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통풍을 이겨내는 사람들 모임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신비의 약술과 명약 스크랩 조선의 3대 명주 죽력고(竹瀝膏) 이강주(梨薑酒) 감홍로(甘紅露)
인덕스님 추천 0 조회 20 13.09.30 17: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선의 3대 명주

 

 

- 죽력고(竹瀝膏)



서울로 가는 죽력고

 서울로 압송되는 녹두장군의 타는 눈빛을 담은 시 한 편이 있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 울며 우지 않으며 가는 / 우리 봉준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일부이다.

드넓은 전라도 벌판을 건너 서울로 가는 전봉준 장군은 다리를 다쳐 가마를 타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다리뿐만 아니라 체포 당시 매를 맞아 심한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서울로 끌려가며 죽력고를 찾았다고 한다. 죽력은 한의학에서 타박상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한다. 부상이 심했던 녹두장군은 죽력고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혁명의 기개를 조금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녹두장군과의 일화가 있는 죽력고는 오랫동안 명맥을 확인할 수 없는 술이었다.

 예로부터 김치를 담아먹는 것처럼 술도 집에서 빚어 명절을 지내고 손님을 접대하였다. 근대적인 주세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민족의 가정에는 전래의 전통가양주들이 수백수천가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세법 도입이후 그 많은 가양주는 밀주로 몰려 긴 세월을 음지에서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통 가양주가 사라졌다.

 죽력고도 그렇게 사라진 술 가운데 하나였다.

죽력은 대나무즙이다. 죽력고는 죽력에 솔잎, 창포 등을 발효주와 함께 증류하여 만드는 높은 도수의 증류주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전라도 지역에서 죽력고는 많이 빚어졌고 전국적인 명주로 이름을 얻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감홍로, 이강주와 함께 조선의 3대 명주로 죽력고를 꼽았다.



죽력고를 찾아서

 죽력고는 문헌에만 등장하는 술이었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은 물론이고 전라도 고을마다 수소문해도 죽력고를 찾을 수 없었다. 수십 년간 죽력을 내려온 노인들에게 죽력고를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당시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죽력고가 없다면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행방을 찾지 못했던 죽력고가 전북 정읍 태인의 양조장에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길로 죽력고를 빚는 송명섭씨를 만나러 태인에 갔었다.

 송명섭씨의 외할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한약방에서는 약으로 술을 빚기도 하였는데 죽력고는 물론이고 복분자주, 호마주 등이 전해 내려왔다. 이런 약술 빚는 법이 송명섭씨의 어머니에게 전해지고 양조장집으로 시집온 어머니에 의해서 송명섭씨에게 전수된 것이다. 오랫동안 밀주단속을 피해 한약방에서 약으로 그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죽력고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송명섭씨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결국 2003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상품화된 죽력고가 우리 곁으로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죽력고는 연노란 빛깔이 고운 술이다. 죽력의 아릿한 맛과 높은 도수의 증류주가 주는 강렬함이 매우 인상 깊다.

 죽력고를 빚는 일은 무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술을 빚기 위해서는 먼저 죽력을 준비해야 한다. 죽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나무를 가득 채운 항아리에 3일 밤낮으로 불을 지펴 대나무의 진액을 뽑아낸다.

죽력과 함께 필요한 것이 잘 발효된 청주이다. 청주와 죽력, 솔잎, 창포 등을 소줏고리에 넣고 증류를 시켜서 죽력고를 만들어낸다. 송명섭씨는 지금도 현대화된 증류기를 사용하지 않고 조상들이 사용하던 소주 고리를 이용하여 죽력고를 내리고 있다.

청주를 만드는데도 재래누룩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전래의 방식으로 빚어지는 죽력고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관광자원으로도 육성

 눈부신 5월에 전통주 만들기 동호회 회원들이 송명섭씨 댁에 다녀왔다.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송명섭씨와 죽력고를 마시며 전통주 부흥에 대해 밤새 의견을 나누었다. 또한 송명섭씨와 함께 우리술을 함께 빚는 시간도 마련하였다.

