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새계경 제6권
24. 업품(業品) ①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기 전에는 보살마하살이 무엇으로써 계를 삼나이까?”
“선남자여,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셨을 때에는 삼귀의계가 없었고 오직 지혜 있는 사람이 보리의 길을 구하여 닦는 10선법(善法)이 있었느니라.
이 10선법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능히 분별하여 설하는 자가 없느니라.
과거의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유전(流轉)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누락되거나 없어진 것이 없고, 지혜로운 자가 받아서 행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능히 10선법을 받아서 지니고 닦지 못하는 것은 모두 과거에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에게는 다 갖가지 마음이 있고,
갖가지 마음 때문에 갖가지 번뇌가 있으며,
갖가지 번뇌 때문에 갖가지 업을 짓고,
갖가지 업의 인연으로 갖가지 유를 받으며,
갖가지 유의 인연으로 갖가지 신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갖가지 신을 얻으면 갖가지 색을 보게 되고,
갖가지 색을 보고나면 악한 생각[惡思惟]이 나는데,
이 악한 생각이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무명의 인연으로 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애욕(愛欲)이라고 하고,
애욕으로 인하여 짓는 바를 업이라고 하며 이 업의 인연으로 과보를 얻느니라.
지혜가 있는 사람은 능히 이를 부수나니,
내부의 번뇌로 말미암아 외부에 인연이 있으면 능히 결박되는데, 10선을 닦으면 능히 이를 풀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10선법을 분별하여 말씀하셨느니라.
10선으로 인하여 세간에는 선행(善行)과 악행(惡行), 선유(善攸)와 악유(惡有), 내지 해탈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10선의 도를 분별하여 체득할지니라.
바람과 구름이 있으면 큰 물을 가져오는 것과 같이,
아수라궁ㆍ대지ㆍ대산ㆍ아귀ㆍ축생ㆍ지옥ㆍ사천왕처, 내지 타화자재천처가 모두 중생의 10업도에 기인한 것이니,
전륜성왕의 4륜(輪)인 금ㆍ은ㆍ동ㆍ철과 7중(衆)이 계를 받고 삼보리를 구하는 것도 또한 10선업의 인연 때문이니라.
이 10선업의 도에 기인하여 일체 중생의 안팎의 물건과 색(色)과 목숨에 모두 증감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응당 10선도를 온전하게 닦을지니라.
모든 중생이 어리고, 젊고, 늙은 때와 봄ㆍ가을ㆍ겨울ㆍ여름으로 일어나는 번뇌가 각각 다르고,
소ㆍ중ㆍ대겁에 일어나는 바 번뇌가 또한 이와 같이 각각 다르니라.
중생이 처음 10선업을 닦을 때,
무량한 목숨과 색ㆍ향ㆍ미를 얻어 갖추었다가, 탐ㆍ진ㆍ치로 인하여 모두 다 잃기도 하나니,
이 10악도의 인연 때문에 시절(時節)ㆍ연세(年歲)ㆍ성신(星辰)ㆍ일월ㆍ4대(大)도 변하여 달라지느니라.
만약 사람이 능히 이와 같은 일을 관찰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능히 해탈을 얻으리라.
중생이 다 괴로운 인연 때문에 신심을 내게 되고,
이미 신심을 얻으면 능히 선과 악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10선법을 닦아서 마음으로 10처(處)를 행하므로 10도(道)라고 하느니라.
몸으로는 3도(道)이니, 살생ㆍ도둑질ㆍ사음하는 것을 말한다.
입으로는 4도(道)이니, 악구(惡口)ㆍ망어(妄語)ㆍ양설(兩舌)ㆍ무의어(無義語)이며,
마음으로는 3도이니, 질투ㆍ성냄ㆍ사견이니라.
이 10악업 이것은 온갖 죄악의 근본이니라.
모든 중생의 세계가 다르고, 존재가 다르고, 생이 다르고, 색이 다르고, 목숨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니, 이 인연으로 마땅히 이름도 한량이 없어서 다만 10만이 있지 않으니라.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에서 세 가지는 업이라고는 하지만 도라고는 하지 않으나, 몸과 입의 일곱 가지는 업이라고도 하고 도라고도 하나니, 그러므로 열이라고 하느니라.
이 10업도를 스스로 짓고, 남이 짓고, 저와 남이 함께 지어서, 그로부터 선과 악의 두 가지 과보를 얻는데 또한 이것이 중생의 선ㆍ악 인연이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생각조차도 않거늘 하물며 몸으로 일부러 짓겠느냐?
