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로.
불가리아와의 짧은 인연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세르비아로 넘어간다.
오늘 세르비아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리고 세르비아의 도로 공사 때문에 길이 닫힐 지도 모를 상황이어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출발해야한다고 했다. 다행이 국경 통과도 수월하게 금방 된다. 세르비아 가이드 수산나자매를 만나고, 문화관광청직원의 안내도 받는 행운을 누린다. 수박과 메론 같은 노란 수박을 파는 과일가게와 채소가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세르비아는 ‘하얀도시’라는 뜻으로 하얀 돌이 많다. 사람들은 출퇴근 때 성당에 들른다. 체스트호바가 떠올랐다. 그곳도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지는 장소였었다. 한 주민이 지나가다가 ‘신은 모든 이의 어머니다.’라고 한다. 수도 베오그라드는 세바 강, 도나우=두나부크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영화를 만드는 역사적인 장소도 많단다. 이곳도 도나우강과 인연이 있다. 세르비아는 발칸의 심장이라고 한다. ‘도바르단’이 좋은 날이라는 낮인사이다. ‘보르로 유뜨로’는 아침인사다. ‘수브알라’는 ‘감사합니다’이다.
또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의 장관을 즐기면서 세르비아의 남부에 있는 도시 니슈로 향한다. 해바라기 밭 곳곳에 한웅큼씩 피어있는 안개꽃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곳에서도 마을이 보이기 전에 먼저 묘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불빛 하나 없는 터널은 여전했다. 어쩜 더 긴 터널이라서 더 어두웠다. 이런 곳에서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정말 공포소설 한편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 어떤 터널은 벽을 뚫어놓아서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경우가 있긴 했다.
▷니슈(니시)
세르비아에서 숙소로 잡은 니슈는 정말 시골동네의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제3의 도시란다. 비어있는 집들도 많아 보였다. 이곳에서 대부분 미국으로 피난 간 사람들이 고국을 돕는다고 했다. ‘코소보 정신’은 평화를 원하지만 물러서거나 굴하지는 않는 것이란다. 현재 졸업생의 95%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가까운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다고 한다.
버스가 골목길을 들어서지를 못한다. 후진과 방향전환을 수도 없이 하고, 다시 뒤로 백을 해서 물러난다. 앞에서 오는 차도 피해주면서 정말 우여곡절 끝에, 돌아 나오는 길도 없는 호텔 주차장에 버스가 무사히 안착한다. 쏟아지는 우리의 박수를 받는 보리스, 그냥 멋쩍은 듯 손을 한 번 들어준다. 세르비아는 불가리아보다 교통이 더 안 좋단다. 기차여행도 분위기 있어 보이지만 불편하단다.
일찍 도착한 니슈의 호텔에서는 원래 벌써 방을 빼고 나갔어야하는 국가대표농구선수팀이 진을 치고 있었다. 와-장신이었다. 세르비아인들이 거의 장신이었다. 호텔 측에서 그들이 체크아웃하고, 그들이 피운 담배냄새까지 빠진 후에 입실을 하라며, 그동안 근처 옆 카페에서 차를 한잔씩 산다고 하였다. 우리는 정말 그 호텔의 바로 옆 카페인 줄 알았고, 가이드도 그렇게 알았단다. 하지만...골목에서 좌회전, 또 골목에서 우회전, 또 좌회전, 우회전...어머머 한참을 따라가면서, 어쩌면 “자기네 집으로 가는 거 아냐?”하는 농담도 했다. 암튼 소박한 시골 동네의 그런대로 멋을 낸 야외 카페에서 원하는 음료수 등을 써비스 받고 우리는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각각의 포즈로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카톡도 하면서 호텔에서 연락이 올 때만 기다렸다. 이곳 발칸은 특히나 야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모든 의자들이 비가 와도 무관한 재질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을 때는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쿠션을 가져와서 앉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시계를 1시간을 더 되돌린다. 그러니 총 7시간이 차이가 난다.
약 2시간 쯤 후에야 우리는 니슈의 개천(?)가 공원을 걸어서 호텔로 돌아온다. 강에서는 한 분이 낛시를 하고 있다. 무엇을 잡았는지 호기심을 보였더니, 작은 물고기를 잡은 것을 보여주며 웃는다.
그 호텔 앞쪽 공원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관련된 “X와 P가 교차된 십자가, 이 문양으로 승리하리라”는 뜻의 문구가 쓰여 있는 부조물이 있었다. 알고보니 니시(니슈)는 그분의 탄생지란다.
