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적과 아를 구분하지 못하다 "난 소영이오" "네에?" 그 사내는 소영이란 말에 놀라며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서더니, 급히 두 손을 모아 쥐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알고 보니 소대협이셨군요." 소영은 그 사내의 태도에 의아심이 일어났다. '신기한 일이다. 소영의 이름이 이토록 위력을 지녔다니...그 가 짜 소영이 강호를 온통 뒤흔들고 다닐만큼 무공이 센 모양이지?' 소영은 우습기도 하고 의혹으로 머리 속이 띵 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태연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대답하였다. "별말씀을... 괜찮소." 그 사내는 아첨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둘째 장주께선 소대협의 행방을 몰라 초청을 하지 못했으니 너 무 노엽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소." 소영이 이렇게 사내에게 대답하는데 또 말소리가 들려 왔다. 이 번에 이층으로 올라온 사람은 화려한 복장을 한 청년이었다. 그 청 년은 두 소년을 좌우에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청년을 본 이층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길을 터 주었다. 이들 모두가 그 청년을 매우 공경하는 듯했다. '어떤 인물이길래 저토록 후대를 받을까? 마치 일국의 왕자와도 같이.....' 소영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와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년 사내가 황망히 그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사내는 청년에게 나직하게 몇 마디 보고하는 듯했다. 머리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청년이 소영을 바라 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다가 왔다. 소영과 너댓 발자국쯤의 거리까지 다가선 청년 은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제 주조룡(周兆龍)은 소형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미처 몰랐 소. 소형이 이곳으로 오실 때 미리 나가서 영접하지 못한 것을 양 해하시오." 미목이 수려하고 고상한 인품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주조룡을 바 라보며 소영은 속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하, 이 자가 바로 아까 하인이 얘기하던 둘째 장주라는 사람 이구나.' 소영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조룡의 인사에 대답했다. "너무 과분한 말씀이오. 나는....." 소영은 잠깐 망설이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귀지(貴地)에 왔으며 모든 것이 생소하고 더욱 이......" 이 때였다. 갑자기 주조룡의 눈빛이 확 달라지더니 손을 내밀어 소영의 오른손을 꽉 움켜 잡았다. 소영은 조금 전에도 단목정에게 손을 잡혀 당했던 일이 있었으나 주조룡이 급히 손을 쓰는 데에는 임기응변을 하기가 곤란했다. 주조룡은 고의로 절기를 발휘하여 소영을 잡으며 힘을 주었던 것 이다. 그러나 소영은 주조룡이 손을 뻗쳐 오는 순간 이미 그 기미 를 알아 차렸다. 주조룡이 손을 쓰는 동작이 매우 빠르기는 했지만 소영은 암암리에 진기를 모으고 겉으로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 정면 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주조룡이 쥔 소영의 오른 손목은 바로 맥혈(脈穴)이 있는 급소였 다. 그는 소영의 맥혈을 짚으면서 악한 마음까지 먹고 있었다. '만일 이 놈이 정말 소영이라면 내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을 것이 고, 그렇지 않다면 내 공력에 의해 당장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강호의 경험이 없는 소영으로서는 주조룡의 속셈을 알 리 가 없었다. 소영이 주조룡의 속셈을 알아 차렸다면 즉시 상대방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수법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소영은 손목에 진 기를 모으며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주조룡은 소영이 피할 생각도 하지 않자 속으로 코웃음을 쳤으나 차츰 소영의 손목에 뜨거운 진기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가 쥐고 있는 것은 사람의 손목이 아니라 강철 같았다. '놀라운 일이다. 이 놈이 지니고 있는 내공은 굉장한 것이구나.' 주조룡은 급히 소영의 손목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소형이 강호에 위명을 떨칠 때부터 은근히 흠모하고 있었 소. 