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만.식.계
2006. 5. 13(토) 맑음~흐림
장끼님과 둘이서
08:00 보문산 입구 -- 08:40 보문산 시루봉(△457.4m) -- 08:45 보만식계 출발 -- 08:55 429봉 동구경계 -- 09:35 구완재 -- 09:45 오도산 -- 10:35 378봉 -- 11:05 금동고개 점심 11:40 -- 12:00 통신 기지국 -- 12:25 472봉 -- 12:45 떡갈봉(△493m) -- 12:53 △490.0봉 -- 13:45 372봉 -- 14:35 383봉 -- 14:50 시계봉 15:00 -- 15:10 안산(424) -- 15:25 먹치 도로 -- 15:45 465봉 -- 16:00 만인산(△537.8m) -- 16:30 휴게소 석식 18:00 -- 18:40 정기봉(△580m) -- 19:00 501봉 -- 19:15 510봉 -- 19:28 골냄이고개 -- 19:55 △541.4봉 -- 20:20 머들령 -- 20:35 410봉 -- 20:44 명지봉 -- 20:50 452봉 -- 21:25 봉 닭재1.5 -- 22:00 닭재 간식 22:10 -- 22:23 철탑 -- 22:55 망덕봉 -- 23:08 철탑 -- 23:22 산내터널 -- 12:00 원두막 김밥 12:10 -- 12:35 동오리고개 -- 12:50 식장산 능선 -- 01:25 식장산 해돋이전망대(△597.5m) -- 01:45 활공장 01:55 -- (02:00 알바 02:30) -- 02:40 도로 -- 02:50 구절사갈림길 -- 03:20 세천유원지 입구 -- 03:30 4번국도 -- 03:40 줄골 도로 -- 03:57 갈현성 -- 04:07 비룡임도 간식 04:20 -- 04:42 능성(△313.8) -- 05:08 길치도로 -- 06:15 절고개 -- 06:25 임도삼거리 -- 06:45 계족산(△423m) 봉황정 -- 07:10 용화사 (도상거리 약 51km, 대기1시간, 알바30분 포함 총 23시간10분 소요)
보만식계는 보문산에서 만인산까지 내려갔다가 식장산을 거쳐 계족산으로 돌아오는 산행이다. 보문산 시루봉에서 계족산 봉황정까지는 도상거리 48km, 접근로를 합하면 약 52km정도다. 전통대로 한 번에 마치려면 22시간에 야간산행도 불가피하다. 우리 산행원칙에는 맞지 않지만 꼭 한 번 만이라는 조건으로 산행을 준비했다. 장끼님과 두 달 전에 같이 가기로 하고 날을 잡았다. 5월13일이면 밤에 잠이 들더라도 사고 당할 염려는 없고, 또 휴일 중 달이 가장 밝은 날이다.
약속한 8시 정각에 보문산 입구로 갔더니 역시 장끼님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무사완주를 격려하고 준비운동 겸 천천히 시루봉으로 올라갔다. 야외음악당을 지나가는 길이 시루봉까지 최단거리지만 능선까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걸었더니 40분이 걸렸다. 예상보다 10분이 단축되었다.
시루봉 보문정(△457.4m) 날씨는 무척 좋았다. 이틀전만해도 전국적으로 비가 조금 내린다고 했었지만 간밤에 몇 방울 뿌린 것으로 끝났다. 새로 돋아난 잎사귀는 아침햇살에 연둣빛이 더욱 눈부시고 나뭇가지에 살랑대는 바람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날씨였다. 새벽녘이나 다시 만날 시가지를 한 번 휘둘러보고 박무 속에 아스라이 놓여있는 만인산을 향해 보만식계 첫 걸음을 시작했다.
서쪽으로 뻗어가는 보문사지 갈림길을 지나고 두 번째 이정표가 있는 429봉까지는 시루봉에서 10분이 걸렸다. 동쪽으로 내려가는 호동(범골)3.1km 이정표는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대전둘레산길잇기’ ‘오도산2.4km’라는 안내가 더해져 있었다. 이곳부터 보만식계 마루금은 중구와 동구를 가르게 된다. 오도산 길을 따라 30여m 아래에 또 다른 이정표가 남쪽을 가리킨다. 길이 잘 나지 않았던 예전에 알바를 했던 곳인데 정말 필요한 지점에 이정표를 설치해 놓았다.
