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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갱스터 영화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연구
목 차
1. 서 론1
(1) 문제제기 1
(2) 연구목적 2
(3) 연구방법 2
2. 이론적 배경2
(1) 영화의 장르 2
(2) 한국 갱스터 영화의 변천 4
(3) 혼합 장르의 경향 6
3. 작품분석 7
(1) 플롯분석 7
(2) 인물분석11
(3) 스타일분석14
(3) 공간분석 15
4. 결 론16
참고문헌18
1. 서 론
1) 문제제기
원래 ‘장르’라는 용어는 유형(類型)이나 양식(樣式)을 뜻하는 불어단어로서 문학적인 개념으로 주로 쓰였다. 문학 비평가 프라이(Northrop)는 장르를 로망스, 희극, 비극 그리고 풍자로 나누어 사계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문학을 비극, 서사극, 서정시 등의 수많은 범주로 분류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장르에 대한 개념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문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영화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예술을 ‘낯설게 하기’의 과정으로 보았던 그들은 예술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거듭나면서 역사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장르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장르영화는 생성, 변화, 해체 그리고 재생성을 반복하는 것이다. 예전에 인기가 있었던 장르영화가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새롭게 부활하여 인기를 얻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물결들은 갱스터 / 범죄 영화나 탐정 영화 등 거의 예외 없이 필름 느와르(Film Noir)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 1990년대 상반기부터 붐을 이루기 시작한 범죄 영화들은 네오 느와르(Neo Noir)혹은 포스트 느와르(Posr Noir)라 불리어지면서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즉, 1940년대의 정서를 포착해 냈던 필름느와르가 1990년대의 새로운 정서를 담고 재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극장 개봉된 필름 느와르만도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vior, 1991), 핀처(David Pincher)의 쎄븐(Seven, 1995)등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장르 영화는 이처럼 그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로서 새롭게 거듭나는가 하면, 다른 나라로 유입되어 변형되기도 한다. 미국 장르영화에 대한 누벨바그(Nouvelle vague) 감독들의 새로운 인식과 홍콩의 서구 스타일 영화가 그 예이다. 갱스터(Gangster)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고다르(Jean-Luc Godard)의 첫 번째 장편영화 네멋대로 해라(Breatheless, 1960), 트뤼포(Francois Truffaut)의 두 번째 작품 피아니스트를 쏴라(Shoot the Pianoplayer, 1960) 그리고 샤브롤(Claude Chabrol)의 아름다운 여인들(Les Bonnes Femmes, 1960)등은 할리우드의 영화 장르를 프랑스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영화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인들이 그들의 신화라고 주장하는 서부 영화나 일본을 대표하는 사무라이 영화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을 담고 있는 이렇다 할 영화장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할리우드 고전적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한국 영화는 외래의 장르적 전통에 기대고 있을 따름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 영화의 장르구축이 할리우드 장르와 얼마만한 변별력을 지니는지 진단해 보고자 한다. 비록 그 체계는 할리우드에서 빌어 왔을지언정 한국의 장르 영화는 한국적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정착되어 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연구목적
본 연구는 한국 갱스터 영화장르가 어떤 식으로 생성되고 변주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 가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한국의 갱스터 영화들이 사회적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사회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한국 갱스터 영화를 ‘조폭 영화’와 분리하여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의 갱스터 장르는 형식적인 틀에서 헐리우드와 차별화되면 독특한 한국만의 형식을 띠어가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갱스터영화 장르가 관객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 설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3) 연구방법
본 연구는 한국 갱스터 영화 장르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선 장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을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갱스터 영화장르의 생성과 변천을 통해서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와 어떻게 차별화되는 지를 살펴보고 다른 나라에서는 갱스터 장르가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고 변주되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TEXT분석에 들어 갈 것이다. TEXT는 <게임의 법칙>이 될 것이다. <게임의 법칙>은 한국 갱스터 영화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전환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게임의 법칙>을 한국 갱스터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보는 기준으로 사용할 것이다. TEXT는 내러티브, 인물, 공간, 스타일의 4가지 차원에서 분석될 것이다.
2. 이론적 배경
1) 영화의 장르
영화의 내러티브를 서로 다른 종류로 구분 짓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장르이다. 이러한 장르는 관객에게 스크린에서 일어나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준다. 이를테면 특수한 사건과 행위가 왜 일어나는지, 인물들의 의상이 그들의 어떤 성격을 의미하는지, 인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인식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이야기 소재를 조직하고 그 초점을 형성하는 방법인 장르는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소 친밀하게 만드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삼는다.