전신부님은 어느 성당을 가든지 그곳의 오르간을 먼저 보시는 듯 했다. 음악을 전공하셔서 피아노와 ‘도 레 미 화(파) 솔..’라는 음계를 만든 귀도신부님에 대해 한 말씀 하셨다. 이분이 325년 6월 24일 세례자 요한의 탄생축일 저녁기도 찬양가를 쓰면서 ‘도’는 원래 ‘웃쓰’였는데 ‘웃스’을 ‘도’로 바꾸었단다. 주님 ‘도미네’에서 ‘도’를 따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 유스티노신학원의 오르간을 고치려고 뜯어보니, ‘도’가 ‘웃스’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다. 그러니 그 오르간은 400년이 넘은 것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지금 그 오르간은 전신부님이 고치셔서 음색도 좋고,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오래된 오르간이 한국에 아마 2대 정도 뿐일 것이라고 하신다.
저녁식사는 1층 로비에서 했다.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카타리나님이 오시더니 쌍무지개가 떴다는 것이다. 그 말에 식사를 내던지고 뛰쳐나간다. 소나기가 막 지나간 검은 구름 사이로 일곱 색깔 무지개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나 ... 급한데로 핸드폰으로 몇 컷을 찍었다. 그리고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봤다. 검은 구름과 그 위의 햇빛이 어우러진 광경을 찍으니, 마치 천지창조 같은 느낌의 사진이 나왔다. 신부님께서도 어느새 무지개를 보셨나보다. 사진을 찍으셨다길래 보여달라고 했다. 잘 나왔으면 외람되지만 전송해달라고 하려고,,호호.
소피아호텔과는 다른 좁은 호텔, 밤새 비가 와서 습했다. 안드레아가이드는 호텔이 좋지 않다며 양해해달라고 했지만, 하룻밤 머무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6. 제 6 일 07/28(월)
니슈--지카--스튜데니카(세르비아)--노비파자르(세르비아)
전용버스 전 일
호텔 조식 후
지카(ZICA139km 2시간 30분)로 이동하여 지카 수도원 순례 후
세르비아 크랄레보 가톨릭 성당 11시 미사
스튜데니카(STUDENICA 56km 1시간 30분)로 이동하여 스튜데니카
수도원 순례
노비파자르(NOVIPAZAR 70km 1시간 30분)로 이동하여
석식 및 호텔 휴식
호텔의 우리 방 창은 개천 쪽을 향해 있어서 아침에 창밖을 보니, 개천이 불어서 홍수가 난 것처럼 붉은 진흙탕물로 변해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다행이 개인 날씨가 감사하다. 내외가 같이 온 팀의 형제님께서는 아침 수련운동을 하시고 계셨다. 다년간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멜라니아님은 산책을 나서려고 나와 있었다. 같이 개천의 끝까지 걸어가 본다. 호텔앞 공원 끝에는 옛날 성문 같은 것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해서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알고 보니 그 강가의 공원에는 공산당 시절 인물들의 동상이 전시된 역사공원이었나보다. 우리의 역사선생님이신 카타리나님께서 힌트를 주었다.
부지런히 욕심을 내어서 아침 산책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1층 로비에 들어서니 우리가 꼴찌다. 그래도 좋다. 계란 후라이의 색깔이 어찌나 예쁜지 맛도 더 있는 느낌이다. 서유럽 등 다른 곳에서는 전혀 먹지 않았던 요구르트와 우유를 이번 순례 때는 많이 먹었다.
니슈, 이 동네에도 한국과 착각할 정도로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나는 마을들 만큼이나 호두나무가 많다.
아침을 먹고, 우리의 보리스기사님은 그 큰 버스를 호텔에서부터 back 으로 후진해서, 조금 큰 도로까지 나오는 솜씨를 보였다, 와-우! 운전곡예에 맛들린 듯 ... 호호.
▷크랄예보의 미사드릴 성당으로.