이정표부터 본격적인 보문산 내리막이 시작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오도산과 구완터널 부근 고속국도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송전탑 옆에 놓인 바위는 가장 좋은 조망지다. 내리막이 누그러지면서 동쪽 골짜기로 밭이 보이고 길 옆에는 낮은 철망이 이어진다. 전에 염소목장 정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몸에 풀렸는지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초록 숲을 지나가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줄을 늘어뜨린 채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애벌레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털어내어도 금세 대여섯 마리씩은 바지에 붙어 있었다.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고속도로가 지척에 보이는 묘지 주변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429봉 근처도 마찬가지였지만 골짜기에서 올라온 산불이 아니라 능선만 불타 있었다. 산에 온 사람이 실화를 한 모양이다. 구완터널 바로 위에는 오래된 고갯길이 있다. 고개를 넘으면 오도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르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오도산 능선에는 시원한 조망바위와 아담한 돌탑이 있었다. 보문산 능선길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곳이다. 간식을 먹고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산행 첫 휴식을 즐긴다. 혼자 산행하면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는데, 둘이 산행하게 되니 이런저런 진솔한 이야기가 좋은 것 같다. 오늘 산행에 대한 각자의 의미와 준비 사항은 보문산 오름길에서 끝났고 이제 가슴에 감춰 둔 이야기도 나왔다. “식장산이 바로 저 건너편인데 그냥 질러가면 안 될까요? (장끼님 농담)” “배부르면 꾀만 늘어갈 테니 어서 출발합시다.”
강바위산을 비껴 남쪽으로 내려가던 길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능선은 여전히 남쪽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알바 단골지점이다. 잘못 붙어있는 표지기를 다시 달아 놓고 목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내려가니 소호동 신완전마을과 금동고개로 가는 도로가 왼쪽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378봉에서 뒤돌아보면 동쪽으로 휘둘러 온 능선 끝에 오도산과 보문산이 일직선으로 보인다.
금동고갯마루에는 철근으로 연결되어 소나무 세 그루가 예나 다름없이 서 있었다. 예정보다 30분가량 일찍 도착했지만 원두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15시간이 넘는 장거리 산행이 처음이라 일부러 술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장끼님은 막걸리까지 준비해 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면서 소주를 꺼냈다. 땀 흘린 술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도로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온통 밭으로 개간된 커다란 언덕을 넘어야 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곳에 통신 기지국이 있었다. 오르막 비탈이 시작되면서 걸음이 늦어졌다. ‘김밥을 조금만 덜 먹을 걸, 소주 한 잔만 덜 먹을 걸’ 매번 똑같은 후회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가파른 길은 다행히 봉우리를 살짝 우회하고 있었다. 472봉에는 봉수대 터가 있고 만인산과 정기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가랑잎이 많으면 떡갈봉(△493m)이 가까워진 것이다.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삼각점이 놓여 있었다. 490봉인가? 5분 뒤에 개발제한구역 표지가 나타났다. 그럼 지도에 없는 그 삼각점은 바로 떡갈봉이다. 5분 뒤에 봉우리 주변이 벌목된 △490.0봉이 나타났다.
1시간 가까이 지도에 표기된 뚜렷한 봉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둥굴레꽃과 은방울꽃이 흐드러지게 핀 호젓한 숲이 시내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즈넉한 곳이었다. 나는 양 무릎과 왼발이 약하고 장끼님은 다이어트로 체중이 많이 줄어든 탓에 빠르게 갈 형편이 못되니 이런저런 세상살이 이야기가 오히려 즐거웠다.
가파른 372봉을 넘으면서 오른쪽 골짝 어남동 기계소리가 요란해지고 슬그머니 봉우리마다 기복이 심해졌다. 383봉을 넘고 또 제법 가파른 시경계봉을 올라서니 돌로 쌓은 진지가 나타났다. 이곳부터 마루금 오른쪽은 중구 지역이 끝나고 금산군 복수면이 시작된다. 시계산행에서 다시 걸어야할 길이다.
시경계봉에서 바로 남쪽에 있는 안산(424m)에서는 상소동 골짝 건너편으로 정기봉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내리막이 시작되면서 만인산도 지척에 있었다. 먹치고개는 도로가 잘 나 있었다. 깊게 파낸 도로 덕분에 예전과 달리 절개지를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더하게 되었다.