그러나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어 사뭇 안타까웠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 무엇이라 표현 할 길이 없구려." 주조룡은 너털웃음을 한바탕 터뜨리더니 몸을 돌려 손을 흔들며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 그러자 고구마 머리의 사내가 주조룡에게 말했다. "검문쌍영(劍門雙英)과 당가(唐家)의 셋째 자매께서 아직 도착하 지 않으셨습니다." 주조룡은 손을 저으며 기분이 매우 좋은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을 기다릴 필요는 없소." 그 사내는 주조룡의 말을 듣더니 난처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오늘의 연회는 원래 먼 곳에서 오시는 세 사람의 손님들을 위해 서 마련하신 것이 아닙니까? 헌데..." 주조룡이 그 사내의 말을 가로 막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원래는 그런 목적이었지만 여기 계신 소형의 피로를 풀어 연회로 바꾸겠소." 그 사내는 더 말대꾸를 하지 않고 문 앞에 선 하인에게 말했다. "술상을 차려라!" "예! 이미 준비되었으니 곧 올려 오겠습니다." 하인들은 분주하게 아래 위층으로 오르내렸다. 순식간에 연회석 이 마련되었다. 주조룡은 소영을 상석으로 앉혔다. 소형은 몇 번 사양하다가 마 지못해 그가 이끄는 대로 앉았다. 주조룡은 소영의 곁에 붙어 앉았 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주조룡은 소영에게 말을 걸었다. "소형은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마치 머리는 보여도 꼬리는 보이 지 않는 것 같은데 오늘 이렇게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 표현할 길이 없구려." 소영은 자기가 강호에 이름을 날린 가짜 소영이 아니란 것을 해 명하고 싶어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좋을지 물라 갈피를 잡 지 못하였다. '모든 것을 밝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귀찮을 테니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소영은 술잔을 들며 주조룡에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주형, 너무 겸손하시군요." 소영은 사실 주조룡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타당한 것도 같았다. '어떤 놈인지 내 이름을 도용한 것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일 것이 다. 그가 내 승낙도 없이 내 이름을 도용했으니 내가 그의 명예를 좀 빌려쓰는 것도 무방하겠지. 더우기 지금의 행세로는 사실을 해 명하는 것보다 는 이대로 있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객이 들자 소영은 마음이 개운해질 수 있었다. 주조룡은 몇 십 년 간의 지기나 만난 듯 소영에게 여러 가지로 접근하며 친 구로 사귀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조룡이 소영에게 친밀하게 대하자 군호(群豪)들도 소영에게 차 츰 호감을 표하기 시작했다. 소영은 이런 대우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갑자기 왕이 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어리둥절하면서도 몹시 흥분되었다. '이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구나. 더군다나 주조룡이 이토록 극진 하게 대해 주다니... 생전 처음 인정이라는 것을 느껴 보겠구나. 역시 사부님이나 의부의 말씀대로 강호에 발을 딛길 잘했구나.' 소영은 마음 깊이 주조룡에 대하여 감동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 렇듯 군호들이 소영을 둘러싸고 흥겨워하고 있는 반면 한쪽 귀퉁이 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단목정과 푸른 옷의 소녀는 매우 처량하게 보였다. 주조룡은 이곳에 들어 서면서 군호들에게 그 두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는 눈짓을 했었다. 그래서 이들은 술을 들고 안주를 씹으며 왁 자지껄 떠들어대기는 했으나 아무도 단목정과 소녀를 건드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군호들이 두 사람에게 무관심을 표시하는 반면 주조룡은 은근히 그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주조룡의 시선에는 싸늘한 살기가 들 어 있었으나, 단목정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아예 외면을 한 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록 겉으로는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냉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만일 소영이 강호에 떠돌아다닌 경험이 많고 주조룡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면 주조룡이 어떤 속셈을 품고 있는지를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영은 아직 너무 단순했고 경험이 없었다. 