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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5, 사의 설교 준비와 발표, 인공지능(AI) 이용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목사의 설교 준비와 발표(인공 지능 AI 이용)(엡25)
성경: 엡4:11-12 - 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교회에 대한 것이다.
1-3장은 교회에 대한 교리,
4-6장은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지키는가,
교회의 기본 요소인 개인 및 가정의 성화, 영적 전투 등을 설명한다.
지난 몇 시간,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몸인 교회에 여러 선물들을 주셨다
- (11) -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들 중 지역 교회에 가장 큰 선물, 가장 중요한 직무 수행자인 목사 겸 교사, 목사의 책무
12절 -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을
1. 완전하게 하고
2.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것
그 결과 13 -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교회가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른다.
14절 -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어른이 되어 교리의 바람에 휩쓸려 다니지 않는다.
16절 -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위대한 말씀
오늘 < >, 목사의 이 모든 일은 가르침과 훈련으로 된다.
그래서 목사는 목사 겸 교사이다
- (11) -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꼴을 먹이고 가르치는 직무 수행자, 목양과 교육
오늘은 목사의 설교 준비와 발표에 대해 말씀드리려 한다.
오전 예배 시간에 이것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 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다 들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신학생, 리더들만 들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 가운데서 목사가 될 사람도 있다.
또 누구나 목사의 설교를 판단하면서 들어야 한다.
무조건 아메 아멘 하면 목사도 발전하지 않고 성도들도 무지하여 교회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이 설교를 듣는 분들 가운데 목사나 목사의 아내가 되어 교회를 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따르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 설교한다는 심정으로 설교 준비와 발표의 에센스를 말하려 한다.
목사의 설교 준비
목사의 조건(딤전3),
오늘의 주제 설교와 관련해서는
2절 -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고,
4절 -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고,
6절 -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것은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초신자는 안 된다.
요약하면
1. 목사는 글이 아니라 말로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말을 조리 있게 못하면 목사를 할 수 없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혹은 설교할 때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청중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천장을 보면서 이야기하거나, 논리성이 떨어져서 설득이 되지 않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자기가 하는 말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안 된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일, 체험한 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자기가 알지 못하거나 체험하지 못한 일은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야 한다.
2. 자기 집을 다스릴 줄 모르면 안 된다.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해 구원을 못 받게 만들거나 불신자의 삶을 살게 하면 목사를 하면 안 된다. 물론 아이들의 경우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목사의 아이들과 아내가 교회의 문젯거리가 되면 그 사람은 목사의 일을 수행할 자격 혹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집에서 교육이 안 되는데 어떻게 교회를 하는가?
3. 초신자는 안 된다. 요한복음 3장 16절 등으로 구원받있다. 마태복음, 요한복음, 신약 성경, 구약성경 1-2번 읽은 상태로 목사가 될 수 없다.
목사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회피하지 않고 다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성경을 수십 번 읽고 성경 말씀을 분석하여 성도들이 믿음과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 (13) -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조직 신학이 올발라야 한다. 성경의 중요 교리 혹은 신학: 성경, 하나님, 마귀, 천사, 사함, 죄, 구원, 성화, 교회, 종말론(천국 지옥 휴거, 부활, 심판)
그런데 성경은 이런 것들을 차례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시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어떻게 교리나 믿음을 정리하는가? 어떤 토픽에 대한 성경 말씀들을 다 모으면 그것이 그 주제에 대한 믿음이 된다.
지옥, 54회, 위치, 대상, 천국과 비교, 존손 기간, 상태, 지옥에 대한 교리 이런 식으로 성경의 중요한 20여 가지 토픽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 모으면 각각이 하나의 믿음 체계 즉 교리가 된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구원, 죄, 성화 등 이런 것을 조직 신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신직 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이라야 한다.
성경에는 어려운 구절들이 다수 나온다. 미묘한 구절들이 나온다.
