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아이들,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캄보디아는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가 보시라는 권유를 받고 캄보디아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은 배울 게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고집에, 유적이 없는 필리핀엔 고개를 흔드는 소운을 보고
유적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캄보디아를 꼭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을 딸들이 한듯하다.
캄보디아의 유적을 사진으로 대하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기후가 매우 덥다는 사실과
비행시간이 길다는 점, 유달리 장이 약한 터라 비위생적인 음식이나 물로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재고 있던 터에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하고 등 떠미는 통에 얼떨결에 여행길에 나섰다.
외국을 다녀보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은 입국장에서 첫 대면을 하는 관리들의 행동에서 결정
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친절하던 관리의 모습에서 일본이 역시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듯, 후진국 캄보디아의 첫인상은 예상대로 과히 좋지 않았다.
관광객에게 돈을 뜯겠다는 의미가 강한 비자 발급비는 그렇다 쳐도, 공식 비용 외에 한국인 관광객은
별도로 1달러를 더 내라고 했고, 내지 않으면 기재 사항을 트집 잡아 뒷줄로 밀어 통관이 늦다고
했다. 시험 삼아 비자비만 냈더니, 정색하며 1달러 하고 손을 내미는 관리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비자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한 열 명정도 죽 앉아 콘베아아에 올린 짐 같이 여권을 돌려가며
뭔가를 하는 듯하지만, 소운이 보기엔 한 명이 해도 될 일을 쓸데없이 인해전술 식 처리인 듯 보였다.
일자리가 없으니 이런 식으로나마 일자리를 만든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은 공항에 입국자가 많지 않은데도 통관 시간이 오래 걸려 더위에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통관이 늦으니 짐이 돌지 않아 벨트가 자주 멈춰서는 바람에 짐 찾는데 한참을 기다렸으니 말이다.
늦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해 목이라도 축일까 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자판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자판기의 천국이라는 일본을 자주 다닌 탓인지 자판기가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구내매점이라도 있나 해서 물어봤지만, 매점 마저 없다니 더욱 놀라웠다. 규모가 상당한 특급
호텔에 매점이 없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 심리가 그렇듯 없다니까 더욱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해, 로비에 가서 통하지 않는 손짓 발짓으로 맥주를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 Sokha Siem Reap 호텔은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이 묵었던 호텔이라고 들은 것 같다. 시설이 좋은 5성급 호텔이다.
방으로 맥주를 가져온 직원에게 돈을 지급하며 60센트 정도 잔돈이 발생하기에 팁을 더 줘야
하나 망설이다 그냥 말았다. 1달러도 정도는 팀으로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잔돈이 없으니
팁을 주고 거스름을 달라 하기도 그렇고 더 주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벨 소리에 방문을 여니 맥주를 가져왔던 직원이 쟁반에 캄보디아 돈을 가져와 잔돈이라고
내밀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달러가 통용되지만, 1달러 이하는 캄보디아 돈으로 정산한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팁이니 가지라고 하자 환하게 밝게 웃으며 좋아하던 그의 모습에서 가난
하지만 적은 돈에 만족해하는 모습이 좋아 보여, 공항에서의 부정적 인상은 지우기로 했다.
캄보디아는 평균 연령이 아주 낮다고 한다.
크메르 루지의 대학살로 국민의 30% 이상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열심히 애들을 낳은 탓에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문제는 이 많은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삶의 현장으로 내 몰렸다는 현실이다. 관광지 주변에는 맨발의 아이들이 물건을 사 달라고 따라다니며
조르거나, 아예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얘들이 하는 소리가 원 달라! 원 달라!
로 캄보디아를 다니다 보면 원 달러를 외치는 소리가 귀에 밸 정도로 자주 듣게 된다.
동행한 가이드는 가능하면 애들 물건은 팔아주거나 돈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애들이 수입이 좋아지니 학교도 보내지 않고 돈 벌어 오라고 내모는 부모가 많다고, 캄보디아의 미래를
걱정했다.