장르는 단지 영화의 형태만이 아니고 영화를 볼 때 관객이 갖게 되는 기대와 가설이라는 특수한 체계이기도 하다. 기대와 가설에 관한 이러한 체계는 더 나아가 기대를 위한 지평도 제공한다. 무엇이 그럴듯한지를 결정해주고 그것의 적합성을 수반시킨다. 장르적인 사실성이 직접적인 의미에서 현실 혹은 진실과 동등하다고 할 수 없지만 장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럴듯함(probability)’과 '사실 같음(verisimilitude)‘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관객의 수동적 자세 때문에 장르영화는 편안하고 친숙한 감정을 유발하게끔 구성되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고전기라 불리는 192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대다수의 영화는 장르영화였다. 영화를 궁극적으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가 장르영화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상업적 안정성 때문이다. 즉 하나의 영화장르는 관객이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나 있는 영화적 관습체계일 것이며 제작자는 장르영화를 제작함으로써 일정한 수 이상의 관객동원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비슷한 무대와 공간, 장비, 소품 등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장르영화란 소재와 주제상의 관심, 성격묘사, 플롯공식, 시각적 배경이 매우 비슷한 하나의 특정한 영화 그룹에 속하는 영화로서 어느 정도 이런 유사성에 의존해서 만들어지며 관객이 만족 또한 어느 정도 이런 유사성에 의존한다. 즉, 영화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사성이 그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확실히 묶어준다. 결국 장르영화를 본 다는 것은 새롭다기보다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장르영화의 주된 결점은 영화가 모방적이며 진부한 기계적 반복으로 신선함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장르적 관습들이 스타일이나 소재 상에 의미 있는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저 판에 박힌 영화일 뿐이다. 더욱이 장르영화는 현실 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역기능까지 한다. 즉,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삶의 갈등을 영화 속에서 대신 해결하고 만족시키는 소시민적 태도를 조장한다. 이는 현실의 여러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개인의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져 기존사회체계의 통념에 통합시킴으로 심리적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장르영화는 흔히 ‘작가(auteur)’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장르영화가 대량생산되며 드러내는 주제와 스타일의 획일화, 철저한 분업에 의한 작업과정 속에서 흥행성이 영화의 제작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점은 타당성을 갖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장르는 오히려 작가들에게 이야기보다 스타일의 독창성을 추구하여 결국에는 이야기의 전복을 가져다주는 형식적인 관습과 작가의 독특한 공헌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장르영화는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2) 한국갱스터 영화의 변천
1990년대 이전의 갱스터 영화들은 아직 장르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영화 산업의 정착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1994년에 개봉된 <게임의 법칙>은 한국 영화 산업화 과정에 기인한 갱스터 영화의 원형으로 보고 그 이전의 활극이라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의 발자취를 따라 시기적 구분을 하도록 한다.
(1) <게임의 법칙>이전의 갱스터 영화
그간 임의적으로 비슷한 아류와 속편영화들을 일컫던 만주물, 권격물, 협객물, 첩보물, 무협물, 활극 이란 수사적 비평용어는 난무했지만 아직까지 이들 영화의 장르 변천에 관한 정확한 명칭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액션영화라는 범 장르적 틀 안에서 갱스터 영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영화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1962년대~1990년, 이시기의 특징은 민족의 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 국민성을 고무, 진작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그로인해 노골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영화가 양적으로 팽창되었다. 시대별로 개관해보면 1960년대는 액션스릴러, 첩보물, 그리고 대륙물의 시대였다. 특히 ‘대륙물’ 혹은 ‘만주물’이라고 하는 영화들이 유행했는데 이는 일제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일조의 액션영화를 말한다. 영화에는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 만주벌판에서 암약하는 마적단, 아편장사꾼 그리고 만주의 유흥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희(歌姬) 등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액션영화에 대한 갈증을 만주물 영화들이 채워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감독들은 정창화, 강범구, 임원직, 강일호 등이었는데 본격적인 만주물이 등장한 것은 방랑자의 활극과 일제에 맞선 투쟁을 그린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과 지평선(1961)>등의 영화들이 제작되면서부터였다. 웨스턴영화와 홍콩 검객물을 합쳐놓은 듯한 이 영화들은 만주 벌판에서 외로운 투사가 일본군과 비적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한편 1968년에 임권택은 <돌아온 왼손잡이>로 흥행에 성공했는데, 이것은 일제시대가 아닌 당시 현실 속의 폭력배들을 다룬 것이었다. 하지만 헐리우드와 홍콩 액션영화의 영향을 받은 이 시대 감독들은 비장미 넘치는 일본 협객영화의 영웅들을 베끼는 경향이 강했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 불황, TV의 보급, 강력한 검열 등으로 인해 영화산업은 전반적으로 침체를 맞는다. 