그리고 이번 순례 중 처음으로 세르비아 크랄예보의 한 가톨릭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은혜를 입었다. 크랄예보는 ‘왕의 도시’라는 뜻이란다. 왕이 대관식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노오란 들꽃들이 예쁜 정원도 있고, 겉은 진보라색이고 속은 초록색인 자두들이 매실처럼 가득 열려있다. 그냥 먹기에는 시어서 말려서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케이크 등의 장식용으로 쓰인단다. 사실 우리나라의 자두만을 봤을 때 말린 자두의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았었기에, 이번에 이 작고 단단한 자두를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 우리와는 달리 철길 바로 옆에 담도 없이 지어진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기차소음을 생각 않는다면 정말 멋있어 보였다. 모든 집들 한켠에 양, 염소, 타조, 거위 등을 작은 규모로 가축을 키우는 모습들이 유럽의 시골을 정겹게 보여준다. 그나저나 기차가 자주 지나지 않나? ... 마을의 야채가게에 쓰여진 숫자는 쿠나의 가치로, 유로의 1/7 가격이다. 연노랑의 파프리카찜이 아주 맛있었다. 그 위칸의 박스에 있는 것이 속이 초록색인 자두다.
그냥 작은 평범한 도시로 보이는 이곳 거리에 있는 성당에는 미하엘(미카엘)에게 바쳐진 가톨릭교회임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고는 놀랐다.
제대보를 깔아놓고 등도 켜놓기는 했지만 그 망가진 모습에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얀 글라디올러스, 성서(시편)를 들고 있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어린 예수님성상이 옛날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누군가가 기도를 드렸는지 현금지폐가 성상에 놓여있다. 십자가의 길의 각처의 모습도 퓨전화 되기 이전의 그림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오히려 그 성당에 있던 현지 관리인이 우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댄다. 우리가 아마 동양의 최초의 순례단일 것이다. 얼마나 신기할까! 그 흔한 스테인글라스는 고사하고, 성당의 천정은 거미줄로 덮혔고, 벽은 온통 헐어내리고 있었으며, 마이크는 물론 아무런 시설도 없었다. 앉아야할 나무 의자에도 먼지들이 너무 많아서 앉기가 좀 그랬고, 그나마 몇 개의 방석들은 빨아야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공사하는지 철제물이 설치되어 있어, 신부님이 입장하면서 철제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입장할 정도였다. 동방교회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초라한 우리 성당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중앙엔 미카엘천사가 사탄을 밟고 힘 있게 서있는 그림이 있다.
고해실도 있다. 신부님은 오늘 복음과 이 성당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했다,
'어떻게 어울린다는 것인가?' 기막힌 그 강론을 들어보시기를....!
▶오늘 강론.
오늘 복음 마태13,31-35 겨자씨와 누룩의 하늘나라 비유
[오늘 겨자씨와 누룩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실망스럽고 미미한 것으로 쓰시고, 성화시키시어 결실을 맺으시는 하느님을 만난다. 신학원에서 겨자씨를 한 번 심어보셨는데, 건물 2층 높이까지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새가 날아와 깃들 정도는 아니었다. 성경에서와의 차이는 왜일까 생각하셨다. 오히려 누룩은 일상에서 그 놀라운 효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확신에 찬 삶의 의지’를 말함이다.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성공을 거두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이다. 즉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켜져 나무가 되고, 누룩은 온통 부풀어 올랐다. 냄새나고 쓰러져가는 이 성당에서 어떻게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찾을 수 있는가?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하느님의 섭리’가 바로 겨자씨와 누룩이다. 한국도 냉담자가 속출하고 청년들이 성당을 떠나고 있다. 주일학교도 인원이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다. 또한 종교로 인한 살육의 현장을 보고 있는데 신앙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안셀름 그린은 지금이 세상과 누룩이 싸우는 시기라고 표현하셨다. “세상이 누구냐? 인간적 가치냐? 아니다. 잘못된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이다.” 라고 하며,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하셨다. 복음의 기쁨에서는 ‘번영의 신학’을 바꿔야 할 시기라고 한다. 교세 확장이나 성장에 맛들여진 현세의 교회는 이제 겨자씨나 누룩을 시시하게 본다. 그리고 실망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보면서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결실을 맺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 결과를 보려는 급한 마음이다.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려하지 않느다. 이제 번영의 신학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시간 안으로 영원 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 새 복음화이다. 여기 남은 소수의 신자를 걱정하기보다, 하느님께서 하실 성공을 확신하자. 내가 바로 겨자씨며 누룩인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다. 하느님이 이런 나를 통해 성공할 것임을 확신하고 다짐하자. 아멘
앞서간 신앙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걱정할지 모르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우리 순례단의 방문이 겨자씨나 누룩같은 것일 수도 있다. 미미한 24명의 순례단이지만, 하느님이 쓰신다면....!!!
