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도전을 한다. 어떤 이는 도전을 끊임없이 하여 '성공'이라는 결과를 낼 때도 있으며, 또 다른 이는 계속 되는 도전에 지쳐가다가 끝내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어차피 모든 인생의 선택은 '자기자신'이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전을 했었고, 그 도전이 정말 가시밭?이고 정말 깜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이라면, 그런데 누군가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뚫는다면, 우리는 '장하다' '부라보'라는 탄성을 외치고 박수를 친다. 필자가 현재도 활동하는 승무원 '전현차'라는 카페의 합격후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QR] 100번의 도전끝에 결국 하늘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100번? 에이... 설마하는 마음에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분은 00학번이었고, 승무원 시험을 처음 시작한 년도가 2004년이었다. 그때 필자는 대학교 2학년때였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도전을 시작한지가 그러니까 2007년이었다. 필자는 군대에 들어가는 시기였다. 이 분은 2012년에 승무원을 합격하셨다. 07년,08, 09,10,11,12 약 6년이다. 필자는 18번 정도 인터뷰를 약 1년간 봤었다. 그러면 이분이 인터뷰를 100번 치려면 2007년부터 매년마다 줄기차게 인터뷰를 보러 다녔다는 것이다. '그 짓을 6년동안.....' '당연히 서울사람일거라고 확신했다!' 그 인터뷰를 치는데 지방에 산다면 KTX타고, 아님 버스타고 왔다갔다 메이크업받고, 옷 다리고, 지방에 살면 6년동안 인터뷰를 보는게 불가능하다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백번녀는 '대구'에 살았다. 대구에서 6년동안 서울이나 부산을 다니며 인터뷰를 보러 다녔던 것이다. 남자는 숫자에 강한 동물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식에 강하다. 금액을 계산해봤다. 보통 한번 인터뷰를 보는데 KTX왕복비가 약 6만원, 메이크업과 헤어비가 7만원, 식비와 숙박비 등등 모두 다 합치면 약 20만원정도 생각해야한다. 그럼 면접을 약 100번 봤다고 하면 금액만 1,800만원이다. 이 분은 승무원이 되기 위해 2,000만원을 투자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갑자기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런데 승무원을 준비하면 가장 힘든 것이 주위의 시선이었다. 승무원을 준비한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시선은 다름아닌 '얼굴'로 간다. 승무원을 준비한다고 하면 이 문장이 바로 나온다. "걔... 이뻐? 걔 잘 생겼어?"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바야흐로 2012년 2월경으로 기억한다. 외국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다. 승무원 면접이 3개가 동시에 떠버린다. 면접은 보고 싶고, 그렇다고 휴무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 그래서 학원강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학원 원장선생님께서는 다 이해를 해주시고, 나의 꿈을 응원해주셨었다. 그리고 학생 어머니들께 전화를 드려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씀 드렸고, 성격이 좀 솔직해서 거짓말로 둘러대는걸 못한다. "ㅇㅇ 어머니... ㅇㅇ 학생 영어선생님, 세바라고 합니다. 저는 원래 승무원이라는 꿈이 있었는데, 그것을 도전을 하려고 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도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젊기에 저의 꿈을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정말 다른 사람이면 아프다는 핑계, 아니면 사정이 생겨서 그만 둔다고 둘러댄다. 사실대로 말하고, 꿈을 향해 간다는 젊은 청년에게 어머니들께서는 용기를 주시면서 꼭 잘 되라고 격려해주셨다. 물론, 속마음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른다. 어쩌면 조금 어이없어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한 학생의 어머니가 너무 호기심이 큰 나머지, 학생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너희 선생님... 승무원 준비한다매? 잘 생겼나?" 그 학생은 '잘 생긴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필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인지 학원에 학원회비를 내러 직접 찾아오셨고, 우연히 데스크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는 필자와 인사를 나누고 갔었다. 그리고 학생들과 마지막수업에 작별인사를 할때, 그 학생이 느닷없이 이 말을 던진다. "선생님,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요. 선생님 승무원 못 될거래요. 승무원이 되려면 선생님보다 훨씬 잘 생겨야 된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이 말을 딱 듣고, 3초간 정적, 한쪽 입꼬리 살짝 올라가고, 코에서 헛바람 나오면서 멘붕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인터뷰 3개가 내 눈앞에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데! '뭐? 나보다 더 잘 생겨야한다고?' 세바 : 너희 엄마는 승무원이니? 학생 : 아뇨. 세바 :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니? 학생 : 몰라요. 그냥 그러던데요. 세바 : 너희 엄마는 그렇게 이쁘시니? 학생 : 아뇨. 잘 모르겠어요. 이때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한 수가 있었다. 이 말을 딱 꺼내는 동시에 나에게 박힌 창을 그 학생에게 바로 꽂아 줄 수 있는 완벽한 한 수였다. '그래... 안 이쁠 것 같네... 니 얼굴보니까 너희 엄마 유전자를 알겠다...' 이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멈칫했다. 이 말을 꺼내려고 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나의 어린시절 선생님께 받은 상처들이 생각났다. 