그러나 당시에 임권택과 김효천, 박노식 등이 건재했고 이두용 등 신인감독들이 뛰어들면서 활극이 붐을 이루게 된다. 이는 TV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위기를 느낀 영화계가 TV와 다른 오락을 전하자는 전략 아래 액션영화로 승부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상황전개가 논리적이지 않아 폭력의 리얼리티를 창출하지 못했으며 진지한 고민 없는 과장된 액션만 보여주어 저질 영화로 전략해버렸다. 또한 액션영화의 양적 증가는 외화수입권을 따오기 위해 한국 영화를 적당히 만드는 부작용을 낳아 이 시대 영화를 내용적으로 후퇴하게 했다. 결국 빈곤의 악순환만 지속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챠리 셀(한용철)이 나오는 이두용의 <용호대련(1974)>와 <속 돌아온 외다리(1974)>와 같은 태권영화 시리즈는 한국 무술 영화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들 영화에서 무대는 언제나 중국의 하얼빈이거나 흑룡강 근처이고, 적은 언제나 일제였으며 주인공은 항상 금괴를 찾아다니고 독립군이 아닌 셰인(Shane)과 흡사한 캐릭터를 가진 태권실력자였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 또는 배신 때문에 눈이 멀거나 다리가 잘리고 마지막에는 죽거나 어디론가 표표히 떠나거나 한다. 이탈리아인들이 스페인에서 웨스턴영화를 찍듯이 이두용은 총 대신 태권발차기를 가지고 만주판 웨스턴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두용의 태권영화는 그 이후에 만들어진 무수한 태권영화의 원조가 되었다. 그 당시의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영화는 최영철의 <동경의 호랑이(1971)>, <후계자(1974)>가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영화는 무협물로 주조가 변해갔다. 하지만 홍콩무협영화를 조잡하게 흉내 내기에만 급급하여 헐리우드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퇴보는 80년대를 액션영화의 암흑기로 만들고 말았다. 임권택이 액션영화에서 손을 뗐고 김효천 정도가 <종로부루스(1982)> 등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헐리우드가 웨스턴에서 ‘람보류’의 마초 액션영화로, 홍콩의 무협물이 성룡의 코믹 콩푸물과 주윤발의 홍콩 느와르로 변신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는 동안 한국 액션영화는 여전히 신파조의 대사와 둔중한 주먹질에 머물러있었다. 지금까지 액션영화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살펴본 하위 범주들에서 한국 갱스터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영화들은 현실 속 암흑기를 다룬 활극이라 하겠다. 사실 한국 주먹의 역사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봉건주의와 일제의 강점은 백성으로 하여금 총구를 일본으로 돌리게 했고 의리의 주먹은 충성이며 애국이었고 도덕적이었다. 김두환과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시절 한국영화는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낼 기반도 취약했고 소재도 허약했다. 이들의 싸움 방식은 홍콩의 화려한 무술이 아니라 막싸움 방식이었다. 이런 영화들은 극우 이데올로기의 논리로 포장되어 공산당과 싸우거나 맨 마지막에는 범죄를 참회하는 면죄부를 꼭 집어넣어야 했다. 이처럼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활극은 천대를 받으며 명맥을 이어오다가 임건택의 <장군의 아들(1990)>이 흥행에 성공함으로 인해 다시금 제작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비록 액션영화의 틀에 바긴 이야기구조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장군의 아들>이 그린 김두환은 예전과 달랐다. <장군의 아들>은 현실적 싸움꾼이었고 먹고 살기위해 종로에 들어왔으며 엉겁결에 민족의 주먹이 되었다. 강동휘, 박노식, 이대근 등의 한 대 맞고 한 대 치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액션장면도 변화를 예고했다.(방대원, 2001 : 181) 무엇보다 <장군의 아들>시리즈의 스타 시스템의 파괴, 정당한 폭력의 도출, 인간미의 새로운 해석 등은 기존 활극의 관습을 뒤엎고 한국의 고유한 활극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1990년대 갱스터 영화의 새로움을 제시해주는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2) 새로운 카테고리로서의 갱스터 영화
<게임의 법칙>으로부터 시작된 갱스터 영화는 <친구>에서 정점을 이루고 현재 <신라의 달밤>을 거쳐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에 이어 <두사부일체>에 이르렀다. <장군의 아들>시리즈까지 잘 나타나듯이 이전의 영화들인 활극은 시대적 배경이 대개 일제 시대나 해방 직후 또는 제1공화국인 경우가 흔하며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경우라도 공간배경이 덜 도시적인 공간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배경과 함께 활극을 특정 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든 복수든 아니면 악이라는 특정한 가치를 위해 싸우는 협객 또는 영웅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게임의 법칙>이후 등장한 갱스터 영화는 기존 활극을 뛰어넘으려는 부단한 몸짓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게임의 법칙>에서 주인공 용대(박중훈分)의 욕망은 밤세계를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상적인 통로로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부와 권력이 그 속에 있다. 또한 <초록물고기>에 이르러 그 욕망이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강제된 것임을 말해주며 사회적 문제가 개입돼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침울했던 한국영화에 서광이 비춘 것은 이처럼 <초록물고기>에서 <비트>로 이어지는 이른바 ‘깡패영화’들의 흥행돌풍으로 평단이 거의만장일치에 가까운 비평적 호의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김시무, 2001 : 55~61) 이후 소비 산업 속에서 번창하던 폭력조직을 그린 <넘버3>, <약속>등은 다른 장르와 교배를 통해 변용된 깡패를 소재로 한 영화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이런 장르가 ‘조폭영화’로 불리기 시작하며 변모를 꾀한다.
