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즈스탄
9월 12일 / 여행 6일차
01시 타슈켄트에서 비쉬켁으로 비행기 출발
03시 비쉬켁 마나스 공항 도착
03시30분 마나스공항에서 가이드 만남, 환전(1달러=47.2솜) / 공통경비로 25$ 갹출
09시30분 촐본아타 도착
10시30분 라두가 마리나클럽 투숙
14시 휴식, 점심식사
16시 유람선 관광 / 1인당 800솜(=20,000원)
18시 휴식 / 전신마사지 20$
19시 저녁식사,
22시 미팅, 호숫가산책 / 공통경비 100$ 갹출
22시 30분 취침 / 숙박비 총 420$, 1인당 53$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공항에서 밤 1시에 이륙한 비행기는
키르키즈스탄 비쉬켁 마나스공항에 도착, 새벽 3시30분에 밖으로 나가다.
비행시간 1시간이고 시차가 1시간 빨라졌다.
키르키즈스탄은 입국비자가 필요한 나라였으나 지난 7월26일부로 무비자국가로 변경됐다.
변경 전에는 공항에서 도착비자로 비자피를 70$ 내야 했었다.
사진) 마나스공항 내 환전소. 환율이 1달러=45.5솜
마중나와 있어야 할 현지가이드가 20여분 기다리니 부시시 나타난다.
가이드의 이름은 "오마르띤", 한국인 2세,
러시아말과 스페인어, 한국말,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28살 청년이다.
렌트한 12인승 이스타나 차량을 타고 출발하다.
가이드비는 하루에 100$, 차량렌트비는 하루에 170$로 하고,
나머지 숙식 및 입장료는 우리가 부담하기로 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있는 환전소에 들려 공통경비로 200달러를 환전했다.
1달러당 47.2솜(Som)으로 우즈벡 숨(Soum)보다 훨씬 화폐가치가 높다.
우즈벡은 은행환율(1딜러당 약 1,900원)보다 시장환율(2,600~2,800원)이 훨씬 좋은
이해하기 힘든 환율이었는데,(달러를 국가에서 모을려고 그런다는게 답)
키르키즈스탄은 화폐가치가 매우 안정되어 있다.
슈퍼에 들려 이식쿨호수에서 1박2일에 필요한 맥주, 포도주, 라면, 생수를 샀다.
마나스공항은 비쉬켁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공항에서 비쉬켁 외곽을 통해 이식쿨호수가 있는 촐본아타까지 280Km다.
차는 어둠을 뚫고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달려만 간다.
6시가 넘으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마유주(馬乳酒) 한잔 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차가 쉬다.
기지개를 켜고 나오니 완전 산 속이다.
사진) 유르타. 마유주를 팔지 않아 마시지 못했지만, 다음날 다시 들려 마유주를 마시다.
사슴조각상이 있는 걸로 보아 사슴이 이 지역에서도 영특한 동물로 숭배되는 모양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산을 한번도 보지 못하다가 문득 산을 보니 딴 나라 화성에 온 듯하다.
흙이 붉으스레하고, 나무가 없이 황폐하고, 흐르는 계곡물이 희뿌연게
영락없이 화성에 탐사온 듯하다.
키르키즈스탄은 국토의 80%가 해발 1,500m이상의 산악국가로, 텐산산맥, 파미르고원, 키르키즈산맥 등 10여개 산맥이 있고 평균 해발고도가 2,750m나 돼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휴게소에서 아침밥을 시켰는데 음식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컵라면을 먹는 일행도 있지만 현지음식을 즐기리라 생각하고 더디게 나온 국수를 먹다.
다시 차는 달리고, 오른쪽으로 이식쿨호수의 초입을 비몽사몽간에 보다가 잠들다.
9시30분경 촐본아타 부근인데 숙소를 구한다면서 차가 쉰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잠을 자버리다.
숙소 2군데를 들려 이것 저것 따져 보고 Raduga Marina Club을 결정했다.
가이드 포함 9명이 잘 콘도형숙소 3개를 빌리며 420$를 지불했다.
점심, 저녁, 아침 3끼 포함하고, 스파와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Raduga는 무지개란 뜻으로, 고려인이 운영하며 종업원도 고려인이 많다.
이식쿨호수와 접한 면을 제하고는 높은 담을 요새같이 쌓아 놓고,
오래된 아름들이 나무와 과실수, 꽃밭이 잘 가꾸어져 있고, 숙소는 두가지 형태로
승용차 차고가 있는 고급스런 단독형주택이 대부분이며 연립형주택(우리가 머문 숙소)이 있다.