또한 그는 군 호들에게 둘러싸인 채 떠받들리고 있어 마음이 한껏 흥분해 있었 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술잔을 주고 받는 사이 돌연 땀을 뻘뻘 흘리며 경장한 사나이 하 나가 이층으로 뛰어 올라 와 바로 주조룡을 향해 읍하고 급히 말했 다. "둘째 어른께 보고합니다. 검문쌍영(劍門雙英)이 이미 귀주성 밖 에 다다랐습니다." 주조룡은 손을 들어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알았다." 경장의 사나이는 다시 읍을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 그 사 나이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후줄 근한 옷차림에 얼굴은 온통 먼지 투성이의 한 사나이가 급히 이층 으로 뛰어 들어 와 입구에서 허리를 굽힌 채 말했다. "둘째 어른께 보고합니다. 사천 당삼(四川唐三) 낭자의 가마가 이미 성 밖 삼 리쯤에 당도하였습니다." 주조룡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다. 내가 친히 나가 맞으리라." 그 사나이는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 갔다. 주조룡은 소영을 주시하고 가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잠시 후 소형에게 무림에 이름을 떨친 대 영웅을 몇 분을 소개 해 드리기로 하겠소." 주조룡은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들은 무림에 그 이름을 떨친 영웅들이지만 소형의 명성과 비 교한다면 많은 차이가 나지요." 소영은 황송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주형께서 그렇듯 칭찬하시니 감당키 어렵습니다." 소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연 어디선가 나직한 탄식 소리 가 들려 왔다. 소영이 흠칫 머리를 돌리자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어느 틈엔가 벌떡 일어나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것은 옷소매 자락에서 뻗쳐 나온 세 줄기로 된 빛이었는데 조용하면서도 재빠르게 주조룡의 등 뒤로 대혈(大穴)을 세 군데나 노리고 뻗어 나갔다. 돌연한 변화에 소영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들어 일장 을 쳐 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주형, 조심하시오!" 주조룡은 소영의 고함소리에 깜차 놀라 어깨를 약간 휘청거렸지 만 이미 그는 삼척(三尺)이나 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소영의 이 일장은 황망히 쳐 낸 것이라서 손을 쓰는 속도가 전광석화 같이 빨랐다. 주조룡이 몸을 돌려 바라보았을 때 그 세 줄기의 흰 빛은 이미 장풍에 밀려 한쪽으로 비뚤어져 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그 푸른 옷을 입은 소녀는 자기가 쳐 낸 세 자루의 독을 묻힌 비 도가 소영의 장력에 밀려 이 척 밖으로 비뚤어져 날아 가는 것을 보자 속으로 놀라는 한편 원망을 하였다. 그것은 소영의 내가벽공의 손바람이 너무나 날쌔고 치밀한데 놀 랐고 또한 그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 데에 원망스러워 싸늘한 웃 음을 지으며 다시 한 쌍의 옷소매를 일제히 들추어 네 줄기의 금빛 을 쏘았다. 그중 두 자루의 빛은 소영의 앞가슴을 향해 날아 갔고 두 자루는 주조룡을 향했다. 소영은 두 손을 일시에 내밀어 휙 휘둘렀다. 놀랍게도 두 줄기 금빛을 한꺼번에 수중에 받아 들였다. 주조룡은 감히 모험을 못하 고 오른손을 휙 내둘러 녹색 빛을 뿜어 내었다. 그 녹색은 그의 몸에 다가 온 금빛에 부딪쳐 쨍그렁! 하는 날카 로운 금속성을 발하며 저만큼 떨어져 나갔다. 소형은 수중의 금빛 을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양쪽에 톱날같은 철가시들이 무수하게 돋아나 있는 단검과 비슷한 물건으로 푸릇푸릇한 빛을 띠었다. 이때 이층에 있는 군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제각기 팔수신 룡(八手神龍)과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향해 덮쳐 갔다. 주조룡은 나직한 탄식과 함께 소영에게 말했다. "소형의 무예가 높고 담이 커서 나로 하여금 실로 감복케 하였 소. 이 금검 양쪽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비록 철사장 공부를 연마한 사람이라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또한 극독이 묻 혀 있어서 명중당하는 사람은 살아나지 못할 것인데 소형은 놀랍게 도 두 손가락의 힘으로 금검의 검신을 정확하게 나꿔 채다니..." 주조룡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제발 그런 위험스런 장난은 하지 마시오." 