만약 사람이 업과 번뇌와 모든 얽매임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움직이게 한다면 이는 곧 10악도를 행하는 것이요,
만약 능히 번뇌와 모든 얽매임을 무너뜨리어서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게 한다면 이 사람은 곧 이 10선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만약 사람이 처음 방편을 베풀거나, 혹은 먼저 생각하지 않았는데, 때를 당하여 갑자기 짓게 되면, 이 사람은 업에 휘말린 죄를 얻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응당 부지런히 10선업도를 닦을지니라.
4진제(眞諦)를 증득하였더라도 역시 이와 같이 할지니라.
의도를 가지고 행하면 악행이 되지만 의도가 없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십선을 닦을지니라.
이 10선을 닦음으로 인하여 수명과 안팎의 물건이 증장하느니라.
번뇌의 인연 때문에 10악업이 더하고,
번뇌가 없는 인연 때문에 10선업이 더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10업도에는 그 하나하나에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근본이요,
두 번째는 방편이며,
세 번째는 이루어 마친 것이다.
근본이라는 것은 만약 다른 사람이나 중생을 의심을 가지고 그 명근을 끊되,
만약 직접 몸을 움직여서 끊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죽게 하면, 이것을 일러 근본이라고 한다.
칼을 구하여 예리하게 갈거나, 독(毒)을 넣고, 새끼줄을 만들거나하면, 이것이 방편이며,
죽이고 나서 손으로 쥐거나 무게를 재고 혼자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먹게 주고 얻은 물건을 임의대로 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참괴심이 없으며 마음에 후회가 없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교만한 마음을 크게 내는 것, 이것을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여기 남의 재물이 있으면, 역시 남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혹 스스로 가서 취하거나, 혹 사람을 보내어서 취하거나, 혹 의심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이것이 근본이고,
만약 담장을 부수고, 물어보아 수를 헤아리며 사다리를 놓고, 담장에 의지하여 집으로 들어가서 구하여 찾으며, 내지 손을 대면 이것이 방편이니라.
만약 얻은 것을 지고 가서 감추고 숨기고, 임의로 베풀어 주고, 팔아서 쓰며 주어 보내고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부끄러움이 없고,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크게 교만함을 내면 이것이 이루어 마친 것이니라.
만약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부녀자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속한 부녀자임을 알면서도 사악한 마음으로 범행이 아닌 행위를 하면 이것을 일러 근본이라 한다.
만약 사람을 시켜서 가게 하거나 혹은 자신의 눈으로 보거나 혹은 신물(信物)을 주거나 영락을 보내거나 함께 앉아 음식을 먹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참괴심이 없고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으며 자신을 칭찬하고 큰 교만심을 내는 것, 이것을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며, 하루 중 두세 번 거짓말을 한다면 이것을 근본이라 한다.
만약 이전부터 차례로 꾸며서 말을 꾸미고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 저쪽에 가서 달리 말하면 이것이 방편이며,
만약 일이 이루어져서 재물을 받으면 임의로 베풀어 주고 기뻐하고 즐기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교만한 마음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이 망어(妄語) 가운데에 이간어를 섞어 능히 화합을 깨뜨리면 이것이 근본이고,
만약 남의 허물과 다른 나쁜 일을 말하며, 화합하는 것은 옳지 않고 떠나고 파괴하면 곧 좋은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방편이니라.
화합을 흩어놓고 나서 남의 재물을 받으면 임의로 베풀어 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교만함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만약 낯빛을 바꾸고 욕설하고 비난하면 이것이 근본이고,
만약 남의 허물을 들으면 거기에 말을 꾸며 가지고 저에게 가서 이러한 좋지 않은 것을 말하고자하면 이것이 방편이니라.
만약 비난하고 나서 도리어 남의 재물을 받으면 임으로 베풀어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크게 교만한 마음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성적인 이야기나 적절하지 못한 말을 하면 이것을 일러 근본이라 하며,
아첨하는 말로 다른 이를 칭찬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사대로 행동한 것, 이것이 방편이니라.