한 여름 성수기에는 피서객들로 붐볐겠지만
성수기가 지났는데도 투숙객이 거의 차 있어 가격할인은 되지 않은 것 같았고
겨울에는 눈 덮힌 속에서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휴식을 취하고 점심식사를 하다.
싱싱한 재료를 사용한 샐러드, 담백한 육수로 만든 양고기 국수,
빨강파랑 피망으로 싼 삼사(만두)를 제공받았다.
이식쿨호수로 유람선을 타러 가다.
이식쿨호수(Lake Issyk-kul)는 4,000m급 산에 둘러 쌓여 해발 1,600m에 있는 산정호수로
남미의 티티카카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산악호수다.
길이는 170Km, 폭은 70 Km(어떤 자료에는 240Km, 90Km)이다.
주변산을 트레킹하거나 승마하는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이식(뜨거운), 콜(호수)라는 의미로 소금기가 있어 겨울에 얼지 않으나 물은 얼음처럼 차다.
유람선에 우리 일행 9명과 러시아인 가족 5명,
할머니 2명, 젊은 연인 2명, 동네청년 3명이 같이 타다.
호수의 폭이 70Km나 되니 수평선 너머로 산은 보이질 않고,
마을 쪽 산꼭대기는 하얀 고깔은 쓴 듯 만년설로 덮혀 있다.
만년설지대를 비록 갈 수는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성취감은 이미 포만상태다.
유람선이 40여분간 나가다가 엔진을 끈다.
러시아인들은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호수로 다이빙해서 수영하고 배로 올라오고,
다시 다이빙하면서 신이 났다.
1시간 30분가량 유람선을 타고 호텔로 돌아 와 휴식시간이다.
호숫가를 걸을려고 하다가 전신맛사지를 받다. 20$를 주었다.
1시간 동안 시원하게 맛사지를 받으며 코를 골며 자버리다.
저녁식사는 오이샐러드에 샤슬릭 2개, 삶은 감자였다.
투숙객들은 현지인보다 러시아본토(모스크바 등)에서 온 사람들로 부유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 휴양지여서 식재료를 좋은 품질의 유기농식품만을 사용한 듯하다.
밤에 호숫가를 걷다.
철 지난 해수욕장의 백사장에 비치파라솔 자국이 남아 있고,
호수방향으로 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가 방파제모양으로 있다.
다리 위에 음식과 맥주를 마시는 공간은 텅텅 비어 있다.
끝까지 걸어가니 불빛이 있다.
사우나에서 갓 나와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젊은이가 물속으로
푸ㅡㅇ덩 다이빙하고 바로 올라 온다.
사진) 심상치 않은 암각화를 제대로 설명듣지 못햇고, 알 방도가 없다. 야외박물관에서
9월13일 / 여행 7일차
05:30 산책, 일출
08시 아침식사
09시 콘도 출발
11:20 야외박물관(Ruk Ordo) / 입장료 1인당 300솜
13:40 산 "Semenovokoe Uslele(세묘노브스카야 우세리에) / 입장료 1인당 50솜
15:20 점심식사 / 식대 총 2,360솜, 공통경비로 환전
19:10 비쉬켁 마리아게스트하우스도착 / 숙박비 1인당 35$
22시 양샤슬릭 / 식대 총 2,510솜, 돌아올 때 택시 1대당 167솜/4인
24:40 이야기꽃 / 슈퍼에서 술?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 진다. 어제 받은 전신마사지의 효과로 몸이 가볍다.
호숫가로 나가 철지난 백사장을 호젓하게 혼자 걷다.
파도소리가 찰랑댄다.
드디어 해가 뜬다.
묻 일출을 보아 왔건만,
중앙아시아 호수에서 보는 일출은 또 다른 느낌
박차고 솟아 오르는 태양이여,
날마다 똑 같은 위치에서 솟아 오르겠지만,
내일 나는 여기에 없겠지.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고려인 2세 아줌마가,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해 서러운 마음을 달래던 1세 이주민이
이 자리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본 적이 있었겠지.
수백년전 고선지장군과 그 휘하의 부하들도,
더 오래전 혜초스님이나 현장스님도 이 자리에서
저 태양을 보았겠지.
