호 공이 손자 여달에게 조용히 타이르듯, 방이 좁으니 너는 건너가 자도록 하여라, 하고 일렀다. 백순은 내내 궁금했던 것을 성호 공에게 물었다.
"스승님, <역학계몽>을 어떻게 풀이하면 좋습니까?"
"퇴계가 이미 지적했네. 의심스러운 것이 많고, 더 이상 생각해 볼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권하고 싶은 책은 <<대학>>이 읽을만 하고....<<소학>>은 읽지 않아도 될 것이네."
이경(밤 9시~11시)이 넘었다. 바람도 잠들고 소쩍새도 짝을 만나 천지가 괴괴했다. 먼 곳으로부터 성질 급한 새벽닭이 홰를 치고 울었다. 성호 공은 포건을 벗고 당건만 썼다. 백순은 호기심이 일었다.
"스승님, 당건의 검정 끈 두 가닥이 뒤로 늘어뜨려진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시속제도와 빗나가지 않았습니까?"
"사각건의 내려오는 제도이네. 옛날에는 건을 방폭으로 만들었는데, 두 모서리에는 소대 둘을 달고 두 모서리에는 대대 둘을 달아서 머리에 쓴 다음 두 소대로 상투를 둘러서 묶고 두 대대를 뒤로 늘어뜨렸지. 나는 그 끈을 길게 해서 뒤로 늘어뜨린 것뿐이네."
닭이 여러 차례 울었다. 성호 공은 백순에게 어서 잠자리에 들라고 권하면서도 등잔불을 끈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친구 중에는 학문에 진전이 있는 자가 보이지 않고, 우리 가아(家兒) 맹휴가 예학에 제법 조예가 있구려. 저술도 물론 있지. 조카 병휴가 학문이 밝고 투철하여 젊은이들 중에는 그를 능가할 자가 없더군. 윤동규(尹東奎) 라는 자가 인천에서 살고 있는데 견해가 썩 명오(明悟)하건만 너무 가난하여 굶어죽을 지경인 것이 한탄스럽네."
성호 공과 백순은 자리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빛이 미닫이 방문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이자, 세숫간에서 얼굴을 씻은 뒤 밥상을 마주했다. 성호 공이 입을 열었다.
"내가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으나 그중에는 쓸만한 것도 있을 것이니, 그대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네. 또한 그대는 연부역강(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하니 응당 지식 탐구에 힘쓸 일이오. 지식이 밝아야 가는 길이 평탄하여 걸리는 것이 없는 법...."
"네, 스승님. 기억하겠습니다."
백순은 성호 공에게 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달리 햇살이 곱고 탱탱했다. 사립문 밖, 멀리 구비친 능선은 불길에 휩싸인 듯 선홍빛이며 금빛으로 선명하게 타올랐고, 추수가 끝난 들녘은 간밤에 내린 무서리가 반짝반짝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두 어깨에 힘을 주고 앞다리의 두 무릎이 부드럽게 꺾이는 경쾌한 본새가 하룻밤 새 잘 먹고 잘 잤던 모양이다. 계집종이 뜨끈한 먹이를 마방쪽으로 연방 퍼 나르더라니. 세를 내어 빌린 놈이기는 하지만 백순은 너 좋으니 나도 좋다, 싶다. 짤랑거리는 방울소리가 충실한 갓난아기의 옹알이처럼 등마루를 잔잔하게 울린다. 청명한 날씨 때문인가, 성호 공과의 기찬 하룻밤 때문인가, 몸도 마음도 그들먹하다.
백순은 어린 시절, 조모 홍씨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옛 이야기를 듣다말다 하면서 새새거리는 일이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명주실처럼 끊어질 줄 모르고 낮고 온건하게 풀려나오는 이야기들 중 백순을 긴장시키던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의 존재 의미였다. 안 서자우자, 어른. 백순이 혼례를 올리고, 며느리의 공경을 받아보고 손자를 안아본 다음 여생을 마감하고 싶다며, 산다는 것이 별 것인 줄 알지만 별 것이 아니라고 뭔가를 회의하시던 분, 허고 많은 날 곰방대를 물고 살아 사랑방은 온통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들끓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할아버지의 낯빛은 어둡고 침침해졌다.
할아버지는 가끔, 이 할애비는 숙종 임금님보다 세 살 아래였단다, 하고 말했다. 어린 백순에게 들으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를 하면서 긴 이야기는 생략했지만, 그 짧은 몇 마디가 미묘한 여운을 남겼고, 뭔지 긴밀한 연유를 품은 듯이 느껴졌다. 숙종 임금이 할아버지 보다 15년이나 앞서 승하하신 것이며 임금님의 후궁 장옥정 뒷이야기가 어쩌면 할아버지의 그늘진 삶을 서둘러 끌어들인 근간은 아니었는지.