만인산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장끼님이 걱정했던 대퇴근 인대 통증이 나타났다. 대퇴근은 사람 몸에서 칼로리를 가장 많이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비탈길에서 결정적인 힘을 쓰는 근육이기 때문에 산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제 내리막에서는 무릎이 약한 나 때문에 늦어지고 오르막에서는 장끼님이 뒤쳐지게 되었다. “먼저 휴게소에 가서 기다리세요.” 애초에는 태실에서 저녁밥을 먹기로 했었지만 장끼님은 휴게소에서 야간산행 준비물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저녁장소를 휴게소 앞으로 바꿨었다.
만인산 오르막이 누그러지는 465봉을 넘자마자 뜻밖에도 느낌표님을 만났다. 우리를 만나려고 태실에서 올라와 기다리고 있었단다. “먼저 가서 저녁밥 준비할 테니 장끼님과 같이 오세요.”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바위가 많아졌다. 만인산 부근은 길바닥이 잘게 부서지는 검은색 암반으로 덮인 것이 특이했다. 만인산 정상(△537.8m)은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있었다. 낮은 구름과 엷은 안개 때문에 깨끗하진 않지만 지나온 보문산까지 산줄기와 오늘 밤에 지나야할 식장산까지 산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바로 옆에 서대산이 우뚝하고 대둔산 암벽도 뚜렷했다. 역시 봉수대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보만식계 최남단 지점에서 월봉산으로 뻗어가는 계족기맥 능선이 이어지고 남쪽 경계는 금산군 복수면에서 추부면으로 바뀌었다. 내리막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했다. 길옆에는 들풀 이름표를 적은 작은 팻말이 줄지어 나타났다. 추부터널이 가까워진 곳에서 희미한 하산로를 찾아냈다. 임도를 똑바로 가로질러서 휴게소 화장실 옆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에 내려서는 마지막 지점에 한 길 넘는 절개지가 있는 것이 흠이었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16시30분, 정확히 예정시간이었다. 휴게소 건너편 숲속 평상에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 장소까지 예정보다 30분 일찍 진행하고 있다고 전화했더니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단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중학생 남매가 보였다. 마누라보다 더 일찍부터 누굴 기다리고 있었단다. 물어보니 역시 장끼님 자녀들이었다. 15분 뒤 장끼님과 느낌표님이 도착했다. 밥을 먹으면서 배낭을 꾸린 뒤에 아이들이 탄 버스는 떠났는데 아차! 랜턴을 그냥 돌려보냈단다. “내가 가서 받아 올게요.” 느낌표님은 바로 수저를 놓고 있어 섰다.
랜턴을 건네받고 출발한 시각은 18시 정각, 예정보다 1시간이 지체되었다. 느낌표님이 알려준 터널 옆길을 따라 갔더니 정확히 임도가 태실로 넘어가는 지점에 닿았다. 임도 위에는 유격훈련 줄이 걸려 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태실을 돌아보고 정기봉으로 가는 길에도 각기 다른 훈련시설이 있었다. “이제부터 수봉님은 먼저 가세요.” 며칠 전 산행일정을 보냈을 때 장끼님은 2시간정도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다리에 탈이 났으니 그 예상이 확실해졌단다.
정기봉(△580m)에는 봉수대터 안내판과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구름이 낮아졌는지 식장산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열엿새 날 달빛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어차피 어둠 속에 지나야할 길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501봉에는 작은 돌탑과 청소년수련원 하산로 이정표가 있고 길은 북동쪽 510봉으로 향했다. 510봉 막바지를 지날 때 장끼님 함성이 들려왔다. 501봉이었다. 휴게소 출발 꼭 1시간이 지난 시각이다. 501봉을 15분 전에 통과했으니 시간당15분씩 차이가 나게 될 것이다.
골냄이고개로 떨어지는 내리막은 가파르고 길었다. 게다가 건너편 511봉은 훨씬 더 높고 가팔랐다. 결국 길마저 산허리를 서쪽으로 돌아가더니 묘지가 있는 정반대 쪽에서 봉우리로 이어졌다. 꼭대기에도 묘지가 있었다. 평탄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541.4봉과 도중에 상소동산림욕장 하산로 표지가 있었다. △541.4봉에서 랜턴을 켰다. 이제부터 불빛이 비치는 곳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앞쪽에서 차량소리가 크게 들리고 불빛 아래는 황사처럼 송아 가루가 뽀얗게 날리고 있었다.