촐본아타가 고구려의 졸본(卒本)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고구려 유민들이 여기까지 흘러 들어와 터전을 잡았을까?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한 사람들이 여기를 거쳐 한반도까지 흘러왔을까?
암각화의 문양이 유사한 게 있다는데.......
고고학자들이나 고민해야 할 사항을.....
이런 상념을 깨버릴려고 우두둑 소나기가 쏟아진다.
5분만에 모든 옷이 젖어 버린다.
아침식사에는 여러가지 소세지와 햄, 요구르트가 나오고, 커피가 제공된다.
9시에 체크아웃을 하다.
티스푼을 하나를 찾을 수 없어 20솜을 페널티로 지불하다.
가이드가 사과배 같은 과일을 딴다. 금새 허접한 비닐봉지가 가득해진다.
부모님께 갖다 준다기에 튼실한 비닐봉지를 주면서 과일을 따 주다.
사과배가 생김새는 별 볼일 없으나 일조량이 많고 호수바람탓으로 아삭아삭하니 맛이 좋았다.
차로 30분 정도 가니 야외박물관 Ruk Ordo다.(불행히도 인터넷에서 박물관을 찾을 수가 없다)
"칭기스아이맛또바" 라는 키르키즈스탄에서 존경받는 작가가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이 지역 출신이고, 대통령만큼 존경받았고, 장례식이 거창했다는 가이드 설명이다.
5대 종교(불교, 이슬람, 천주교, 기독교, 하나는 ?)의 집회장소와 상징물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고, 키르키즈스탄의 역사적인 유물이나 그림전시관이 있다.
호수 쪽에는 아름다운 구조물이 있다.
키르키즈스탄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나서 역사적 정통성을 찾고자 마나스(Manas)를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마나스가 실제 인물인지 불분명하다.
키르키즈스탄이 수멊이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하면서 마나스란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꿋꿋하게 지켜 냈다며 마나스를 칭송하는 마나스부 가 구전으로 읊어지고 있다고 한다.
마나스를 극단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은 마나스 열정에 빠져 온 생애를 보낸다고 한다.
주요 도시 곳곳에 마나스동상이 있고, 유일한 국제공항의 이름이 마나스이다.
차로 30여분 산쪽으로 이동하여, 즉 고도를 높혀 발음이 안되는
"Semenovokoe Uslele(세묘노브스카야 우세리에)"를 가다
입장료 50솜을 내다.
길들인 독수리를 손등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라고 10여명이 차로 달려든다.
차에서 내리니 말을 타고서 독수리를 들고 있는 마부들이 있다.
가이드에게서 1시간동안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지체없이 걸어가다.
이럴 때는 우왕좌왕하는 시간만큼 손해다.
계곡물 소리가 우렁차고 전나무 같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고
양쪽에 있는 산의 경사가 제법이다.
40여분 올라가는데, 일행들이 모두 온다.
계곡에서 송어나 산천어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다.
계곡의 물살이 세고, 희뿌연 색이지만 만져보니 매우 차가웠다.
사진) 유르타에서 여름 성수기에는 마유주나 음식을 판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 와 대중적인 식당에서 "아실람프" 라는 냉국수(1그릇 50솜)를 먹는다기에
나는 따뜻한 라흐만(1그릇 100솜)을 시키다.
양고기를 육수로 내서 말아 나온 국수맛이 적절한 향신료와 더불어 환상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빵(리뽀시카)을 요리와 더불어 먹는 게 현지 관습이라고 한다.
오후 3시20분에 비쉬켁을 향해 출발하다.
이식쿨 청정호수에서 나오는 물고기를 말려서 파는 노점상이 보이고(물고기 요리 맛을 보지 못한게 아쉬웠다) 촐론아타를 지나니 삭막하고 황량한 산풍경이 계속된다.
마유주룰 한잔 마시는데 시큼한 맛이었지만 몸에 좋을거라 생각하고 벌컥벌컥 마셔 버리다.
비쉬켁에 다가가니 차량이 늘어나고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오후 7시에 오늘밤에 머물 마리아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다.
차에서 내려 벨을 누르니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 거~~ 누구시요~~~" 하는데 목소리와 톤이 매우 귀에 익다.
게스트하우스 창문에 대고 "방금 문 열어 주신 분,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더니 세상에....
가이드의 아버지로 내 고향사람으로 나보다 1살 어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국민학교 동창이란다.
