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바다와 어촌 풍경이 정겨웠던 하루(#36)
2023년 1월 29일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영하 3도~영상 7도
거리 : 17km 5시간 동행 : 27명
<나이 듦의 기술>
엘렌 랭어의 책 ‘늙는다는 착각’에는 ‘시간 거꾸로 돌리기 연구’라는 실험이 등장한다.
이것은 70~80대의 노인들을 20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려 일주일간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한 실험이다.
그 시절의 뉴스와 영화를 보고, 그때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다.
실험 전까지 글자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던 독서나 관절이 아파서 하지 않았던 설거지와 청소는 물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까지 노인들은 ‘스스로’ 그 모든 일을 해냈다.
청력, 기억력, 악력, 유연성, 자세나 걸음걸이까지 현저히 ‘젊어진 것’이다.
저자는 “노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체가 아닌 신체적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신체 나이에 맞는 올바른 생활방식과 태도가 있다고 믿으면 60대와 70대에 남는 건 은퇴와 노화뿐이다.
그러나 노화와 퇴화는 다르다.
기억력 퇴화 역시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젊은 시절에 비해 많아서 생긴 정체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결국 태도다.
노년의 기억력이 좋아지려면 늘 먹던 것, 가던 곳을 갈 때가 아니라 새로운 음식을 먹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갈 때다. <백영옥 소설가>
<창선도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남파랑길 여정>
어느 덧 남해도의 창선을 떠나 사천으로 향하는 남파랑길 발걸음이 빠르다. 유난히 추웠던 12월과 1월 날씨에 따뜻한 남쪽 나라를 걷는 유유자적 낭만의 길은 나름 새로운 활력을 주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기력은 줄었지만 바닷가를 따라 걷는 트레킹은 점점 묘미를 더 한다.
오늘도 28인승 버스는 자리가 다 찰 정도로 성황이다. 사천과 창선이 인기가 많은 지역이라 여겼지만 참가자가 적어 어려움을 겪는 운영진에게는 다행이다.
창선 면사무소를 출발한 일행들은 36코스를 따라 운대암을 거쳐 능선을 걷는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은 마지막 단항에서 교량을 건너는 거리 정도여서 일부 참가자들과 서대리를 거쳐 북쪽 해안을 따라 진행하기로 했다.
운대암 : 창선도 대방산(臺芳山)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산마루에 오르면, 깊은 계곡 아래 저수지 물빛은 내리쬐는 햇빛이 반사되어 은하수를 만든다.
반짝이는 은하수를 돌아가면 구름에 떠 있다 하여 이름 지어진 운대암이 있다.
백두대간에서 지리산 자락을 타고 남하하여 하동에서 잠시 바다로 몸을 숨겼다 다시 솟아올라 마지막 기상을 담고 있는 곳이 남해도이다.
남해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창선도에 운대암이 있다.
불국토의 땅 남해도 창선면 사람들의 고된 삶의 안식처가 운대암이다.
고려 말에 창건하여 망경암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지금의 터로 내려와 다시 창건해 운대암이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상신 마을 : 상지, 하지, 아랫 모산, 웃 모산의 4개의 마을이 모여 상신 마을을 이룬다. 식포 마을과 상신 마을, 창선면의 자긍심인 정익환 대장을 기리는 비문이 있다.
척진도세(세금을 배척한다)을 외치며 의연히 민초들을 위해 떨쳐 일어선 정대장이 체포되자 창선 여인들의 2년 동안의 빠짐없는 침묵시위로 풀려났다.
일곱 명이 그룹을 이뤄 상신리를 지나 지족마을을 거쳐 서대 고갯마루를 넘는다.
고개 이름은 '서한재' 또는 서대(西大)라 불리는데 ‘한재’라는 큰 고개의 서쪽에 있어 서대 마을로 불린다.
마을 입구에는 돌담과 황토색 지붕을 한 옛집이 뒷산과 적당히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서대마을회관을 지나 도로를 따라 가면 가빈캠핑장이 나오고 시아도 근처 고순 마을에 도착한다.
고순항(古順港)은 창선면 율도리, 고순마을 인근에 있는 어항이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온순하고 예의 바르며 얌전하여 이웃마을 주민들이 별명처럼 부르는데 ‘고신개’는 ‘고순개’의 변형된 사투리 발음으로 이후 ‘고순(古順)’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대 마을 전망대에서 보이는 남해의 풍광이 너무 멋지다. 선명한 망운산(784.9m)과 대국산(371.3m)이 바다 건너에 우뚝하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시아도와 율도가 있어 멋진 배경을 이룬다.