만약 남에게 가르치고 재물을 받아서 임의로 베풀어 주고, 기뻐하고 즐기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큰 교만심을 내면 이것을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남의 재물에 탐욕을 내어 얻고자하면 이것이 근본이고,
번뇌심을 발하면 이것이 방편이며,
남의 재물을 얻고 나서는 재물을 임의로 베풀어 주고, 기뻐하고 즐기면서, 또 남에게 말하면서 부끄럼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큰 교만심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사람을 때리고 욕설을 하면 이것이 근본이고,
만약 몽둥이나 돌을 쥐고서 그 죄과를 물으면 이것이 방편이며,
때리고서 기뻐하고, 재물을 받아서 임의로 베풀어 주고 기뻐하며 즐거움을 느끼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크게 교만한 마음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업의 인과와 진제(眞諦)와 어질고 큰 사람을 비방하면 이것이 근본이고,
만약 삿된 글을 믿고 받아서 독송하고 서사(書寫)하며, 칭찬하면 이것이 방편이며,
받아서는 남에게 분별 연설하여 그 사견을 더하고, 삿된 재물을 받아서 임의로 베풀어 주고 좋아하면서 부끄러움도 없고,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큰 교만심을 내면 이것을 일러 이루어 마친 것이라고 한다.
혹 또 어떤 사람이 10업도에 있어서,
일시에 망어와 양설 두 가지를 행하거나,
혹은 일시에 망어ㆍ양설ㆍ악구 세 가지를 행하고,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사견(邪見)ㆍ악구ㆍ망어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바르지 않은 것들이니,
이것들을 일러 네 가지라고 한다.
성내는 것과 탐욕심은 동시에 생길 수 없으나, 그 나머지 여덟 가지는 일시에 될 수 있으니 어떻게 일시에 가능한가?
6처(處)에는 시켜서 스스로 두 가지를 행하니,
첫 번째는 남의 아내를 간음함이요,
두 번째는 업의 과보(業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먼저 행위를 하면 일시에 업을 얻느니라.
이 10악업은 혹 작색(作色)과 무작색(無作色)이 없고, 혹 작색과 무작색이 있으니,
만약 방편과 이루어 마친 것이 없는 자는 곧 작색과 무작색이 없고,
만약 장엄과 이루어 마치는 것이 있는 자는 작색과 무작색을 얻느니라.
이 10업도에는 가벼움이 있고 무거움이 있으니,
만약 부모와 벽지불을 죽이고, 삼보의 물건을 훔치며, 생모(生母)와 나한니(羅漢尼)에게 비범행(非梵行)을 행하며, 망설(妄說)로 승가(僧伽)를 파괴하면, 이를 무겁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10업도에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탐욕에서 생기는 것이요,
두 번째는 성내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요,
세 번째는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니라.
만약 이익을 위하여 목숨을 해쳤으면 이것은 탐욕에서 생긴 것이요,
만약 원수를 죽였다면 이는 성냄에서 생긴 것이며,
부모를 죽였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 생긴 것이니라.
남의 재물을 강탈하고 훔치는 것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스스로 제 몸과 처자 권속을 위하여 남의 재물을 탐내고 가서 겁탈하였다면 이것은 탐에서 생긴 것이요,
원수의 집 물건을 강탈하고 훔쳤다면 이는 성냄에서 생긴 것이며,
낮은 신분의 사람의 것을 강탈하고 훔쳤다면 어리석음에서 생긴 것이니라.
사음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만약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비범행(非梵行)을 하였다면 이는 탐욕에서 한 것이요,
원수의 권속에게 음행을 하였다면 이것은 성냄에서 한 것이요,
생모에게 비범행을 했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 한 것이니라.
망어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만약 재물과 이익을 위하고 스스로 쾌락을 얻기 위하여 했다면 이것은 탐욕에서 한 것이요,
원수를 파멸시키기 위해 하였다면 이는 성냄에서 한 것이요,
만약 다른 이가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 한 것이다.
양설(兩舌)에 세 가지가 종류가 있으니,
재물과 이익을 위한 것이면 이것이 탐욕 때문이고,
원수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이면 성냄 때문이며,
화합을 파괴하는 사견의 무리라면 어리석음 때문이니라.
악구(惡口)에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재물과 이익을 위하여 부녀자와 아이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한다면, 이는 탐욕 때문이고,
원수진 집에 악한 말을 한다면, 이는 성냄 때문이며,
다른 이의 조상의 허물을 말한다면, 이는 어리석기 때문이니라.