이역만리에서 고향사람을 만났으니 오히려 그 분들이 나를 더 반긴다.
저녁은 일행들이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양고기샤슬릭을 아주 잘하는 집을 가다,
비시켁 시내를 관통해서 시내보다 높은 지역인 고급주택가가 있는 지역에 식당이 있었다.
식당이 완전 만원이다.
외국 관광객도 상당수 눈에 띄고 양고기 익는 냄새가 입맛을 자극한다.
양고기, 양갈비, 닭고기샤슬릭을 3개씩 시켰는데, 양갈비가 가장 인기 있었고,
닭고기샤슬릭이 가장 인기가 낮았다.
한국에서는 큼직한 크기의 양갈비를 먹을 수 없으니 인기가 높았다.
사진) 식대가 나온 계산서. 합계액조차 숫자를 읽기가 어려웠다. 2,510솜이 맞나? 아마 4,510솜 같다.
택시 2대를 대절해서 마리아게스트하우스로 향하다. 게스트하우스까지 167솜이 나왔다.
미터기로 택시요금을 받는데, 5명이 탄 차는 요금을 더 달라고 해서 가이드와 실랑이를 벌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야기꽃이 피다.
주인장은 한국에서 가져 온 고추, 열무, 배추, 파 등 온갖 채소를 마당에 심어 놓고
이 채소로 반찬을 해 먹는다고 한다.
술판을 벌이는데 고춧가루범벅 열무김치가 단연 인기다,
총각김치에 흰 쌀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주인장들의 인생유전 이야기를 듣다보니 12시가 넘어간다.
사진)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심어 놓은 열무, 상치, 고추등. 한국식 닭장을 만들어 닭도 키우고 있었다.
9월14일 / 여행 8일차
07시 아침식사
08시 재래시장 구경
10시20분 주인장과 환담---알마티 통화, 홍경천, 상황버섯
11시10분 알라아르차 국립공원도착 / 입장료 1인당 60솜, 주차비 300솜
13:35 점심식사 후 트레킹 시작 / 점심 총 1,070솜
16시 트레킹 종료 후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출발
17시 게스트하우스 도착
18시 마나스공항으로 / 가이드비 총 300$, 차량비 총 510$로 1인당 100$ 부담
19:50 타슈켄트를 향해 출발
20:10 타슈켄트공항 도착
22시 저녁식사 / 그랜드플라자호텔내 명가 총 25만솜정도
23시 취침 / 그랜드플라자호텔 약 50$/2인1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7시30분경 거실로 나오니 밥상이 차려져 있다.
아욱국에 총각김치, 저린 깻잎, 열무김치, 순창고추장 등 내가 집에서 먹는 반찬과 똑 같다.
주인아줌마에게 한국에 사갈만한 걸 물었더니, 홍경천, 상황버섯, 꿀, 견과류를 추천한다.
상황버섯은 오래 된 뽕나무가 많아 품질이 매우 좋다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 시장구경을 가다.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농산물과 저급의 의류 등 공산품이 있다.
방금 막 잡은 양을 피를 뚝뚝 흘리며 칼로 자르는 모습은 보기에 좀 그랬다.
10시20분에 알라아르차(Ala-Archa)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하다.
비쉬켁 시내를 관통해서 약 1시간 거리로 비쉬켁에서 남쪽으로 30KM거리에 있다.
시내를 벗어나니 산악지형이 나오고 방목하는 소,말,양떼가 보인다.
"알라아르차" 는 아랍어로 "신의 산"이란 뜻이다.
최고봉은 4,500m정도인데 장비만 잘 갖추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이야기)
입구에서 1인당 60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다.
입구에서 1인당 60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다가 약수가 있는 계곡에서 쉬다.
약수가 매우 차고 트레킹을 위해 패트병에 약수를 가득 담다.
계곡물 색깔이 희뿌연한게 석회질이 많은 걸로 보인다.
차에서 내리니 기온이 매우 차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분위기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좋은 풍광을 구경하다.
트레킹은 점심식사후에 하자고 결정하고 식사를 할려는데 여의치가 않다.
멋지게 생긴 건물은 아예 식당을 하지 않고, 아래 있는 허름한 식당에 국수를 주문하다.
한명이 구토증세가 있고 어지럽고 으슬으슬 춥다고 한다. 영락없는 고산병에 저체온증 증세다.
바로 하산하라고 당부하는데 좀 있어 보겠다고 하여 기다렸으나
결국 상태가 더 심해져 게스트하우스로 내려가다.