소영이 수중의 금검을 놓고 눈길을 돌리자 주조룡은 한 자루의 취옥으로 만든 자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길이가 약 한 자 두 치쯤 되며 은은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주조룡은 소영이 말을 하기도 전에 나꿔 채듯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취옥척은 일종의 보검으로 천 년이나 갈고 닦은 옥으로 만들 어 쇠나 바위도 능히 벨만큼 단단하오. 만약 소형께서 원하신다면 나는 이 취옥척을 기꺼이 드릴 용의가 있소." 소영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주형, 내가 어찌 그런 보물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감당..." 그때 갑자기 요란한 기합 소리가 짤게 두 번 들려 오고 절벽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듯한 쿵쿵 소리가 연이어 일어났다. 소영과 주조룡은 급히 소리나는 곳을 주시했다. 그제서야 그들이 아직도 싸움 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수신룡(八手神龍)과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향해 덮쳐들던 주 조룡의 군호들 중에 이미 사오 명이 쓰러진 것이 보였다. 팔수신룡의 공격은 마치 전광석화와 같이 빨랐고 매정하기 이를 데 없이 날카로왔다. 그가 쳐낸 일장이 마치 불기등을 뿜어내듯 회 오리바람을 몰아가며 군호들을 파리 쫓듯 몰아내고 있었다. 군호들은 사면 팔방에서 공격해 들어 가고 있었지만 한 발자국도 팔수신룡과 푸른 옷을 입은 소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주조룡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자기는 싸움에 상관이 없 다는 듯이 장내의 싸우는 형세를 지켜 보고 있었다. 팔수신룡의 공격은 더욱 날카롭고 빨라져서 그가 손바닥을 훽훽 뿌리칠 때마다 번개치듯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또다시 두 사 람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주조룡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그들을 바라 보고만 있었다. 소영은 군호들 중에 부상자가 점점 늘어 가자 참기가 어려웠던지 돌연 한 발자국 크게 내어 디디며 몸을 굽히고 팔수신룡을 향해 공 격해 들어 갔다. 소영이 공격에 가담하자 두 사나이가 옆으로 비켜 서며 소영이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소영이 공격할 태세를 갖추자 팔수신룡은 벌겋게 충혈된 채 노기 를 띠며 벼락같이 외치면서 휙! 일장을 정면으로 쳐 왔다. "이 노부의 일장을 받아라!" 그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날카로웠던지 소영은 흠칫 놀랐다. 소 영은 아직 남과 대적해 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 다. 더구나 팔수신룡의 일장이 매섭고 살기를 품은 듯 날카로워서 감히 맞받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소영은 오른손을 비스듬히 비껴 내리며 일시에 다섯 손가 락으로 팔수신룡의 맥문을 향해 후려 쳤다. 그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지풍이 얼마나 세었던지 팔수신룡은 돌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다섯 개의 비수가 날아가듯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팔수신 룡을 향해 마구 돌진해 갔다. 팔수신룡은 재빨리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아,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로구나. 정말 놀라운 솜씨로다." 소영은 팔수신룡을 노려 보며 대답했다. "그렇소." 소영이 채 대답도 끝맺기 절에 돌연 한 줄기 금빛이 번쩍이며 왼 쪽 늑골을 찔러 왔다. 어느 틈에 팔수신룡이 가한 무기였다. 싸늘 한 바람이 먼저 그의 전신을 휩쌌다. 소영은 깜짝 놀라 몸을 한쪽으로 비스듬히 눕히며 발을 돌려 일 장을 쳐 냈다. 그것은 무의식중에 가해진 일장이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금빛 찬란한 단검이 비스듬히 반대쪽 으로 날아 갔다. 그 서슬에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황망히 두어 걸음 물러서며 왼 손으로 오른쪽 발목을 움켜 쥐었다. 소영이 쳐 낸 금빛 단검이 푸 른 옷을 입은 소녀의 발목을 향해 날아 간 것이었다. 소녀의 두 눈에는 삽시에 눈물이 가득했다. 안색이 파리해지며 허둥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처가 필시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금빛 단검은 푸른 옷을 입은 소녀의 발목을 적중시킨 것이었다. 소영은 섬뜩하여 속으로 매우 당황했다. 마악 사과의 말을 하려 고 몸을 바로 잡는 순간, 돌연 팔수신룡이 도포자락을 휘저었다. 한 조각의 금성 은빛이 방안 가득히 수놓아지며 소영을 향해 맹렬 히 공격해 들어 오고 있었다. 그러자 주조룡이 황급히 외쳤다. "소형, 암기를 조심하시오!" 