죽력고가 있는 태인은 피향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는 곳이다. 술과 지역의 관광자원을 잇는 전통술기행은 우리술을 활성화할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전통주에는 다섯 가지 맛이 있다고 한다. 맛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의 풍물과 음식, 문화를 찾아 우리술이 다양한 영역과 결합을 하여 오감으로 느끼는 문화관광자원으로도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죽력고 양조장 : 063-534-4018

 

죽력고를 만드는 송명섭 사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재를 마치기 전에 정말 맛있고 뜻있는 한국 술을 하나 소개해야겠다고 벼르던 차에, 우연히 지인을 통해 '죽력고(竹瀝膏)'라는 술을 마셔볼 기회를 얻었다. 전주 이강고(梨薑膏), 평양 감홍로(甘紅露)와 함께 육당 최남선이 뽑은 조선 3대 명주라는데, 그중 어느 것 하나 아직 맛본 것이 없으니 술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사실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죽력고는 옅은 노란색이 감도는 것이 가을 낮의 청량한 햇살을 연상케 했다. 술잔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가볍지 않은 질감은 이 술이 제법 독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맵기도 하고 달기도 한 향기에 이끌린 손은 무의식적으로 잔을 입가로 안내했다. 몇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필자는 증류주를 마실 때 목구멍 안으로 던져 넣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위장에 안착한 술의 기운이 식도를 타고 돌아나올 때의 향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입안에 들어온 죽력고는 단번에 내려가길 거부했다. 아니, 필자의 혀가 죽력고를 더 잡아두고 싶어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알코올 도수 32도의 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청량함과 감칠맛에, 술을 혀 위에 놓고 이리저리 굴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general_image

ⓒ탁재형 제공 필자 탁재형 PD (아래 왼쪽)와 죽력고를 만드는 송명섭 장인.

죽력고는 쉽게 말해 죽력(竹瀝)을 첨가해 증류한 소주이다. 죽력이라는 것은 푸른 대(靑竹)의 줄기를 숯불이나 장작불에 쪼여 흘러나오는 진액을 가리킨다. 죽력 외에도 생강, 석창포, 계피, 솔잎과 죽엽 등의 재료가 사용된다고 하니, 단순한 술이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 말기의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쓴 < 오하기문(梧下記聞) > 에 보면 의병 활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된 녹두장군 전봉준이 모진 고문을 당해 몸져누웠는데, 죽력고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여 서울로 압송될 때는 수레에 꼿꼿이 앉아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고관대작들이여, 그대들을 위한 죽력고를 만드느라 대나무를 온통 베어내는 바람에 숲이 없어질 정도니 아무리 죽력고가 좋다 한들 좀 자제하라'는 당부를 남겼다고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송명섭 장인과 연락이 닿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죽력고의 비법을 되살려낸 장인은 증류시설을 증축하는 공사로 바쁜 가운데서도 흔쾌히 방문을 허락해주었다.








general_image

ⓒ탁재형 제공 죽력고는 대나무 줄기를 불에 쪼여 흘러나오는 진액을 넣어서 만든다(위).

이 얼마나 향기로운 곡식인가

"여기서 서울까지 대리운전을 맡기면 얼매나 나오려나?"

직접 차를 운전해 전북 태인의 양조장을 찾은 필자와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장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아니, 술 이약(이야기)을 하믄서 술을 안 마셔부는 것도 이상허지 않으요. 긍께 나가 절반을 부담헐 테니 대리운전을 해서 서울 올라가는 것으로 허고, 지금부터 술 마셔붑시다."

장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먼저 맛본 것은 죽력고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술덧(원재료가 되는 술)인 소주였다. 백미를 20일간 발효시킨 청주를 끓여 만든 소주는, 단언컨대 필자가 지금껏 마셔본 소주 중 가장 맛이 좋았다! 수백 개의 수정 구슬이 은쟁반에 떨어지는 것 같은 짜릿함과 청량함, 그리고 쌀이 얼마나 향기로운 곡식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화려한 향기는 소주에 대한 필자의 인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원래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술을 가지고 만들어야 제대로 된 죽력고가 나오요. 여름엔 맛이 좀 덜해서 죽력고를 안 허는디, 마침 거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맛이나 보소."