사진) 겉은 멀쩡하게 예쁘게 생겼으나 식당문을 열지 않고 화장실 이용도 금지
사진) 점심먹은 식당. 서비스정신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1시간 30분이나 기다려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1시35분에 트레킹을 시작하다.
완연한 늦가을 날씨로 햇살이 구름에 가리면 으실으실 추워진다.
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 트레킹하는 코스가 있는데 가이드가 앞에서 산길로 접어 든다.
사진) 폭포까지 3.75Km, 도로를 따라가면 1.3Km이정표이다.
사진) 산에서 내려오는 현지인들(?)
폭포까지 3.75Km인데 3시까지만 올라가고 되돌아서서 4시까지는 차로 돌아오라고 한다.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김준길님과 우리 페이스대로 진행하기 시작하다.
사진) 들머리 이정표부터 1.5Km를 왔다는 표지나무일 것이다.
계곡 깊숙히 숨어 있는 능선이 운무에 가렸다가 보였다가 하고,
앞산에 걸쳐 있는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으면서 홀연 산봉우리를 보여 주기도 한다.
장쾌한 계곡이, 평생 보지 못한 풍광이 발 밑에 펼쳐진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폭포를 물으니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다. 줌으로 땡겨 본다.
1인용 텐트가 전망좋은 곳에 쳐져 있다. 부럽다~~~~~
눈사태가 난 길로 급히 내려 갔다가 완만하게 오른다.
누가 따라오는지 뒤돌아보는데, 길을 잘못들어 산으로 올라 가고 있다.
"거기 길 아니여~~~~~" 아무리 외쳐도 한국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는지 계속 올라만 간다.
러시아말을 했더라면 알아먹었을텐데~~~~
산사태가 난 계곡길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지나 좌측으로 돌아서니 폭포가 눈 앞에 보인다.
늦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며 안개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사진) 혼자 야영하고 있는 프랑스인. 언젠간 나도 여기서~~~~
9월14일 / 여행 8일차
11:10 알라아르차 국립공원도착 / 입장료 1인당 60솜, 주차비 300솜
13:35 점심식사 후 트레킹 시작
16시 트레킹 종료 후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출발
17시 게스트하우스 도착
18시 마나스공항으로 / 가이드비 총 300$, 차량비 총 510$로 1인당 100$ 부담
19:50 타슈켄트를 향해 출발
20:10 타슈켄트공항 도착
22시 저녁식사 / 그랜드플라자호텔내 명가 총 25만솜정도
23시 취침 / 그랜드플라자호텔 약 50$/2인1실
산사태가 난 계곡길을 지나 완만한 길을 올라 좌측으로 돌아서니 홀연 폭포가 눈 앞에 보인다.
단풍이 완연하여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며 안개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폭포 주변에 가니 다시 된비알이 나타난다.
급경사를 오르는데 오락가락하던 안개비가 우박으로 바뀐다.
아뿔사, 급경사를 올라보니 폭포에서 우측으로 약 50미터 떨어진 곳이다.
우리가 올라간 길은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였고, 폭포는 된비알 시작점에서 좌측으로 갔어야 했다.
스케일 큰 협곡과 능선,
해발 2,500m(더 높을지도 모른다)를 걸었다는 뿌듯함,
바람이 불 때마다 흘러다니는 구름에 자태를 숨겼다 보였다 하는
만년설 능선을 봤다는 즐거움을 안고 하산하다.
시간만 쫓기지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고
"여길 다시 한 번 와버려" 하는 생각이 물씬물씬 든다.
다시 온다면 정상을 가야겠다.
혹 정상은 전문 등산가만 가능하다면 아마츄어가 갈 수 있는 지점까지만 가더라도
충분히 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초에 비쉬켁 시내관광 일정이 있었으나,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점심시간이 너무 길어져버려
시내관광은 차창으로 "저 건물은 뭐다" 라고만 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오후 5시10분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말자 저녁식사를 하다.
고산병증세로 미리 내려왔던 사람은 다행히 말짱하다.
오후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다.
주인장 아저씨와 아줌마의 눈매와 얼굴이 눈에 선하다.
부디 이역땅에서 성공해서 편하게 지내십시요.
가이드 마르띤아! 여행사를 차린다면 내가 많이 홍보해 줄께~~~
오후 7시50분에 마나스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8시10분(우즈벡시간)에 타슈켄트공항에 도착한다.
