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취재]대체의학의 현장
玉, 보석인가 ‘영험한 치료제’인가
●조선의 왕비는 옥으로 태교했다. ●동이족의 보석은 金이 아닌 옥이었다. ●한국 옥은 질병까지
고친다고? ●옥 있는 곳이 진짜 명당이다! ●옥 산업이 뜨고 있다.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제1부 옥을 사랑하는 민족들
선조 고종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내시 이재우(李載祐·1884~1963)는 왕을 배알하기 위해 정승 판서 당상관들이 지밀(至密) 처소를
찾아올 때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주임무 중 하나였다.
이재우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면서 이들이 머리에 쓴 망건에 달린 옥관자(玉貫子)를 유심히 살폈다. 이는 옥의 색깔을 보고 왕에게
간언하는 대신의 마음을 미리 읽어내는 것으로, 「지밀 내시」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 비전(秘傳)이었다.
실제로 옥관자를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 색깔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관자의 색깔이 밝고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칙칙하고
어두운 색깔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옥관자의 색깔이 흐린 사람은 모두 쓸데없는 참소나 간언을 농하고, 당파싸움 같은 데에 왕을 끌어들이는 난잡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칙이었다. 따라서 그런 벼슬아치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내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또 옥관자의 색깔에 따라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뜻도 숨어 있었다.
조선 왕실에서 옥의 용도는 비단 이뿐이 아니었다. 왕실의 태교에도 옥은 유용하게 사용됐다. 대궐에서 왕비가 왕자를 수태한 지 3개월째부터는
태교를 위해 별궁에서 지내야 한다. 이때 태교의 법속(法俗)에 「태아를 위해 벽옥(碧玉)과 소나무를 매일 상당 시간 바라보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뱃속 아기에게 전달된다」고 해서 왕비들이 이를 실천했던 것.
이재우는 옥을 비롯한 왕실의 내밀한 「양명술(養命術)」을 그의 양아버지이자 내시부 종3품으로 철종을 모신 김덕화(金德和)로부터 배웠다.
이후 그는 고종임금 당시 창궐한 전염병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워 임금의 총애를 받았고 내시부에서 위생, 섭생, 양생 방면의 교관으로도
활동했다.
1909년 대궐의 내시부가 일제에 의해 해산되자 이재우는 조선왕실의 양명학을 체계화한 후 그의 손자뻘이자 제자인 이원섭씨(양명회
회장·『왕실 양명술』의 저자)에게 전수함으로써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게 됐던 것.
「옥의 나라」 조선
이재우가 이원섭씨에게 전한 「내시내훈(內侍內訓)」을 보면 조선 왕실은 온통 옥 천지나 다름없었다. 왕이 사용하는 도장을 옥으로 만들어
「옥새」라 했고, 왕이 앉는 의자를 높이 받들어 「옥좌」라고 했다.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홀도 옥으로 만들었으며, 왕의 옷인 곤룡포에는 옥대가
따랐음은 물론이다.
왕비가 착용하는 장신구도 옥 일색이었다. 옥반지, 옥비녀에 머리띠까지 백옥을 다닥다닥 장식했다. 선조 말기의 중전이나 비빈들은 궁중에서
내려오던 옥이나 진주를 늘 차고 다녔는데, 몸에 차고 있으면 청량감을 주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옥에 대한 집착은 왕실에서 귀족층과 민간으로까지 전파됐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사람들이 옥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일정한 벼슬 이하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옥 사용을 금지토록 영을 내린 대목도 나온다. 그처럼 옥이 소중하게 다뤄지다보니 권력층에 대한 뇌물로서도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또 민간에서는 귀한 아들이 태어나면 「옥동자(玉童子)」라고 부르고, 딸의 이름에도 「옥」 자를 넣어 귀하다는 의미를 표시하고자 했다.
