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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입원할 때 위암 2기 말∼3기 초였는데 등산 열심히 다녀 깨끗이 완치했습니다. 비슷한 진단을 받은 다른 암 환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달리했지만 20여 년 가까이 산에 다닌 덕에 올 3월 완치 판정을 받을 예정입니다. 산은 제 생명의 은인이고, 산을 만난 건 제 인생의 축복입니다.”
부산 망월산악회 홍주환(60)씨 말이다. 등산 통해 위암을 극복했다는 얘기는 가끔 있었지만 그가 주목 받는 이유는 그의 산행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술을 마시면 가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염 약을 먹고 그냥 넘어갔다. 통증도 잦아지고 약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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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1월 산행하면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 한번은 극심한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친구가 의사로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게 2004년 2월 7일 일이다. 내시경 검사를 했다.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2월 14일 대학병원에 입원해 정밀 조직 검사를 받았다. 2기 말∼3기 초 위암 판정이 내려졌다. 곳곳에 침투한 암세포는 위벽까지 헐고 있었다. 위벽에 3㎝ 정도 크기의 암세포 덩어리를 덜어내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암은 수술만 잘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후부터가 더 문제다. 피를 말리는 항암 치료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한 약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관건이다. 많은 암 환자들이 이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며 다시 무너지기도 한다. 그는 체력 회복과 체내의 독성을 빼내기 위한 방법으로 산을 택했다.
3월 2일 퇴원했다. 체력은 매우 떨어져 있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체력을 소진한 까닭에 움직일 기력조차 별로 없었다. 수술 전 87㎏이던 체중이 73㎏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하루 쉰 뒤 4일부터 집 뒷산인 금련산을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금련산은 해발 415m로 고도는 별로 높지 않으나, 야경은 전국에서 가장 좋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산에 오르면 광안대교의 화려한 불빛과 탁 트인 바다 전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침 5시에 출발해서 7시30분에 돌아오는 코스로 매일 오르내렸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는 듯했다. 인근 장산까지 갔다. 무리하지 않았고, 원래 체력도 좋았다. 오히려 산에 오르는 재미가 더욱 붙었다. 점차 나아지자 배에 복대를 하고 진해 웅산까지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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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월 부부 동반 지리산 설산 산행. / 올 2월 동문들과 함께 민주지산에서.
- 산에만 다닌다고 암이 완치되는 건 아니다.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매달 둘째 주 월∼금요일엔 병원에 들어가 고된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웬만한 힘든 일은 견뎠지만 무너질 정도의 고통이 뒤따랐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살아온 인생이 아까워서라도 극복해야 했다. 더구나 그의 곁엔 산이 있었다. 산은 고통을 잊게 해줬고 즐거움을 주었다.
항암 치료 중 매일 구덕산 올라
항암 치료 중 매일 새벽 병원에서 몰래 나와 구덕산으로 향했다. 주체하기 힘들었지만 의지로 버텼다.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산에 오르면서 대신 막걸리를 마셨다. 술은 원래 두주불사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정도였다. 구덕산 중턱에서 파는 막걸리로 허기를 채웠다. 그에겐 막걸리가 일종의 링거였다. 그 링거는 순간을 유지하는 힘이었고, 산행은 항암 치료를 견디는 힘이었다. 또한 체내의 독성 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 산행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면 오히려 몸이 괴로웠다. 다음 항암 치료 때까지도 힘들었다. 차라리 등산이 그에게 훨씬 편안함을 주었다. 매일 구덕산 산행을 하면서 금요일 퇴원하자마자 바로 장거리 산행을 떠났다. 무박 2일로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 지리산 종주, 완도 종주를 감행했다. 완도 종주 땐 간호사가 허락도 없이 무리한 운동을 했다며 닦달하기도 했다. 웬만한 강골 아니면 꿈도 못 꿀 강행군이었다. 그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과 해병대 장교로서의 기질도 한몫했다.
그는 “음식은 가려 먹지 않고, 먹고 싶은 것 그대로 먹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정신적인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렸다. “암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암을 친구처럼 안고 친하게 지내면 극복된다. 물론 철저한 운동과 소식(小食)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칙이다. 의사가 하는 말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다.
6개월 항암 치료가 끝난 뒤에도 산행을 계속했다. 새벽 금련산 등산은 필수였고,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산을 찾았다. 석남사∼가지산 종주를 한 뒤 운문산을 거쳐 석고사까지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보통 산에 한번 가면 7시간 이상 타야 직성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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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2002년 수술하기 전 건강했을 당시 속리산 천황봉에 올라. ② 2003년 2월 23일 수술 14일 만에 복대를 차고 진해 웅산까지 산행했다. ③ 2003년 항암 치료 중 무박으로 설악산 장수대에서 서북능선으로 종주하면서.