대다수 이단들의 특징: 어떤 주제에 대한 다수의 성경 말씀(99%)을 무시하고 소수(1%)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소수로 다수를 누르려는 교리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조직 신학이 약하면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할 수 없다.
그러면 교회는 무너진다.
자, 이제 신학원, 성경 공부 등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웬만큼 갖추어져서 설교를 할 기회가 생긴다.
주일 학교 교사, 목사의 출장 시 교회에서 설교 등
설교는 반드시 강해 설교여야만 한다.
설교 방법은 강해 설교, 주제 설교, 아무 준비 없으면 횡설수설 설교, 신변잡기 설교
대다수 목사들은 주제 설교를 한다.
특히 교단에 속한 목사들은 주제 설교를 한다. 왜?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새벽기도, 심방, 교회의 거의 모든 업무, 재정 관리 ,,,,,)
전 세계 목사들 가운데 한국 목사들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20살 신학교 가서부터 새벽부터 운전기사, 주일에 종일 봉사, 다른 날도 이러니 책을 읽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고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교회 일이 바쁘면 목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거의 성경을 안 읽게 되고 다른 책들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결국 말씀으로 안 되므로
1.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돌리고
2. 세상 이야기로 설교를 채우고,
3. 방언, 뒤로 쓰러뜨리는 것(입신) 등 신비주의 기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구원파 교회들도 거의 동일하다. 거의 매주 전도 집회,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
성도들이 다른 것을 읽거나 보면 안 되니까?
이러다 보니 미국 한국 등 대다수 대형 교단들, 1년치 설교 집을 제공한다,
특히 교회력에 따른 것을, 신년, 사순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송구영신, 여기에 구원, 성화 등을 집어넣어서 1년치
설교집을 제공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기독교의 여러 출판사가 매해 12월이 되면 다음해의 설교집을 판매한다.
이런 것들을 사용하면 근근히 1년 주일 오전 오후 예배를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성경 전체를 강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성도들은 거의 판에 박힌 듯한 말씀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그러면 신약 성경은 어떤 설교를 하라고 하는가?
말씀을 선포하라고 한다
- (딤후4:2) -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종교개혁 이후 전통적으로 이것은 성경 말씀을 강해해서 설교를 하라는 말로 이해가 되었다.
- 딤후2:15 -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강해 설교: 어떤 구절을 읽고 원어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의 앞뒤 문맥, 배경, 하나님의 뜻,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서 예배당을 나설 때는 그 말씀들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풍성해져서 더욱 더 자기를 돌아보고 영원을 위해 바른 것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특별힌 일이 아니면 성경 1구절보다는 몇 구절을 택해서 내 생각이 아니라 그 본문이 말하는 것을 끄집어 내어서 성도들이 피상적으로 읽을 보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상세히 설명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오늘 이 말씀들에 대해 무언가를 확실히 배웠다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특히 젊은 목회자, 처음 설교하는 분들의 경우 신약 성경의 한 책(서신서)을 택해서 몇 구절 씩 강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주제 설교는 노련한 설교자가 하는 것이 좋은데 이것 역시 여러 성경 말씀을 설명해서 그 말씀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몇 구절을 가지고 설교문을 만들까?
대다수 설교자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교문이 있어야 설교를 할 수 있으니.
이들의 생각: 설교는 나 나름대로 독특하게 해야지 다른 사람의 것들을 참조하면 안 된다. 적어도 초안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 로이드 존스, 새뮤얼 깁 등 “주석들을 보면 안 된다.”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짜서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일단 매우 힘들고 잘못하면 성경적 조직신학을 벗어나 그 사람만의 독특한 이론이 나오게 된다.
“내가 역사상 처음으로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아무도 여태까지 이것을 보지 못하였네.”
“모든 병은 귀신이 주는구나.”,
“성령 세례 받으면 방언을 해야 하니 방언을 못하면 성령 세례를 못 받았네. 구원이 아니군.”,
“구원은 받았다가도 죄를 지으면 잃어버리지.”,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은 한 사람이 천국 갈지, 지옥 갈자 정해 놓으셨다” 등등.