3) 혼합 장르의 경향
<테러리스트>, <초록물고기>, <넘버3>, <약속> 등의 영화는 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갱스터 영화에 속한다. 1990년대 동안 통합장르의 출현은 특히 상업적인 장르에 기반을 둔 영화에서 스타일상의 발전에서 나타난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에 있어서 기존보다는 좀 더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이는 흥행의 성패가 얼마나 신선한 소재로 유혹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해 헐리우드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그 수많은 장르의 관습들을 차용하고 거기에 특수효과 실험을 덧입혀 말끔하게 작품을 뽑아내는 연습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장르건 변형 없이 이식되지는 않는다.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로서의 장르는 끊임없이 여타 장르와 혼합되는 잡종성을 가지며 그러면서도 또 다른 장르를 생산해낸다. 그러므로 헐리우드의 장르가 한국에 유입될 때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유용한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에서 통용되는 코드들과 뒤섞이게 마련이다. 흔히 한국영화의 고질병이라고 간주되는 멜로성이라는 것도 한국적 코드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장르라는 것은 같은 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 시대의 관객의 취향과 문화적 특성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묘사해 내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갱스터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바로 갱스터와 코미디, 갱스터와 멜로가 섞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영화들은 기존 갱스터 영화와 공통성과 차별성을 가지며 자신들의 영역을 갖춰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갱스터와 코미디의 결합이 주류를 이루며 2001년 하반기는 이러한 경향이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코미디가 일반적으로 혼합에 적당하기 때문인데 웃음을 유발시키는 국지적인 요소들이 다른 장르의 내용에 삽입됨에 있어서 기존의 관습을 깨뜨리지 않고도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3. 작품분석
- 게임의 법칙을 중심 TEXT로 사용.
1) 플롯의 분석
한편의 영화는 이야기(story)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하나의 세계다. 이야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용어로 파블라(fabula)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내러티브의 모든 사건들에 대한 관객의 상상적 구조물을 말한다. 관객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야기는 플롯(plot)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데, 플롯은 모든 사건과 서사적 구조의 순서와 배열이며, 그리고 그 구조가 취하는 형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은 사건들의 결합이다.”라고 정의하면서 비극의 여섯 가지 요소 중 플롯을 가장 우위에 둔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비극은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결합인 플롯을 비극의 제 1원리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플롯을 분석하는 작업은 갱스터 / 범죄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르영화는 갈등과 결말이 예상가능하기 때문에 단선적인 인과관계보다는 갈등 그 자체와 영화에서 부정되는 가치 체계에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인다. 개별화된 주인공의 변화하는 지각에 의해 구성되는 단선적인 사건의 연쇄 대신 장르영화의 플롯은 궁극적으로 예상 가능한 방식을 통해 해결되는 특정한 문화적 충돌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식화된 장르영화의 플롯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고유한 드라마적 갈등을 지닌 장르적 공동체의(다양한 내러티브와 아이콘화 된 신호들을 통한) 설정(establishment)
2>일련의 장르적 캐릭터들의 행위와 태도를 통한 갈등의 작동(animation)
3>갈등이 위기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관습화된 상황과 드라마적 대결에 의한 갈등의 고조(intensification)
4>물리적인 그리고 /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위협을 제거하고 현재의 질서 잡힌 공동체를 찬미하는 방식의 결말(resolution)
플롯구조에 있어서 이러한 사건의 위계적인 전개방식은 장르 영화의 플롯을 개방형의 플롯보다는 폐쇄형의 플롯에 가깝게 한다. 폐쇄형의 플롯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한 패러다임이 되어오고 있는데, 이는 17세기 프랑스의 고전 비극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다. 또한 이것은 훌륭한 비극의 조건을 시작과 중간, 결말을 갖되, 우연히 사직하지 않고, 우연히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플롯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3분법 - 도입부, 엉킴, 해결 혹은 대단원은 르네상스 이후, 전래의 5막 구조(five - act structure) 드라마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에 의해 더욱 확장되었고, 도입부(introduction), 상승부(rising movement), 최정점(climax), 낙하(fall) 혹은 반전(reversal), 파국(catastrophe)이라는 다섯 부분의 피라미드 구조로 그것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극적 단계는 사다리 구조라고 불려 지기도 하는데, 도입부에 제기된 초반의 갈등은 계속된 긴장과 서스펜스를 통해 최정점에 도달하게 되고 마침내 이야기가 종결되는 해결의 국면을 맞이한다.