'숙종 임금님은 나이 50도 못 넘기셨어. 더 사셨어야 하는데.'
그러나 할머니 홍씨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결코 원만한 편은 아니었다. 으레 끌어들이고 펼쳐 보이는 것은 섬뜩한 일화들이었다.
"나이 30도 안 돼 과거에 들으시고, 통훈대부니 병마절제사니 하시더니 어느날 그 벼슬살이를 훌훌 헌 짚신짝처럼 내버리시더구나. 울산에 계시면서부터는 무주의 산수나 즐기시고 음풍영월로 세월을 보내셨단다."
백순은, 할아버지께서 산수나 어쩌고 음풍영월 어쩌고 하는 대목에 맞닥뜨리면 젊으나 젊은 나이에 자결했다는 할아버지의 측실이 곧 연상되었다. 우물에 빠져 죽었는지, 중방에 목을 매어 죽었는지, 독극물을 먹었는지 헷갈렸지만 어쨌거나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 음습한 구덩이를 열어볼 때마다 할머니는 앙칼진 아녀자로 돌변했다.
"할아버지한테 소박을 맞고 친정살이를 하다가 강도한테 겁탈을 당한 것이 수치스럽다고 제 목숨 지가 끊었단다. 볼 것 있는 여자라고 마을 입구에 정려문을 세워 줬어."
할머니는 입에도 올리고 싶지 않다면서 자주 입에 올렸다.
"느 아버지도 부모에게는 효자이고 친구 간에는 의리가 돈독했지.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광평군 해서 조선 땅이 쩌르르 울리도록 벼슬살이를 하며 지른 호령이 할아버지만은 못했어도...."
할머니의 결론은 과거는 과거대로 엄청나게 자랑스럽고, 현실은 현실대로 조촐한 맛이있어 견딜만 하지만 할아버지의 장례식 절차는 20여 년을 두고 내내 억울하고 불편스러워 했다.
"돌아가신 것이 동지섣달 추운 때여서 땅에 묻어 드리기가 어려웠단다. 하는 수 없이 반 년을 초분에 모셨다가 뒤늦게 광주 텃골로 모시는 장례는 참 너무하다 싶었어. 할아버지 소싯적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할미는 실제로 마지막 가시는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싶었단다. 석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오동나무를 구해다가 사람 시켜서 관을 짜고 옻칠도 몇 차례 한 뒤에 제대로 모시고 싶었단다. 관 널 두께가 세 치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두 치는 돼야 할 것이고 관 짜는 장인을 서울서까지 불러오지는 못 하더라도 근방의 누구에게라도 좀 부탁할 것을. 옻칠을 누구처럼 열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늉이라도 했으면 내가 이럴까. 습을 마친 뒤 입관을 하고 지내는 제사에 격식을 갖췄어야 하는데. 조석 상식 때 빠진 음식이 너무 많아서 차마 가짓수를 논할 수가 없네. 메 한 그릇, 국 한 그릇, 접오기(어 육 자 반 혜 채) 한 그릇, 김치 한 그릇, 간장 한 그릇, 실과 한 그릇은 떠 놓아야 하고, 만장이 하늘 가득히 펄럭이며 앞장을 서야 하고...."
백순의 조모 풍산 홍씨는 아쉬운 것이 너무 많았다. 지난 세월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궐에서 아무런 시상품이 없다는것은 말이 안 된다 싶었다. 베, 무명, 누른 모시 몇 필, 연죽 몇 자루, 미선 몇 병, 광제환 몇 알, 장지 몇 속(묶음), 부채 몇 병, 진소(참빛) 몇 개 해서 가지 가지 갖추지는 못 해도 시늉으로라도 뭐가 왔더라면 영조 임금이 이토록 야속할까.
"후사(사도세자)가 태어나 만금을 얻은 것 보다 더 행복하다며, 곳곳에서 백성들에게 술이며 고기로 잔치를 베풀면서 우리는 이런 천대를 받는구나“
"천대요, 할머니?"
"오냐, 천대지. 무주에서 광주 텃골로 운구할 때도 소달구지에 실려서 수 백리 길을 걸었어. 만장은커녕 몇 안 되는 산역꾼들에게 장례 치르고 손에 쥐어준 연죽 한 자루, 참빛 한 개 없었으니 송구스럽기 참 이를데 없었느니라."
"할머니, 무얼 그런 걸 갖고 심화하세요. 다 허례허식 아닌가요?"
할머니의 동그랗고 갸름하게 빠진 턱의 흐름이며 이맛전, 동백기름에 젖어 차분하게 빗겨진 머릿결, 정수리 한 가운데 열린 가리마 해서 청결감과 안도감으로 구석구석 정돈된 할머니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한탄하면서 무너지다니.
