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맑음 그리고 바람.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제공된다. 깔끔하고 소박한 차림이다. 햄, 치즈, 버터, 오이. 토마토. 그리고 우유에 시리얼이다. 간단히 먹고 올라왔다. 화창한 날이다. 오전 11시 경에 체크인을 생각하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먼저 만난 것은 정교회(Church of Panagia Theoskepasti) 건물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드러난다. 석축 위에 세워진 교회가 정말 멋지다. 앞에서 보다 뒤로 돌아가 보면 석축 위의 모습이 훨씬 잘 보인다. 어제 저녁 마무리하던 해안가로 걸어간다. 고기를 들고 있는 소년상의 뒤편으로 해가 비쳐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다. 맑은 날, 햇살이 참 좋다. 멀리 파포스 성이 보인다. 하얀 요트 하나가 항구를 막고 서 있다. 성을 향해 걸어간다. 곡선미가 있는 시계탑(OIKIA=house)을 만났다. 파포스 항구로 접어드니 키프로스 항만청 건물이 있다. 특색이 있는 건물이다. 항구에는 작은 어선들이 가득하다. 파포스 성채(Paphos Castle)를 마주했다. 사각형의 별 폼이 없는 성채다. 견고해 보이지만 크기는 작다. 그래도 배경이 바다를 향해 있어 멋지게 보인다. 파포스 성은 파포스 항구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원래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1222 년 의 지진에 파괴 된 후 13 세기에 Lusignans에 의해 재건되었다. 1570 년 그것은 베네치아 공국에 의해 허물어졌다가 오스만 제국이 섬을 점령한 후 성을 복원하고 강화시켰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건을 겪었다. 곡절이 많은 건물이다. 그것은 요새, 감옥, 심지어 섬의 영국 점령 기간 동안 소금 창고로 이용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관광 명소로 찾는 이가 많고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매년 9월에 열리는 야외 파포스 문화 축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1935 년에 개축된 이 성은 파포스의 가장 독특한 랜드 마크 중 하나이다.
꼭 오페라나 연극의 무대가 될 것 같은 풍광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다리로 들어간다. 문은 굳게 닫혀있다. 항구에는 어부들이 배를 손질하고 있다. 서쪽 해안가로 이동해 보니 Woman on the rock이라는 제목의 조각상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 공주 상이 연상되는 느낌이다. 여인이 바위를 위에 엎어져서 성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둥근 돔 형태의 조형물을 기점으로 해안으로 나있는 긴 산책로(Coastal Broadwalk)가 이어진다. 거친 바위로 펼쳐진 해안가에는 선인장 무리가 자라고 있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울타리 안으로 고대 유적지가 보인다. 구멍 뚫린 울타리를 넘어가는 사람이 있어 따라 들어갔다. 먼저 만난 것은 테세우스 하우스(Villa of Theseus)다. ‘테세우스의 저택’은 귀족의 저택 터 중에서도 궁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건물로, 로마 제국 최후의 속주 주지사 프로콘술 가운데 1명이 살던 저택으로 알려져 있다. 저택의 거실은 훌륭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주제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저택에서 가장 유명한 모자이크는 저택의 이름과 같은 테세우스의 신화이다.
아티카(그리스 남동부, 아테네 주변의 지방)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을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두려움에 떨면서 지켜보는 장면이다. 이 밖에 유모들이 목욕을 시켜 주는 어린 아킬레우스를 묘사한 모자이크(40번 방)도 있다. 노천에 기둥만 보이는데 바닥에는 모자이크들이 보인다. 관리인들이 모자이크를 관리, 수리하고 있다. 바다로 더 가면 오르페우스 집(House of Orpheus) 터가 나타난다. 1984년 ‘오르페우스의 저택’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택에서 귀중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그 곳에는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특기인 리라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야수들을 매료시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전에 발견된 2개의 모자이크에는 사자와 싸우는 헤라클레스와 말을 탄 아마조네스가 그려져 있었다. 천천히 걸어간다. 돌아 나오면서 , 에이온의 집(House of Aion) 터를 지난다. ‘에이온의 저택’은 4세기의 건축물로, 5면을 훌륭한 모자이크로 장식한 방이 있으며, 세계유산에 등록된 지 3년 후인 1983년에 복원되었다. 중앙의 커다란 화면에 그려진 것은 에티오피아의 여왕 카시오페이아와 바다의 님프 네레이데스가 아름다움을 겨루는 장면이다.