소영은 주조룡의 고함소리에 놀라 재빨리 몸을 돌려 팔수신룡의 거동을 노려 보았다. 팔수신룡은 암기의 수법이 무림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며 손을 휘두르는 사이에 비도, 화살, 금침 등등 열 몇 가지 에 달하는 암기를 오뉴월에 소나기 퍼붓듯 공격하는 비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온갖 암기들이 소영의 전신을 향해 급소를 노리며 제각기 날아 들었다. 소영은 크게 놀라며 생각했다. '단번에 이렇듯 많은 암기를 쳐 내다니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노릇이구나.' 소영은 더 지체하지 않고 힘을 모아 일장을 쳐내며 뒤로 휙 몸을 날렸다. 한 줄기 맹렬한 불꽃이 일어나자 날아 오던 암기들은 마치 빗나간 화살처럼 사방으로 퉁겨져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말았다. 팔수신룡은 너무나 민첩한 소영의 묘기에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 다. 마침내 한숨을 길게 뽑아 내고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향해 소 리쳤다. "아가, 우린 그만 돌아가자." 팔수신룡은 황급히 소녀를 안아 일으켜 왼팔에 부축하고 오른손 으로 재빨리 일장을 쳐 낸 뒤 창문을 뚫고 몸을 날렸다. 소영은 약간 허릴 굽혀 몸을 날려 창 앞으로 다가갔다. 주조룡이 당도하여 뒤쫓으려는 소영을 제지하며 말했다. "소형,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그들을 쫓 지 맙시다." 소영도 구태여 쫓을려는 것이 아니라는 듯 주춤하면서 팔수신룡 이 소녀를 끌어 안고 뛰어 내린 이층을 바라 보고 있었다. 팔수신 룡은 그의 오른손으로 아래층을 내려 가는 층계를 집고 힘을 주어 몸을 날렸다. 한 채의 지붕 위로 뛰어오른 그는 마치 놀란 기러기 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소영은 감탄해 마지 않았다. "주형, 저 두 사람은 주형과 무슨 원한이 있습니까?" 주조룡은 미소를 지으며 씁쓸하게 말했다. "이 강호 무림의 원한 시비는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요. 저 두 사람을 나는 알지도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지 모르겠소. 오늘 다행히 소형이 구해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 으면 나는 아마 벌써 그 독이 입혀진 칼에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이 오." 주조룡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부상당한 사람들을 아래층으로 옮겨 갑시다. 소형! 내가 검문쌍영을 소개해 드리겠소. 몇 사람을 더 안다는 것은 별로 해로 울 게 없으니." 소영은 아무 말 없이 주조룡을 따라 이층 계단을 내려 갔다. 마 악 객점의 문 앞에 이르자 두 필의 비대한 건마(健馬)가 이미 밖에 당도하였고 그 말 위에는 엷은 회색으로 경장을 차리고 검은색 도 포를 입은 두 사나이가 타고 있었다. 주조룡은 소영의 손을 놓고 두 손을 모아 가볍게 읍해 보이고 말 했다. "제는 조금 전 자객을 만나 두 형을 멀리 마중나가지 못하였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말 위의 두 사람은 훌쩍 뛰어 내려 읍을 하며 놀랍다는 투로 말 했다. "주형 너무 겸손의 말씀이오. 그래 그 자객은 잡았소?" 주조룡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객은 이미 도망쳐 버렸으니 두 분께서는 심려치 마시오." 나이가 비교적 많고 검은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앞장을 서며 말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형제가 한 발 늦게 왔군요. 만일 한 발만 일찍 당도했더라면 그들이 도망치기는 어려웠을 것이오." 그러자 좀 젊어 보이는 사나이가 말을 이었다. "누굽니까? 감히 그렇듯 대담하게 주형께 무례를 저지른 사람이. ......" 주조룡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무공이 출중하여 우리 장문의 장정 일곱 명을 순식간 에 쓰러뜨리고 중상을 입혔습니다. 만일 이 소형께서 도와주지 않 았더라면 나는 아마 벌써 그 자객의 독을 입힌 비도에 크게 부상당 했을 것이오." 주조룡은 소영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아! 두 분께 소개해 드린다는 것을 깜박 잊었군요. 이 분은 바 로 근래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소대협, 소영입니다. 소형은 비록 나이는 많지 않으나 무예는 놀랍게도 뛰어나십니다. 이미 그 명성이 무림에 두터운 인물이지요." 검은 수염의 사나이는 소영을 슬쩍 훑어 본 뒤 주조룡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약간 김빠진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대명은 익히 들어 왔소이다." 소영은 단번에 싸늘한 감이 깃들어 있음을 느쪘으나 아직 상대방 이 자기를 얕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두 손을 모아 정 중하게 답례를 하며 말하였다. "과찬의 말씀을." 