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나와 남을 살리는 시 <시 월평>
李 惠 仙 (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인의 인간소외는 어제 오늘 대두된 문제가 아니지만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해서 탈脫식민지국으로서는 최초로 ‘무역 9대국’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건국 63년간 수출이 2만 7천 배 증가하여 아프리카의 우간다 수단 튀니지 카메룬보다도 뒤지던 세계 100위 수출국이 이제는 7위로 올라서고, 1962년 1인당 국민소득 87달러의 세계 최빈국이 200배 이상 증가한 2만 759달러로 선진국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수치만큼 국민의 행복지수도 정비례하는 것일까 하는 데는 모든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아니 아프리카의 최빈국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여러 나라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수립 후 나라경제가 이렇게 발전하는 동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나친 고속 발전으로 인해 자살율은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높아지고, 합계출산율은 1.2명으로 세계 최 하위권으로 떨어져 노령화사회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고 청년들은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캥거루족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동반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시인들은 앞날을 예측하는 예언적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의 비관적 문제들을 잘 인식하여, 그 문제들을 에둘러서 비판하고 지적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한 해가 기울어가는 12월호에는 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모순이나 어리석음 등을 풍자와 해학과 알레고리를 통해 에둘러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풍자의 목적은 폭로나 비판이 아니라 어리석거나 부도덕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여 당위적 현실을 지양하는 개선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있어야할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며 인간이 행하는 것 지향하는 것 인간의 모든 행위에 관심을 가진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람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 남을 죽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인이 작품 속에서 이 같은 방법으로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표출할 때 그 의도는 자기성찰에 이어서 사회 전체의 성찰의 계기로 삼아 개인과 사회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살려나가는데 그 의도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난 실패였다. 맘 속 깊이 꼬부라진 대꼬챙이가 들어 있어 보는 사람, 지나는 사 람
걸리면 물고 늘어졌고, 누군가의 제안을 뒤틀었고, 시책이건 국책이건 배알이 틀려 씹 어댔다.
(중략)뻥 뚫린 가슴으로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에 남루한 내 프로필, 쌍판 하나 제 대로 갖추지
못한 처지를 한탄하곤 했다. 남모르게 피 토했다.(중략)
오 그런데/ 눈부신 과학 발전시대, 전철 도어 앞에/
내 과거를 싹 없애준다는 광고지 붙어 있네/
광대뼈 싹〜 / 사각턱 싹〜 에프터의 난 얼짱/ 내가슴 속 못꼬쟁이 싹〜/
천한 내 신분도 싹〜에프터의 난 인텔리 젠틀
저 의사는/ 시민, 국민이 외면하는 시책, 국책도 싹〜
아예 죽어서 가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이 세상을 천국으로 싹〜/
기도, 이제 필요 없어졌네 -신옥철「믿고 싶다⦁3」부분
한국을 가리켜 성형천국이라 한지도 오래되었다. 의사의 칼 끝에서 새로 태어나는 ‘나’는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이 된다. 광대뼈도 사각턱도, 천한 내 신분도 싹〜싹〜 없애고 ‘얼짱’으로 ‘인텔리 젠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무슨 걱정인가. 거기 더하여 무소불위의 칼잡이 ‘저 의사는’ 시민, 국민이 외면하는 시책이나 국책도 싹〜싹〜 도려내고 ‘이 세상을 천국으로 싹〜’ 바꾸어주니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시적화자가 ‘피 토하는’ 현실과, ‘천국’으로 생각하는 이상을 대칭적으로 놓고 풍자적 기법을 통해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사회의식이 강한 작품이다. 그런데 시적화자의 ‘맘 속 깊이 꼬부라진 대꼬쟁이가 들어 있’는 상황은 누구의 탓일까. 노력은 않고 사회 탓만 하는 꼬부라진 개인? 혹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꼬부라진 사회? 모두를 포함해서 풍자하고 있는 의도를 시인은「믿고 싶다」라는 제목에서 읽을 수 있도록 장치하고 있다.
해 넘어가고 새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아파트의 숲은 금시 어두워지려 한다 (중 략)//
건넌방 젊은 백조/ 깃 한번 파닥이지 않고/ 잦은 발길질 어디다 감추고 떠 있는 것일까/
1502호 그 사람, 엎어져 죽은 듯 누워 있는지 몰라/
1402호 이 여자, 반듯이 누워 있어/
1302호 그 남자, 발가락으로 리모컨 누르고 있는지 몰라/ 1102호 1002호....../
그리고 우리는 오늘밤 편하게 잠을 청하면 될 것이다/
몸을 가재미처럼 납작하게 눕히고/ 밑바닥 저간의 소리는 묻어 둔다/
겹겹이 일렁이는 어둠은 외려 따뜻하다/ 잘자요 1302호 1502호/ 잘자요 1402호/
이틀 전에 산 샌드위치는 내일 아침에 먹을 수 있을까.
