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4대 길지중 하나로 손꼽히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있는 의성김씨 종택입니다.
이 집의 배치는 특이하게도 "巳"형으로 되어 있는데 16세기 경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성일이 당시 북경 상류사회의 주택배치도를 가져와 지었다고 합니다.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舍廊)채가 행랑(行廊)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되어 집의 전체적 배치는 ‘巳’자형 평면을 이룹니다.
내앞마을 안내도
의성김씨 종택 안내문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80
* 안동 의성김씨 종택
안동 내앞(川前)마을 의성김씨종택(義城金氏宗宅)은 삼남4대 길지중 하나로 손꼽히는 양택 명당으로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다섯 아들 모두가 과거에 합격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오자등과택(五子登科宅)혹은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불리기도 합니다.
의성김씨 종택이 오자등과댁, 육부자등과지처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청계선생이 자신의 벼슬보다는 자손들의 영예를 선택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문장이 뛰어난 청계선생은 생원이 된 후 대과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 관상가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살아서 벼슬을 하면 참판에 이를 것이나 자손 기르기에 힘쓰면 죽어서 판서에 오를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벼슬보다는 자손의 영예를 선택해 대과를 포기하고 자손들의 학문 장려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다섯 아들인 약봉(藥峯) 극일(克一), 귀봉(龜峯) 수일(守一), 운암(雲巖) 명일(明一), 학봉(鶴峯) 성일(誠一), 남악(南嶽) 복일(復一)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 이 집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 불리게 되었고, 자손들이 높은 벼슬을 하였으므로 청계선생은 이조판서에 증직되어 이 집이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16세기에 불타 없어진 건물을 조선 선조(宣祖:1552∼1608)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巳’자형으로 다시 지은 의성김씨의 종가(宗家)이다.
이 가옥은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舍廊)채가 행랑(行廊)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되어 집의 전체적 배치는 ‘巳’자형 평면을 이룬다. 안채는 다른 ‘口’자형 평면 주택과 달리 안방을 바깥쪽으로 높이고 동쪽을 향하고 있는 커다란 대청(大廳)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손님을 접대하는 곳인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안채보다 깊숙이 외진 곳에 배치하여 방문객이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1.6m 정도 높은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건물로 바깥채보다 높다. 행랑채와 사랑채에 이어지는 부속채는 완전한 2층 구조를 이루는데 위층은 서고(書庫)로 사랑채의 대청과 이어지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의 외관은 가지런하게 수평으로 이어진 지붕 위에 4개의 합각(合閣)지붕으로 변화를 준 형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안동의 의성김씨 종택들(청계종택, 묵계종택, 운암종택, 학봉종택)들을 둘러보니 하나 같이 길지(양택명당=혈)에 자리를 잡아 집이 세웠져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양택풍수에 조예가 깊은 분이 계셨던 것으로 사료 됩니다.
첫댓글 사진이 젤위에 1개만 보이고 나머지는 안보이네요~
사진이 모두 잘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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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일 문제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보이네.
선구자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하
여그가. 의성 김씨 종택이 였군요
히히~지는. 안동 김씨줄.
알았다요~~
아고야~~~ 지숭해요
풍수 지리학적으로 잠두혈(누에가 석(3)잠을 자는모습)600년 역사의 명맥을 이어 내려온 숭고한 영남의 유림이 아니던가.....
길이 보존하고 .후세에 영원히 남겨야할
조상의 얼을 한폭의 영상으로 남겨줘서 고마울뿐이네........
사진 모두 잘 보입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정말 대단해유~고즈넉한 한옥등...잘 읽고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