고순 마을에는 남해보물섬고등학교가 있어 모두들 명칭에 재미있어 한다.
햇빛이 좋은 장소에서 일행들은 점심을 먹으며 푸른 바다와 율도가 어우러지는 남해의 풍경에 푹 빠져 보았다.
굴 껍질이 바닷가를 온통 하얗게 수놓아 모래를 밟듯 사각거리는 운치도 좋다.
마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율도가 파란 바다 한가운데 우뚝하다. 마을 앞에 있는 섬이 밤 같은 모양을 하였다 하여 밤섬(栗島)이라 불리고 있다.
밤섬 율도는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되는데 멀리서 볼 때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 점심도 먹을 겸 다가갔지만 물이 덜 빠져 건너갈 수 없었다.
102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시금치를 뜯는 노부부를 보았는데 온화한 남해도에서 용돈을 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삼천포항이 7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며 대벽 마을 지나 36코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팔각정 갈림길에 도착했다.
창강공원을 지나 소백마을과 대백마을을 연이어 지나는데 마을 이름이 재미있다.
대벽 마을에 비해 산세가 험하지 않고 온화한 자연경관으로 작은 벽재라는 뜻으로 ‘소벽(小碧)’이라 불린다.
아름다운 방파제가 있는 소벽 마을은 어촌의 잔잔한 풍치를 느낄 수 있고, 저녁 무렵에는 노을진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마을에 두 갈래로 나뉘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중심으로 양쪽 산이 울창하여 사철 푸른 큰 마을이라는 뜻의 대벽(大碧)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대벽 마을
아직 36코스를 걷는 일행들이 없기에 천천히 바닷가 해변을 따라 대초도와 소초도 근처에서 왕후박나무가 있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단항 마을에서 보이는 각산과 와룡산 원경이 근사하다. 사천을 굽어보듯 우뚝한 와룡산이 있어 이곳 어부들은 큰 믿음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이윽고 상상도 못했던 생육 상태가 아주 좋은 왕후박(王厚朴)나무를 만났다.
왕후박나무는 녹나무 과의 늘 푸른 나무인 후박나무의 변종으로, 후박나무보다 잎이 더 넓다. 뿌리를 깊게 뻗는 성질이 있고 해안가에서 잘 자라서 바람을 막기 위해 주로 심는다.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는 높이가 9.5미터이고, 밑둥에서부터 가지가 11개로 갈라져 있으며, 수령은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2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마을에 살던 늙은 부부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는데 배 안에 씨앗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부가 이 씨앗을 땅에 뿌렸더니 지금의 왕후박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고 하여 ‘이순신 나무’라고도 한다.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여러 면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해마다 나무 밑에서 마을이 평안해지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적어도 15명이 두 팔을 잡고 빙 둘러야 맞잡을 수 있을 만큼 밑둥이 크고 어마어마했다. 잘 생긴 후박나무를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소초도와 와룡산, 각산
소초도
사량도
단항
마을 뒤에 있는 삼막산 형상이 학이 나는 모습과 같고 학의 목뒤에는 붉은 댕기가 늘어져 있으므로 붉을 단(丹)자와 목 항(項)자를 써서 단항(丹項)이라 한다.
삼천포대교
창선•삼천포대교에 가까워지며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울창한 숲을 지나 이내 교량에 오르는데 주변 시야가 너무 좋다.
늘도대교에서 보이는 박도, 마도, 두웅도, 신도 주변에는 많은 낚싯배들이 떠 있어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와 함께 천상 공원을 이룬다.
섬과 섬을 이어 교량을 만들어 주민 편의와 물류 교역을 왕성하게 하는 연륙교 공사는 남해와 서해에 끊임없이 추진될 미래지향적인 사업이다.
늑도에서 발굴된 많은 문화재에서 주변 나라(중국, 일본)들과의 교역이 활발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멋진 창선대교를 지나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만끽하고 삼천포 어시장에서 싱싱항 회로 뒤풀이를 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넉넉한 바닷길 걷기와 먹거리 그리고 멋진 풍광으로 하루가 즐거웠다.
박도, 신도, 두웅도, 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