* 칼보디아는 자연 환경이 좋은 나라이다. 공산주의자의 허망한 환상에 인구의 삼분의 일이 희생 되고 가난의 늪에 빠졌다.
* 이 꼬마는 배에서 잡일을 해 주는 대신에 관광객의 팁을 받도록 허락된 것 같다. 이처럼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가 많았다.
캄보디아 웬만한 근로자는 한 달에 100달러 벌이도 어렵다고 한다.
대신 관광지 주변을 기웃거리는 애들은 어렵지 않게 돈을 만지게 되어 있어 어딜 가나 애들이 바글댄다.
부채를 들고 따라오며 부채질을 몇 번 해주면, 귀찮아서 1달러를 주게 되니, 순식간에 쉽게 돈을 버는
셈이다. 미얀마에서도 비가 뿌리자 우산을 펴든 아이들이 몰려드는 통에 난감했던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수상 가옥 마을로 가는 유람선을 타니 초등학교 3-5학년 정도의 꼬마 두 명이 잡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배가 출발하려 하자 배 후미 난간을 넘어 뱃전에 매달려 프로펠러의 각도를 능숙하게
조정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참 위험한 일을 애들에게 시킨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사진을 한잔 찍으려 고개를 돌린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기에 쳐다보니 뱃전에 있던 꼬마가
어느새 내 어깨를 대충 주무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녀석 1달러를 주니 돈값을 하는 게 아니라 좌석에 앉은 사람들 어깨를 주무르려 잽싸게 달려갔다.
어깨 몇 초 주무르는 시늉을 하고 1달러이니 어른들보다 훨씬 쉽게 돈을 버는 셈이다.
수상 가옥은 베트남 난민들이 사는 곳이라 했다.
전쟁을 피해 임시로 왔다가 다시 돌아가니 베트남에서 받아주지 않아 다시 캄보디아에 주저앉아 힘들게
산다고 한다. 수상 가옥 마을은 캄보디아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어우러져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고,
나름 캄보디아와 베트남 가옥의 구별이 있는듯싶지만, 소운이 보기에는 초라한 모습만 눈에 들어 올뿐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캄보디아로 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역시 원 달라! 소리였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타고 놀던 아이들이 배만 지나가면 손을 내밀고 원 달러를 외치고 있었고,
수상 가옥 난간에서 뭔가를 하던 아이도 배를 향해 원 달러 하며 손을 내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난리가 났을 법, 이런 위험한 물통을 타고 원 달러! 원 달러!
캄보디아에서 행복하게 커가는 아이를 보진 못했지만, 평균 연령이 낮다는 사실은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비록 헛된 사상에 들뜬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광풍으로 인해 가난의 수렁에 빠지긴 했지만,
화려한 문명을 일군 그들의 선조를 보면 결코 열등한 민족은 아니라는 사실이 희망을 품게 한다.
보다 선진화된 사회에서 살다 온 소운의 눈에는 덜 조직적이고 비능률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나름 다
같이 먹고 살자는 현실적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공항에서 본 많은 직원의 인해 전술식 업무처리도,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일자리를
나누자는 고육책이고, 일일 관람권을 발급하며 사진까지 찍어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도 나름 일자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해를 하고 보니,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검표원을 보고도 비능률을 탓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보니, 공항에서 거둬들이는 1달러도 이들의 생계 보조 수단이요, 애들이 손 내미는 원 달라도
나름 살기 위한 묵인된 하나의 시책임을 알고는 그들의 가난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나만 했을까?
단체 관광은 가이드가 좋아야 한다.
이번 여행길의 가이드는 하나 관광의 한상연(여) 씨가 죽 우리를 안내했다.