이 폐허 같은 성당을 보면서 신앙의 연속성과 영원성을 깨달을 수 있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이번 발칸의 순례는 초행길이 많기에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영적 성장과 신앙 선조들과의 교류를 깊이 묵상하여 영적 보화를 쌓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신다.]
다들 정성껏 헌금을 봉헌드리며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는 미사를 마치고, 우리 순례팀은 지챠(지카 ZICA)수도원으로 향한다.
▷지차수도원으로.
멀리서부터 보이는 지차수도원은 차-암 예뻤다. 입구 초록들판의 노란 들꽃들이 무척 아름다웠고 싱그러웠고, 화장실도 아주 좋았었다.
지차수도원은 세르비아의 첫 대주교이며,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 사바의 거처이며, 1200년대에 세워진 곳으로서 왕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붉은 색의 수도원 건물과 주위 경관이 너무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번 발칸에서 본 수도원들은 이슬람 등의 공격으로 지붕이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복원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서, 복원의 차원보다는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들 했다. 힘과 용맹, 지혜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문양이 모든 수도원에 있었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역시나 이곳에도 삼종기도종과 일과종이 별도로 있다.
채송화를 보니 그만 가슴이 시리다.
이곳 발칸에서 처음 무궁화를 볼 때도 그랬다.
수녀님들은, 이슬람여인이 히쟙을 두른 것처럼 전신을 검은 수도복으로 휘감았고, 얼굴만 내놓았다. 수녀님들이 40명 가량 머무신다. 직접 짜신 쥬스도 파시고, 직접 가꾸신 아주 핏빛의 빨강색 사과랑 도마토가 성물방 앞 나무박스에 놓여있었다.
수녀님들이 머무신다는 공간을 넘나본다.
수녀원으로 내려가는 입구인데 잘 안보이게 담 밑에 있다.
담 너머로 수녀님이 혼자 기도하는 방이 보인다.
‘거짓말은 약한 자의 무기다’라고 쓰여진 문구가 있다는데....
▶김신부님의 짧은 강의.
[동방교회의 성당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사람이 성당에 일단 들어서면 성화되는 것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으로 거룩하게 된다. 성당이 곧 성수인 셈이다. 그래서 동방교회는 성수 찍는 곳도 성수도 없다. 서방은 제사 개념이 강하고 동방교회의 예식은 성찬잔치와 일치가 강조된다. 이는 예수님을 삶을 따라 살겠다는 약속이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으로 천지창조부터 인간에게까지 이르는 성화들이 어디나 비슷하다. 바오로 비잔틴 영향을 받은 것. 예수님도 만찬 때 잔치를 한 것이다. 제사 개념은 미사경문에서도 1회 나온다. 나머지는 성찬의 신비 즉 하느님과 만나는 잔치로 표현된다. 미사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천상잔치인 것이다. 인간의 청원이 하느님께로 가고, 하느님이 내게 성체로서 내려오시는 것이 미사의 큰 이유이다. 서방교회에서 사제가 벽을 보고 하던 미사에서 신자들을 보고 하는 것으로 바뀐 이유는 제사 개념에서 잔치 개념으로 변화한 것이다. 동쪽을 향한 제대에서 태양이신 예수님이 오시고, 인간과 잔치를 베푸는 성당인 것이다. ‘방향잡기’=오리엔테이션. 회사 신입회 등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이유도 바로 신입생들의 방향잡기를 하는 것이다. 성당입구 양 문에는 양 천사가 지키고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고 죄의 인간이 있다. 정삼각은 완전한 수 이다. 그러나 4기둥인 이유는 인간이 그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겨운 동네 민속음식점으로 간다.