관객인 우리는 이처럼 내러티브의 평형 - 불균형 - 평형의 과정을 통해 동화 작용을 일으키게 되어 통합 주체가 된다. 플롯의 구조는 이야기를 형식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경험까지 구조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화적 체험에 있어서 토대가 되고 있는 극적단계를 살펴봄으로써 본 논의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영화들의 플롯구조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게임의 법칙>
도입부 : 주인공 용대 (박중훈 分)는 자신의 주먹만을 믿고 유광 천이라는 폭력 조직의 보스를 찾아 애인 태숙(오연수 分)과 함께 상경하는데, 기차 안에서 만난 만수(이경영分)의 거짓 추천장에 속아 사기를 당한다.
상승부 : 광천의 조직에 합류할 수 있게 된 용대는 형사에게서 빼앗은 총을 상납하여 광천의 운전기사가 되는 등 조직에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만수를 받아들여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다.
최정점 : 광천파의 적수인 창구파를 물리치는데 일조를 함으로써 중간 보스의 지위에 오른 용대는 태숙과 함께 삼척에 내려가 한껏 거드름을 피운다. 한편 만수는 용대의 전세금으로 포커를 하다 돈을 모두 잃게 된다.
반전 : 만수의 게임에 빠진 용대는 영한의 지시에 따른 사이클 족의 기습으로 인해 부상을 당함으로써 광천의 조직으로부터 추방을 당한다.
파국 : 용대에게서 받은 돈으로 포커판에서 위너가 되는 만수와는 달리, 용대는 검사 살해 후에 광천의 똘마니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영화 <게임의 법칙>의 플롯은 주인공이 폭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개인적인 특정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문제를 일으키거나 혹은 그것을 해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행사하는 주인공의 폭력은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강력한 인자(因子)가 되고 있다. 앞서의 극전 단계에 따라 살펴본 플롯의 개요에서도 드러나듯이 초반의 상황 설정단계에서부터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이들 영화에서는 오로지 주인공이 구사하는 폭력이 기반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용대는 폭력 행사를 통해 폭력 조직에 가담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자신이 행사한 폭력으로 인해 폭력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러한 폭력의 근저에는 용대의 내부에 존재하는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이 주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대의 상승 욕망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월등한 지위에서 부를 누리며 폼 나게 사는 것이다.
용대 : 난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순식간에 끝나. 일도 아냐……. 일이 성공하면 나 아무도 터치 못해. 아무도……. 한방에 크는 거야. 제대로 한방에……. 우리도 폼 나게 살아보자. 벤츠 딱 끌고……. 이게 진짜 사나이 사는 길이야. 야! 태속이! 내 주먹 못 믿어? 못 믿어?
이상의 대사와 함께 용대의 끊임없이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체는 크레딧 시퀀스와 종결부에서 보이는 환상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출세를 상징하는 노란색 벤츠 승용차, 그리고 화려하게 성장을 한 환상속의 용대와 태숙은 지칠 줄 모르고 웃어댄다. 용대는 주먹세계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채 건달처럼 살아가는 인물이다. “니가 사장해라. 지금이 몇시냐?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라는 사장의 말에 발끈하여 그는 세차장에서 행패를 부리고는 유광천을 찾아 애인 태숙과 함께 상경을 한다. 이처럼 폭력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환경을 박차고 나온 용대는 또 다시 폭력행사를 통해 새로운 환경, 즉 폭력조직에 가담할 수 있게 된다. 창구파의 습격으로 광천 일당이 수세에 몰려 광천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 상황에서 용대는 단신으로 폭력배의 무리를 물리치고는 광천과 상면(相面)하게 되는 것이다.
용대 : 거둬 주십시오. 회장님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폭력을 행사한 결과로 폭력조직에 합류할 수 있게 된 용대는 조직이 관리하는 룸살롱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는 태숙을 구해 내려고 하지만 조직의 똘마니라는 신분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보스의 눈에 들어야 돼. 그래야 올라가.” 이러한 동료의 말에 자극 받은 용대는 조직에서 지위 상승을 욕망하게 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형사에게서 권총을 무력으로 빼앗아 광천에게 상납한다. 그 일을 계기로 용대는 단번에 광천의 운전기사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되고 태숙과 차, 핸드폰 등을 광천으로부터 선물 받는다.