중앙에 앉은 심판 에이온이 카시오페이아의 승리를 선언하자, 네레이데스가 깊은 바다로 달아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보다 작은 4면 모자이크는 중앙의 큰 모자이크를 위아래로 둘러싸듯이 그려져 있다. 그림들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레다를 따르는 백조’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은 헤르메스’ ‘디오니소스의 개선’ ‘연주 시합에서 피리를 부는 마르시아스를 이긴, 리라를 뜯는 아폴론의 처벌 선고’ 장면 등이다. 유명한 디오니소스 집(House of Dionysus)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볼만한 파포스의 모자이크(Paphos Mosaics)들을 구경할 수 있다. 파포스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손꼽힌다. 로마 시대의 저택이다. 여기에는 더없이 아름답고 훌륭한 모자이크 바닥이 보존되어 있다. 키프로스 섬에 남아 있는 로마 문화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디오니소스의 저택’으로 1962년에 초석 부분이 발견되었다. 2세기경에 번창했던 이 저택의 이름은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에서 유래한다. 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바닥에는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넋을 잃은 나르키소스나 수행인을 거느리고 개선하는 디오니소스,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피라모스와 티스베, 님프 아크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름다운 아네모네의 신들이다. 모자이크(Mosaic)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작은 돌이나 유리 타일 등의 조각을 사용한 ‘쪽 무늬 그림’을 말하는데, 이곳에서는 로마시대의 엄청난 모자이크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뜯어서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모자이크의 내용을 만들었다는 점과 그 내용이 낯익다.
그리스 신화를 생각하며 그림을 보니 대충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등장하는 신화의 여러 인물들을 찾아보았다. 이젠 멀리 보이는 등대(Lighthouse)를 향해 걸어간다. 오솔길이다. 초록의 풀들과 고목들이 줄지어 있다. 약간 언덕 위에 등대가 있다. 이 위에서 보는 주변의 경관이 참 멋지다. 평화롭고 조용한 풍광이다. 해안을 바라보며 모여 있는 마을과 그 뒤로 보이는 낮은 산도 멋지다. 그림자가 진하게 앞 서있다. 원형 극장(Roman Odeon)을 만났다. 그 앞으로는 고대 시장인 아고라(Agora) 유적이란다.
더 걸어서 만난 것이 Saranda kolones라는 성채다. Forty Columns Fortress라고도 한다. 폐허로 되어 기초만 남아있는 유적 터에 올랐다. 그저 성채위에 올라서 돌아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치들과 돌기둥이다. 넓게 펼쳐진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어디가 출입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구멍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바로 시내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왕의 무덤을 찾아가기로 했다. 걸어서 가기에는 좀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간다. 615번 버스를 타고 갔다. 서너 정거장 거리다. 입구 앞에는 The Tombs of The King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표시가 있다. 아내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별로 흥미가 없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전체 무덤의 위치가 잘 표시되어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왕의 무덤들(Kings tombs)은 버스를 탄 시내, 아래 파포스(Kato Pafos)에서 북쪽으로 약 5 km 지점에 있다. 넓게 흩어져 있는 커다란 자연석과 암반을 굴착하여 카타콤, 혹은 인도의 엘로라 석굴 같은 형태의 많은 지하 묘지 시설을 건설해 놓았다. 무덤마다 번호가 적혀있다. 각 무덤은 무덤의 평면도를 볼 수 있다. 제 3의 무덤이 발길을 끌었다. 이 지하 묘지 시설은 BC 4 세기부터 건설되었다. 위에서 본 열주랑(列柱廊)을 찾아 내려갔다. 지표면에서 들여다보이는 이 열주랑 안마당은 통로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간다. 도리아 식 열주랑이다. 이와 같이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무덤들이 해안가에 분포되어 있다. 번호를 따라 왕들의 무덤을 오르내리며 들락거렸다. 왕들의 무덤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까지 조성된 것들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다. 무덤 벽에는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색이 변하지 않은 벽화가 남아 있다. 이 곳에는 왕이 1명도 묻혀 있지 않은 데도 ‘왕의 무덤’이라고 불려 왔다. 이는 상류 계급들이 인생 최후의 안식처로 삼았던 것 같다. 암반을 파내려가 만든 지하 무덤에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안뜰이 있어, 마치 지하 거주지와 같다. 