가이드도 정식 가이드는 현지인을 꼭 채용하게 되어있어 풍채 좋은 캄보디아 인이 가이드로 일정을
같이 했지만, 말을 모르는 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실제 가이드 한상연 씨는 법적으로는 통역
자격이 아닌가 싶었지만, 하여튼 그의 안내는 관광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태국에 있다가 캄보디아로 옮겨 와 캄보디아가 좋아 11년째 살고 있다는 한상연 씨는 원래 은행원이
였단다. 캄보디아 유적에 가서 온종일 보낸 적도 많았을 만큼 캄보디아 유적을 사랑하고 캄보디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무엇보다 캄보디아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관광지에 대한 안내에 더해 그가 들려주는 캄보디아의 역사는 캄보디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하나 관광의 한상연 가이드와 캄보디아 인 가이드, 한상연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으로 캄보디아를 소개 하였다.
이번 글은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재밋거리가 너무 없다고 인정한다.
여행기는 차후 소주제로 따로 다루려 한다. 확실한 것은 캄보디아 유적을 보며, 캄보디아도 세계 문명사에
한 축을 담당한 대단한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인도나 중국에 견줄 만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나라가
세계 최빈국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비록 원 달러를 위치거나, 공항에서 1달러에
손 내미는 비참한 모습이지만, 똘망한 눈망울을 보며 언젠가는 다시 우뚝 서리라는 희망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긍정적 시각을 갖도록 좋은 안내를 해 주신 한상연 씨와 하나 관광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외국인이 모인다는 거리에 가면 이같은 혐오 식품을 파는 상인이 있다. 사진 촬영은 50센트를 내라 한다.
* 유적 및 풍습에 관한 사진은 별도의 여행기로 다음에 소개 하겠습니다.
첫댓글 박목철 시인님!
안녕 하세요?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공항 입국장부터
선진국 후진국 차이가 낭다고
하신 말씀 새겨 봅니다
그 나라의 국민성을 보면
그정도 밖에 살수 없는
나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없이 살아도
자존심이 있는 국민성
남에게 의존하여
손을 내미는 나라
노동력이 어린 아이들까지
벌어야 하는 나라
한국 국민이 어느나라에
정착해도 모두
잘사는 이유 가 있지요
부지런 하고 자존심이
강하기때문은 아닐까요.
있어도 거지같이 사는 사람
없어도 마음이 부자인사람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시인님! 캄보디아 -
구경 잘 했습니다.
늘 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감사 합니다. 박목철 시인님
여행 다녀와서 심하게 앓았습니다.
이 뿌리가 상했다해서 잇몸 수술을 했는데
몸살에 항생제 부작용으로 위장 장애로
간만에 끙끙 앓았답니다. ㅎㅎ
박목철시인님 안녕하세요
몇년전에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캄보디아도 환경이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본 어느 한가족은 바다에서
배에서 생할하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어린 남매가 과일 몇개들고
뱃전에 아슬아슬 위험하게 장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물론 학교도 못가고요
사진에서 본 고무통에앉아 있는 꼬마를
보니 가슴이 아픔니다 충격이예요
그런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어린아이들 모두 행복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캄보디아 사진 잘봤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박목철시인님~
지금은 베트남은 개방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상당히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동남에서 가장 강국이 베트남이라 합니다.
크메르 루지의 학살에서 캄보디아를 구한 나라가
베트남 입니다. 학살 주동자들이 베트남의 공격에
단번에 무너져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의 영향이 캄보디아에서 절대적 이라 합니다.
한국 전쟁 당시의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가슴 아팠습니다.
이순남 시인님, 행복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시인님 안녕 하세요
시인님의 캄보디아 여행길
읽어보니 시인님 덕분에
여행 잘 하고 갑니다.
저의 어릴적 보리고개 시절이
생각 납니다
시인님 감사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시인님 등단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많이 기대 하겠습니다.
목회자 이시니 좋은 가르침도 경청하겠습니다.
바쁜 휴일이시겠습니다. 하느님 은총이 가득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