용대 : 끝났어. 게임이 끝났다고. 이제부터 용대의 전설이 시작되는 거야. 태숙아! 이 오빠가 보스 눈에 들었잖냐. 나 완전히 떴다……. 너두 내 선물이다. 고생 끝났어!
이렇듯 조직에서 자신의 입지(立地)를 굳힌 용대는 창구파와의 대결에서 창구를 죽임으로써 다시금 막강한 행동대원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나 용대의 승승장구는 영한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 되고, 용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영한의 지시에 따른 사이클 족의 테러로 인해 부상을 당함으로써 조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실의에 빠진 용대는 자신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검사를 살해하라는 광천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주먹의 힘으로 폭력조직에의 가담과 그곳에서의 급격한 상승을 맛 본 용대는 또 다시 주먹을 무기로 영한과 같은 인물들이 간섭할 수 없는 조직에서의 높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자신이 무시하던 똘마니의 총에 맞아 쓰러짐으로써 용대의 욕망은 성취되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는 용대의 상승 욕구가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는 주된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게임의 법칙>의 플롯은 용대가 구사하는 폭력에 의존하여 그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용대가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선택한 폭력이라는 수단은 그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 인물 분석
서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은 이야기 속의 다양한 성격화와 행위의 기능들에 있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행위의 법위들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공, 조력자, 적 등의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그 인물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맡고 있는 역할을 중심으로 서사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은 액션을 통해 형상화되는데, 인물은 행동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자료가 되어 인물이라는 원리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결국 인물이 취하는 행동 방식을 고찰함으로써 극중 인물의 성격이나 특성 등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은 용대(박중훈 분), 태숙(오연수 분), 만수(이경영 분)라는 세 명의 등장인물의 축을 통해 전개된다. 주인공 용대는 가난하고 무식하며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는 하위계층의 캐릭터이다. 그리고 부 / 성공을 성취하기 위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신분상승을 위한 과잉적인 욕망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의 제도화된 소외 속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공에의 접근이 차단되자 용대는 스스로 폭력조직에 가담한다. 용대는 시골의 카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유광천을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여 폭력조직에 들어간다. 용대에게 폭력조직은, 자신이 가진 남성다움을 보일 수 있는 노동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인 셈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폭력조직 역시 그에게는 좌절감만을 안겨다 준다. 중간 보스의 지위에 오른 상황에서도 영한과의 갈등은 그를 조직으로부터 추방이라는 결과를 낳게 하고 있으며, 조직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좌절감은 주인공의 공격적인 기질을 자극하게 되는데, 용대가 시시때때로 휘두르는 주먹이나 폭력 등이 그의 공격성을 가시화하는 기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용대가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다분히 폭력의 구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용대는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그곳에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사회적이고 거친 용대의 공격성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이 주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대는 구속받기 보다는 지배하는 입장에 서기를 갈망하며, 자신의 욕망, 즉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통제나 구속으로부터도 벗어날 준비가 되어있다. 통제 되지 않은 용대의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이성이나 사회의 구속을 받게 마련인 성숙한 인간의 모습보다는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미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경영이 맡은 만수라는 극중 캐릭터인데, 그는 사기꾼으로 자칫 단조롭게 진행될지도 모르는 깡패의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용대, 태숙, 만수 이 세 인물의 삼각관계는 좀 더 풍부한 이야기 전개뿐 아니라 서로의 캐릭터를 규정해 주고 좀 더 탄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먼저 용대와 태숙의 관계를 살펴보자. 그들은 연인이지만 항상 티격태격하면서 편히 결합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들의 정사 장면인데, 이 두 사람은 흔히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베드신을 가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 나오는 두 번에 걸친 정사장면은 항상 ‘서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편히 누워 사랑을 나눌 장소가 없는 것이다. 연인에게만 허락되는 가장 은밀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은 그들에게 그리 살만한 곳이 못된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성공이 그들을 둘러싼 현실을 극복하게끔 해줄 것으로 믿는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유일하게 결합하는 유일한 코드는 단란주점에서 함께 ‘남행열차’를 부르면서이다. 두 사람에게 이 노래는 영화 후반부에 있어 예정된 이별을 암시하기도 하겠지만, 완전한 성공을 이뤄 남행열차를 타고 고향에 가고픈 금의환향의 소망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대가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둬 고향에 내려갔을 때 오히려 그의 어설픈 성공은 그로 하여금 바람을 피우게 함으로서 이들 두 사람을 일시적으로 갈라놓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들에게 역시 현실은 손쉬운 결합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태숙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내 보이지 못한 채 오직 용대의 성적 충동을 만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그녀의 의지와 상반되게 용대가 자신을 취하려 할 때에도 그녀의 반항하는 몸짓은 미약한 것으로써 용대에 의해 묵살되어진다. 태숙은 용대에게 있어서 욕구 충족의 대상일 뿐이지 독립된 개체로 투영된 존재가 아니다. 