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훈민정음이 뭐예요?
손자 손녀를 둔 독자를 위한 2019년 10월호 공무원 연금지 교육 꿀팁
이번 한글날에는 우리가 직접 손자 손녀들에게 우리글을 자세히 알려주면 어떨까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완성한 1443년으로 돌아가 봅니다.
‣할머니,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드셨죠?
‣세종대왕이 1443년 12월에 만든 우리글의 정확한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요?
‣그래. 아마 우리 조상들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비슷한 말을 썼을 거야. 하지만 그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한자를 빌려서 썼단다. 너도 알다시피 한자가 얼마나 배우기 어렵니. 그건 한자가 소리와 상관없이 뜻을 나타내는 글자(표의문자表意文字)이기 때문인데 논일, 밭일, 집안일만으로도 바쁜 일반 백성이 언제 글자의 모양과 뜻을 외워서 쓸 수 있겠어. 그래서 세종대왕이 말소리를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표음문자表音文字), 훈민정음을 만드신 거지.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맞죠?
‣잘 알고 있구나.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아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것이 세종대왕이 직접 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이야.
훈민정음은 창제 후 3년 만인 1446년 음력 9월에 반포됐는데 그때 문자와 똑같은 이름의 책자 <訓民正音>도 편찬됐어. 이 책의 “國之語音이 異乎中國ᄒᆞ야”로 시작하는 대목이 너도 알고 있는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와 같은 내용이란다.
‣왜 훈민정음을 반포하면서 한자로 책을 만들었어요?
‣음 이제 막 발표된 글자로 책을 만들면 그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신하들에게 그들이 잘 아는 글로 새로운 문자를 만든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있었단다. 그때는 우리가 중국의 제도와 문자를 따르던 시대였기 때문에 한자와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예의가 아니라면서 신하들이 강하게 반대했거든.
‣그럼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만든 게 아니에요?
‣문자 ‘훈민정음’을 만든 분은 세종대왕이란다. 따라서 ‘한글’이나 문자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만들었다는 말은 잘못된 거야.
하지만 책자 <훈민정음>은 ‘예의例義’ 부분은 세종대왕이 짓고, 글자를 만든 원리를 해설한 ‘해례解例’ 부분은 집현전의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선로, 이개 등 학자에게 맡겻으니 같이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 대신 이때는 문자와 책자를 구분해서 사용해야겠지.
‣세종대왕이 지은 ‘예의例義’는 어떤 내용이에요?
‣새로운 문자를 만든 이유와 자음‧모음의 음가音價, 운용법이 담겨 있단다. 일반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하면 ‘예의’와 ‘해례’를 합쳐놓은 책을 가리키고 <훈민정음 언해본>이라고 하면 한자로 쓰인 해례본의 주요 내용을 우리글로 풀어 쓴 책이란다.
‣문자를 발명하다니 어떻게 했을지 너무 신기해요!
‣발음기관의 모양을 연구해서 만드셨다고 해. 먼저 자음의 기본자를 ‘ㄱ, ㄴ, ㅁ, ㅅ, ㅇ’으로 정하고 ㄱ은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ㄴ은 혀가 구부러지는 모양을, ㅁ은 입 모양을, ㅅ은 이(齒)의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지.
모음의 기본자는 ‘ㆍ, ㅡ, ㅣ’야. ㆍ는 하늘을, ㅡ는 평평한 땅을, l는 사람을 뜻한단다. 이 기본자들에 획을 더하거나 문자를 합하는 방식으로 다른 문자들을 만들었어. ㄱ에 획을 더해 ㅋ을 만들고, ㄱ에 ㄱ을 합해 ㄲ을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야.
훈민정음은 자음 17자와 모음 11자, 총 28자로 구성돼 있는데 지금은 세월 속에 쓰임새가 줄어든 4자()를 제외하고 24자가 사용되고 있단다.
‣그런데 왜 지금은 ‘훈민정음’이라고 안 부르고 ‘한글’이라고 해요?
‣훈민정음이 반포되자 양반들은 한자는 ‘진서(眞書’, 훈민정음은 ‘언문(諺文)’이라고 낮춰 불렀단다. ‘언(諺)’자가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 속된 말을 뜻하는 글자거든. 이렇게 우리글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훈민정음’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비로소 국가의 문자로 인정을 받게 된단다. 다른 나라와 교류가 늘어나면서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글은 ‘국문’, 우리말은 ‘국어’라고 부르고 공문서에도 우리글을 쓸 수 있게 됐어. 그런데 그것도 잠시, 1910년 일본이 우리 주권을 강제로 빼앗으면서 ‘국어’와 ‘국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됐고, ‘한글’이란 새 이름이 등장하게 됐단다.
‣그럼 ‘한글’이란 이름은 누가 지은 거예요?
‣주시경 선생님으로 보이는구나.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1908년 8월 ‘국어연구학회’를 만들었는데 일제 탄압으로 1911년 9월에는 ‘배달말글몯음’으로, 1913년 3월에는 ‘한글모’로 학회 이름을 고쳤거든. 한글모는 ‘한글’이란 명칭이 사용된 최초의 기록이라 그렇게 추측하는 거란다.
‣한글날도 주시경 선생님이 만들었나요?
‣주시경 선생은 1914년에 돌아가시고, 선생의 제자들이 1921년 ‘조선어연구회(현재의 한글학회)’를 만들었는데 이 단체가 한글날 제정에 큰 기여를 했단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년이 되는 1926년 11월 4일에 ‘가갸날’ 기념식을 최초로 주최했거든.
기념일 이름은 조선어연구회가 동인잡지 <한글>을 창간한 이듬해인 1928년부터 ‘한글날’로 바뀌었단다. 날짜는 세종실록을 근거로 1446년 음력 9월의 끝날(29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보고 이날의 양력일인 11월 4일로 결정한 것인데, 음력을 양력으로 고치자는 여론에 따라 1931년부터는 10월 29일(율리우스력 기준)에, 1934년부터는 10월 28일(그레고리력 기준)에 기념식을 개최했다고 해.
그러다 1940년 7월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비로소 발견된 거야. 이 책엔 훈민정음 반포일일 ‘정통 11년 9월 상한’으로 기록돼 있어 1945년부터는 상한(上澣, 1일부터 10일까지)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거란다.
‣한글날‘이 이렇게 어렵게 결정된 줄 몰랐어요.
‣그래. 우리 조상들이 ‘언문’으로 괄시받던 훈민정음을 국문으로, 한글로 지켜왔으니 우리들도 잘 보전해야겠지?
‣할머니, 저 한글을 좀 더 알고 싶어요!
‣기특하기도 하지. 그럼 우리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볼까? 그곳에 가면 세종대왕이 어떤 과정을 거쳐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또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자인지 더 자세히 배울 수 있을 거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 재미도 있고, 가기 전에 디지털 한글박물관(archives.hangeul.go.kr) 누리 집에서 예습하고 가면 더 좋겠지? 지금 같이 한번 들어가 볼까?
취재‧글/전은선 객원기자vhdpqj@naver.com 자료 참고/디지털 한글박물관 누리집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국립한글박물관,서강대학교 루욜라도서관
출처 : 공무원연금지 vol.424/20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