주조룡은 검은 수염의 사나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바로 검문쌍영 중의 첫째 분인 추풍검 배백리(追風劍 裵百里)이며 이분은 둘째이신 무영검 담동(無影劍譚銅)입니다." 소영은 다시 손을 모아 읍하고 말하였다. "앞으로 두 분의 많은 가르침을 바라겠습니다." 배백리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형제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주조룡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형은 먼 길을 오시느라고 시장하실 것으로 생각되오. 이층에 이미 주안을 마련해 놓았으니 어서 올라 가 피로를 푸십시다." 배백리는 주조룡이 소영에게 매우 다정하게 대하는 모양을 보고 가슴 속이 섬뜩함을 억제치 못하고 잠시 생각했다. '주조룡은 항상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는데, 이 녀석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구는 걸 보아 이놈은 결코 보통놈이 아닌 게 틀림없다.' 검문쌍영은 근 이 년 동안을 집안에서 두문불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일종의 비법을 연마하느라고 강호에 나오지 않알기 때문에 명 성이 무림에 크게 알려진 것을 듣지 못했다. 더구나 소영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근래의 일이니 검문쌍영이 알 턱이 없었다. 검문쌍영은 좀 꺼림찍한 생각을 하며 큰걸음으로 안으로 향했다. 담동이 배백리의 뒤를 바짝 따라 소영의 곁에 다가갔을 때 슬그 머니 손가락을 퉁겨 날카로운 한 줄기 지풍(指風)을 소영의 무릎 사이 양관혈(陽關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이 돌연한 공격에 소영은 당황하여 재빨리 몸을 피했다. 털끝만 큼도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가 지풍을 피하자 담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형 정말 놀랍도록 빠른 신법이오." 소영의 무공은 운기폐혈(運氣閉穴)로 한 줄기 지풍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대적의 경험이 없는 터라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담동의 눈엔 하찮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주조룡은 소영이 화를 내고 자기와 결별을 하고 가버릴까 두려워 암중에 전음지술(傳音之術)을 발휘하여 속삭이듯 말했다. "소형 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별로 개의치 마시오. 이 두 사람 은 오 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오. 언젠가 기회가 있을 때 소 형께서 한 두 가지의 절기를 그들에게 보여 주신다면 그들도 형께 겸손할 줄로 알고 있소이다." 이 전음지술은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 는 수법이므로 평범한 무공을 지닌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일 단 전음지술을 터득하면 아무리 적은 소리로 지껄이더라도 고함소 리 만큼이나 크게 들을 수 있으며 몇 리 밖에서 지껄이는 소리도 곁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소영은 검문쌍영의 소행이 괘씸하여 반격하려던 참인데 주조룡이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참기는 했지만 답답한 기분을 억누를 수 없어 담동의 뒷통수를 노려 보았다. 가까스로 험한 공기가 가라 앉았다. 한편 이층의 흩어진 연회석은 벌써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주조룡은 먼저번 연회석으로 소영과 검문쌍영을 안내하였다. 모두 자리를 잡고 돌려 앉자 배백리가 먼저 술잔을 들어 소영에 게 건 네 주었다. "소형, 우린 처음 만났으니 먼저 제가 한 잔 올리겠소이다." 소영은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그가 내미는 술잔을 받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이때 돌연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것이었 다. 귓전을 스친 것은 암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암기는 은빛으로 은은히 비치는 은침으로, 소영이 들고 있는 조그만 술잔 속으로 떨어졌다. "호호호...." 웃음소리가 들려 오는 곳을 바라 보자 그녀는 붉은 옷을 입고 이 층 입구 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묘령의 소녀는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천천히 입을 열 었다. "잘들 하오. 손님이 아직도 다 모이지 않았는데 당신네들끼리만 술을 마시다니... 어디 그중에 어느 누가 담이 커서 저 술을 마실 수 있나 두고 보아야겠군요." 그녀는 손을 들어 소영이 들고 있는 술잔을 가리켰다. 