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도향/“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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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이 웬수야” 어머니 말씀 속썩이는 자식사랑 역설적 표현 우리는 흔히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에야 그리워하며 서로의 필요를 느낀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의 말이나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은 거의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옛날 아버지들은 부자지간에 밥상을 대하고 식사도중 대화를 하게 될 때에도 될 수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눈을 내리깔고 얘기를 할 정도로 애정표현이 부족했다. 그러나 속으로 갖고 있는 사랑의 크기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자식 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 같은 갖가지 일들이 다 벌어진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에 관한 것 중에 흔히 부모 자식간은 전생에 원수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동안 어머니 속을 썩인 일들이 너무나 생생히 떠오르고 후회스럽다. 어려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으셨던 어머님의 마음을 살펴볼 때 그것은 지옥과 같은 고통이었으리라. 이번 생에 나로 인해 그토록 고통 속에 사시다 가셨는가. 자식들로 인해 겪는 이 마음의 고통은 또 내 자식들과 나의 전생 관계를 가늠케 한다. 물론 서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이다. 자식들이 조금만 아파도 나의 아픔과 같고 조금만 슬퍼도 나의 슬픔과 같고 내 자신이 생활 속에서 겪는 다른 어떤 고통보다도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어머님은 내가 조금만 속을 썩여도 “아휴, 이 웬수!” 소리를 자주 하셨다. 잘 자라던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본다.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꽝 박아 버리고 떠나는 그 자식들은 무언가? 나머지 생애의 부모님의 생활은 얼마나 비통할까.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보실 때마다 잔소리를 하셨다. “수염 좀 깎아라, 한복이 너무 영감 같다” 또는 “돈을 아껴 써라, 남들처럼 돈 좀 많이 벌어라.” “나훈아, 조용필 같이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히트 좀 해라.” 50년 이상 우리 어머니가 내게 하셨던 잔소리다. 물론 젊었을 때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내용의 잔소리에 짜증도 내고, 반발도 많이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많은 잔소리가 그리도 달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말씀의 내용이나 표정이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속에는 눈물 날 만큼의 진한 사랑이 베어있는 것이다. 안사람의 잔소리나 자식들의 얘기에서도 그 마음을 들으려고 노력하니 모든 것이 진한 사랑일 뿐이다. 실제로 사랑이 크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웬수’ 소리를 연발하는 것은 혹시 전생에 원수 관계가 현재의 잠재의식으로 연결되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불교에서 말하는 끝없는 인연으로 반복되고 말 것인가. 나의 깨달음 속에 한 가지 방법은 역시 사랑으로밖엔 서로의 원수 관계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한 사랑이 담겨진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피차 함께 살고 있는 생명체의 진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서암스님의 말씀처럼 항상 금방 만난 사람처럼 나의 가족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가수 김도향 [불교신문 2196호/ 1월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