무의어(無義語)에도 또한 세 종류가 있으니,
옳음이 없는 말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만약 즐거움을 위하여 노래하고 외치고 떠드는 것, 이는 탐욕 때문이고,
남을 이기기 위하여서 노래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이는 성냄 때문이며,
사견(邪見)을 더하기 위하여 노래하고 떠들면, 이는 어리석기 때문이니라.
탐욕에서 생기는 것, 이를 투기(妬)라고 하고,
성냄에서 생기는 것, 이를 진심(瞋心)이라고 하며,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 이를 사견(邪見)이라고 하느니라.
10선(善)을 닦으면, 그 한 가지 한 가지에 3해탈(解脫)을 얻느니라.
이 10악업은 결정코 마땅히 지옥의 과보를 얻거나, 혹은 아귀나 혹은 축생이 되느니라.
나머지 과보로는 사람 가운데 단명하고, 빈궁하여 재물이 없으면, 아내가 정숙하거나 청렴하지 않고, 말을 하여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친밀하고 후한 것이 없어서 항상 비방을 입으며 귀로는 처음부터 착하고 좋은 말을 듣지 않느니라.
능히 외물(外物) 4대(大)로 하여금 쇠미(衰黴)하게 하며, 진실이 없고, 사나운 바람과 비에 썩고 무너지며, 토지가 평탄하지 않고, 7보가 없으며, 돌과 모래, 가시가 많아서 사납게 찌르고 시절이 전변하여 항상 안정됨이 없으며, 과실이 적게 열리고 맛이 들지 않나니, 만약 이러한 것 들을 없애고자 한다면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10선을 수행할지니라.
이 10선법은 3천하에 갖추었으며, 혹은 계섭(戒攝)이 있고, 혹은 계섭이 아닌 것이 있느니라.
북울단월에는 오직 네 가지 일이 있고,
지옥에는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며,
아귀ㆍ축생ㆍ하늘 가운데에는 열을 갖추었으나 계에 섭(攝)한 바가 아니니라.
욕계(欲界)의 6천(天)에는 방편은 없고 오직 근본과 이루어 마침, 두 가지가 있느니라.
대체로 업도(業道)라는 것은 한 생각 가운데에서 얻느니라.
만약 죽이는 자가 죽게 되는 것을 죽이면 이는 근본 업과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장엄을 하되 일을 마침내 이루지 못하면, 오직 방편을 얻고, 근본을 얻지 못하느니라.
장엄을 하고 나서 곧 죽인 자는 근본 죄를 얻고,
만약 죽이고 나서 이루어 마침을 따르지 않으면 무작죄(無作罪)가 없으며,
만약 죽이는 자가 한 생각 가운데에서 죽고, 죽여야 할 자가 다음 생각에 죽으면 죽인 자가 근본업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사람을 보내어 죽이면 부린 자는 작죄(作罪)를 얻고 입으로 명령한 자는 무작죄(無作罪)를 얻느니라.
만약 악구(惡口)의 명령이어도 또한 작죄와 무작죄를 얻느니라.
만약 죽이고 나서 마음이 선하고 무기(無記)이어도 또한 작죄와 무작죄를 얻느니라.
만약 누가 말하기를,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는데, 어떻게 죽인다고 하는가?
한 생각에 죽이지 않으면 작은 먼지 무너지지 않으니,
만약 하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많은 것도 또 그럴 수 없는지라, 어떻게 죽였다고 하겠는가?’ 한다면,
그 뜻은 그렇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비록 현재의 한 생각에 죽이지 않더라도 능히 미래를 막아서 일어나지 않게 하므로 죽임이라고 이름 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한 곳을 보고 죽임이 없다고 하여 모든 곳에 다 죽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느니라.
어떤 사람은 손을 찔리고도 죽지만, 혹은 발을 잘리고도 목숨이 온전한 자도 있으나, 머리는 그렇지 않아서 잘리면 모두 죽는다.
만약 행하고 나서 큰 죄를 얻는 것을 업도(業道)라고 하느니라.
삼업은 스스로 얻는 것이요,
칠업은 자기(自)와 남(他)이 얻는 것이니라.
만약 행위와 무행위가 없느니라.
혹 누가 말하기를,
‘몸의 업 세 가지는 행위와 무행위가 있으나, 입은 이와 같지 않다’고 한다면,
그 뜻은 그렇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만약 구행이 있고 무구행이 없다면, 입으로 명령하여 죽이고 나서 마땅히 죄를 얻지 않아야 하리라.
