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난 사환 출신이지만… 명문高 만들고 싶어"
(출처; 조선일보, 익산=김창곤 기자: 2010.08.16)
"보내고 싶은 학교 만들자"… 자율고 지정받은 다음 날 사재 10억원 추가로 출연
"교육감 개인철학 때문에 하향평준화 계속은 곤란"
"자녀를 보내주시면 내 새끼처럼, 손자처럼 책임지겠습니다.
제 인생을 걸고, 학생이 오고 싶고 학부모가 보내고 싶은 학교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올해 일흔다섯인
전북 익산 남성학원 손태희 이사장이, 남성고에 대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자율고 지정 취소 이후 처음으로 2010.08.15일 오후 서울 집에서 기자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남성학원 말고도 5개 기업을 경영하는 그는
15살 때 남성중·고 사환으로 이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6·25 때 황해도 연백에서 단신으로 피란 왔다가
학교 종을 치고 교무실 청소와 심부름을 하면서 야간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남성고를 졸업할 때까지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급우들이 한 숟가락씩 덜어주는 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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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태희 남성학원 이사장이 남성고 교정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포즈를 취했다. 작년 6월 졸업사진을 찍던 학생들이 때맞춰 지나가는 손 이사장을 부르자 촬영에 응했다고 한다. /남성고 제공
대학도 고학으로 졸업한 그는
영화사 직원과 서울 허리우드 극장 상무 등으로 일하며 모은 돈을
금속을 녹이는 촉매제인 안티몬 제조 업체를 설립하는 데 투자했다.
그가 세운 일성안티몬은 1980년대 중반 세계 안티몬 시장의 13%를 점유, 정부로부터 훈장과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동문들 권유로 재정난에 빠진 모교 법인을 1989년 인수하면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돌이켜 은혜를 갚고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법인 인수 후 자동차 부품제조업 등에 진출하면서 생긴 이윤 400억원 이상을 산하 남성중·고 및 남성여중·고에 투자했다고 한다.
익산의 고교가 평준화되기 전 남성고 재학생의 20% 이상이 각종 장학금을 받았고 지금도 이 학교 장학생 비율이 10%에 이른다. 28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와 과학관·예술관도 짓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졸업생들을 서울 자신의 집에서 거두면서 재수 비용 일체를 대 의대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15년째 매년 중국과 러시아 동포 중·고생 4명씩을 국내 중·고·대학에 진학시켜 8000만원 안팎씩의 학비와 체재비를 전하며 이산의 아픔을 삼킨다고 했다.
이 같은 교육 투자에 남성고 교사들은 열의로 보답했다.
남성고는 2000년 익산에 평준화가 시행되면서 '전통 명문'으로서의 선발권은 사라졌지만 '60점 학생을 100점으로 만들겠다'며 '맞춤형 수준별 이동수업'과 '선택형 방과 후 이동학습' 등에 앞장서왔다.
남성고는 2000~2009년 10년 사이 서울대 진학생만 117명으로 호남권 고교 중 선두였다.
교과부는 2005~2009년 5년 연속으로 남성고를 '수능성적 향상 우수학교'로 평가했다.
2010년06월 7일 남성고 자율고 지정은 손 이사장과 교사, 동문들의 8년 소망이었다.
손 이사장은 남성고가 자율고로 지정받은 다음 날 사재 10억원을 출연, 약속대로 재단 예치금 71억4000만원을 채웠다. 그는 "학생·학부모 수요에 맞춰 하향 평준화를 보완하고 글로벌 인재를 기르기 위해 법 절차를 따랐는데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불확실하냐"고 토로했다.
익산의 26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익산발전시민대책위'는 매년 익산의 인구 3000여명이 줄고 있는 이유 중 하나를 '교육 낙후'로 들며,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자율고 취소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귀족고교 탄생'과 '고교 서열화' 등을 주장하는 전교조 등에 대해 "꼴찌로 전락한 전북 교육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기부에 박수를 보내진 못할망정 기득권 운운하며 매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김 교육감은 지난 .08.13일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가 법정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자율고를 할 수 없도록 교육감으로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발언했다.
두 고교 및 여러 동문들은 "교육감의 오기(傲氣)로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전북 교육의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겠다는 심산"이라고 해석했다.
두 고교는 김 교육감이 '권한'으로 내세울 '압박 수단'들에 대해 짚어보면서
법원 가처분 결정 이후 이어질 수 있는 제2, 제3의 법정다툼에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