장인은 병에 담기 전 여과 과정에 있는 죽력고를 붉은 바가지에(!) 담아 내밀었다. 허름한 플라스틱 바가지. 하지만 바가지를 내미는 손은 그 술을 직접 빚어낸 손이다.

"서울에서 마셔본 것보다 훨씬 맛이 좋은데요."

"사람의 정취를 느끼며 먹으니 당연한 것이요. 술을 만들 때도 나의 기원이 들어가야 비로소 살아 있는 술이 되거든."



general_image

ⓒ탁재형 제공 이 외에도 생강, 석창포, 계피, 솔잎 등의 재료가 사용된다(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

 

[전통주 기행](11)조선3대 명주-전주 이강주
전주 이강주(梨薑酒)는 문화재급 술이다. 술을 빚는 사람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돼 있고 농림부 전통식품 제조 명인 9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강주는 조선시대 세시풍속집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제조기술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때문에 호산춘, 죽력고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전통주 중 백미다. 최근에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국가 주요행사에 대표주로 지정된 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뒤끝 좋은 맑은 술

호남의 넓은 들판에서 나오는 백미와 전주 배, 봉동 생강 등 지역 특산품을 넣어 2차 증류까지 거쳐 만드는 이강주는 부드러움과 알싸함이 배어있는 술이다. 배의 청정미와 생강의 톡 쏘는 향, 울금·계피가 연출해 내는 연노랑 빛깔은 결코 흔하지 않으면서 독보적인 느낌으로 애주가에게 다가선다.

이강주를 대표하는 말은 “뒤가 맑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꽤 마셔도 깨끗하게 깬다는 게 애주가의 품평이다. 그 노하우는 어디에 있을까. 이강주 제조명인인 조정형씨는 그 비결을 ‘울금’에서 찾는다. 이강주란 이름이 배(梨)와 생강(薑)에서 비롯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재료는 이 두가지이지만 뒤를 맑게 하는 ‘울금’이 있기에 대표명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술에 울금을 쓰는 것은 드문데 중국 황실서 썼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며 조선시대에 수라간에서 음식재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울금은 남도 것을 최고로 치는데 전주서 임금님에게 진상했다. 이 약재는 몸의 정신안정제 역할을 한다. 습관성 없는 안정제는 울금뿐이었으나 냄새가 독해 상용되지 못했다. 결국 이강주의 진가는 ‘울금 노하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대조부터 빚어져

명인 조씨의 6대조는 조선시대 완주부사를 지냈다. 당시 행정은 집에서 이뤄지기 일쑤였는데 늘 민원인 등 손님이 많다보니 술과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술은 6가지 정도를 빚어 항상 대기시켜 놓았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있던 술이 이강주였다. 맛이 좋은 데다 저장성 또한 탁월해 귀빈접대용으로 사용됐다.

이렇게 가양주로 전승돼 오던 이강주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밀주로 전락했다. 70년동안 사장돼 왔던 이 술은 후손인 조 명인에 의해 복원돼 대표 전통주로 부활했다. 지금은 양산체제를 갖추고 백화점에만 납품되고 있다. 대량생산도 가능하지만 백화점에 공급할 만큼만 생산한다. 문화재 명주답게 욕심내지 말자는 명인의 뜻이 담겨있다.

▲이강주 담그는 법

1)원료준비=우선 햇밀을 거칠다 싶게 빻아 물로 고루 버무려 포로 덮은 후 곡자틀에 넣어 단단하게 형을 뜬다. 곡자는 보습이 잘되는 곳에 놓아 실온 25도 정도에서 최고 온도가 45도를 넘지 않도록 보관한다. 10일 정도 지나면 온도가 내려간다. 이때 30도 실온에서 7일 정도 보관하고 건조한 곳에서 14일을 더 보관한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약 2개월 정도 저장하면 이강주에 쓸 수 있는 좋은 누룩이 나온다. 여기에 배와 생강, 한약재를 물에 잘 씻은 후 다듬는다. 꿀도 준비한다.