-이두예 「안녕히 주무셔요 1402호」부분
아파트 숲에는 높이만 다른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살고 있다. 서로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포개어 누워 있는 공동운명체의 사람들인데 서로가 상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살고 있다. 시인은 이처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자폐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인간소외를 희화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시적화자에게 ‘겹겹이 일렁이는 어둠은 외려 따듯하다’ ‘어둠이 내리는 건/ 저 여린 할딱임 감싸기 위한 것’이고 ‘그제서야 제 마음 편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비로소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밝고 희망찬 햇빛 아래서는 누구에게서도 위로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 그래도 내일 아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삶이다.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고 등을 비벼대거나 눈빛을 마주볼 가족도 없이 홀로 말라가는, 냉장고 속 샌드위치 같은 삶에 ‘안녕히 주무셔요’라는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는 인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코브라는 제 몸 속이 온통 독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았다. 코브라는 지아비도 제 새끼도 다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졌다. 자기 단속을 위해서 화 안 내기, 구박도 참아 내 기, 독설도 웃어 넘기기, 못 참을 일은 몸을 흔들어 풀어내기, 그러다가 그는 아름다운 춤 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춤은 서늘한 바람을 불러오고, 모래바람도 숨죽여 비켜가며 푸른 하늘을 드러낸다. 마른 사막이 촉촉해진다. 지아비도 함께 춤추게 하고, 선인장 가시 도 제 몸 속에 숨고, 그녀의 새깨들이 모두 살아나게 한다. 참아야 산다는 일념으로 춤으 로 독을 해체시켜서 배설한다. 사막의 별들과 함께 춤추는 그녀.
-이신강 「헤라클레스를 사랑한 요정⦁4-코브라의 춤」
몸 속에 독이 가득한 ‘코브라’라는 객관상관물을 등장시켜 알레고리allegory기법을 사용하여, 한없는 독성으로 자신도 죽이고 타인도 함께 해치는 현대인을 풍자하고 있다. 지아비와 새끼는 물론이고 그와 기까이하는 모든 생명체에 해가 되는 독을 간직한 현대인, 그러나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자신이 독을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마음가짐 하나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전환의 의지 하나로 그 독성을 순화시켜 마침내 마른 사막을 촉촉하게 적시고, 선인장 가시도 제 몸 속에 숨기고, 남편과 새끼로 제유提喩되는 모든 생명체를 살아나게 한다. 오직 인내 하나로 춤추는 코브라, 인내의 춤 하나로 제 몸 속의 독을 해체시켜 배설할 수 있는 의지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막의 별들과 우주 만유와 함께 춤출 수 있는 사랑과 환희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오만과 자의식만 가득하여 자기파멸에 이르고 마는 현대인에게 우유법으로 경종을 울리고 있는 작품이다. 끝으로 민조시 한 편을 더 살펴본다.
1. 분단국 그 아픔/ 없애려고/ 쌀 비료 약품/ 소, 車, 라면도 준/ 삼천리 무궁꽃//
그래도/ 핵핵핵//
2. 살맛난/ 시장경제/ 피어나는/ 한반도 金花/ 삼천리 무궁꽃.
- 朴駿祥 「마지막 분단국」전문
짧은 형식 속에 많은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시이다. 3⦁4⦁5⦁6조의 극도의 축약 속에 1.의 2연 ‘그래도/ 핵핵핵’에서, 대한민국의 햇볕정책으로 많은 것을 쏟아부어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핵을 무기로 내세워 모든 것을 얻으려는 북한의 핵정책을 비꼬아 풍자하면서, 한편으로는 식량부족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북한 인민들의 가쁜 숨을 연상케 하는 중의적 표현이 돋보인다. 2.에서는 1.과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황을 제시하면서 무궁무궁 피어나는 나라, 북한영토까지 포함하는 ‘삼천리 무궁꽃’ 세계를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분단국’이라 제시하여 분단 극복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이 외에 권희자의 「은갈치」, 샬롬경남의 「도시에 박쥐 늘다」등에 나타나는 풍자의식은 지면부족으로 언급하지 못함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