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이번 오지학교 탐사대를 친분이 있는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서 가게 되었다. 자세하게 말하면 김준섭이라는 친구의 아버지가 이번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의 대장인 김영식대장님이신데 준섭이의 어머님이 나의 어머니에게 나도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추천을 해주신것이다. 처음에는 솔직하게 많은 고민을 했다. 매번 방학마다 많은 캠프들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것들이 다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는 남지 못해서 이번 방학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심지어 이번 캠프는 해외로 나가서 힘들게 트레킹을 하는 것이라서 번거로운 것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어린이집 친구였던 준섭이와 준석이가 함께 가는 것이라서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고 1,2년 뒤에는 바빠져서 이런 것을 할 기회도 더 적어질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 자신을 이겨보자라는 생각과 도전정신이 그때 많이 생겼던 것 같다. 2학기 기말고사 3주 전쯤에 탐사대 1차모임을 가졌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였는데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가서 다양한 활동들과 산악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 등산이란 것이 처음으로 되게 흥미롭게 느껴졌던 때였다. 그 다음날은 충주에서 차로 40분정도 거리에 있는 산을 등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의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 시간 이후에 멀게만 느껴졌던 등산을 취미로 가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몇 주 뒤에 2차 모임을 가졌다. 그 때는 히말라야에 갈 때 필요한 준비물 등을 나눠주는 시간이였다. 거기서 전 오지학교 탐사대에 참가하였던 학생들과의 만남도 가졌다. 그때는 솔직히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없었고 그냥 빨리 끝났으면 하는 나쁜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네팔에 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에 부모님과 헤어진 뒤 단체버스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그때의 기분은 2차 모임때와는 다르게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해외에 나갈 기회도 이제는 많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10대의 마지막 해외여행일수도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기분은 설레었다. 비행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적 편하게 갔던 것 같다. 방콕에서 내려서 약 10시간을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다시 네팔로 갔다. 네팔에서 내려서 카트만두 공항에서 대장님에게 대원들이 단체로 조금 혼나기도 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네팔에서 가장 좋다는 YAK & YETI 호텔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좋긴 좋았다. 그 날 저녁에는 네팔 전통식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맛이 아주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네팔인들도 한국의 김치가 맛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째날이 되었다. 우리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우리가 산악등반을 할 포카라로 전세기를 타고 이동을 했다. 이제 산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점심을 라면을 먹었다. 그 뒤에 쭉 산악을 했다. 너무나 힘들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5시정도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에도 산악을 하였다. 산악을 하는데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자신이 해낸다는 것을 엄마께 보여드리고 싶다고도 생각했고 내가 네팔에 가기 전에 병원에 입원하신 우리 할머니 걱정도 들었다. 물론 다행히 지금은 할머니가 괜찮아지셨다. 점심식사를 하는 곳에서 처음으로 설사를 하였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기 약 1시간 전부터 배가 너무 아파서 뒤에서 걷기로 하였다. 설사가 엄청나게 심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세균치사제인가 뭔가 하는 약을 먹었다. 어떤 사람은 이곳의 물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설사를 한다고 하시고 대장님은 벌써 고산병에 걸린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푼힐전망대에 가게 되었다. 처음엔 상태가 좋은 것 같아서 그대로 갔는데 나중에 체력이 너무나도 부족해졌다. 내 생각에는 어제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너무 많이 해서 몸에 힘이 너무나도 없어서 그러한 것 같았다. 