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는 뜰
김 명 원 외출을 하려는데 집사람이 당부를 한다. 이번 달 부부 모임은 소담골 한식집으로 정했으니 다른 약속을 하지 말라고…….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 여가 생활을 하면서 골프 연습장에서 만난 동네 부부 모임이다. 약속된 식당은 우리 동네에서 20㎞나 떨어진 산골에 있어, 버스나 택시도 들어가지 않은 외진 곳이다. 이 집을 찾아가노라면 비포장도로에, 웅덩이도 많고 차가 덜커덩거리고 좁은 길목에서 교차할 때는 어느 쪽 차가 비켜주어야 소통이 되는 험악한 곳이다. 올라가는 길목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개천물이 흘러 경관도 좋다. 여름 한철은 유원지로 각광을 받기도 하다. 주변에는 보신탕, 닭죽, 오리고기, 한식집 등의 음식점 간판이 수없이 걸려있고,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맨 위 쪽 막다른 곳에 이 집이 있다. 예약도 받아 주지 않고 대기 차량도 없다. 자리가 없으면 도착한 순서대로 기다렸다 먹게 된다. 오늘도 30분을 기다렸다. 이런 외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깊은 산골에 기이한 현상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장관이다. 산림이 우거진 산기슭에는 숲으로 둘러있고, 산 중턱 언덕바지는 별장 같은 호화 주택들이 눈에 띄고 조경도 잘 정돈되어 보인다. 식당 집 뜰에는 각종 화초와 조경수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서편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시냇가에는 느티나무 벚나무 등이 우거져 있고, 통나무 마루에 간의 야외 탁상이 마련되어있다. 식사하기 위해 기다리거나, 식사 후 차 마시는 자리다. 넓은 앞마당에는 오늘도 6~70대의 자가용이 주차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질서 있게 주차되어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널따란 식당 안에는 비교적 젊은 여성들이 꽉 차 있다. 남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식들, 남편들, 학교나 직장에 보내놓고, 친지 동료들과 식도락을 즐기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위해 찾아 온 여성들이다. 음식 맛은 일품이다. 재료는 일반 한정식 집과 별 다르지 않으나,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또 오게 만든다. 벽에는 요리사 기능 자격을 인증서가 게시 되어있고. 음식은 A. B. C. 코스로 큰 부담 없이 어느 것을 먹어도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식사를 끝 낸 다음엔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10여 평 남짓한 공간도 마련 되어있다. 식사 후 소담(笑談)하는 장소다. 식사 후 소담하는 여인네들이 마치 참새 때가 모여 지저기 듯 시끄럽다. 살림이 우거진 공기 좋고 맛 좋은 산골식당에서 맛을 즐기며 소담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그러기에 교통도 불편하고, 예약도 안대는 식당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분당 용인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나, 생일이나 특별한 날, 서울 등 외부 손님을 접대 할 때도 이용한다. 소담골(笑談谷) 이란 이 집은 선전을 하지 않아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의 입 소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덜커덩 거리며 멀리서 불편한 길을 찾아 온 이유가, 아름다운 산림 속, 해 맑은 공기, 물소리 산새소리 들리는 세속을 벗어난 곳, 눈과 코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맛과 우정과 낭만을 느낄 수 있으니, 멀다 하지 않고 찾아 온 것이다. 여기에 와서 보면 식도락을 즐기려는 사람들, 아니 인생의 멋과 낭만을 즐기며, 변모 해 가는 여성시대를 느껴 보기도 한다. 소담골은 자유를 찾아 해방된 듯한. 여성들의 즐거운 삶을 만끽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식사 후 커피한잔하며 느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심지가 아닌, 깊은 산골에도 음식 맛과 환경이 좋으면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을......, 나는 가끔 가족들과 동네 친지들 그리고 서울에서 다정한 친지들이 올 때면 이집을 찾는다. 부담 없는 가격에 같이 온 사람들 모두가 눈도 입도 마음도 즐겁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내가 앞장을 서고, 이어서 두 대의 자가용이 좁은 길을 뒤 따라 온다. 얼마 전 KBS2 텔레비전에 방영된 한백골프클럽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이 골프장은 고향 후배가 신설하여 개장한지 몇 달 되지 않은 곳이다. 전국에서 제일가는 규모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조성 하였다기에 가보고 싶었다. 카운터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마침 고향 후배인 e회장이 반갑게 인사하며 나온다. 우리일행들을 승강기를 오르내리며, 사우 나실, 스크린 골프장, 라커룸, 타석, 어프로치 연습장 등을 구경시켜주고, 티 샷(Tee shot)을 하도록 특별히 배려도 해준다. 타석에서 골프채를 잡고 시야를 살펴보니 장관이다. 이러한 골프 연습장은 처음이다. 그 넓은 호수 위에 공을 치는 것이다. 티 샷 거리는 50, 100, 150, 200m등 거리에 알맞게 연습을 하도록 네모로 된 그린(Green)이 물 위에 떠있다. 권유에 의해 약간의 몸 풀기 자세를 한 다음, 스픈(spoon)채를 휘두르니 150m 인조그린 옆 물에 떨어진다. 비록 목표한 그린에 안착하지 못하고 옆에 물장구치며 떨어지는 공이 희한한 느낌이 들게 한다. 골프공을 잔디에서만 쳤지 호수 위에 처 보기는 처음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에 떨어진 공을 어떻게 수거 하느냐?, 물었더니 특수하게 제작되어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배를 타고 수거한다고 한다. 내가 체험한 골프 연습장중 국내 최고였음을 느껴 보고 가끔 이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시설에서 운동하고 먹고 사워 하며 레저를 즐기는 현대인의 여유 있는 삶을 유지하도록 잘 배려된 시설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넓은 호수에는 일정한 곳에 그린이 그림같이 떠있고, 뒤편 주변에는 공원이 돌과 조경수로 잘 구성 되어있었으며, 높은 산 중턱에는 별장 같은 집들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가하는 복음자리라 생각 들었다. e회장은 현관 입구까지 나와 친절하게 배웅해주어 고마웠다. 평소에 그릇이 크고 야심이 있는 사람같이 느껴졌으나 만나서 대화를 해 보니 크게 성장 하리라는 믿음이 들기도 했다.