이렇게 생각하고 설교하는 순간에 그는 이단 교리를 생산할 가능성에 노출된다.
기독교 2,000년 역사, 성경의 모든 구절, 수십억이 보았고 적어도 수천 만의 목사, 신학자들이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그런데 지금 나만 아는 어떤 특이한 해석이 나온다면 그것은 이단 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처럼 나만의 특별한 해석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의 설교문 작성 제안
1. 본문 말씀을 읽고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문맥에 맞게 발표 형식으로 요약정리한다. 그러고 나서 여러 좋은 설교자들의 설교, 주석들을 참조하여 살을 붙인다.
2. 본문 말씀을 읽고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잘 요약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여러 좋은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거나 설교문을 보거나 주석들을 참조하여 전체적인 틀을 완성한다.
그러고 나서 나의 생각들, 내 교회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살을 붙인다. 나는 1과 2를 1-2:9-8의 비율로 한다.
연구 설교(Research preaching)
3, 후자 식으로 하면 “나는 설교 표절을 하는 사람이구나!” 마음에 동요가 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 위어스비, 맥아더, 매튜 헨리, 스펄전, 반즈 등의 주석들, 설교문 등을 먼저 보거나 설교를 들으면 그 본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사실 보통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설교의 대가들인 이분들의 통찰력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4. 이분들은 대개 전자의 방식으로 설교(혹은 주석) 준비,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후자의 방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믿는다.
5. 미국,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중 한 사람, 조지 휫필드(1714-1770),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크게 기여, 그는 설교자가 되기 전에 당시 최고의 주석으로 알려진 매튜 헨리(1662-1714) 주석을 무릎을 꿇고 외우다시피 읽었다. 그는 그를 ‘위대한 미스터 헨리’라고 불렀다, 그의 설교는 헨릐 주석이 녹안 난 결과이다. 스펄전, “그것은 최고의 주석이다.” 칼빈주의만 빼면 앨버트 반즈의 주석, 존 길의, 매튜 풀 등 주석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성경 주석 모두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BibleHib.com(*)
4. 후자의 방식은 결코 표절이 아니다. 혹시 자기 설교문에서 그런 분들의 것을 많이 사용했으며 그 설교자의 주석(혹은 설교문)을 많이 보았다고 이야기하면 된다. 왜 표절이 아닌가? 이 유명한 주석가,
설교자들도 이미 자기들 이전 시대 설교자(주석가)들의 것이 머리에 들어 있어서 그런 설교(주석)가 나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사도 바울, 예수님까지 가는 것이다.
설교문 작성
한국말로 된 설교집은 많지도 않지만 그냥 안 보는 것이 좋다. 김남준 목사님 책 정도나 참조할 말하다.
그러면 누구?
위어스비, 스펄전(국내 번역 책들), 맥아더, 헨리, 반즈요즘은 특별히 AI 시대, 설교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를 찾아서 요약 정리를 해 주니까.
이분들의 책이나 설교문을 그대로 데이터로 써서 설교문을 만들라고 인공 지능에게 시킬 수 있다.
요즘 쇼펜하우어 책(독일 철학자 1788-1860) 인기, 구글에서 찾으면 쇼펜하우어 책들 PDF(무료 구함)
챗 GPT, 커스텀 GPT, 여기에 통째로 쇼펜하우어 책들 PDF를 데이터로 올려줌 (*)
그리고 묻는다. 쇼펜하우어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을 줄까?
그러면 인공 지능이 오직 쇼펜하우어 책들을 근간으로 조언을 준다.
그러므로 위어스비 신구약 PDF 집어넣고 요한복음 3장 1-15절에 대해 30분짜리 설교 원고를 만들어 봐. 그러면 그대로 한다.
매튜 헨리를 가지고, 맥아더는 모든 설교 기사...내 것도 모든 설교문 PDF
또 가장 도움이 된 예화를 줘...