- 그 이하면 몸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 결과 부산 근교산은 손바닥 보듯 훤하다. 근교만 다닌 건 아니다. 백두대간, 낙동정맥, 낙남정맥 종주도 끝냈다. 호남정맥은 종주 중이다. 앞으로 1차 목표는 1대간 9정맥 완주다.
이렇듯 산행에 열중한 결과 지난해 8월 위암 97% 완쾌 판정을 받았다. 암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완치는 없다. 한번 걸린 암은 신체 어느 부위에서 불시에 불거질지 아무도 모른다. 신도 모를 것이다. 다만 자신의 몸은 안다.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라는 말이다.
그는 순전히 산으로 자기 관리를 했다. 입원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산에 너무 열심히 다니다 보니, 담당 의사가 그에게 감동받아 산에 다니게 됐다고 한다.
꾸준한 산행은 지난해 10월 부산 5산 종주 출전으로 이어졌다. 해운대 동백섬 앞에서 출발해서 장산~신성산~철마산~금정산~백양산으로 연결되는 65㎞를 거뜬히 완주했다. 자신감이 붙었다. 마라톤보다 더 긴 거리를 완주하고 나서 욕심도 생겼다. 국토 종단 목표를 세우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벽엔 금련산을 2시간 30분 가량 산행하고, 출근해서는 일 없는 시간을 골라 2시간 가량 달리기로 체력을 다졌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2월 20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서 하프 코스를 뛰었다.
기록은 별 의미가 없다. 체력 유지를 위해서다. 4월엔 풀코스에 도전할 계획이다.
내년 히말라야 도전 위해 마라톤도 입문
꾸준한 산행과 달리기로 남성 기능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더 흐뭇해 했다. 60세 넘어 정말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2006년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망월산악회에서 매년 한 명을 선정해 ‘젊은 청춘상’을 준다. 비교적 젊게 보이는 사람을 선별해서 앞에 10명 가량 쭉 세워 놓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뽑는다. 따로 심사위원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감정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 암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그가 이 상을 받았다. 보통 수술하면 몇 년은 순식간에 늙는 환자와 달리 그는 지속적인 산행으로 오히려 몇 년 더 젊어 보였다. 산에서 건강뿐만 아니라 젊음까지 덤으로 얻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죠. 수술하기 전 약 1년 이상 암과 같이 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백두대간 종주에 처음 참가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물이 엄청 먹히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물 많이 마시면 좋다’고들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죠. 또 쉽게 한기를 느꼈어요. 추운가 보다 하고 지나쳤죠. 술 마신 다음날도 엄청 고통스러웠어요.
위염 약으로 버텼죠. 몇 가지 자각 증세가 있었지만 너무 무심했죠. 기본 체력으로 산에 열심히 다녔으니 무사히 극복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세상에 있을 겁니다. 산행은 내 삶의 존재 확인이고, 암 완쾌의 원동력입니다.”
수술 전까지 줄담배를 피우던 그였지만 담배를 끊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인턴에게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피운다”고 두 개비를 얻어 피운 게 끝이었다.
그의 앞으로 목표도 산이다. 돈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많이 벌지는 않았지만 애들 다 키우고 노후 자금 조금 있으면 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올 여름엔 중국 곤륜산, 철차산으로 해외 트레킹 다녀올 계획이다. 그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내년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해서다. 새 삶을 준 산인 만큼 세계 최고의 산에 가서 더 깊고, 넓은 산을 느끼고 싶어서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짜릿한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살아 있다는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존재의 가치를 확인합니다. 곧이어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그게 바로 산이 아니겠습니까?”
/ 글 박정원 차장 jungwon@chosun.com
/ 사진 홍주환씨 제공
- 산행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면 오히려 몸이 괴로웠다. 다음 항암 치료 때까지도 힘들었다. 차라리 등산이 그에게 훨씬 편안함을 주었다. 매일 구덕산 산행을 하면서 금요일 퇴원하자마자 바로 장거리 산행을 떠났다. 무박 2일로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 지리산 종주, 완도 종주를 감행했다. 완도 종주 땐 간호사가 허락도 없이 무리한 운동을 했다며 닦달하기도 했다. 웬만한 강골 아니면 꿈도 못 꿀 강행군이었다. 그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과 해병대 장교로서의 기질도 한몫했다.
첫댓글 산은 인간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산을 잘 보존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텐데...본디 인간의 습성이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것이라.. 산행하면서 느끼는 산의 앓는 소리..안타까운 마음 끝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