수산나 개신교 가이드는 그 식당을 신중하게 잡고, 우리가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정말 환상적이고 맛있는 빵과 세르비아의 음식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 그 빵 하나 있으면..얼마나 좋을까.) 갓구운 뜨거운 빵, 직접 식탁 위 놋쇠난로에서 끓이는 스프, 옥수수가루로 반죽해구운 과자, 우유로 만든 세르비아만의 치즈, 마늘 닭꼬치, 금방 구운 등심구이, 긴 파프리카찜, 세르비아만의 식초, 올리브유, 달콤한 풀빵튀김(와플보다 부드러운...) 후식, 멜론 등 최고였다.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몽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식탁에서 수산나가이드는 성모님과 가톨릭교리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김신부님은 “원수는 사랑해야하지만, 마귀는 물리쳐야 한다.”며 비교적 간단한 답변을 하셨다. 골롬바 가이드는 나중에, 식탁에서 30년 전쟁이 일어날까봐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알고자하고, 진리를 찾고자하는 주님께 대한 열망은 칭찬하고 싶다. 수산나가이드가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성의를 다한 그분이 정말 예수님(진리)를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유기농으로 직접 가꾸어먹는 세르비아인들은 가난하지만 여유있는 마음으로 살며,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테니스 선수 노바체프 외 스포츠 강국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세르비아인들은 체격이 좋아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게 보니,
자색 목련이 있다. 우리네랑 달리 잎사귀와 꽃이 같이 핀다.
앞쪽 집 뜰에는 우리나라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하얀 무궁화가 있고, 리아트리스가 길게 피어있다. 더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집 개들이 달려나오는 바람에 좀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제 영적으로 베불릴 차례다. 우리는 슈튜데니짜수도원으로 향한다.
▷슈튜데니짜수도원으로.
세르비아 내내 믿음직스럽게 생긴 문화재청직원이 차로 앞장서고, 우리 기사 보리스는 뒤따르는 순례가 이어졌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고 폭우가 쏟아진다.
역시 들어가기 전 입구에 반바지, 팔없는 상의와 짧은 치마, 레깅스는 입장이 안된다는 안내판이 있다.
성 사바가 세운 스투데니카수도원은 세르비아인들에게 국가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유대를 강하게 상징하는 종교건축이다.
우중인데도 참배객들이 있고, 아이가 초를 봉헌하고 있다.
예수님 품에 아주 엎어져 안긴 사도가 요한일 것이고, 팔을 내밀어 빵을 잡는 자가 유다가 아닐까?
이곳의 성모영면벽화에서는 예수님이 안고 있는 성모님의 영혼에 날개가 달려있었다. 성모님의 육신에 향으로 축성하는 사도도 보이고, 성모님의 육신에 손을 대려는 마귀를 칼로 제지하는 천사도 보인다.
프레스코화들이 비교적 잘 보존된 느낌이다.
예전에 식당으로 쓰였다는 곳에 부조화에는 성사바와 그 아버지 스테판 시메온 등이 나온다. 가운데 검은 옷이 성사바다. 식탁은 하얀 대리석이다. 아궁이도 보인다.
성모성당의 조가비문양은 성모님을 상징하고, 진주는 예수님을 뜻한다고 한다.
성요아킴과 성안나에게 봉헌된 성당도 있다.
외람되지만 지성소 안에 카메라를 넣어서 찍어봤다. 붉은 제대보를 씌운 제대와 초와 창문, 벽의 프레스코화들,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뿐이다.
박물관에도 들어가본다. 러시아정교회의 상징인 십자가이다.
비둘기가 웬지...오리 새끼 같은 느낌을 준다. 호호.
▷예정에 없던 또 하나의 그라다쯔수녀수도원.
그리고 원래 일정에는 없는 그라쯔 수도원으로 우리를 안내해준 수산나가이드! 이곳은 유일한 고딕스타일이란다. 개들이 먼저 신이 나서 우리를 반기고, 안드레아가이드도 신이 났다.
5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한 수녀원에서는 곧 저녁기도 시간이라며 같이 기도를 해도 된다고 했다. 수녀님들만큼이나 수도원이 정말 깔끔하고 정갈하다.
기도 종소리가 울리고, (지성소문을 열지는 않고) 지성소 앞 양 옆의 촛불 4개를 밝힌다. 조용한 가운데 수녀님들이 두 분씩 성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8분의 수녀님들과 같이 저녁 성무일도 같은 기도를 20분 간 드렸다. 반주 없이 약간의 음률이 들어간 노래와 평조로 바치는 기도였다. 그렇게 엄격한 느낌은 없었다. 기도가 끝나고 모든 수녀님들이 성전을 다시 나갈 동안 한 수녀님은 끝까지 남아서 기도를 드렸다. 다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기도를 끝내고 초를 끄고 기도 마무리를 한다. 수산나 가이드는 “기도 내용이 시편과 기도문 같은 것인데, 회개, 구원의 기도, 겸손, 구약, 신약이 들어갔다”고 한다. 수녀님들의 복장은 수련생과 정식 수녀님의 의상이 달랐다.