오르면서 푼힐전망대는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너무나도 힘들게 푼힐전망대에 올라서 사진을 조금 찍고 쉰 뒤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은 뒤에 본격적인 그날의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한 뒤에 얼마 가지 않아서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내 조의 조장인 황영현형이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나는 쉬는 시간에 그 형에게 음료수를 사주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배가 울렁거려서 뒤에서 대장님과 함께 가기로 하였다. 점심 뒤의 산행은 내리막길이 많아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쭉 아프지 않고 며칠간 산행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도반이라는 곳에서 낙오자가 처음으로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낙오자는 5명으로 조원준, 이은서, 이규원, 안치홍, 그리고 황영현이었다. 영현이형은 우리 조를 위해서 구호도 많이 외쳐주시고 우리가 힘들어할 때 힘내라고도 많이 해주던 형인데 특히 내가 많이 감사해했다. 그런데 못가게 되어서 너무나도 나는 아쉬움이 컸다. 그 형은 우리 조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날이 지나고 우리가 정상으로 둔 ABC의 바로 밑인 MBC에 갔다. 정상을 바로 한 단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나만의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졌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혼자만의 공간에서 하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막상 해보니 울컥했다. 나의 지난 15년의 시간이 드러나는 듯했다. 그런데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20분정도만 하고 중단하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그때는 아쉬웠다. 드디어 다음날 새벽, 정상으로 가기 위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새벽이어서 별이 너무나도 빛났다. 별을 그렇게 많이 본 적도 없었다.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대장님에게 대원들이 단체로 크게 야단을 맞았다. 정상에서 솔직히 드는 생각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정해놓고 간 곳이지만 위에서 아래를 내려볼 수 있어야 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다. 차라리 고도가 ABC보다 낮지만 위에서 아래를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올라오는 산행은 다 했다. 하산하는 것만이 남았다. 쭉 하산을 하다가 며칠 뒤에 네팔에 와서 처음으로 샤워를 하였다. 살면서 그렇게 머리를 안감은 적도 없을 것이다. 샤워하는 시설은 솔직히 말하면 많이 더러웠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비스킷과자와 음료수로 룸메이트인 윤태현과 같이 야식을 즐겼다. 그 다음날에는 모든 산행을 오전에 2시간만에 마치고 오지학교인 바라부리학교로 이동을 하였다. 버스를 아주 길게 탔다. 옆에 앉으신 미덕중 강주신선생님과도 예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입시에 관한 예기였다. 바라부리학교에 도착했다. 춤연습도 조금 하고 아이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였다. 영어캠프가 따로 필요없다고 느꼈다. 조금씩 영어로 통하니까 신기했다. 그날 밤은 아이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네팔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음날이 되어서 바라부리학교와의 봉사시간을 가졌고 그것이 끝나고 바라부리를 떠났다. 이제는 포카라 시내의 좋은 호텔로 갔다. 저녁은 분위기 좋은 야외식당에서 셀러드바를 먹었다. 먹을 만은 했다. 그 다음날은 기다리던 조별 자유시간이다. 물론 우리가 이곳을 잘 아는것이 아니라서 시간을 아주 유용하게는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날의 저녁은 유명한 피자집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그 다음날은 포카라와 이별하고 카트만두로 갔다. 카트만두의 왔던 호텔에 머물었다. 점심은 닭다리살 스테이크로 먹고 카트만두 시내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거기서 지금까지 사야 됬었는데 사지 못했던 것들을 대부분 다 샀다. 저녁은 한인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다음날은 탐사대의 마지막 일정인 바니빌라스학교의 봉사활동이다. 그것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마쳣다. 그리고 문화체험을 했다. 힌두교사원인 파슈파티낫트사원에 갔는데 그곳이 힌두교를 믿는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을 사원이라는 곳이었다. 사원이 숲과 가까워서 원숭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체를 화장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불교사원도 한 곳 보고 저녁을 먹었다. 어제 갔던 곳인 서울아리랑이라는 한인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다음날에는 한국으로 가기 위한 비행길에 올랐다. 방콕을 가는데 기분은 홀가분하기도 했고 무엇인가 무척이나 짠했다. 방콕에서 3시간정도 있었다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갔다. 감격스러웠다. 이것을 마쳤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오기 전에는 빨리 이것이 끝나면 좋겠다는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을 한 나 자신이 후회스럽다.
첫댓글 효준아~ 잘 지내지, 진중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의 효준이가 타다파니까지 스스로 걷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너의 길이 그렇게 펼쳐기고 탄탄해지길 바란다. 수고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