그러므로 구업에도 또한 마땅히 행위와 무행위가 있으나,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은 죄를 얻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행위와 무행위라고 하는가?
이 업은 3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인간 중에 태어나도 수명이 짧기 때문이며,
가진 바 6입(入)이 항상 고통을 받는 때문이니라.
나머지의 과보는 비슷하며, 근본의 정과(正果)는 혹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이 있느니라.
과보를 받을 때 활지옥(活地獄)ㆍ흑승지옥(黑繩地獄)이 있으며, 아귀ㆍ축생ㆍ인간 세 곳에서는 나머지의 과보를 받느니라.
만약 한 사람에게 살장엄(殺莊嚴)을 지으면 장엄을 짓고 나서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면 마땅히 알라. 다만 본소(本所)에서 사람이 지음과 자음 없음을 얻느니라.
만약 누가 말하기를,
‘색(色)은 무기(無記)이고, 명(命)도 무기인데, 이와 같은 무기가 어떻게 죽이고 나면 죽인 죄를 얻는가?’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몸과 목숨은 이것이 선악심(善惡心)의 그릇인지라.
만약 이 그릇을 부수면 미래에 있어서 선악심을 막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죄를 얻느니라.
만약 임금이 죽일 것을 명령할 때, 모시는 신하가 잘 한다고 칭송하면 이 왕과 신하는 죄가 다를 것이 없느니라.
사냥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만약 임종에 이르러서 그 목숨이 남은 것이 한 생각만큼이라도 있는데 칼을 대어서 죽인다면 이것도 죽인 죄를 얻느니라. 만약 목숨이 이미 다했으면 칼을 내려도 죽인 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먼저 뜻을 내어서 바로 잡고 때리고자 하여 손을 휘두를 때, 그가 문득 목숨이 끊어졌다면 죽인 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독약을 만들어서 임신한 자에게 주거나, 만약 가라라(歌羅羅)를 부수면 이 사람은 곧 작무작죄(作無作罪)를 얻느니라.
만약 자살하는 자는 죽인 죄를 얻지 않나니 왜냐하면 남에게 일으키는 생각이 아닌 때문이며, 성내는 마음이 없는 때문이며, 남이 아닌 스스로 인연인 때문이니라.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만약 마음이 선하거나, 선하지 않거나, 무기(無記)거나 간에 모두 죽인 죄를 얻나니 마치 불이나 독과 같아서 비록 선한마음이거나 무기거나 간에 접촉하든지 먹든지 하면 모두 죽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세간에 어떤 사람은 불을 쥐어도 타지 않고, 독을 먹어도 죽지 않나니,
악한 마음으로 죽인 것이 아닌 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죽인 죄를 얻지 않는 것이 모든 의사들과 같으니라.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파수 선인(婆藪仙人)이 주문을 설하여서 사람을 죽이고 염소를 죽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이는 죄를 얻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남의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인연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죄를 지은 것이니라.
남이 죽인 것을 보고는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재물을 내어서 상준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만약 남을 시켜서 죽이는데, 부림을 받는 사람이 가서 다시 갖가지 고통을 주는 독(苦毒)으로써 죽인다면, 입으로 명령한 자는 오직 작죄(作罪)만을 얻지만, 부림을 받은 사람은 작(作)과 무작(無作) 두 가지 죄를 겸하여 얻느니라.
만약 나쁜 마음을 내어 남의 물건을 탈취하면 이 사람도 또한 작과 무작죄를 얻느니라.
만약 셀 적에 취하거나 부칠 적에 취하거나, 시장에서 교역(交易)할 때 취하면 또한 도둑의 죄를 얻느니라.
만약 스스로는 취하지 않고 탐하지 않고 쓰지 않아도 남에게 사주하여 취하게 하면 이 사람도 또한 작ㆍ무작죄를 얻느니라.
만약 금을 훔치고자 하여서 취하였는데, 은을 얻은 것을 밖에 나와서 알고는 도로 제자리에 두었다면, 이 사람은 투도의 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금을 훔치고자 하여서 얻고 나서는 곧 덧없는 생각을 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서 본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하나 또 이를 두려워하여서 다른 방편을 베풀어서 훔친 물건을 돌려주었다면 비록 제자리를 떠났으되 훔친 죄를 얻지 않느니라.