2)1차담금=백미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은 후 식힌다. 밥이 완전히 식으면 이 고두밥과 누륵을 섞어 술을 담근다.

3)소주내리기=담근 술을 1주일 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술을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서 냉각수를 교환해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콜도수가 떨어진다.

4)주원료의 침출 및 숙성=약 35도로 내린 전통소주에 이강주의 주원료인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다. 마지막으로 꿀을 가미한 후 숙성시킨다.

이강주의 안주로는 무엇보다 육류가 그만이다.

그 가운데서도 육회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전주|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술독풀어주는 속풀이 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리와 음식, 그리고 술이 한데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한판’이 된다. 소리판과 음식판·술판하여 삼판이니 흥이 나고 신명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전주를 예향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전주 이강주는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으로 코와 입을 즐겁게 해주고, 담황색의 맑은 빛깔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여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토속주로 명성이 높다.

이미 조선 후기 고종때 ‘한·미통상회담의 대표들이 이강주를 마셨다’는 기록과 함께 이강주의 부드러운 향취와 독특한 맛은 신선과 어울린다는 칭송을 받아왔다.

이강주의 특징은 많다. 술 빛깔을 맑게 해줌과 동시에 자꾸 입맛을 당기게 하는 청량감의 배를 비롯해 서서히 취하게 하여 위의 자극을 해소시켜주는 생강의 건위작용, 울금의 피로회복과 중화작용, 계피의 매콤한 맛과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신체의 대사기능을 상승시켜준다.

“술독을 풀어준다”는 효능은 이강주의 가장 큰 특징인데 여기에 벌꿀이 가미돼 더욱 조화를 이뤄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주게 된다.

이 때문에 이강주는 ‘품격이 있는 술’이라는 칭송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명주 가운데 하나로 사대부와 부유층의 가양주로 뿌리를 내리게 됐다.

우리 고유의 민족시(현대시조)의 선구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이강주 명인 조정형씨의 외숙부로 그가 이강주를 얼마나 즐겼던지 체면불구하고 서울서 전주까지 사돈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얘기는 너무 유명하다.

이강주는 백미로 지은 고두밥과 토종 밀누룩, 물을 2대 1.5대 4의 비율로 밑술을 빚고, 여기에 다시 보리쌀로 지은 고두밥과 누룩, 물을 5대 1.5대 6의 비율로 덧술을 하여 발효시킨 뒤, 술이 익으면 증류하여 보리소주를 얻는데, 이 소주에 전주 인근의 특산품으로 명성이 높은 이서 배와 봉동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어 오랜 기간 숙성시키는 까닭에 일절 숙취나 부작용이 없다.

특히 덧술로 넣는 보리는 주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소주의 과음에서 오는 건강의 폐해를 최대한으로 해소시켜준다. 이 때문에 이강주는 소위 ‘뒤풀이 술’로 더욱 이름을 얻었다.

〈박록담·한국전통주연구소장〉

 

이강고는 전라도 전주가 명산지라고도 하고, 황해도 봉산이 그 본거지로 유명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3대 명주, 이강고

 

좋은 술이란 무엇보다 ‘자꾸 마시고 싶다’거나 ‘자신도 모르게 입에 가져가게 되는’ 술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다’거나 ‘환상적이다’는 생각을 주어야 한다. 특히 술 빛깔이 화려한 황금색이라면 더욱 매료될 것이다. 둘째는 진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하여 뇌로 하여금 입안에 침을 돌게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술 향기는 특히 과일향기나 꽃향기를 우선으로 하는데, 이 두 가지 향기가 동시에 느껴지면 더욱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는 시각과 후각을 통한 기대감에 부응하여, 술이 입술에 닿았을 때의 감각으로, 농밀한 질감과 함께 달고 부드러운 ‘꿀맛’을 연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입에 머금었을 때 달고 시고 맵고 쓰고 떫은 다섯 가지 맛에, 시원한 맛 또는 상쾌한 맛을 다 느낄 수 있어 ‘마시고 싶다’거나 ‘맛있다’는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마실 때나 마시고 났을 때 ‘즐겁다’거나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가능한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명주의 조건이다. 소위 좋은 술만이 줄 수 있는 ‘향취’요 ‘흥취’이며, 또한 ‘아취’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명주를 대하면 누구든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하나가 ‘이강고’라는 술이다.