옥은 사람들이 살아서뿐 아니라 죽어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조선의 왕들은 장례 때 예외없이 옥을 사용했다. 이재우에 의하면 내시 정원
1백40명 중 덕망있고 신임이 두터운 내시가 상왕이나 왕이 붕어한 다음에 염습을 주관할 수 있었는데, 이때 왕의 무덤에 옥으로 된
부장품(옥갑)이 필수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옥이 조선 왕조에서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조는 말할 것 없고 더 멀리 고구려 신라 백제 시대에서도 옥은
왕실의 귀중한 보석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에 달린 영롱한 옥조각들은 왕의 상징물이었다. 경주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68%가 옥 종류의 구슬일 정도였다. 우리 민족의 경우 금보다도 옥이 보석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옥을 사랑한 동이족의 나라
옥은 한반도의 동이족(東夷族) 뿐만 아니라 서해 바다 건너 중국에서도 귀중한 보석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중국의 유교
경전인『예기(禮記)』「옥조편」에는 『왕 중 왕인 천자는 백옥을 패용한다』고 기록할 만큼 옥을 존귀하게 여겼다. 또 옛 진(秦)나라의 왕이
조(趙)나라 왕이 입수했다는 백옥덩이를 가지고 싶어서 성읍 15개와 바꾸자고 애걸했다는 고사도 있는 것을 보면 고대인들이 얼마나 옥에
집착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증거물도 있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는 중국 고대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국문화대전」이 열렸는데, 가장 주목을 끈
것 중 하나가 온 몸을 옥으로 장식한 한 구의 시신이었다. 1층 전시실 한가운데에 전시된 이 유골은 한(漢)나라 때 지방 군주였다.
1968년 중국 하북성 만성(滿城)지역의 중산정왕묘(中山靖王墓)에서 출토된 이 임금 유골은 온 몸이 옥조각으로 만들어진 염복(殮服)으로
감싸여 있었다. 총 2천4백98개의 영롱한 옥조각들이 금으로 만든 실(金絲)로 연결돼 화려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인 서한(西漢, BC 202~AD 8년, 유방이 세운 나라로 왕망에게 망할 때까지 장안에 수도를 두고 있었으며
전한이라고도 함)때 황제나 고위층 귀족의 장례습속이었다. 이 외에도 같은 한나라 때의 마왕퇴 유적지에서도 옥으로 치장한 유골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고대인들은 왜 시신에 옥을 치장했을까? 중국 진(晉)나라 때 갈홍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옥을 시신의 아홉 개 구멍(눈 2, 귀
2, 코 2, 입 1, 생식기 1, 항문 1)에 넣어 놓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했으며 『명의별록(名醫別錄)』이란 책에서도 『시신이 마치 산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시신의 내부 장기와 외부 몸에 옥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마왕퇴 유골에 대해 조사 연구한 결과 옥이 시신의 부패를 상당 기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보고한 바 있다. 옥의 신비한 작용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옥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보석으로 각인됐을까? 중국 고옥(古玉)과 고고지질학적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문광교수(聞光·중국지질대)는
중국의 경우 옥은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되었으며, 중국 고대문화를 대표하는 광물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문광교수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은나라(?~BC 1100?) 유적지인 은허(황하 중류 지역)에서는 옥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은나라 사람들이 매우 옥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은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동이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오히려 서량지 등 중국 사학자들이 먼저 밝히고 있는 바다.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동이족의 「옥 사랑」의 연원이 저 멀리 은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태평양 왕래한 옥 무역
옥에 대한 고대인들의 집착은 놀랍게도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마야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멕시코 남서부의 팔렝케
마야유적지에서는 고구려 장군총과 그 규모나 구조가 똑같은 「계단식 피라미드」가 웅장하게 서 있다. 바로 이곳에서 한나라 때 왕들의 시신과 같은
모습으로, 2백여개의 옥으로 모자이크된 가면을 쓴 마야 왕의 유골이 출토되었다. 옥 가면은 왕이 죽은 뒤 얼굴 위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일일이 옥조각을 붙여 완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마야왕의 약간 벌어진 입 속에는 옥이 살짝 물려 있는 형태였다. 옥 목걸이가 주렁주렁 목에 달려 있었고, 두 손바닥과 두 발에도
각각 동그랗게 만들어진 옥이 놓여 있었다. 열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옥반지도 끼워져 있었다. 이들 모두 마야인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투명한
연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1953년 이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멕시코 고고학자들은 유골의 주인공은 7세기에 이 지역을 통치한 파칼 왕이라고 밝히면서, 너무나 생생하게
보관돼 있는 유골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또 고고학자 브루스 훈터는 팔렝케의 매장풍속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고대 중국 대륙의 매장 문화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신의 입에다 옥을 물리거나 손발에 옥제품을 착용케 한 것은 이미 중국 주나라 때부터 전래해온 독특한 장례 풍속이었다.