노복(奴僕)이 재산에 대하여 처음에 생각하기를,
‘모두 주인과 공동의 것’이라고 하다가,
뒤에 탐하는 생각이 나서 문득 주인의 물건을 취하였는데, 취하고 나서는 의심이 생겨 곧 감춰서 피하고는,
또 생각하기를,
‘이 물건은 공동의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면,
비록 제자리를 떠났으되 훔친 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누가 길을 가다가 도적에게 강탈을 당하였는데,
마을에 이르자 촌주(村主)가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잃었는가? 내가 마땅히 보상(報償)하리라’한다면,
그 때, 만약 잃은 것보다 더 많이 말하여 남의 물건을 취한다면 이도 훔친 죄를 얻느니라.
만약 누가 발심하여 남에게 두 가지의 옷을 보시하는데,
받은 자가 한 가지만 취하면서 말하기를,
‘두 가지가 필요치 않다’고 하고,
곧 도로 남겨 둔다면 훔친 죄를 얻느니라.
만약 누가 발심하여 방사(房舍)와 침구(臥具)와 의약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한 비구에게 보시하고자 하였는데,
아직 주지 않은 사이에 다시 다른 곳의 대덕(大德)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리 돌려서 보시한다면,
이도 훔친 죄를 얻느니라.
만약 목숨이 끝난 비구의 재물을 취하면 누구에게 죄가 되는가?
만약 갈마를 마친 것이면 갈마를 한 승가에게 있고,
만약 갈마를 못하였으면 시방의 승가에게 있고,
만약 임종한 때이면 준 곳을 따라서 죄를 얻느니라.
만약 부처님 물건을 훔치면 탑을 지키는 사람에게 죄를 얻느니라.
만약 사나운 물에 떠내려가는 재물ㆍ미곡ㆍ과일ㆍ의복 생활에 필요한 것이면, 취하여도 죄를 얻지 않느니라.
만약 올바른 때와 올바른 장소가 아닌 곳에서 여자가 아니거나, 처녀나 남의 아내와 관계한다면, 이를 사음(邪淫)이라고 하느니라.
오직 3천하에만 사음죄가 있고 울단월에는 없느니라.
혹 축생이나, 혹 계를 파한 자나, 혹 승(僧)에 속하거나, 혹 옥에 갇혔거나, 혹 도망하는 자이거나, 혹 스승의 부인이거나, 출가한 사람이거나 간에 이와 같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사음이라고 하느니라.
출가한 사람은 얽매인 것이 없는데 누구에게 죄를 얻는가?
그가 속한 왕에게 죄를 얻느니라.
어려운 시기, 혼란한 시기에 악한 왕이 출현했을 때, 두려운 시기에, 만약 처첩으로 하여금 출가하여 머리를 깎게 하고 도로 이를 가까이 하는 자는 이도 사음죄를 얻느니라.
만약 3도(道)에 이르면 이도 음죄(婬罪)를 얻느니라.
혹은 스스로 혹은 남과 길 옆이나 탑 옆이나 사당 옆이나 대중이 모이는 범행이 아닌 짓을 하면, 사음죄를 얻느니라.
만약 부모ㆍ형제ㆍ국왕이 수호하는 바가 되었거나, 혹 먼저 남과 더불어 기약 하였거나, 혹 먼저 남에게 허락하였거나, 혹 먼저 재물을 받았거나, 혹 먼저 청을 받았거나, 나무와 진흙 따위로 만든 모양이거나, 죽은 시체거나,
이러한 사람들에게 범행이 아닌 짓을 하면, 사음죄를 얻느니라.
만약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사음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음에도 역시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있으니,
무거운 번뇌를 따른 즉 중죄를 얻고,
가벼운 번뇌를 따른 즉 가벼운 죄를 얻느니라.
만약 의심이 들거나 의심이 없거나, 보았거나, 들었거나, 깨달았거나, 알았거나, 물었거나, 묻지 않았거나 간에 실재와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망어(妄語)라고 하느니라.
만약 본래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한다고 말해도 이 역시 망어지만 구족(具足)이라고는 하지 않느니라.
만약 가식적으로 말하지 않거나 혹은 숨기지 않고 말하면 이는 망어가 아니니라.
만약 이상한 소리로 앞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면, 역시 망어지만 구족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만약 뒤바뀐 말을 하거나 만약 큰 소리를 내어서 똑똑하지 않게 말하거나,
만약 말은 했지만 앞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면, 역시 망어지만 구족이라고는 하지 않느니라.