봉화터 봉우리와 산림욕장 하산로 이정표를 한 개 더 지나고 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가는 머들령으로 내려섰다. 내리막은 역시 가파르고 길었다. 다시 오르막, 410봉 중턱에 봉수대 터와 같은 돌무더기가 보였다. 명지봉을 지나고 452봉을 넘을 때 장끼님의 전화가 울렸다. 머들령에 도착했고 501봉부터 굳어졌던 다리근육이 잘 풀렸단다. 머들령 통과시간도 30분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천천히 가다가 닭재에서 다시 연락할게요.” 다행이다. 닭재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식장산에서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사봉 능선 분기점을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안내판에는 ‘봉화터’로 표기되어 있다. 긴 내리막 -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단순히 길게만 느껴지는 - 끝에 닭재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기를 꺼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무의자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김밥을 먹으려고 준비했었지만 사탕 같은 행동식을 계속 먹어서인지 도무지 식욕이 나지 않았다. 식수 한 병과 간식을 길에 꺼내 놓고 나무의자에서 일어섰다. 더 기다리기엔 바람이 너무 찼다. 물 한 병이면 장끼님도 샘터에 다녀오지 않더라도 식장산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닭재에는 넓은 고갯길이 지나가고 10여 미터 거리에 멋진 쉼터 원두막도 있었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성터가 남아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철탑 아래서부터 남대전IC 부근 고속도로 불빛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시내가 가까워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멀지 않은 안부에 이정표가 보였다. ‘금산국도0.5km', 17번국도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었다. 전에 마누라와 함께 계족산에서 식장산을 넘어오다 하산한 곳이었다. 이제 식장산은 7.6km다.
망덕봉(439m) 오르막은 매우 가파르고 길었지만 꼭대기에는 아무런 표지도 없었다. 철탑을 통과할 때 장끼님 전화가 울렸다. 다리에 쥐가 나서 다시 늦어지고 있단다. 체중을 줄이면서 근육이 나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꾸준히 먹으면서 속도를 많이 늦추세요.” 낭월임도, 산내초등학교 하산로 이정표를 지나고 산내터널도 지났다. 봉우리를 한 개 넘었더니 닭재와 똑같은 원두막이 보였다. 12시 정각이다. 억지로 김밥 몇 덩이를 먹었다. 간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물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식욕이 전혀 없었다.
원두막에서 일어나자마자 임도종점이 나타났다. 나무의자와 조금 앞에 철탑이 서 있었다. 동오리고개부터 식장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면서 속도도 뚝 떨어졌다. 올라갈수록 안개와 바람이 심해졌다. 능선에는 세천유원지4.0km 이정표가 있었다. 세천으로 내려가는 가장 짧은 길이다. 방송국 통신탑은 안개에 싸여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참호와 울타리를 지나 해돋이전망대에 도착하니 커다란 태극기가 무척 반가웠다.
정상 시설물 울타리를 따라 헬기장으로 나오니 뜻밖에 패러글라이딩활공장에 불빛이 밝았다. 야경을 즐기려는 차량이 그득하고 포장마차도 있었다. 따뜻한 어묵국물을 서너 잔 마시고 나니 매스껍던 입과 속이 개운해졌다. 이 포장마차는 눈비만 오지 않으면 항상 문을 연다고 한다. 도로에는 내려가는 차량이 많을 듯하여 골짝 길로 하산하려고 배낭을 들고 돌아보니 차는 석 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으면 밝은 길로 내려가자! 포장마차 뒤쪽에서 마루금을 따라 내려가다 도로로 내려서기로 했다. 그 곳에는 돌과 시멘트로 만든 폐도로가 있었다.