그리고 안뜰에서 여러 방향으로 길이 나 있고, 묘소와 벽들이 늘어서 있다. 지난날 묘실 벽 대부분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십자가나 비문의 흔적으로, 이곳이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지하 묘지(카타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벽에 이상한 고리가 걸려 있는 장소가 있는데,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밧줄이나 사슬을 그 곳에 매어 두기 위한 것이었자면, 이 지하 묘실들이 감옥으로 쓰인 시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무덤 5는 가장 큰 무덤인 것 같다. 무덤 5의 설계도가 보인다. 사이사이 초원이 펼쳐지고 연보라 빛 예쁜 꽃들이 모여 있다. 소나무 숲도 있다. 천천히 걷기에 아주 좋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부지런히 걸어서 밖으로 나와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제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숙소 방향으로 간다. 걷기에 적당한 길이고 날씨다. 낯익은 KFC 간판도 보인다. 아주 멋진 호텔 건물이 보인다. Roman Boutique Hotel이다. 고성 모양이다. 이집트,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꼭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둥근 로터리를 지나가니 모노레일이 보인다. 아마도 주변의 유적지를 모노레일로 구경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움직이는 모노레일은 보이지 않았다. 정교회 모양의 커다란 교회가 빛이 난다. 2개의 종탑을 가진, 규모도 큰 새로 지은 교회다. 건너편에는 대형 슈퍼 Kings Avenue Mall, ZARA가 있다. 건너편에는 지하 유적이 있는 Fabrika Hill Cave Complex가 있다. 남쪽 방향으로 걷는 길가에서 Solomoni Catacomb 이라는 지하묘소를 만났다. 소원을 적은 쪽지들이 문에 가득 달려있다. 나무에도 주렁주렁 달려있다. 서둘러 숙소 방향으로 걸어간다. Chrysopolitissa St Pauls Pillar 100m. 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가웠다. 골목길로 들어간다. 우리가 기대하던 교회가 보인다. 바울의 채찍 기둥이 있는 오래된 교회다. 입장료는 없다. 파포스 바울 채찍교회(The Church at St Paul’s Pillar, Paphos). 키프로스의 서쪽에 있는 바보(파포스)는 한때 구브로(키프로스) 섬의 수도였던 성읍으로 이 섬의 남서부 연안 평원에 위치해 있다. 바보는 구바보와 신바보로 구분되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 차 방문한 곳은 신바보이다. 이곳은 주전 55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이 섬의 수도가 되었고 로마 총독의 주재지였다. 키프로스의 서쪽에 있는 바보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 살라미를 떠나 도착한 항구도시이다. 오늘날 파포스(Paphos)로 불리는 이곳을 바울과 바나바는 터키의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살라미로 온 것과는 달리 섬 중앙을 통해 육지로 이곳에 왔다(행 13:4∼6). 이곳은 주전 55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로마 총독의 주재지였으며 바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다(행 13:6∼12). 그런데 이를 방해하려던 바예수는 바울에게 질타를 받아 얼마 동안 소경이 되리라는 선언에 따라 그가 장님이 된다. 큰 감명을 받은 당시 총독 서기오 바울은 더욱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0여 년 전 사도 바울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는 고통을 겪은 후에도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 바보 항구에서 배를 타고 오늘날 터키 남부에 있는 버가로 전도여행을 계속했다. 바울이 채찍에 맞았다는 바울채찍교회는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교회는 영국 성공회에서 바울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이다. 교회 앞에는 300년께 세워진 교회 터가 발굴되어 있었고 그 교회 유적 옆에는 ‘성 바울의 기둥’이란 푯말이 그리스어와 영어로 새겨져 있는 하얀색 대리석 기둥이 있다. 바로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기 위해 묶였던 기둥이다. 고린도 후서 11장 24절에는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매를 맞은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곳 바보에 있는 바울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는 기념교회와 바울이 묶였다는 대리석 기둥은 그 중의 한곳임을 증거하고 있다. 교회를 포함한 유적지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묘지가 있는데 덴마크의 왕 에릭 에제고드(1905~1103 ERIC EJEGOD)가 성지순례를 다녀오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 여기에 장사되었다고 한다. 하얀 대리석 기둥을 발견하고 참 기뻐했다. 13세기에 세워졌던 라틴 교회도 터만 남아있다. 모자이크 바닥이 보이는 교회 터에는 기둥들만 당시의 규모를 상상하게 한다. 오래된 교회를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은은한 분위기에 약간 어둡다. 