이에 대한 인류학자 구나 톰슨(Gunnar Thompson)의 견해 역시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책(『Nu Sun, Asian
American Voyages 500 BC』)에서 마야인들의 사상체계 및 예술 조각품에서 은나라의 문화가 똑같이 나타남을 들어 두 나라의 관계가
매우 깊음을 학술적으로 설명한다.
톰슨은 은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야인들은 옥을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겨 수많은 옥 예술품을 남겼으며, 음양이라는 이원화된 상징
체계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인들이 옥을 질병 치료에 응용했듯이 멕시코 원주민들도 배앓이할 때 옥을 문질러 치료하는 것을
멕시코를 침략한 스페인 군인들이 목격했다.
톰슨은 두 문화의 놀랍도록 유사한 점을 이모저모로 제시하면서 매우 파격적인 주장까지 한다. 옥이 고대 멕시코와 중국 간의 중요한 교역 상품
중 하나였다는 것. 당시 은나라 사람들은 옥이 매장된 장소를 찾는 데 특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지금까지도 그들이 만들어낸 옥 제품의
산출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상당량이 중앙아메리카에서 수입된 옥 원석일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중국에서 은나라가 존재하고 있던 시기에 멕시코 일대에서는 중앙아메리카사상 최초의 문명이자 마야문화의 모체가 되는 문명을 일으킨
「올멕 인」들이 역사무대에 등장하고 있었다. 올멕 인들은 옥을 찾아 중앙 아메리카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또 올멕 인들은 이곳에서 산출된 매우
훌륭한 옥을 사용해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조각품을 남겼고, 이 전통이 마야문화에까지 이어졌다.
톰슨은 결론적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옥이 이 지역을 여행한 고대의 은나라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톰슨의 주장은 옥을 통해 각 문명권 간에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얻는 춘천 옥
이처럼 세계 각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왕권을 상징했던 옥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적잖다. 일반적으로 옥은 비취로 더 잘
알려진 휘석 계열의 경옥(硬玉)과 각섬석 계열의 연옥(軟玉)으로 분류된다.
신라 고분 등 옛 무덤에서 나오는 옥 부장품은 대부분 경옥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경옥과 같은 보석 광물은 지질학적으로
한반도에서는 생성되기 어려운 광물이라는 것이 지질학계의 일반적인 상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대 왕들이 애용한 경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옥 산지는 미얀마이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경옥이 산출되고 있다.
80년대 중반 우리나라 경옥을 조사한 결과 지역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것과는 성분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남은 가능성은 우리
조상들이 해상교역을 통해 미얀마에서 경옥을 수입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비교 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옥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곳은 현재 단 한군데. 소양호가 있는 강원도 춘천군 동면 월곡리가 그곳이다. 대일광업이란 광산회사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이곳의 옥은 연옥이다.
연옥은 다이아몬드나 수정, 사파이어 등 일반 보석과 다르다. 일반 보석은 광물 자체가 특이하고 결정체로 이뤄져 있는데 반해 연옥은 극히
작은 입자가 바늘 또는 실타래 모양의 집합체를 이루고 있는 비결정성 광물이다. 이러한 연옥은 매우 영롱한 반투명성을 띠고 있어서 보석으로서도
당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여하간 경옥이든 연옥이든 우리 선조들은 옥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집착해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조선시대 순조 임금의 가례(國婚)때는 국내의
옥이 바닥나 1백50점의 백옥(연옥) 가락지와 반지 노리개를 중국에서 수입해올 정도였고, 지금의 후손들도 옥에 대해서는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옥은 언제나 사랑받는 보석으로 자리잡고 있다. 표면이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연푸른 옥반지, 옥목걸이, 옥팔찌 등
액세서리를 시중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보석 전문가들은 IMF 시대를 맞아 금반지, 금목걸이를 외국에 내다파는 상황에 옥이 여성들의 각광받는
장신구로 다시 한 번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재 춘천산 연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수십년간 옥 예술을 하고 있는 옥장인(玉匠人) 장주원씨(인간문화재)는 『지구상에서는 3천여종의
옥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중 장신구용으로 쓸 만한 옥은 50~60종이며 그중에서 춘천옥은 최상위급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조선시대에
맥이 끊긴 옥공예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양질의 춘천옥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만의 국제 옥시장에서도 춘천산 연옥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아름다운 모양새가 주위의 이목을 끌기도 하겠지만, 색다른 이유도
있다. 즉 중국 신장이나 남전에서 생산되던 옛 백옥처럼 춘천 옥이 질병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 있기 때문.
