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경주고 여행모임 여행의 행선지는 전라남도 광주, 화순, 장흥 지역이다. 우리는 경주를 출발하여 바로 광주로 가서 유명한 한식집인 [조선한정식]에서 남도의 유별난 음식을 즐긴 뒤 번화가인 충장로에서 하루밤을 보낸다. [조선한정식]은 남도 지역의 각별한 음식들을 모두 선 보였는데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매생이국, 떡갈비, 홍어삼합, 꼬막요리, 키토산게껍질갈이젓갈, 가죽튀김 등 별의 별 음식들이 다 나왔다.
우리의 여행 첫 행선지는 화순 운주사이다.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이다. 운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탑, 석불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은데,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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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져 있다. 운주사의 유명한 천불천탑 중에서 1947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불상과 탑은 절 입구에 들어서면서 부터 계속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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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석조불감, 보물 797호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우리 중에서 누가 이 곳을 수호지의 양산박에 비유했다. 어떤 무리들이 여기 모여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느 한 시기에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김대헌선생은 장보고가 여기를 본부로 삼아서 어떤 일을 도모했다고도 하고....여러 추측이 나왔는데 그것은 아마 황석영의 [장길산]의 영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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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뒤의 언덕에 올라가 절의 전경을 내려다 본다. 이 언덕에도 여기저기에 탑과 불상들이 흩어져 있다. 과연 어느 불순한 무리들이 이 곳을 소굴로 하여 모여 불순한 일을 도모했을까? 아니면 자기들 끼리의 해탈 내지 구원을 기원했던가? 억측은 무리다. 우리는 철저한 고증으로만 유적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은 유물들은 너무나 기이하고 특이하고 의아스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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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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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탑. 이 탑도 천탑 중의 하나이다. 운주사 주변에는 여기저기에 이렇게 탑들과 불상들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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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부부와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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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와불은 우수한 작품은 되지 못하나 안치된 위치등을 생각하면 풍수설에 의한 조상과 배열임이 짐작된다. 예술품으로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누구나 운주사하면 이 와불을 떠 올린다. 운주사의 아이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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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와불의 얼굴에는 이 시대를 걱정하는 수심이 그득하다. 미륵불로 이상향의 미래세계를 꿈꾸었던 와불의 안면에 담긴 수심은 오늘날 우리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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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바위. 7개의 원형의 바위가 산 언저리에 북두칠성의 위치로 배열되어 있다고 칠성바위이다. 내가 보기에는 저런 원형의 돌을 다듬고는 아래로 가져가 탑을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원판형 돌들을 아래로 가져가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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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방문 뒤에 바로 우리는 장흥의 보림사[寶林寺]로 갔다. 보림사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의 가지산에 있는 사찰로 창건시기는 860년경이며 창건자는 보조선사 체징(이 사람은 보조국사 지눌과는 다른 사람이다. 결국 이 선문에서 고려조에 거승 지눌을 길러낸 것이다. 지눌은 선종을 발전시켜 오늘날 한국 조계종의 중흥조가 되었다.)이다. 보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원표(元表)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이른바 지금은 한국의 대표하는 종파인 선종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 3백여년(759년) 전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거찰이다. 이곳에 처음절을 지은 것은 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으로 원래의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을 받아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무려 800여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조국사가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었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해 선종사찰로 바뀐 것이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 사적기"는 조선초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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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 있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이다. 신라시대 탑과 석등에다 조형미와 균형미가 뛰어난 예술품이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데 대적광전과 대웅전의 차이는 뭘까? 수많은 절에 가도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이제 한번 찾아봐야 겠다. 사실 한국의 사찰들이야 그 터전이 최고의 명승 자리가 아니던가? 유명한 사찰이라면 일단은 최고의 자리에 가장 풍광이 좋은 자리에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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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명찰들은 그 분위기가 영남의 명찰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미 언급했듯이 영남은 시끌벅적한데 호남은 고즈넉하다. 여유가 있고 한가로운 산사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투쟁적으로 일관했던 호남인들과는 다른 분위기라면 잘못된 말인가? 여튼 나는 호남의 절과 산들이 좋다. 내 고장 영남보다 더욱 좋다. 거기다가 음식이 맛있어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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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비. 그옆에 보물 157호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이 있다. 보림사에는 이 외에도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154호인 사천왕상 등 국보 2점과 보물 7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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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55호 동부도. 대웅전 뒤 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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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이다. 철이 저렇게 오래 보존되었으니 당연 국보급이겠지. 영남의 철조불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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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은 남해고속도로로 온다. 오는 길에 전남 벌교에 내려 그 유명한 벌교 꼬막정식을 먹지만 먹는데 급해서 다 먹고 난 뒤에 촬영하니 이 꼴이다. 하지만 꼬막정식은 이 지방의 산물인 꼬막을 여러가지로 응용하여 반찬을 만든 것으로 별미였다. 익힌 꼬막,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찌개, 꼬막피클, 양념꼬막....등에다 갖가지 해산물이 나왔다. 술도 이 지방 특산품인 녹차주가 나왔다. 이 근처 보성이 녹차재배로 유명하기에 그런 것 같다. 며칠 뒤에 전라도에 다시 온다. 구정에 가족여행이 전라북도 익산, 군산, 전주, 김제, 부안으로 계획되어 있다. 나에게 겨울은 전라도로 향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