 

 

 

 

 

===================================================================

 

최남선이 조선의 3대 명주 중 하나로 뽑은 관서감홍로. 곱게 물든 것 같은 붉은 색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아끼던 술

‘명주삼절(名酒三絶)’이란 말이 있다. 술의 향기와 맛,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주삼절’ 중 특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술인 관서(關西) 지방의 감홍로(甘紅露)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서감홍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주단속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던 술인데, 한말의 학자이자 시인

이기도 했던 육당 최남선에 의해 먼저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에 다시 조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남선은 그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명주’ 가운데 관서감홍로를 으뜸으로 꼽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를 다음으로 소개하면서, 제조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관서감홍로는 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관서지방에서 생산되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띄는

이슬 같은 술(露)’이라는 뜻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특산명주로 알려져 왔던 까닭에 ‘관서감홍

로’ 또는 ‘평양감홍로’로도 불려져 오게 되었다. 관서감홍로는 조선시대 중기 1787년의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고사십이집]을 비롯 1827년의 [임원십육지], 1849년의 [동국세시기] 등의 여러 옛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문헌에 “관서감홍로는 세 번 고아서 만든 소주를 이용하여 만든 만큼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술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서감홍로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구전해온다. 과거 조선시대에 외직(外職)의 지방 관리로서 최고의 선망

 관직은 평양감사였다고 한다. 때문에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면 평양감사가 되는 것을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를

 보장받는 길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기간 그 직에 있게 되면 승진이나 보직 순환의 예에 따라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중앙부처에서 어느 평양감사를 내직(內職)으로 승차시켜 불러들였는데, 정작 당사자인 평양감사는

‘내직승차는 감사하나 계속해서 평양감사로 봉직(奉職)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감홍로를 못 잊어 평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평양감사도 저 싫다 하면 하는 수 없다’는 말이 생겨

났다는 속담도 있고 보면, 감홍로의 맛을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하다고 하겠다. 관서감홍로의

향기와 맛이 과연 어떠하였기에 권세도 부귀영화도 마다하였을까?

 

한편 관서감홍로 외에도 조선시대 관리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던 또 다른 술로 영광지방의 강하주(薑荷酒)가 있다.

 영광지방의 강하주에 얽힌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광고을 현감이 내직으로 승차해 홍문관으로 발령을 받았

는데도, 내직 승차를 마다하고 ‘이 고을 현감으로 봉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연유를 물으니,

‘영광고을의 강하주와 참조기가 맛이 좋은데 승차해 한양으로 가게 되면, 더 이상 강하주와 조기를 맛볼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간구했던 대망(大望)은, 과거에 등과해 입신양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홍문관의 관원이 되는

것은 학문하는 선비들 사이에서는 명성과 함께 출세를 보장받는 요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도 홍문관 관원이

되는 것 보다 영광고을 현감으로 봉직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얘기는 당시 이 고을의 특산주였던 강하주의 명성을

뒷받침해준다고 할 것이다. 강하주는 현재 보성 회천면 율포리에 사는 도화자 씨가 맥을 이어 전라남도 지정 무형

문화재 45호가 되었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술을 다시 붓는 모습

술술이 뜨거워지면 다시 물을 붓고 끓기를 기다린 후 다시 술을

붓는다.