제2부 옥으로 병 고치는 사람들
옥전문가들은 연옥이 다른 보석과는 달리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속설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점도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한방병원에서는 지금도 옥가루를 치료 약재로 이용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허준이 지은 의약서 『동의보감』에는 연옥을 대단한
「약품」으로 묘사하고 있다.
『옥가루를 깨알만하게 만들어 복용하면 오장육부를 윤택하게 하고 체내 노폐물을 배출시켜 준다. 위장의 열을 제거해 소화계통에 효과가 있으며
기관지 천식과 신열(身熱)이 나고 가슴이 답답할 때 좋고 갈증을 멎게 해준다. 또한 옥가루를 장복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장수하게 된다.
폐장의 기능을 윤활하게 해주며 성대의 발성을 도와주고 인후에 좋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의 의약서인 『본초강목』과 『신농본초』에서도 역시 불로장수하는 「신선(神仙) 약」으로 옥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조선조 고종의 내시 이재우도 「내시내훈」에서 건강 약품으로 옥을 설명한다.
즉 왕이 먹는 밥은 금속제 솥으로 짓지 않고 옥돌 솥을 사용해 옥의 기(氣)를 쌀에 농축시켜 왕의 건강을 지키려 했다고 한다. 심지어
비만한 내시나 궁녀들은 하루 20~30분씩 매일 옥돌을 딛고 있기만 해도 체중이 줄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옥의 효능에 대한 과학적 접근도 시도되고 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서는 춘천산 연옥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내놓고 있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흰쥐 12마리를 A와 B군으로 6마리씩 나눈 뒤 옥을 사용한 집단과 그러지 않은 집단 간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은 A군에는 옥으로 된 침구를 케이지(cage) 바닥에 깔아주고 B군에는 기존의 나무 깔짚을 깔아주는 것으로 진행됐다. 나머지
사육조건은 모두 같게 한 뒤 1주일 간격으로 쥐들의 혈압을 측정했다.
그 결과 A군의 흰쥐들은 시험 전반기에 혈압이 약 16mmHg의 강하 효과를 보였다. 반면 B군의 쥐들은 시험 전반기에 혈압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후반기에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말하자면 옥침구를 사용한 A군의 쥐들에서 혈압 수치가 내려갔다는 유의할 만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을 주도한 한찬규박사(축산물이용연구부)는 이외에도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당뇨가 있는 쥐들에게 옥분말로 만든 옥수(玉水)를 마시게 했더니 혈중 콜레스테롤이 일관되게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연옥으로 된
타일을 사용해 숫쥐를 사육한 결과 일반적인 조건에서 기른 쥐보다 정충이 39% 증가하는 현상이 보였다. 연옥으로 된 자기 그릇에 돼지고기를 담아
4℃에서 신선도를 유지하는 실험을 해본 결과 무려 21일간이나 신선도가 변하지 않음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아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려우나 이와 같은 결과가 연옥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있었다. 93년 중국 북경중의학원(종합 한의대) 부속 중의연구소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춘천에서 생산한 옥 목걸이와
옥 반지를 착용케 하는 방식으로 1백차례 임상 실험을 한 결과 불면증에 96.9%, 심장 질환에 92.9%의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귀울림증(91.3%), 어지럼증(87.3%), 두통(83.8%), 고혈압(77.8%)관절염(60.6%) 등의 순으로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특히 임상실험 환자 가운데 심장질환, 두통,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그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옥기 쐬러 옥광산 찾는 환자들
하루에 5백t씩만 생산하더라도 무려 2천년간 채굴할 수 있다는 춘천의 옥광산(대일광업). 이곳은 여느 광산답지 않게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연일 대절버스와 자가용을 이용한 사람들이 「건강 관광」을 위해 몰려들고 있기 때문. 이는 지하 60m 깊이의 옥광산 안에서
「옥기(玉氣)」를 맡고 지하 3백m 깊이에서 뽑아올리는 「옥수(玉水)」를 마시면 몸속에 에너지가 증가하며 아픈 사람도 낫는다는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기 때문.
3월6일 기자 일행이 옥광산을 찾았을 때도 이미 10여명의 사람들이 갱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옥기라는 것을 쐬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
옥구슬과 옥반지를 차고 옥암석 위에서 양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 떠다놓은 옥수를 한컵씩 마시는 정도였다.
가슴에 기다란 옥구슬을 차고 있는 최운식씨(64·충남 연기군 전동면 노장리)는 부인(정길순)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하면서
옥의 효력에 대한 자신의 신묘한 체험을 얘기했다.