어떻게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할지 구채적인 것들을 5개로 줘,
내 설교 대상은 1대 청소년이야, 중년층이야
개조식으로, 서술식으로
물론 나는 이렇게 하지 않지만 이미 그렇게 되는 것들이 유튜브 AI 강의에 많이 나오고 실제로 보았다.
설교 이외의 다른 많은 분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요.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영어를 못하면 좋은 목사가 되기 힘들다. 거의 모든 자료가 영어로 되어 잇으므로. 거의 모든 PDF 영어그러면 영어 PDF 올리고 설교문 영어로 나오면 Deelp 같은 좋은 번역기를 사용하고 살펴보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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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 구글 번역기도 웬만큼 잘 번역한다.
맥아더 목사 설교는 다 설교문 게재(*)
아제 앞으로 인공 지능과 컴퓨팅 파워가 발전하면 통째로 사이트 주소를 넣으면 그 안의 모든 것 학습가능, Keepbible.com
설교문이 좋으면 설교가 좋을까?
자 이렇게 해서 설교문이 문맥에 맞게, 예화도 맞게, 연령층에 맞게, 시간도 적당하게 완성되면 훌륭한 설교자 혹은 설교가 나올까?
대답: 절대로 안 나온다.
설교문을 발표하는 설교 행위는 절대로 설교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펄전의 설교집, 아마 수백만 권 판매, 수백만의 스펄전이 나오지 않는다.
왜? 설교 행위는 단순히 설교문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말씀 선포 주석) 편집자인 휴즈(R. Kent Hughes)
목사님의 글입니다. 대단히 좋은 주석이다. Kindle (*)
제목: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
예배 시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성령님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1. 로고스(Logos)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회중 앞에 섰을 때 설교자들은 일단 우리의 숙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 구절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보며 문맥 안에서 그 안의 단어들의 뜻을 찾아내고 그 단어들이 회중에게 바르게 전달되도록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본문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로고스 그 자체를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강해된 설교문이다.
2. 에토스(Ethos)
둘째는 에토스인데 이것은 곧 설교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아주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룬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손과 마음을 마비시켜 당신이 아닌 다른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이것을 열차 안내원 비유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안내원은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가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을 알려 주었기에 지금 자기와 승객들이 그 역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나는 할 일 했어. 내가 뭐 저 역에 내릴 사람인가?”
그래서 브룩스는 비록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우리가 다 구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그것에 복종하려 하고 그것을 갈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토스(정신세계)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교도인 에임스(William Ame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설교가 효력을 발휘하려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꾸밈없이 설교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에토스이다.”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가 전하는 로고스를 뒷받침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설교를 이룰 수 있다.
3. 파토스(Pathos)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다. 한번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불신자인 흄(David Hume)이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는데요.” 그러자 흄이 대답하였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열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필수적인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설교를 기뻐하신다.
배우와 설교자의 차이
그러므로 설교 시 하나님의 기쁨은 로고스(말씀)와 에토스(설교자)와 파토스(설교자의 열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신도 이 셋을 갖추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그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부언:
저도 지금까지 짧은 세월이지만 설교를 해 왔고 다른 이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을 통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논리적으로 진리를 제시해도 회중에게 감화를 주는 설교는 하지 못할 수 있다.
설교자가 행동도 반듯하고 가정생활도 바르게 하며 모든 면에서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는데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의해 큰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가 설교단에 나오면 성도들은 의례히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하고는 타성에 젖어 설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교자가 로고스 중심으로 설교한다고 하면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없는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로고스만으로는 하나님과 회중의 기쁨을 이룰 수 없다.
이 경우 설교는 대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훈계/설명 설교가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는 성도들의 감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에토스와 파토스는 설교자가 자기와 회중이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스스로 고고한 세상에 살면서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경우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공을 치게 된다.
“이 설교는 일차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며 바로 나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에토스가 들어가야 설교가 살아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열정(파토스)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면서 회중은 말씀에 비추어 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좋은 목사/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일이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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