우즈베키스탄 입국용 세관신고서에 가지고 있는 달러를 기재했다.
일행중 한명의 세관신고서에 585$를 5,850$로 잘못 써 주어서
타슈켄트 공항을 나갈 때 큰 소동이 벌어졌다.
공항까지 나온 K사장이 안내해 준 그랜드플라자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안에 있는 "명가"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게전골로 하루를 마감하다.
9월 15일 / 여행 9일차
05:30 산책시작
07:30 아침밥
08:40 관광시작 / 개인 환전, 공통비용으로 75,000숨 갹출
11:00 침간산 리프트승차/ 리프트요금 1인당 7,000숨
13:30 차르박호수
14:40 점심 / 산천어튀김 및 양샤슬릭 총 177,000숨
17:00 끄스빠달리 바자르
17:30 브로드웨이
18:20 양샤슬릭 전문점에서 저녁식사 / 식대 총 53만숨
21:00 취침 / 호텔비 약 50$/2인1실
6시에 호텔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가
티무르동상을 보고서야 티무르광장에 온 것을 알게 되다.
티무르광장은 로타리형태로 차도로 둘려 쌓여 있고, 광장을 갈려면 지하도를 건너야만 한다.
광장 주변으로 시계탑, 우즈베키스탄호텔, 티무르박물관, 브로드웨이거리,
러시아풍의 현대식건물들이 즐비했다.
시계탑은 1947년 2차세계대전 승전기념으로 건립했다는데 지금은 자동화된 시계라고 한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하다.
8시 30분에 K사장이 오다.
개인이 필요한 돈을 1달러당 2,750숨으로 환전해 주다.
첫날 굴나라호텔에서 2,650숨에 환전한 것 보다 훨씬 유리한 환율이다.
오늘은 직접 운전해서 침간산관광과 시내관광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 유일하게 있다는 골프장을 구경하다.
한국사람이 건설해서 운영한다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니 목화밭이 보인다.
목화는 9월초순부터 11월초순까지 딴다고 하며, 전 국민이 목화따기에 동원된다고 한다.
당연히 김태희보다 예쁜 처자들도 목화밭으로~~~~
하루종일 목화를 따면 한국돈으로 2만원정도 번다고 한다.
러시아가 지배할 때 정책적으로 목화를 심게 했고 지금까지도 목화밭이 너무 많다고 한다.
목화를 재배하는 땅에 다른 작물을 심거나 다른 용도로 이용할려면 아직도 매우 힘들다고 한다.
침간산은 텐산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높은 산으로 우즈베키스탄이 대부분 사막지대인데 반해
만년설이 있는 높은 지대로 러시아시절 스키장과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타슈켄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고 도로상태가 양호한 건 대통령관저가 있기 때문이란다.
속도는 시속 60Km수준만 간다. 곳곳에 경찰들이 있어 속도위반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안전장치가 없는 리프트를 타다.
리프트에 앉아서 쇠막대기를 손으로 들어서 내리면 되는 게 안전장치다.
리프트를 타고 가다가 실수로 혹은 어떤 충격에 의해 쇠막대가 들리면 바로 황천길이다.
무서워 사지가 떨린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데 대꾸할 여유가 없다.
리프트를 내리니 시야가 확 트인 산악지대를 호령하듯 일망무제로 바라다 보인다.
서양인들은 산을 향해 걸어가는데, 트레킹코스가 있다.
1시간만 더 시간이 있다면 걸으면 아주 좋은 코스인데 아쉽다.
이번 여행에 아쉬운게 천지다 .ㅎㅎㅎㅎ
차르박호수로 가는 길에 침간산 정상부위가 제대로 보인다.
K사장은 5년전만 해도 만년설이 정상부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녹아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차르박호수를 가다.
만년설이 녹아내려 형성된 호수로 타슈켄트의 상수원역할을 하고, 주변에 휴양시설이 많다.
사막지대에 있는 희소가치로 인하여 현지인들에게 매우 훌륭한 휴양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늦은 점심으로 양갈비샤슬릭을 먹다. 산천어튀김도 먹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끄스빠달리 바자르에 가다.
K사장으로부터 품질이 좋은 호두, 건포도, 대추를 추천받아 각각 1Kg씩 사다.
브로드웨이거리
길바닥에 그림을 전시해 놓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가 있는 등
유럽 관광지의 젊은이들의 거리 모습을 모방했다.