골프하우스를 나와 주차장에서 차를 타려는데 일행 중, 다도(茶道)에 조예가 깊은 J여사가 산길 골목에 조그맣게 걸려 있는 "차 마시는 뜰"이란 간판을 보고, 외진 산골에 찻집이 있는 것을 특이하게 여겨 가 보자는 것이다. 주변의 좋은 경관을 보며 걸어가는 부부도 있었지만 집사람과 나는 차를 이용하여 올라갔다. 2월 초순의 날씨는 산바람이 차갑고 쌀쌀했다. 찻집 앞에 다다르니 한식으로 곱게 지어진 대문에 "차 마시는 뜰"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조각품으로 지어놓은 모형의 집을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름답고 아담한 전통형식의 한옥 이였다. 마당에는 잔디와 잔디 등, 조약돌과 연못, 그리고 작달막한 조경수로 잘 꾸며져 있다. 한질 아래 터에도 잔디밭 위에 아름다운 쉼터 공간이 마련 되어있다. 내려다보이는 산과 호수는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갔다. 돌로 다듬은 디딤돌을 딛고 찻방으로 올라서니 또 한 감탄스럽다. 통나무로 깎아 지은 대들보며 서까래가 네모나고 둥글게 조각품처럼 깎아서 지어진 전통한옥이다. 탁상은 너무나 예술적이다. 어떤 탁상은 맥반석(麥飯石) 바위를 정으로 다듬어 자연스럽게 쪼아, 한쪽에는 호수처럼 파서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부어 수초를 띄어 놓고, 조그마한 그릇에 초를 담아 두었다. 집사람은 촛불에 불을 켜고, 그 풍광이 너무 좋아 여자 일행 세 사람은 그 탁자로 옮겨가고, 남자들 세 사람만 귀목 나무탁자에서 차를 마셨다. 귀목 나무탁자는 수명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지 골이 파진 험 집을 그대로 살려, 두꺼운 통나무로 운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방 안에 진열된 서예작품, 난, 화초 등이 이채롭고, 목제장, 다기류, 진귀한 골동품들이 조화롭게 진열되어있다.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 밖에 없다. 아가씨가 차 메뉴판을 제시한다. 일행 중 다도(茶道)에 대해 텔레비전에도 출연 한 바 있는 J여사가 1932년 산 보이산차(普珥散茶)와 떡 시루 2개를 주문했다. 보이산차 25,000원, 시루떡 1인분에 6,000원이다. 전문가답게 한 번 울어 내고, 다음 번 차부터 마시도록 딸아 준다. 한 모금 밖에 안 되는 작은 자기(瓷器)찻잔에 두 병의 보온병 물을, 예쁜 토기주전자에 우려 마시다 보니 한 사람당 여섯 일곱 잔은 마셨나 생각되었다. 개다가 희한한 것은 시루떡 두 솥을 시켰는데 한 사발 밖에 되지 않은 전기솥에 즉석에서 쪄 준다. 쌀가루와 호박 가루를 미리 준비 해 두고 손님이 요구하면 즉석에서 떡을 만들어 준다. 여섯 명이 먹기에 적당한 분량의 양이였다. 공기 좋은 산골 찻집에서 담소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 분이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그 곳에 다녀오지 않으면 후회 할 거라 말한다. 다른 사람도 갔다 오더니 모두들 감탄한다. 호기심에서 나도 준비된 검정 고무신을 신고 화장실을 가보니 그 곳 역시 가관이었다. 세면대는 고가구(古家具) 위에 놋 항아리로 조성 되어있고, 변기 휴지통 등 주변에 진열된 소품들이 마치 안방과 같았다. 마치 편안한 휴식처에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절간에는 변소를 해우소(解憂所)라 한다더니 이집 화장실은 진짜 근심걱정을 덜어 주는 화장실이었다. 찻집을 나서는데 여 종업원이 대문까지 나와 인사를 한다. 집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물었다. 삼청동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같은 상호의 찻집을 운영하는데 거기가 원조고 이 집이 2호란다. 이 산골에 돈을 벌기 위해 찻집을 차렸을까? 신선처럼 살기 위해 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은 새로운 삶의 맛을 체험 해보는 좋은 시간들이였다. 높다란 산들이 옹기종기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있고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골짝 동네에서, 맛깔스러운 음식을 즐기고, 아름답게 조성된 호수공원에서 골프연습을 하고, 멋과 낭만이 있는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이곳은 새로운 맛과 삶의 여유를 찾는 좋은 장소다. 산 정상의 허리에, 주변에 감싸고 있는 수려한 산세와 내려다보이는 호수, 이 모두가 하나의 그림이요 뜰이다. 이러한 차 마시는 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차 마시는 뜰"에서 차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려다보이는 산 호수 모두가 하나의 뜰로 보여 더욱 운치를 돋보이게 했다. 맛과 건강과 삶에 여유를 느끼면서 80년이 되었다는 보이산차를 마시며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찻잔 속에 음미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