『3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심장에 손상을 입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 심장이 비대해져 심장판막이 새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옥이 심장 질환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옥 목걸이를 차고 여기서 나는 옥수를 마셨더니
숨이 가쁜 현상이 줄어들었다. 나중에 병원에서 X-선촬영을 해봤더니 심장 크기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현저하게 작아져 계속 이곳을 다녀간다』
최씨는 부인인 정씨(65) 역시 옥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5년 넘게 심한 당뇨를 앓고 있는 정씨는 인슐린 주사를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중증이었는데, 지금은 인슐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 오히려 어쩌다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몸에 부담이 올 정도라고
한다.
대체의학과 「보석요법」
이 광산의 대표이자 스스로 「옥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김준한씨는 하루 평균 1백명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말한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갱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3월7일부터 옥광산을 임시폐쇄하는 지경까지 왔다고도 한다.
또 김준한씨는 옥기를 쐬고 옥수를 먹은 사람들이 병을 고친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현재 질병치료용으로 쓰일 수 있는 옥은
전세계에서 한국제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옥이 어떻게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데 쓰일 수 있을까? 옥은 화학적으로 마그네슘과 칼슘, 철분이 함유돼 있는 광석이다. 김준한씨는
전문연구기관에 의뢰, 옥 성분 자체를 과학적으로 구명한 다음 질병 치료와 상호관계를 밝혀보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현재의 과학기술로서는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옥의 기운」 때문이라는 해석 외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대체의학(자연의학)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분석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에 의한 의료행위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대체의학은 현대 의학적인 지식으로서는 해명이 안되나 분명히 치료 효과가 있는 것들을 연구하고 치료에 응용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그림으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자석 혹은 황토 등에서 치료 효과를 거두는 등의 의료적 행위가 그것이다.
대체의학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자연의학을 전공, 국내에 보급하고 있는 오홍근박사는 대체의학에서는 이미 보석의 색깔을 응용해
환자를 치료하거나(색채요법), 보석 종류에 따라 적용되는 질병 종류까지 구별해놓고 치료하는(보석요법) 수준에 와 있다고 한다. 보석요법의 경우
이를 테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수정을 놓고서 정신적 감응을 주고받다보면 신경정신과적 치료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옥의 경우에도
옥 종류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질병이 세밀하게 분류돼 있다고 한다.
헤디 브루시우스(Hedy Brusius)가 지은 책 『보석의 마력』에서는 특히 연옥이 『고혈압, 당뇨, 순환기장애, 심장병, 신장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적 약품』이라고 규정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설명하고 있을 정도다.
한편 옥이 풍수에도 적용된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대일광업 대표 김준한씨는 옥광산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옥광산 바로
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춘천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 군락 중에서 옥광산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들만 유독 구불구불하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이것도 옥과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옥을 묘지의 동서남북과 무덤 안에 파묻는 실험을 해봤는데, 무덤의 흙에서
윤기가 나고 잔디가 잘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옥은 명당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옥 있는 곳이 진짜 명당?
말하자면 옥에서 발산하는 기운이 땅을「개조해」 명당으로 만들어준다는 논리인 셈. 김씨는 옛 고분에서 옥이 출토되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가
개입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침 이런 논리를 더욱 체계화시켜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수맥 전문가인 김용대씨가 그 주인공. 80년 초반부터 수맥을 연구해 온천과
지하수 개발에 힘써온 김용대씨는 수맥을 차단하는 방법에 몰두하면서 우연찮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땅 밑에 옥 암반이 있는
지역은 자연적으로 수맥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과 일치함을 알았다고 말한다.
『땅밑에 흐르고 있는 수맥이 사람에게 질병 등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수맥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십수년간
수맥을 연구하는 동안 수맥이 흐르지 않는데도 땅밑에서 사람에게 좋지 않은 무언가의 에너지(기)가 방출되는 곳이 있으며 반대로 주위에 수맥이
흐르고 있는데도 아주 좋은 에너지가 방출되는 곳을 감지할 수 있었다.