양설(兩舌)과 악구(惡口)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지으면 죄를 얻느니라. 무의어(無義語)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와 같은 일곱 가지는 도(道)이기도 하고, 업(業)이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 세 가지 일은 업이요 도는 아니니라. 왜냐하면 스스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자신과 남에게 방해가 되어 큰 죄를 얻기 때문이니라.
혹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체의 미진(微塵)이 차례로 머물다가 또한 생각 생각에 멸하는데, 멸하면 머묾이 없으니,
만약 머묾이 없다면 오히려 지음도 없거늘 하물며 지음이 없음이 있겠는가?’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법에 원인이 있으면 과보가 있고 원인이 없으면 과보가 없나니,
마치 물과 거울을 대하면 형상이 나타나고 낯을 돌리면 형상이 없는 것처럼,
지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몸을 좇아서 지음이 있게 되고, 이 지은 법을 따라서 지음 없음이 나오는 것도,
물과 거울을 대한 즉 형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을 발하였기 때문에 악한 빛이 나타나고, 착한 마음을 발하였기 때문에 착한 빛이 나타나는 것처럼,
지음과 지음 없음도 이와 같아서,
선업으로 인하여 선하고 훌륭한 몸을 얻고, 만약 악한 업을 인하면 추악색(麤惡色)을 얻나니, 지음과 지음 없음도 마찬가지니라.
만약 생각 생각에 항상 멸함으로써 지음과 지음 없음이 없다고 한다면,
먼저 말한바 등(燈)과 강(河)등의 비유와 같이 생각 생각에 멸하더라도 2제(諦)를 쓰기 때문에 지음 없음을 말하느니라.
작은 티끌이 비록 또 차제로 머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또한 세제법(世諦法)과 모순되지 않느니라. 바로 미진의 차제로써 이름을 얻느니라.
부모와 나한을 죽이는 자가 있으면 한량없는 죄를 얻느니라.
부모ㆍ나한 및 다른 사람이 음(陰)ㆍ계(界)ㆍ입(入)등에는 다를 것이 없으나 중죄가 되고 무거움을 얻나니, 이것은 복전(福田)이고 보은전(報恩田)이기 때문이니라.
두 글자를 말하는 데 동시에 할 수 없으며,
그리고 이 두 글자가 마침내 화합하지 않으면 뜻을 가히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비록 생각 생각에 멸하나, 또한 망어라고 하더라도 세제(世諦)와 모순되지 않느니라.
마치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이 비록 화살을 쏘는 행위는 매 순간 사라지지만, 신업과 미진의 힘으로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지음과 지음 없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마치 혼자 춤을 추며 즐기는 것과 같이 춤을 추는 행위는 매 순간 사라지지만 신업과 미진의 힘으로 춤을 출 수 있는 것과 같이, 지음과 지음 없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마치 화륜을 돌리는 것과 같이 비록 돌리는 행위는 매 순간 사라지지만 신업과 미진의 힘으로 불이 원을 만드는 것처럼,
초발심이 다르고 방편심이 다르고, 지을 때 마음이 다르고, 말할 때 마음이 다르나,
여러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지음이라고 이름하게 되느니라.
이 지음의 인연으로 지음 없음이 생기는데, 위의가 다르면 그 마음도 다르고 또 가히 파괴하지 못하므로 지음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이 지음의 법을 따라서 지음 없음을 얻으면 마음이 비록 선(善)이나, 불선(不善)이나, 무기(無記)에 있더라도 지은 모든 업에 번뇌가 생기는 경우가 없으니, 그러므로 지음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몸으로 선을 짓고, 입으로는 불선을 지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잡과(雜果)를 얻느니라.
만약 몸으로 선업을 지음과 지음 없음이 있고, 입으로 불선업만을 짓고 지음 없음이 없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오직 선과만을 얻고 악과를 얻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경 가운데 일곱 가지의 업을 지음과 지음 없음이 있음을 말하였느니라.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마땅히 여러 가지 약을 화합하여서 고치는 것이 필요하느니라.
만약 한 가지라도 적으면 고치지 못하니, 그것은 병이 중하기 때문인 것처럼,
일체 중생도 마찬가지여서, 모든 악을 갖추었기 때문에 여러 계를 갖춘 연후에야 이를 고치느니라.
만약 한 계(戒)라도 모자라면 능히 고치지 못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