수녀님들이 계시는 곳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손길이 미쳐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꽃꽂이들, 화분들, 깔끔한 내부...
그러나 이 수도원에도 지붕이 없었다.
아, 인간은 불행을 낳고, 그 불행과 죄는 퍼져나간다. 그래서 ‘죄를 끊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었구나. ... <인간이 문제다. 그러나 인간이 문제이기에 인간이 풀 수 있다>고 김신부님이 그러셨다.
수녀님들은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고, 가이드는 시간을 걱정했지만 우리는 무조건 좋아하며, 수녀님을 따라가 수녀님들의 공간이 있는 수녀원 정원 의자에 앉는다. 베란다에 빨간 로즈제라늄들이 늘어졌다.
오래된 종탑도 보이고, 바로 그 위에 더 오래된 성전(이곳 수도원을 짓는 동안에 기도드리던 원래 성전)에 올라가보는 행운도 얻었다.
아, 정말 주님과 나만 만나는 기도의 골방...주님과 나의 신방...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창과 소박한 제대뿐인 곳!!!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런 기도 방을 준비하고 싶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라다쯔수도원의 모습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더욱 아름답다.
그리고 보니, 모든 수도원에는, 그 수도원을 지을 동안 기도드렸던 작은 성당이 있었다. 그랬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서서 처음 보이는 이콘에는 ‘이 성전이 누구에게 바쳐졌는지를 알 수 있는 성인의 그림’이 놓여 있곤 했다.
서둘러서 커피를 마시고, 수녀님들이 만드신 성물들도 구경하고, 난 서방의 스카폴라같은 느낌의 가죽과 매듭으로 만든 성물을 몇 개 샀다.
▷노비파자르로.
노비파자르로 이동하여 저녁 8시 쯤 숙소로 온다. 와...숙소 앞은 차와 좁은 골목, 이슬람의 라마단(=초승달) 기도소리와 사람들로 인해 완전 꽉—찬 느낌이다. 우리의 호프 보리스는 역시 곡예를 하듯이 그 좁은 길에 한 치의 오차나 틈도 없이 그 큰 버스를 주차시킨다. 우리의 박수에 “It’s my job.”이라며 겸손해한다. 가방을 들어서 올려야하는 4성급 호텔, 쇳대키 룸, 식당과 룸이 갈라져 있는 호텔은 오랜만이었다. 밤엔 웬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서 나가지 않았다.
7. 제 7 일 07/29(화) 성녀 마르타 기념일
노비파자르(세르비아)--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
전용버스 전 일
새벽 6시 호텔 미사, 호텔 조식 후
스타리 라스 및 소포차니 수도원 등 순례 후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 혹은 콜라신으로 이동하여
(260km, 4시간 30분 소요 예정)
석식 및 호텔 휴식
새벽 6시 호텔에서의 미사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 요한11,19-27 마르타와 마리아
[어제 그라다쯔 수녀원의 저녁기도를 상기하자. 폐허된 곳에서의 찬미의 인간소리와 온 생애를 바친 찬미를 기억하자. 왜 그들은 그렇게 하는가의 해답이 오늘 독서와 복음에 있다.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던져도 아깝지 않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부활이고 생명이다. 하느님이 먼저 사랑을 시작하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기쁜 소식을 마르타를 통해 계시하시는 예수님, 비통과 절망 속에 있던 마르타는 예수님이 오시자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다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며 원망하지만, 곧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하며 기쁨과 희망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더 큰 신비를 계시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도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러자 마르타는 발전된 믿음으로 희망과 기쁨으로 온전히 변화하여 고백한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고백으로서 성서에 이런 고백이 3번 나온다. 첫째가 마태16,16 베드로의 고백이고, 두 번째는 마르5,7 더러운 영이 들린 마귀의 고백이며, 셋째는 마태27,54 백인대장의 고백이다. 마태오복음14,32에서도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드는 베드로를 구해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는 고백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그 고백을 드리며 살고 있다. 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오늘 요한의 첫째편지가 전한다. “이렇게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물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뭅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안에 머문다. 이는 요한20,31에서 밝힌데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그렇게 믿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고, 신앙의 목적이며,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오늘 영성체송에서 우리와 같이 마르타도 예수님께 “당신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마르타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주심을 체험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에서처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를 고백하며 하느님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이 순례여정에서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것은 주신다.]