백순은 이날 하룻밤도 주막집에서 묵을 작정을 하면서 발뒷굼치로 조랑말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려 갈길을 재촉했다. 눈치도 빠르지, 녀석. 백순은 조랑말의 걸음이 빨라지는 낌새에 자신의 엉덩이를 적당히 들어 애정을 표현했다.
성씨는, 그럼 이 아이가 옹주란 말이냐,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성씨는 아기를 어미의 가슴에서 떼어 안았다.
"고향은 어디냐?"
"전라도입니다만 이 몸으로 부모님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어떤 연고로 오게 되었느냐?"
"....."
"말하렴."
"이 마을에 훌륭한 어른이 계셔서 학문을 가르치신다는 말씀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감히 찾아뵙지는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중 송구스럽게도 어른 댁 노복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랬구나, 좋은 인연이다."
성씨는 아이를 어미의 품에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미는 성씨가 닫은 문을 우두커니 지켜보다가 등잔불을 끄고 아이를 품으며 자리에 누웠다. 아침 저녁으로 대면하던 상궁들이며 궁녀, 내시들의 허둥지둥 떼어놓는 발자국 소리, 비단 옷자락 스치는 소리, 허둥지둥 걸음을 뗄 때의 불안하고 긴장감 도는 소리들이 수런수런 떼 지어 몰려왔다가 사라졌다. 그중 뒷골을 떠나지 않는 어린 동물의 신음소리를 방불케 하는 단말마의 울부짖음이 있었다.
"쥐부리글려! 쥐부리글려! 쥐부리 지져!"
섣달그믐 깊은 밤이면 대궐 뜰을 횃불로 밝히고, 새로 입궁한 10세 내외의 어린 나인들이 열을 맞춰 서서 주술을 외듯 외쳐대는 소리였다. 궁녀들 사이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를 잡귀를 잡아내고, 말조심을 시키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붉게 이글거리는 횃불로 어린궁녀들의 입을 지지는시늉을 했는데,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얼굴로 화끈 다가올 때마다 어린 궁녀들은 등골이 조여 자지러졌지만, 얼굴 표정, 눈썹 한가닥 깟딱하지 않았다. 궁녀들은 밀떡을 물고, 그 위에 수건을 접어 입을 막고 양쪽에 삼실로 끈을 달아 귀에 달았으므로 반 마디 말은커녕 숨쉬기도 어려웠다. 수십 명의 내시가 긴 바지랑대 끝에 횃불을 붙이고 궁녀들에게 다가와 입을 지지는 시늉을 하면서, 쥐부리 글려! 쥐부리 지져! 하고 위협했다. 어떤 어린 궁녀들은 겁에 질려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횃불을 들이대어 당장 면상이 지져진다 해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먼 발치에서 중전이나 후궁들은 이행사를 지켜보다가 끼득끼득 웃으면서 즐기다가 돌아갔다. 낮에는 귀신을 쫓는 나례와 처용놀이를 했고, 밤에는 어딘가에 숨어있을 악귀들을 몰아내기 위해 불꽃놀이 행사를 했다. 중전이나 후궁들이 즐기는 것은 밤에 치르는 행사였다.
'비록 행사이기는 했지만 새로 입궁한 어린 궁녀들에게 말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우는 일 치고는 참으로 섬뜩했지. 궁궐에서 궁녀의 존재가 열두 지신 중에 가장 작고 보잘것 없는 '쥐'에 비유된 것같기도 하고, 새처럼 앞으로 나온 '부리'를 연상시키며 쉽게 나불대서는 안 된다는 뜻일 터이지? 맙소사.'
어미는 아이가 깊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머리맡을 더듬다가 일어나 등잔불을 붙였다. 발치에 놓인 보퉁이를 풀어 필묵 뚜껑을 열었다. 요금문을 나와 이 집 저 집 구걸로 연명하면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어느 지경에 처하더라도 비밀스럽게 아주 소중히 보관했던 물건이다. 모시던 상전이 죽어도, 심한 가뭄이 들어도, 중병이 들어도 출궁을 하라고 했다. 어미는 이 탓도 저 탓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승은을 입고 태기가 있으면 목마르게 기다리던 세월은 종언을 고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요것이 계집아이여서 그 밤으로 요금문을 나서야 했다. 그러나 어미를 안심시킨 것은 필묵함을 챙긴 것이다.
어미는 입궁한지 며칠 후, 처녀감별법이란 것을 받았다. 의녀가 앵무새 피를 팔목에 떨어뜨렸다. 어미의 팔목에 당연히 묻었다. 어미는 처녀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치잇, 하고 비웃었다. 중늙은이 내시가 영글지 않았다고, 비리다고 앳퉤퉤 하기는 했지만, 한참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구석구석 핥지 않았던가. 그래도 처녀란 말인가. 알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어미는 침방에서 틈을 내어 차분히 붓글씨를 익혔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구나, 하고 다가온 성은을 내칠 수는 없었다. 어미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모습 아름답구나.'하고 손에 잡힌 붓을 거둘 사이도 없이 쳐들어 온 마마의 몸이었다.