 

 

독한 술에 벌꿀을 넣어 주독을 풀게하다

관서감홍로의 특징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전통주보다도 밝고 붉은 선홍색의 자극적이고 화려한 색깔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선홍색의 발현은 증류과정 또는 증류 후의 착색과정에 기인한 것으로, 부재료로 사용되는 지초

(芝草)라고 하는 건근 약재에 의한 착색에서 비롯된 색깔이다. 그 빛깔이 어찌나 붉고 밝던지, 혼례 때 신부들의 볼에

바르는 연지와 같다 했으며, 이 색깔에 따른 강한 시각적 자극은 구미를 돋우는데 적격이다 할 수 있다. 또한 여느 소주류

와는 다르게 두세 차례 증류를 한 까닭에 알코올도수 45~70%에 이르는 고도주인 데도 벌꿀을 사용하여 그 맛은 달고

부드럽거니와, 마시고 나면 타들어가는 듯 강한 자극적인 맛에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감홍로는 진도지방의 홍주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증류식 소주는 탁주나 청주, 약주 등 여느 전통주처럼 그 양조과정이 같다. 다만, 진도홍주는 주재료를 보리쌀로 빚는 데다 소줏고리로 한 차례 증류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줏고리의 귓대 밑에 지초(芝草)를 밭쳐둠으로써 귓대를 통해 떨어지는 소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초를 통과하게 되는 순간 지초 고유의 색깔인 선홍색의 옷을 입게 되어 붉은 빛깔을 띠게 되므로 붉은 술 빛깔 그대로 ‘홍주(紅酒)’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감홍로는 진도홍주와 같은 방법을 기본으로 하여 소주를 얻는데, 일반 소주와는 달리 한두 차례 증류과정을 더 반복하여 보다 더 높은 알코올도수의 증류주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감홍로의 특징이랄 수 있는 붉은 색과 단맛을 부여하기 위하여 소주에 지초와 벌꿀을 넣어 술 빛깔과 단맛을 얻게 되는데 술을 빚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홍국(紅麴)’을 비롯하여 용안육(龍眼肉), 진피(陳皮), 방풍(防風) 등을 추가시키기도 하는 것을 여러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임원십육지]에는 지초 대신 ‘장미꽃’이나 매화, 감국, 당귀, 생강 등 각각의 약재를 넣어 빚어, ‘장미로(薔薇露)’, ‘매화로(梅花露)’, ‘감국로(甘菊露)’, ‘생강로(生薑露)’, ‘당귀로(當歸露)’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관서감홍로는 소주에 사용되는 부재료에 따라 술 이름이 달라지는, 이른 바 혼성주의 한 가지로, 진도지방의 홍주나 궁중의 홍로주(紅露酒)와 별반 차이가 없는 같은 홍주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관서감홍로는 단지 독한 술에 감미와 향기를 주어 독한 맛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벌꿀이 추가될 뿐이다.


           소줏고리로 증류하는 모습

 

하지만 같은 홍주라고 할지라도 관서감홍로가 평양지방의 명주(銘酒)로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방은 북쪽에 위치해 있어 한 겨울철의 추위는

뼈를 에이는데, 이때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 감홍로의 알코올도수가 높아진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도수가 높은 술을 상용하게 되면 주량이 큰 사람이라도 주독(酒毒)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다. 따라서 주독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달고 부드러운 맛의 벌꿀을

넣음으로써 그 맛을 부드럽게 하는 한편, 과음을 억지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벌꿀에는 주독을 풀어주고 가슴앓이나 근육통·치통을 해소하는 작용과 장의 대사기능을 활성화를 비롯하여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신경 자극을 완화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불면증을 다스려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감홍로는 맹렬하다할 만큼 독한 맛을 간직하면서도 매우 달고 부드러운 맛과 연지와 같은 아름다운 술 빛깔을

 특징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아 왔다. 필자는 관서감홍로를 재현하여 수십 차례 지인들에게 명절 선물로, 또는 평소

연구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접대와 특별한 술자리에 이용해 오고 있는데, 그 반응은 한결같다. “어떻게 하면 이 술을

자주 맛 볼 수 있겠습니까?” 또는 “왜 이와 같은 좋은 술들은 상품화가 안되는 것입니까?” 하는 반응이다. 필자 역시

하루빨리 관서감홍로가 상품화되어 더욱 널리 대중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