수맥을 연구하기 전에는 대한광업공사 소속으로 자원탐사 현장에 근무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암반과 관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집중적으로 연구해본 결과 사람에게 좋지 않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은광석이고, 반대로 인체에 좋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옥광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른바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는 집터를 탐사한 결과 대부분 그 아래에 옥광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꾸로 옥광석이 있는
땅을 찾아내면 풍수의 논리를 빌리지 않아도 명당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대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인 서울 정릉3동의 H빌라 앞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보여주었다. 그 빌라에는 조성 당시 조경용으로 심어놓은
3그루의 향나무가 거의 비슷한 키로 나란히 자라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가운데 나무는 생생한 반면 양 옆의 두 그루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확연했다. 김씨가 수맥 탐사용 기기로 측정해본 결과 세 나무 밑으로는 모두 수맥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다시 은광석 탐사용 기기로 측정해보니 양
옆의 죽어가는 두 그루 향나무 밑으로는 은광석이 있음이 감지됐다. 반대로 가운데 나무 밑으로는 수맥을 극복해내는 옥광석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담장으로 이동하더니 역시 똑같이 심어놓은 향나무 세그루룰 손으로 가리켰다. 희한하게도 이번에는 가운데 향나무가 완전히
죽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양쪽의 향나무들은 하나같이 나무를 세로로 반듯하게 쪼개놓은 것처럼 바깥쪽 반은 살아 있고 안쪽 반은 죽어가고 있었다.
김용대씨가 수맥탐사기기로 측정해보니 모두 수맥이 탐지되지 않았으나 은광석 측정기로는 세그루의 나무중 말라가는 부분에서는 뚜렷하게 은광석이 있음이
나타났다.
물론 김용대씨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옥과 명당의 상관관계를 떠나서 옥이 수맥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음은 또다른
사례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서울에서 옥침대 등 침구류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MSP의 편무성사장 역시 『언젠가 수맥을 연구하는 사람이 공장에
찾아왔는데 수맥이 흐르는 곳에 커다란 옥덩이를 갖다 놓고 실험해보았더니 수맥이 차단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각광받는 옥 산업
내시 이재우의 제자이자 양명회 회장인 이원섭씨는 그의 스승이 말년에 『앞으로는 돌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돌과 흙의 나라가
해동조선이다』라는 말을 못 박듯이 남기고 떠났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온초전도체, 세라믹, 실리콘 등 20세기 첨단산업 소재들이 한결같이 돌과
흙의 소산물이고 보면 이재우의 예견이 틀린 것도 아닌 듯하다. 남은 것은 「해동조선」 곧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돌과 흙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옥광산을 운영하는 김준한사장은 당연히 한국의 연옥이라고 주장한다. 춘천 연옥처럼 약효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중국 신장과 남전의
연옥은 이미 고갈돼버렸고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한국산 연옥밖에 없다는 게 그의 춘천옥 예찬론이다.
김사장은 세계 시장에 옥제품을 건강용품으로 수출하기 위해 94년 7월 미국 식품의약연구소인 FDA의 공인까지 획득했다고 밝힌다. FDA가
주관하는 연구소에서 연옥제 화장품과 치약, 머리 영양제 등에 대한 해독성 여부를 실험한 결과 무독성(無毒性)과 무해(無害)함을 인정받았다는 것.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사실 옥제품은 국내에서도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듯 그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춘천 연옥제품을 판매하는 회사
제이드마운틴은 97년 한해 동안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IMF 사태에 의한 경기 불황 속에서도 비교적 타격을 덜 입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옥침구를 생산하는 한국MSP의 편무성 사장도 돌침대 중에서 옥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며, 심지어 조상의 시신을 잘
모시기 위해 옥관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옥으로 명당의 기운을 끌어보겠다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 때문이라는 것.
편씨는 또 『비싼 돈을 들여 수입하는 이탈리아 대리석보다는 보기 좋고 건강에도 효험이 있다는 옥제품이 건축 내장재로 각광받는 때가 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과연 동이족의 나라인 은대에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옥이 5천년이 지난 현대의 후기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자리잡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일일 것이다. 『보석요법의 경이』의 저자 월레스 G 리처드슨은 미래 세상과 관련한 옥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경옥(비취)과 연옥(백옥)은
오랫동안 동양철학을 형성한 영석(靈石)으로 앞으로도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멀지않아 인간이 미처 찾아내지 못해 모르고 있던 새로운 옥이 사용될 날이 올 것이다. 이 옥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지구
어딘가 깊은 동굴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것은 처음 미얀마(버마)에서 전조(前兆)로 나오고 수정, 석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결정적인 물질일
것인데, 다이아몬드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값비싼 보석이 될 것이다…』
리처드슨이 예언자처럼 얘기하는 옥이 혹시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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