천정 아래의 창문으로 다섯 개의 빛줄기가 들어온다. 제단 앞에는 촛불이 있고 그 뒤로 금빛 아이콘 들이 가득하다. 흰머리의 신부는 성경책을 읽고 있다. 엄숙한 분위기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손짓으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몇 방 찍었다. 셔터 소리가 크게 들린다. 6세기경에 지어진 궁전(The Episcopal Palace) 터에는 콜로네이드(주랑colonnades)기둥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제일 방문하고, 만나고 싶었던 장소였다. 선물을 잔뜩 받은 느낌을 갖고 나왔다. 이제는 숙소로 곧장 향했다. 오전 11시 30분이다.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했다. 이제는 인터시티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걸어서 가기로 했다. 약간 언덕진 길을 걸어간다. 오래된 교회가 있다. 십자가도 낡았다. 작은 분수대가 있는 로터리를 지나간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있다. 걷다가 버스를 탔다. 버스 정류장(OSYPA Terminal)에 도착해서 리마솔 행 버스를 탄다. 요금은 두당 4유로다. 조용히 파포스를 떠나 약 40분 정도를 달리니 리마솔이다. 리마솔에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약 500m 정도를 걸어서 가야했다. 배낭이 무겁게 느껴진다. 정류장 옆에는 빨간색 교회가 단단하게 보인다. Le Village Hotel(Archiepiskopou Leontiou A 242, Limassol)이다. 해안가 번화가에서 내륙으로 좀 올라간 거리에 있다. 체크인을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했다. 5층짜리 좀 오래되 보이는 숙소다. 4층에 있는 45호 방이다.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숙소지만 깨끗했고 창문으로 보이는 시내는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배낭을 던져놓고 거리로 나왔다. 항구가 있는 바다로 걸어간다. 성 바나바 성공회 교회 건물이 있다. 둥근 지붕에 십자가를 이고 있는 단순하게 벽돌로 지어진 교회다. 제법 역사가 있어 보인다. 걷다가 만나는 작은 공원에는 고목들이 있고 이름 모를 작은 흉상도 보인다. 새로 지어진 커다란 교회가 성처럼 나타난다. 규모가 커서 꼭 수도원 같다. 한참을 걷다보니 오래된 길이 나타나고 길가에 오래된 건물들이 버티고 있다. 커다란 나무 대문이 낡아서 나이가 많아 보인다. 오래된 시장 골목이 있다. 1882년 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들어가 보니 기념품 가게와 액세서리 판매점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보석, 유리, 구리, 목재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가득하다. 물 담배가 줄지어 전시되어있다. 시장과 이어지는 건물이 모스크 첨탑이다. 이슬람 지배 역사를 보여준다. 시장 홀은 식당으로 이어진다. 올드 타운 중심에 있는 리마솔 성채(Limassol Castle)가 나타난다. 현재 성은 1590년 오스만 투르크 지배 시 재건축 되었단다. 1790년~1940 년 어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2차 대전 당시에는 영국군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87년부터 중세유물 박물관이 되었다. 야외에 전시된 기름틀-기름 탱크의 크기로 보아 대량 생산 체제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요새 같은 성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에서 발굴한 유물에서 이 성이 초기 그리스도교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잔틴 때 성의 모습이 완성되었고 베니스 지배 시대 때 개축 되었단다. 입구 앞에는 1000년 묵었다는 올리브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석조 조각들이 진열되어있고 커다란 방아도 보인다. 리마솔은 니코시아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남해안의 아크로티리 만안에 위치한다. 섬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며 최대의 관광중심지이다. 이 도시가 고대의 주요취락들의 중간지점에 있던 작은 시장마을로부터 크게 성장한 것은 비잔틴 제국의 말기인 1191년 사자심왕(獅子心王) 리처드 1세가 이곳에 상륙하여 한 성채 예배당에서 나바라 왕국의 베렝가리아와 결혼하면서부터였다.(아버지나 존 왕과는 달리 그는 동성연애자였던 것이 분명한데, 베렝가리아 왕비와는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한 듯하며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현재 지방박물관이 되어 있는 그 성채는 당시의 것으로 남아 있는 단 2개의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1372년 제노바가 파마구스타를 정복한 후 리마솔 항의 부는 증대했다. 그 후 수많은 침략, 1570년의 투르크 침공한 300년간 이슬람 지배를 받는다. 곳곳에 이슬람 자취도 남아있다.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1815년 무렵에는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리마솔의 부흥은 19세기에 키프로스 섬이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항만시설은 수심이 얕은 입지의 보완을 위해 1960년대에 확장되었으며, 1974년에 대형선박도 정박할 수 있는 새 항구가 이용되면서 더욱 규모가 커졌다. 1974년 키프로스 북부에 투르크가 개입하고 이 섬의 주항(主港)이던 파마구스타가 폐쇄되자 리마솔이 키프로스 공화국 제1의 항구가 되었다. 