장끼님은 도로에 내려서는 부분이 좋지 않다고 했었지만 시작지점은 괜찮았다. 몇 년 전, 딱 한 번 이 길로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길이 아주 좋아졌다. 도로가 예상과 달리 일찍 나타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누군가 길을 다듬은 듯 수풀을 잘라냈고 오래되지 않은 묘지도 나타났다. 그런데 가로등이 늘어선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는 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인지? 오른쪽에 있는 것은 비룡IC 뿐인데... 배낭 속에 쳐 박아 놓았던 나침반을 꺼내 지도를 자세히 보니 아래쪽에 있는 것은 판암IC이고 이 길은 판암동과 가오동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되돌아 올라가는 길은 유난히도 비탈이 심했다. 오늘 지나온 어떤 봉우리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17분 만에 폐도로가 있는 바른 길을 찾았다. 랜턴 불빛이 비치는 길만 보고 따라 갔다가 30분 정도를 허비했다. 역시 도로는 멀지 않았다. 때마침 지나가는 차량불빛이 길을 안내했다. 그러나 도로로 내려서는 곳에서 또 길을 놓쳤다. 오른쪽 낭떠러지를 피해서 무작정 왼쪽으로 내려갔더니 공교롭게도 방석망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역시 장끼님 이야기가 옳았다.
콘크리트 도로를 걷자마자 발바닥이 불난 것처럼 뜨거워졌다. 왼쪽 발목과 뒤꿈치는 보문산 시작부터 통증이 있었지만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양 무릎도 탈이 없었다. 그러나 낭월임도부터 따갑기 시작했던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은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물집이 생긴 모양이지만 이런 경험도 너무 오래된 터라 밴드나 붕대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물집이 생기든 터지든 고통만 있을 뿐 수명에 지장 없고 후유증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3시가 다되어가는데 오가는 차량은 왜 그리도 많은지... 골짝 길로 내려가지 않은 것을 또다시 후회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하늘에는 언제부터인지 둥근달이 걸려 있었다. 세천유원지 입구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새벽 이 시각까지 잠들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걱정과 달리 졸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갓길로 4번 국도를 넘었다. 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래도 이 길이 줄골 마을로 가는 가장 짧은 방법이다. 답사했던 대로 마을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 빈집 앞에서 산으로 올라갔다. 산등성이에는 철탑과 오른쪽으로 과수원 철조망이 있었다.
갈현성이 있는 봉우리를 넘고 비룡임도 기념비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전화기를 꺼내는 순간 마침 장끼님 전화가 왔다. 세천유원지 입구를 지나고 있단다. 고속도로에서 줄골로 넘어가는 길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예정대로 동신고 담장 옆에서 올라가겠단다. 임도에서 능성 안내판이 있는 △313.8봉으로 가는 길은 예비군 훈련장 시설물이 계속 이어졌다. △313.8봉에는 헬쓰장처럼 운동기구가 많았다.
길치도로에서 랜턴을 껐다. 질현성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오른쪽 길을 조금 따라 가다가 ‘보현사’ 안내판이 나타나기에 되돌아 내려와 가운데를 골랐더니 봉우리를 우회하여 길치고개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본의 아니게 봉우리 하나를 피해갔지만 그 다음 오르막도 만만치 않았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계족산 능선은 가파른 봉우리의 연속으로 보였다. 362봉을 넘어설 때 아침안개에 숨어 있던 해가 눈부시게 비치기 시작했다.
절고개는 비래사 하산로와 임도가 있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봉우리를 더 넘으면 임도삼거리다. 절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거리는 오히려 더 멀 것이다. 다시 오르락내리락, 봉황정이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은 더 많아졌다. 마지막 돌계단, 봉황정에 오를 때마다 가장 숨이 차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발짝 또 한 발짝에 보만식계 종착점은 가까워졌다. 계족산 정상에 올라서니 6시45분, 보문산 시루봉을 출발한지 22시간이 지났다.
집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고 장끼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해장국을 같이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샤워하고 다시 용화사로 올라가서 전화했더니 장끼님은 임도삼거리를 지났다고 했다. 봉황정으로 올라가서 다시 전화해보니 임도삼거리는 잘못 알았던 것이고 아직 절고개를 넘지 못했단다. 대퇴근이 뭉칠 때마다 멈춰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임도삼거리로 내려갔더니 마침 아주머니가 컵라면 좌판을 펴고 있었다. 시장하던 참에 아주 잘 됐다. 한 개를 먹고 또 한 개에 물을 부어놓고 기다렸더니 임도로 걸어오는 장끼님 모습이 보였다. 막걸리부터 한 잔 씩 들이켰다. 근육마사지를 해 가면서 봉황정에 도착한 시각은 9시50분이었다. 장거리 산행경험도 없고 또 급격한 체중감량 상태에서 보만식계를 완주한 장끼님의 열정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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