그때부터 어미는 성은을 기다리는 마음을, 먹을 갈고 붓을 잡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먹을 갈고 붓을 잡아도 성은은 다시 내리지 않았다. 어미는 붓을 잡고 글씨를 쓰던 자신의 맵씨를 버릴 수 없듯이 죽살이를 치더라도 문방사우는 버릴 수 없었다. 궁녀의 글씨, 궁체가 따로 있다는 것도 어미는 대견했고 자부심을 느꼈다. 모셔야 할 중전이나 대비를 대신해서 글을 써야 할 때도 있다. 단정하고 우아한 궁녀들만의 글씨, 그것은 어미의 존재 이유였고 긍지였다. 어미는 그동안 궁궐에서 방중술(방사의 방법과 기술)을 비밀스럽게 익혀왔다.
"첫째, 발뒷꿈치를 들고 걸어야 해. 소리없이 걸음을 걸어야 하는 직분이기도 했지만 종아리의 힘과 발 뒤 근육을 길러주어야 해서지. 둘째, 엉덩이를 든 채 걸레질 하기야. 바닥에 무릎을 대지 않고 앉아서 걸레질을 하는 자세로 신체의 유연성을 키우는 거지. 셋째, 배꼽으로 얼음물 받기지. 천장에 얼음을 매달아 두고 배위에 얇은 천을 덮은 뒤,누워 기다리면 얼음이 녹으면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배꼽으로 정확하게 받으면 온몸이 자극을 받고, 태아와 모체를 연결하는 통로인 배꼽이 자극을 받아 임신에 큰 도움을 주네요. 넷째, 말린 벚꽃 잎으로 양치질을 하는 거야. 금박이 들어있는 소금으로 깨끗이 양치하면 구내염과 구취가 나지 않아. 다섯째, 잠옷을 입지 않고 자는 거야. 보드라운 피부는 옷을 입지 않고 자야 옷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 세포 재생에 도움을 부며 건강한 피부를 가질 수 있지."
어느 날, 어미는 평소 친정어머니처럼 보살펴 주던 지밀상궁(엄씨)으로 부터 들은 몇 가지의 형벌도 떠올렸다. 궁중의 이런저런 비밀뿐만이 아니라 왕의 온갖 버릇과 약점을 시시콜콜 잘 아는 궁녀들은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으므로 입조심 교육은 물론 간통죄를 저질렀을 때의 벌칙이었다.
"다리 사이에 통나무 두 개를 교차하여 끼워 내리눌러서 근육을 조이는 '주리틀기', 양쪽 발목과 양쪽 손을 뒤로 묶고 한지를 얼굴에 붙인 후, 그 위에 물을 뿌려서 서서히 질식시켜 죽이는 '도무지', 끈으로 두 발의 엄지발가락을 묶어 거꾸로 매달아 세 모서리가 있는 막대기를 끼운 뒤 끈을 쳐서 다리에 상처를 주는 '끈치기', 죄인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소에 묶어 동서남북 사방으로 소를 끌어 죄인의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첨', 큰칼을 든 망나니가 단칼에 목을 베게 하는 '참형', 밖의 사람과 간통하면 남자, 여자 모두 즉시 목을 베고, 임신한 여자는 출산을 기다렸다가 형을 집행하는데....."
그 끔찍한 내용들이 지밀상궁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를 타고 이어지는 동안 질긴 삼줄이 되어 전신을 동여매는 듯했다. 어미는 몸을 뒤척거렸다. 엄씨의 입에서는 고치를 짓는 누에처럼 또 질깃질깃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
"어느 궁녀가 이런 시를 지었단다."
연못에 든 고기들아
누가 너를 몰아다가 여기에 두었느냐
북쪽바다 맑고 넓은 연못
어디 두고 이 못에 왔느냐
들고서 못나가는 처지는
너나 나나 무엇이 다르랴
"외부와 단절된 채 한 평생을 궁궐에서 지내다가 나이가 들고 병이 들면 궁궐에서 나가야 한단다. 그 못쓰게 된 여자들 몸이 어디로 가겠니. 창덕궁의 뒷문인 요금문으로 나가는데 그 요금문은 환자나 시신이 나가는 문이란다. 왕족 말고는 궁궐에서 죽을 수 없는 법도 때문이지. 산 사람처럼 가마에 태워서 말이야. 그 궁녀들은 요금문을 벗어나 그 넘어 서쪽의 '궁말'이라는 곳에 모여 산단다. 마땅히 의지할 데가 없던 궁녀들은 봉은사 같은 절에 시주도 하고 만년의 쓸쓸함을 달래다가 생을 마치면 화장해 준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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