또한 과거에는 베이루트를 거쳐 이루어졌던 무역의 상당 부분이 이제 이 항구를 거치게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레바논을 탈출한 수천 명의 부유한 아랍 난민들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쿠웨이트에서 온 많은 이주민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리마솔의 활기찬 항구에서 포도주·음료수·과일·야채 등이 수출된다. 벽돌·타일·신발·직물·가구·시멘트·단추·청량음료 등이 생산되며, 과일통조림 공장과 크롬·석면 가공공장도 있다. 현재 인구는 약 20만 명으로 현대와 역사가 공존하는 항구도시다. 리마솔은 과거 역사 유적을 품고 있는 올드 타운과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뉴타운으로 구분된다. 리마솔 항구 뒤쪽에 올드 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옛적부터 리마솔의 중심지다. 많은 배와 부두 시설, 카페, 식당들이 있어 항상 활기차다. Black Labbit 카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뉴 리마솔로 발걸음을 옮겼다. 럭셔리 요트들이 많다. 뉴 마리나에는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지어진 고급 주택들이 많다. 인공해변인 Limassol Marina Beach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아담한 해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고급 주택과 이어져 있다. 개발된 리조트와 빌라들이 무척 많다.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키프로스에서도 완전 최고가 지역이라 갑부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인 고객을 위한 부동산 광고가 많이 보인다. 키프로스에서는 약 2백 50만 유로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키프로스의 영주권과 EU 비자를 발급해 준다고 한다. 일종의 투자이민인 셈이다. 그래서 러시아와 중국의 부호들이 키프로스에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리마솔의 한 지역은 마치 러시아 타운처럼 러시아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을 정도다. 지금은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온단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키프로스에 도움이 되겠지만, 두 나라의 검은 돈과 마피아 그룹이 키프로스에 몰려드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거기에 필리핀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특히 많이 들어와 여기서 일하고 있단다. 그래서 필리핀 마을도 생겼단다. 이제 돌아간다. 왼편에 높다란 모스크도 보인다. 아주 작은 교회 St Georgiou Church도 지나간다. 종탑과 모스크가 겹친다.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닻이 보인다. 바다로 향한 길고 튼튼한 데크로 올라갔다. 젊은 커플이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아내는 열심히 찍어 주는데 요구 사항이 많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어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깃발 4개가 데크 끝에 세워져있다. 키프러스 깃발에 그리스 국기가 눈에 들어온다. 데크에서 잠시 쉬다가 나왔다. 해안 길을 따라 걸어간다. 고층 빌딩이 공사 중이다. 해가 길게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 보인다. 해안 길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해군 동상도 만들어져있다. 나무들이 가득하다. 어린이를 데리고 온 새댁도 보인다. 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 바다에는 대형 선박 네 채가 고정되어있다. 교회도 보인다. 작은 연못도 맑은 물을 갖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의미 없어 보인다. 얼굴 형상의 대리석 작품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해변을 따라 방파제 길이 평행으로 함께 간다. 좁은 방파제 길로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간다. 끝에는 고양이가 있다. 조형물과 바닷물이 끝임을 알려준다.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리스 정교회를 오른쪽에 끼고 걸어간다. 제법 교회들이 많이 보인다. 라르니카로 가는 인터시티 버스 정류장을 알아보았다. 정류장을 찾기가 참 애매했다.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 이곳으로 와 보기로 맘먹었다. 슈퍼에 들러서 햄과 계란을 샀다. 숙소에 올라와 저녁으로 햄과 계란을 버터로 익혀 먹었다. 스크램블이 되었는데 맛이 좋았다. 오전은 파포스, 오후는 리마솔을 둘러보았다. 피곤하다. 현대화 된 리마솔은 너무 상업화 되어 좀 심심했다. 1월 29일 경비- 숙박비 38유로(50,043원), 버스비 3유로, 입장료 2.5.
카라벨라(OSYPA Terminal) 버스 정류장 3유로,
리마솔 행 버스 8유로, 계란, 햄 5.7유로.
계 60.2유로*1350=81,270원
누계3,305,185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