필자의 초등학교 통지표를 본 독자들은 알 것이다. 이 말을 꺼낸 동시에 이 학생은 평생 그 말을 간직하면서 필자를 저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르게 말했다. 세바 : 너희 엄마가 잘 모르시네. 나는 외국항공사를 면접볼거고, 외국사람들 기준에서는 나 잘 생긴거야! 내가 아프리카에 있었을때 완전 인기쟁이, 초미남이었어. 너 몰랐지? 그러니까 선생님은 승무원 될거야! 엄마보고 걱정마시라고 말해드려! 살면서 말로 남에게 상처를 많이 줬었다. 필자는 장점보다는 약점을 잘 캐내는 습성을 지닌 사람이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그때 다르게 말한 것을 평생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잠언 15장 2절 :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다시 돌아와서, 남자인 필자가 이런 에피소드가 있는데,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승무원을 준비하는 여성들은 오죽할까? 이런 시선과 말쯤은 다들 감수하면서 면접을 보는게 사실이다. 백번녀는 6년간 참아왔을 것이다. 그 백번녀는 베니스에 필자를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다. 순간 떨렸다. 이건 다름아닌, 6년간 100번 도전해서 성공한 승무원과 18번 도전하다가 다른 길로 간 베니스 가이드와의 만남이었다. 필자는 좀 후달렸다. 하지만 만나보고 싶었다. 100번을 이겨낸 그 끈기의 원천은 무엇이며, 승무원이 된 후의 삶이 궁금했다. 백번녀와 필자는 산타루치아역에서 만난다. 유관순누나처럼 심지가 곧고, 포스가 강렬할거라고 예상했다. 100번의 인터뷰를 친 사람치고는 유순하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서로 뻘쭘해하지도 않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베니스를 걷고 싶다. 걸으며 우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확하게 느껴지는게 있다. '이 사람은 초긍정적인 사람이다.' 항상 웃으면서 좋은 이야기만하고 재밌는 이야기만 이야기한다. 가끔 부정적인 화두를 던져도 긍정으로 받아쳐버리신다. 세바 : 정말 면접을 100번 쳤어요? 백번녀 : 네... 100번 넘었을 수도 있어요. 세바 : 그동안 돈은... 얼마나 어떻게... 백번녀 : 계속 일하면서 투자했죠. 약 2000만원 넘게 나갔을거에요. 세바 : 부모님께서는 승무원준비한다니까 뭐라 안했어요? 백번녀 : 제 합격후기 제대로 안 읽어보셨네요! 6년간 부모님께 말씀 안드렸었어요. 합격되고나서 말씀드렸죠. 말씀드리니까 '뭐? 니가 승무원?' 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컴퓨터를 켜서 카타르항공이 오성급 세계 1등 항공사인것도 보여드렸죠. 그러니 많이 놀라시더라구요. 세바 : 100번을 치셨는데... 솔직히... 안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백번녀 : 단 한번도 없어요! 언젠간 될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세바도 아직 어린데 도전하시면 되는데..? 세바 : 아뇨... 전 베니스에서 가이드로 있는 것도 좋아요. 베니스 가이드! 승무원만큼이나 괜찮은 직업이에요! 백번녀 : 참... 좋아하시는게 느껴지네요.!!! 백번녀에게 카타르승무원이 되어서 좋지 않은 점이 뭔지 물어봤다. 뜻밖에 대답이 나왔다. 제 나이가 좀 많다보니까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빨리 승무원이 됐으면 정말 오래해서 부사무장, 사무장도 되고 싶은데 나이가 그때까지는 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게 가장 아쉬웠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항공사들이 야속했다. 이렇게 붙여줄거면 6년전에 붙여주지 왜 이렇게 늦게 합격시켜줬단 말인가? 어쩌면 이 6년이란 시간이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가 백번녀가 될 수 있었고, 백번녀를 알아준 카타르라는 항공사가 정말 감사의 항공사라는 것을 뼈속에 새겼을 것이다. 또한, 필자의 글에 주인공이 되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진 않을까! 백번녀 : 세바님... 사실 세바님을 만나는게 참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하는 말들 다 블로그에 전현차 카페에 쓸거잖아요. 그리고 사진 찍으면 또 올릴거잖아요." 세바 : 아니에요. 뭐... 제가 글감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부담스러우시다면 글 안 쓸게요. 사진도 안 올릴게요. 아직 쓸 내용 많아요!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하지만, 백번녀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 대신 글은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녀는 승락을 했다. 하지만 본인이 나온 사진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백번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진을 생각해봤다. 가장 어울리는 사진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이다. 언제 쓸지를 몰라 계속 삭여두고 있었는데 이제야 빛을 본다. 이 사진은 베니스 세바를 찾아와주신 카타르승무원 '백번녀'에게 드립니다!! 베니스에 와주시고 만나주셔서 고마워요. 누나! 11.Nov.2010, 남아프리카 비상 뒷담화 백번녀 : 세바님, 그거 아세요? 제가 예전에 언제 한번 세바님 글에 댓글을 달았었어요. '우와~ 세바님~ 대구 사시나봐요~' 그랬더니 세바님 뭐라고 덧글 단 줄 아세요? 세바 : (궁금해하며) 제가 뭐라고 달았는데요? 백번녀 : '제 글을 제대로 안 읽어보셨군요?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세요!' 라고 적으셨어요!! 세바 :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백번녀와 난 그렇게 한참을 웃으면서 비가 내리는 베네치아를 걷고 있었다.
글을 좋아한다면, 손까락 모양 클릭해주세요. 로그인 필요없어요. 감사합니다.^^ |
출처: 세바의 아프리카 & 이태리 에피소드 원문보기 글쓴이: 세바
첫댓글 파이팅해야지... ^_^
우와.. 힘이 되는 글이에요~!!
백번녀님의 도전에 비하면.. 저의 3년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네요...ㅎㅎ
세바님! 항상 힘이되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두 언젠가 베니스에서 세바님을 만나고.. 세바님 글의 소재가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