저녁은 양샤슬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가다.
우리 일행만 독립된 방에서 샤슬릭을 먹었는데,
식사중 홀에 나와보니 무희가 나와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홀에서 식사할건데.....
호텔로 들어 와 이번 여행중 가장 빠른 시각인 9시에 잠을 자다.
여행의 피로도 쌓였고, 한국에 가자말자 기다리고 있을 일들이 어른거려 쉬어야만 했다.
9월 16일 / 여행 10일차 마지막날
06:00 산책시작
07:30 아침식사
08:50 호텔체크아웃, 관광시작 / 가이드 탄야와 렌트카
핫세이맘메드레세, 무스따깔릭광장, 티무르박물관(입장료 4,000숨),
12:00 점심식사 / 쁠로프 총 15만숨
13:30 TV타워 / 입장료 1인당 29,000숨
14:30 지진기념비, 꾸일륙바자르, 슈퍼, 바부르공원
17:00 저녁식사 해들이식당 / 가이드비와 차렌트비 총 190$, 식대총 33만숨
18:00 공항으로 출발
21:00 인천으로 비행기출발
9월 17일
07:10 인천공항 도착
마지막 날이라 짐을 챙겨 놓고 6시경 산보를 나서다.
10일 동안 룸메이트였던 김준길님과 함께 어제 갔던 길을 다시 가다.
신시가지라 거리가 깨끗하고, 경찰들이 서성이고 있다.
아침식사후 K사장이 호텔에 와서 체크아웃을 도와주다.
오늘 하루 가이드는 "탄야"라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고려인 3세라는데 얼굴생김새는 우리와 비슷하나 사고방식이나 말투는 상당히 생경하다.
핫세이맘 메드레세를 가다. 불과 4년전에 완성한 메드레세다.
타슈켄트의 각 마을마다 작은 메드레세는 있으나 관광객들을 위해 대형 메드레세를 건축했다.
약 2천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대형 메드레세라고 한다.
이미 히바, 부하라, 사마리칸트에서 유서깊은 메드레세를 보고 온 터라 감동은 없다.
무스따깔릭광장, 독립기념관이라 불리는 곳을 가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목숨을 바친 청년들을 추모하기 위해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조각해 놓았다.
1999년 5월9일 추모의 날이 공포되고 추모의 광장이 조성되었다.
과거 레닌동상이 있던 자리였다는데, 꼭대기부분에 우즈베키스탄 지도와
중간부위에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사진) 부하라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들.
티무르박물관을 가다. 아침에 봤던 푸른색 지붕의 건물이었다.
1,000숨짜리 화페에 그려진 건물이 티무르박물관이다.
1990년도에 개관하였고, 티무르 관련 기록과 유적지를 축소한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 올라가니 중앙에 코란이 펼쳐져 있고 벽면의 그림이나 채색이 무척 화려하다.
2층은 사마리칸트, 3층은 부하라에 있는 유적의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미 주요 유적을 보고 온 터라 복습하는 효과가 있었고,
다른 관광객에게 영어로 해설해주는 가이드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들으니 몇 가지를 더 알게 됐다.
역사지식이 있는 전문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니 유익했다.
사진) 바무르나마 책의 표지일것이다.
사진) 아프락시압 박물관에 가서 고구려사신도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림에서 찾아내다.
사진) 키르키즈스탄의 알라아르차국립공원이라고 써 있다. 놀라운 발견을 한 눈매가 매운 분께 감사하다.
사진) 초승달과 캬라반, 큰 칼 찬 이슬람무사~~~~
사진) 티무르박물관 외관
12시경 플로프를 잘하는 식당을 찾아가다.
플로프는 쌀밥을 양고기와 여러가지 기름, 야채들을 섞어 큰 솥에서 볶아 나오는 전통음식이다.
과거 전쟁터에서 영양보충을 위해 먹었던 고단백, 고열량 음식이며, 남자들만이 만든다고 한다.
느끼한 기름탓으로 먹기에 거북했지만 그런대로 먹었다.
타슈켄트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TV타워를 가다.
입장료가 무려 29,000숨으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7,000숨이었다고 한다.
TV타워는 375M로 세계 9위의 탑이라는데, 타슈켄트의 모든 시가지를 보기는 했으나,
시가지가 아름답거나 고풍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타슈켄트의 Tosh는 돌, Kent는 도시라는 뜻이며, 5세기경에는 석국(石國)으로 불렸다.