아침 식사 전, 조심스럽게 동네 밖으로 나가본다. 이슬람사원도 보이고, 이름 아침인데 야채가게도 열었고, 사람들이 작은 동네 찾집에서 차를 마시고들 있었다. 우리나라 60년대 정도일까!
난 여행을 가서 이런 낯선 곳의 동네들이 이상하게도 참 좋다. 동네길을 걸어다니는 것도 무지 좋다.
버스에 짐을 받아 실어주는 보리스에게 ‘노브로유브로’라고 아침인사를 서툴게 건넨다. 기왕이면 웃어주는 보리스가 최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말이다.
▷스타리 라스의 STUPOVI 스튜포비수도원으로.
스타리 라스의 STUPOVI 스튜포비수도원으로 간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이 수도원의 천정도 역시 전쟁으로 인해 날아가버리고 없다. 화려했던 예전의 모습들은 간데없고...! 7-12명의 수사님들이 계신다. ‘기둥’이란 뜻의 죠르제비 수도원? 성 죠르제(성 게오르규=그레고리오)에게 봉헌된 곳이다. 이나마 보전된 것이 정말 다행이며, 일부 다른 수도원 등으로 이전되었던 프레스코화는 다시 환수하여 복원할 예정을 의논하는 중이란다. 예루살렘의 화가가 이곳 세르비아에 와서 그린 십자가도 있다.
원래는 18m가 넘는 벽이었는데 지금은 5%정도만 남아있다. 머리가 긴-동방사제가 나오셨다. 동방사제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단다.
이곳의 처음 지어져 기도를 드리던 작은 지성소는 가려져 있지 않고 다만 ‘금줄’만 걸어져 있어서, 궁금했던 내부가 다 보였다. 이곳의 제의에는 굵은 십자가무늬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동네가 시원한 녹색이다.
▷베드로성당으로.
9세기 말에 짓기 시작하여 13세기까지 지어진 베드로성당으로 간다. 가장 오래된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중의 하나다. 둥근형태의 바닥이 로마네스크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는 정방형으로 지어지는 세르비아와 다른 형태다. 이곳까지 버스가 올라올 수가 없어서, 우리는 입구에 내려서 걸어올라가고, 버스는 돌아서 주차장에 있다가 나중에 상봉하기로 한다. 보라색 엉겅퀴꽃들이 아주 크게 피어있다. 관광이 아닌 순례이기에, 외지에서의 편안함 보다는 더 다른 가치를 기쁘게 찾고 즐기자는 신부님의 권유가 있었다.
정상에 딱 올라갔는데...성당과 주변의 수많은 비석이 눈에 띈다. 넘어질 듯 즐비한 비석들과 성당은 정말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았다.
이렇게 동방교회의 성전이 작은 이유를 질문했다.
성당은 마을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고, 수도원은 하느님께 집중하고 찬양드리는 곳이기에 넓을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성전 입구에 성베드로와 성바오로가 어찌나 다정한 포즈로 있든지...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기에는 산타클로스같이 인자하게 생기신 동방사제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신다. 하지만 나중에는 성전 위의 다락 공간에도 올라가보라고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성당이기 때문에 동방수도원들에서 볼 수 있는 지성소 앞의 둥근 촛대는 없다고 했다. ‘이슬람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김신부님의 질문이 있었다. “루터도 ‘가톨릭은 내부의 적이고, 이슬람의 사탄 즉 마귀라고 했는데, 가톨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신부님의 질문에 동방사제는, 질문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것 같았고, 가톨릭사제라고 대답하는 가이드에게, 단정적인 답은 좀 피하는 듯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악은 분별해야하고, 거짓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악은 미워하지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소포차니 수도원으로.
이제 소포차니 수도원으로 출발한다.
동방교회들은 수도원마다 자기 나라의 성인이나 왕등을 존경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김신부님께서 동방교회가 민족종교의 성격을 띈다고 하시는 것이다.
20세기의 프레스코화 경연대회에서 세르비아가 1,2,3위를 다 휩쓸었단다. 이곳의 성모영면프레스코화는 경연대회에서 1등을 받은만큼 특별했다. 13세기의 원작을 잘 보존했고, 보시다시피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상이 웬지 성모님의 조촐한 느낌이 묻어나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수도원의 지붕도 250년간이나 없었단다. 12사도의 성화.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로 이끄는 7가지의 칠죄종 즉 교만, 인색, 식탐, 탐욕, 질투, 분노, 나태’에 묶인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초를 봉헌하는 방법도 이처럼 물에 담긴 모래, 대리석 위, 촛대꽂이 등..다양했다. 이 초들은 밀납으로 만든 것으로서 구부러지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수사님들의 기구를 바라며 아이들의 티셔츠를 샀다.