또한 용대가 그의 상승욕을 충족시키는 과정은 태숙을 제외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태숙을 배제한 용대와 만수가 각각 검사살해와 포커판에서의 운명을 건 모험을 시도하고 있을 때, 태숙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으로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게임의 법칙>에서 태숙은 남성들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임에서 소외된 채 용대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용대와 만수의 관계 - 이들은 영화 속에서 교대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분담한다는 이 영화의 정서구조를 포착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박중훈은 무식하고 맹목적으로 자신의 성공 하나 만을 위해 돌진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으로 인해 이경영이 불구가 되자 한편으로 죄책감과 선한 마음씨를 표출하며, 한 개인을 현실 속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모는 것은 개인의 성품문제가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의 구조적 조건임을 혹은 피해갈 수 없는 자본주의의 게임의 법칙임을 드러낸다. 불구가 된 만수는 용대의 전세금을 카드도박으로 잃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좀 더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돈을 잃고 옆에 앉아 있는 아가리에게 자탄하며 “내가 카드 아니면 뭘 하겠냐.”라는 대사는 이미 사회의 룰에 의해 그 구성원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앞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환기구를 찾을 수 없는 사회분위기는 그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도피처를 찾게 만들며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적 시공간에 대해 부정하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세계의 폐쇄성은 이영화가 생산하는 정서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3) 스타일 분석
일반적으로 한편의 영화는 몇몇 테크닉의 일관성 있는 사용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테크닉들은 흔히 스타일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영화의 주제나 편집, 조명, 음향, 미장센 등에 의해 형성이 된다. 결국 우리는 영화의 스타일을 통해 그것의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데, 장르 영화의 경우에는 개별 장르 내의 모든 영화들이 공유하는 스타일이 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적인 스타일을 통해 그 장르는 다른 여타의 장르 영화들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에서 두드러지는 시각적 스타일은 다분히 필름 느와르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게임의 법칙>에는 총 84씬 중 54씬이 야간장면이다. 이러한 밤거리에서 도시 뒷골목의 허름한 공장 혹은 창고, 나이트클럽 등 주로 밤을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무질서한 공간이다. <게임의 법칙>의 용대가 태숙과 함께 상경하자마자 그들의 임시거처로 삼고 있는 곳은 도시의 뒷골목의 허름한 여관이다. 또한 그가 유광천을 찾아 배회하는 공간은 도시 유흥가의 뒷골목이며, 유광천의 졸개들에게 쫓겨 숨어들어 간 곳 역시 도시 뒷골목의 어느 빌딩이다. 그리고 마침내 용대가 유광천의 하수인이 된 이후에도 그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나이트클럽이나 밤거리 등이다. 창구파와의 격투나 검사를 살해하는 장면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곳 역시 나이트클럽이나 밤거리이며, 그가 총에 맞아 쓰러져 가는 곳 또한 가로등만 켜져 있는 쓸쓸한 밤거리인 것이다.
이런 야간장면 이외에도 시각적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고속 촬영(sloe motion)을 하고 있다. <게임의 법칙>에서 용대가 창구파와의 대결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영한의 지시에 따른 사이클 족의 습격으로 부상을 입는 장면, 그리고 종결부에서 검사를 살해하는 장면 모두 고속촬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속 촬영을 통한 느린 동작은 주인공들이 구사하는 액션의 강도와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 흐르는 타이틀 음악(sound track)은 각기 다른 영상들에 동질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즉, 동일한 타이틀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주인공들의 폭력적인 액션은 관객들에게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안겨 주고, 그로 인해 일관성 있게 연결된 폭력장면들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향 효과는 타이틀 음악과 함께 사용되는 묵음(dead track) 즉, 음의 부재에 의해 더 큰 극적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용대와 만수가 각각 검사 살해와 마지막 베팅을 하는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는 묵음과 음악의 병치는 그것의 대비 효과를 통해 관객의 주목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4) 공간분석
“비극적 영웅으로서의 갱스터(‘The Gangster as Tragic here'라는 논문에서 워쇼우(Warshow)는 ‘갱스터는 도시의 남자다. 그는 도시를 의인화하기 위해 그곳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도시는 실제(real)도시가 아니라 위험하고 슬픈 상상의(imaginary)도시다. 상상의 이 도시는 실제보다 더 중요한 말하자면, 현대세계 (modern world)다.’라고 언급하면서 갱스터 장르의 환경을 갱스터 정신세계의 초현실적 확장이라고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갱스터 영화에서 폭력조직으로 대변되는 도시라는 배경은 상징적인 것이다. 이는 주인공에게 반 영웅의 자격을 부여하는 작인으로서 역할을 하는가하면, 종국에 가소는 반 영웅을 전락하게 만드는 필연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배태하고 있는 도시공간이 반 영웅을 탄생시키고, 결국에는 그들을 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는 그 사회구성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제시함으로써, 그리고 소수의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서 자기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중산층)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이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르고 90년대 중반부터 불황이 엄습하자 소위 지배층은 군살빼기란 명분으로 자기 체제의 기반이었던 ‘중산층 그룹’에 칼을 댈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의 이익을 착취하는데 에는 한계가 있고 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과 신분상승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균열조짐이 보이고, 일단 성공궤도에 진입한 층 이외의 구성원들은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물론 가장 심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중산층 그룹의 젊은이들이다.