시내 중앙으로 암호르강이 흐르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한다.
신도시의 중심은 아침에 산보했던 티무르광장이다.
모든 문명은 길을 통해 발전하는데 타슈켄트는 실크로드의 한 가운데 중심지였고,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지진기념비를 가다.
1966년 4월 26일 새벽 5시22분에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이 때 희생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도에 대지진에 맞서 용기있게 지진을 억누르는 남자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신부 친구들이 함께 와서 피로연을 하고 잇다.
여기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빨리 결혼한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꾸일륙바자르를 가다.
입구에 고려인 3세인 아낙네가 한국식 김치, 총각김치 등을 팔고 있다.
뒷편에 있는 향신료가게에서 희한한 냄새가 나는 향료를 만져보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백화점을 갔으나 휴일이었고 대신 슈퍼를 구경삼아 들리다.
바부르공원을 가다.
바부르는 티무르제국 후반기인 15세기에 주도권싸움에 밀려나서 인도북부로 도망갔지만, 중앙아시아에서 갈고 닦은 통치술을 발휘하여 무굴제국을 세운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어린이 놀이기구가 있었고, 탁구대를 발견하고 4명이 혼합복식으로 게임을 했다.
오후 5시에 마지막 식사를 하러 K사장이 예약해 놓은 해들이식당을 가서 한식을 먹다.
보쌈, 김치된장찌게가 한국과 똑 같은 맛이고 오히려 더 푸짐했다.
K사장이 남은 우즈벡 숨을 달러로 다시 환전해 주는 고마움에 큰 박수로 답하고 공항으로 떠나다.
타슈켄트공항까지 배웅나온 K사장과 뜨거운 안녕을 하다.
한국에 올 때 꼭 연락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출국수속을 하면서 가지고 나가는 달러를 기재해야 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우즈벡으로 들어올 때보다 50달러나 더 많아졌다.
키르키즈스탄에서 들어올 때 갖고 있던 우즈벡 숨을 이틀동안 다 쓰지 못했고,
공통경비에서 몇 달러를 돌려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100$를 더 기재하게 하고 나는 100$를 적게 썼다.
공항 면세점에서는 우즈벡 숨을 받지 않는다.
간단히 요약하기 어려운 "우즈베키스탄"의 어원을 알아본다.
칭키스칸의 후손들이 세운 차카타이칸국이 쇠망하고 그 뒤를 이어 주도권을 장악한 티무르제국.
티무르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던 14세기경부터 속디아나(타슈켄트가 그 중심)지방으로 우즈베크민족이 이동해 오기 시작한다.
1500년에 황실의 용병(유목민이 주류)들은 "우즈베크칸" 이라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모여 들면서 "우즈베크" 민족으로 불리우게 된다. 그러나 "우즈베크칸"이 통일왕국은 이루지 못하고 16세기경부터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영토내에 "코칸트칸국, 부하라칸국, 키바칸국"으로 정착된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우즈베크칸의 자손의 땅" 이라는 뜻으로 그 이전에 찬란했던 문화를 이루었던 원주민과는 다른 민족이다. 즉, 그냥 흘러 들어 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일 뿐이다.
19세기 중반 러시아가 코칸트칸국, 부하라칸국, 키바칸국을 점령하여 보호국으로 만들고, 1917년 러시아혁명 후 1925년에 우즈벡사회주의공화국(당시에는 수도가 사미리칸트, 1930년에 타슈켄트가 수도가 된다)이 되었고, 1991년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현재 120여개 민족이 살고 있어서 국가의 정체성이나 민족의 개념을 우리같은 사고방식으로 이해할려고 접근할려고 해서는 안될것이다.
여행은 끝났다.
15년전부터 가고자 했던 소원을 풀었지만,
중앙아시아 "스탄"에 대한, 이슬람에 대한, 실크로드에 대한 동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말 "땅"은 100년전만 해도 "ㅅ당" 즉 사이시옷이 들어 간 것이었고, "ㅅ당"이 "스탄" 의 어원이라는 글에 대한 해답찾기는 계속 될 것이다.
더욱이 알라아르차국립공원과 이식쿨호수의 트레킹코스를 여유있게 가고 싶은 숙제를 더 하나 안게 되었다. 고향사람도 만날겸.....
같이 했던 일곱명에게 깊이 깊이 감사하다.
그대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베낭여행을 꿈이나 꾸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