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일을 귀신처럼 너무 잘 맞추자
사람들이 오히려 두려워 피하는 무속인 계함에게 심취하여
호자의 제자 열자는 스승님보다 더 뛰어난 도인을 만났다고 하자
암탉이 많아도 수탉이 없으면 알을 부화할 수 없듯이
나는 너에게 도의 껍데기는 다 전수해 주었지만
알맹이는 다 전수해 주지 못했는데
너는 다 받았다고 생각하는냐
너는 도의 껍데기를 가지고 세상과 맞싸우며
사람들의 믿음을 얻으려 하는냐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관상을 쉽게 알아 맞히게 한 것라고 하면서
시험삼이 그를 데려와서 나를 그에게 보여 보거라 하자
첫번째 만남에서 여흘 안에 죽는다고 하고
두번째 남남에서는 자기 덕분에 살았다고 하고
세번째 만남에서는 관상이 일정하지 않아 지금은 못보니
안정되면 다시 보자고 하고
네번째 만남에서는 앉지도 못하고 보자 마자
얼이 빠져 달아났는데
이는 내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없고 변화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그를 대했더니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따라서 무엇이 무너져 내린다고 생각하게 되자
무섭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뭔가 물결쳐 온다고
생각되어 도망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열자는
아직 스스로 배우지도 못했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3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의식주는 누가?)
마침내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부엌일을 하고
사람을 먹이듯이 돼지를 먹였으며
모든 일에 특별히 편애하는 일도 없었다 (정상인가?)
세련된 나무 조각품이 다시 온전한 나무로 돌아 가듯이
그는 우뚝 홀로 자신의 몸으로 섰다
그의 행동은 어지러워 보이지만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열자는 한결같이 이렇게 살다가 자신의 일생을 마쳤다(응제왕)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대단한 족집게 무속인 계함이나,
계함까지 속이는 권모술수의 도사로 열자 스승 호자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는 도사 열자의 삶이나
도에 대한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계함이나 호자나 열자의
삶이나 도로는 온전한 정답의 분별이나 정답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