고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깡패와 사기꾼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 정서구조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즉 이 땅은 살만한 곳이 못되며 성공할 수 없다는 감정 그리고 먼 이국에 대한 동경이 담긴 낭만주의적인 정서가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 속에서 이러한 감정은 “가자, 사이판으로”라는 슬로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인 도시는 특히 육체적 본능과 폭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생활 장소로서, 약육강식, 적자생존, 차가운 계약이 지배하는 정글의 메타포이다. 이러한 정글에서 확실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훨씬 센 주먹이 단연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글에서의 게임의 룰은 타고난 주먹을 가진 용대의 생존과 성공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게임의 룰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생존하는 것은 권모술수로 게임의 룰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이러한 영화 속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모두 알고 있으나 그 존재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하나의 진리로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실 사회를 나오기 전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를 지배한다고 하는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고 하는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교육받는다. 하지만 일단 사회에 나오면 이러한 가치들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살아가면서 더욱 절실하게 승부를 조작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용대가 냉혹한 현실에 의해 제거 당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은 실질적인 게임의 룰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희생당하는 슬픈 운명을 그리고 예정된 종말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 이전 용대가 검사를 살해하러 가는 장면과 만수가 사실상 용대의 몸값으로 도박을 하는 장면이 교차편집 됨으로서 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고조되는데, 마침내 두 사람은 일시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용대는 전화 부스 안에서 싸이판으로 가자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보스의 또 다른 하수인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피눈물을 흘린 채, 한강변에서 태숙과 성공을 꿈꾸던 장면을 연상하며, 그는 전화 부스라는 현대문명의 가장 소외된 공간에서 자신의 운명을 고하는 것이다. 이때 카메라는 전화 부스를 잡고 있다가 점차위로 올라가서, 하이 앵글로 전화 부스와 그의 주검 그리고 전화 부스 위 나뭇가지에 쭉 매달려 빛나고 있는 연등들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용대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도 우리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혐오, 이 땅은 살만한 곳이 못될뿐더러 더 이상 꿈꿀 수가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먼 이국에 대한 동경이라는 낭만주의적 정서가 관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4. 결 론
90년대 초중반 <게임의 법칙>을 계기로 한국 갱스터 영화들이 연이어 제작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2001년 영화<친구>의 흥행성공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도 갱스터 영화로 볼 수 있는 <비열한 거리>가 개봉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렇게 갱스터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장르영화로서 기본적인 관객동원력을 갖추고 있는 점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갱스터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해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갱스터 영화가 비추어내는 도시의 뒷골목은 자본주의가 쏟아내는 온갖 부조리들로 가득 차 있다. 갱스터 영화들은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해 내며 단순히 폭력영화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반추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이 사회의 반영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떠올려 볼 때, 이러한 갱스터 영화의 존재에 대한 의미는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한국형 갱스터 영화의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게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법칙>은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갱스터 영화의 틀을 빌리면서 그 중에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스케치를 더함으로써 독특한 한국 갱스터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이후 일련의 갱스터 영화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한국형 갱스터 영화장르는 하나의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장르적 고착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갱스터 영화의 장르적 흥미 요소만을 사용한 급조된 저질 갱스터 영화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화들은 갱스터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미학보다는 장르적 마케팅에 집중하며 성공한 일련의 영화들에게 기대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 갱스터 영화는 ‘조폭 영화’로 불리며 저질 영화의 대명사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갱스터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의미 보다는 폭력의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와 같이 잘 만들어진 갱스터 영화는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영화를 통해서 관객은 시대를 반성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한국 갱스터 영화들이 더 많은 고민과 진정성으로 한국관객과 뜨거운 조우를 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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