마침 한 수사님이 창에서 바라보고 계시길래 손을 흔들었더니, 답례로 손을 흔들어주신다.
마르타언니 축일이어서 식당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 민족식당의 터어키빵도 일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세르비아에서의 음식과 크로아티아의 해물요리가 최고였다. 이번 순례에서는 먹는 것 때문에 힘든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맛있는 음식으로 호사를 누렸다.
‘두바르다’는 낮 인사다.
피부에 닿는 해가 너무 뜨거워, 계란을 돌에다 후라이해도 될 듯하다.
영원한 도움의 어머니여, 길의 안내자시여,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첫댓글 그 호텔 앞쪽 공원에는 그레고리오교황과 관련된 “X와 P가 교차된 십자가, 이 문양으로 승리하리라
그레고리오 교황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대제 입니다.
니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향입니다.
어머머....호호호!!!
신부님 감사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전신부님은 역시나 오르간의 대가이시다.
4차때 발칸에서의 인연으로 댁을 방문했었는데
마침 새로운 오르간이 들어오는 날이어서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기존의 것은 한티성지에 기부하셨단다.
신부님의 입맛이 까다로워서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김데레사 자매님
두분이 정성껏 만든 만두로 호사를 누리고 즐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겨자씨이고 누룩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께서 이런 나를 통해 성공할 것임을 확신하며 여정을 계속한다.
그랬었군요, 전신부님께 다녀온 분들은 만두 얘기를 하시네요.
제가 언뜻 듣기로는 요리를 전신부님께서 더 잘하시는 걸로 ... !!!
이해를 잘못했나봐요.
암튼 정유스티나언니 말대로 한 번 실행해볼까요?
덕분에 함께 순례한 듯 합니다.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가는 과객이지만 한마디 거들어도 될까요?
저 위에 크랄예보 성당의 성인은 성 요셉이 아니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가 아닐지요.
시편집을 들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인은 거의가 안토니오지요.
더욱이 프란치스코회 수도복과 백합까지!
무례한 참견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사 자매님...
발자국에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순례를 함께 떠난 적은 없지만
주님의 정원 이곳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축일 축하드리며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나,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서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옛날 성상이라서 그런가?'
하고, 예수님과 같이 계시기에 성 요셉이라고만 생각했네요!
고맙습니다.
@수사모 늘 고맙습니다~
맞습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입니다. 아마도 황폐하고 다 쓰러져가는 성당을 보면서 성요셉 성인의 전구가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근데, 신부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상이 시편집과 아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연이 있겠네요!?
@양사비나 프란치스꼬 수도복을 입은 성안토니오 아기 예수님, 손에 든 백합화는 성인의 초상에 등장하고 있는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성인은 다정스러운 자세로 아기 예수님을 왼팔로 포옹하고 있다. 성인이 아기 예수를 동반하고 있는 모습은 이런 전승에서 연유된 것이다. 성인을 존경하던 어떤 신자가 성인을 방문했을 때 , 이 신자는 아기 예수님과 이야기 하고 계시는 성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것은 성인은 설교자로서 바쁜 여정의 삶에서도 항상 주님과 더불어 그 안에 사셨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기 예수님은 책 위에 서 계시는데, 이것은 성인이 해박하고 명민한 천상의 지식을 지니셨던 교회 학자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johanneskim 아-하, 그랬었군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께서 그런 분이셨군요.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만 열심히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전구드렸는데...
이렇게 알고나니 더 친근감이 듭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사랑하올 신부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트!
@양사비나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성인을 찾으셨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성인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수호성인'이라고 하니까요.
시편집을 들고 있는 것과 관련된 얘긴데요.
한 수련자가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의 기도로 다시 돌려주게 됐다는 이야기 덕분에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수호성인’으로도 불린다고 하더군요.
@아인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성인의 팬이시가봐요.
정말 박학하시네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올바른 것으로 수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순례 때, 갑작스런 폭우 속에서 놓친 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열심히 파도바의 안토니오성인께
전구를 드렸었습니다.
정말 다음 순례 때에는 같이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