주조룡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삼낭자, 정말 날쌘 경공이옵니다. 우리들이 미처 알아 내기도 전에 이층으로 올라 오셨으니..." 그러자 홍의 소녀는 돌연 웃음을 거두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둘째, 장주께서는 편지로 나를 부르고서 이제는 모른 체하니 어 찌된 일이오? 정말로 나 당삼고를 모욕하시겠어요?" 주조룡은 다시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었 다. "삼낭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소인이 어찌 사천당문의 절기를 모르겠소. 삼낭자를 기다리던 중 뜻밖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낭자의 마중을 나가지 못하였소." "무슨 의외의 일이오?" "자객을 만났소이다." 당삼고는 눈빛을 빛내고 주위를 쭉 훑어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검문쌍영에게 머물렀다. "이곳에는 두 분의 명검객이 계시니 자객이 침입하였다 하여도 그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을 것이오. 그는 아마 죽거나 크게 다쳐 도망을 하였겠지요?" 이제까지 탁상 앞에 앉아 있던 배백리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일어나 당삼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천당문의 암기는 강호에 이름을 떨쳐 오래 전부터 존경하여 오던 터였소. 그런데 오늘에서야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더할 수 없 는 영광이오." 당삼고는 약간 고개를 숙여 겸손의 뜻을 표했다. 그녀는 비록 여 자의 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강호에 유협하였기 때문에 상대의 눈 치를 알아 차리는 것이 매우 빨랐다. "원 별말씀을... 그런데 당신은 내 암기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니 웬 일이오." 배백리는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태도가 오만한 당삼 고의 이야기를 듣고 더 참지 못하였다. "낭자의 암기가 천하 제일이라지만 우리 검문쌍영의 안중에는 하 등의 값어치도 없소." 당삼고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날카롭게 배백리를 쏘아 보았 다.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쳐 사나운 불꽃이 튀기자 곧 주위 분위 기가 살벌하게 바꿔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주조룡이 손을 저으며 입을 열려는데 그보다 조금 먼저 당삼고의 말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만약 당가의 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저 암기가 든 술을 먹을 수 있겠소?" 배백리는 남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당삼고의 제의를 거절할 수 가 없었다. 소영이 탁상에 도로 내려 놓은 술잔에 들었던 맑은 술 은 어느새 흑색으로 변해 있었다. 배백리는 머리 끝이 주뼛하게 치솟는 것을 느끼면서 짐짓 미소를 보였다. "낭자의 암기가 아무리 독하기로 이 한 잔의 술을 먹고 본인이 죽을 것 같소?" 당삼고는 담담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배백리는 은연중 불 같은 화가 치밀어 암암리에 문력(門力)을 모았다. '어디 너 먼저 맛을 보아라.' 이런 생각으로 탁상에 놓인 술잔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잔 속 의 술은 돌연 한 줄기의 물기둥이 되어 공중으로 솟아 오르는 것이 었다. 술이 잔에서 모두 솟자 배백리는 거세게 손바람을 일으켜 곧장 담삼고의 앵두같은 입술로 날렸다. 배백리가 전개시킨 문력은 아주 기묘하여 가느다란 물줄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당삼고의 앞으로 달려 나가며 날카롭게 외쳤다. "답례를 안하면 실례가 될 터이니 먼저 낭자가 드시오." 이층의 군호들은 배백리의 놀라운 내공과 이에 맞서는 당삼고의 암기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주시하였다. 당삼고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입술을 조금 열어 가볍게 바람을 불어 냈다. 그녀의 입술로 향하던 술 줄기가 그대로 방향을 돌렸 다. 방향을 바꾼 술은 다시 배백리에게 뻗어지고 배백리는 장력으 로 그것을 쳐 내니 다시 당삼고에게 날아 갔다. 두 사람의 상승 내 공은 그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그래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태가 험악해 지자 주조룡이 배백리에게서 술잔을 받아 들어 두 사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술줄기를 잡았다. "자, 이제 그만들 두시오. 두 분의 상승내공은 충분히 구경하였 으니 우리 술이나 듭시다. 앞으로 더 길게 나가면 괜한 일로 의리 만 상하게 될 테니까." 배백 리는 당삼고의 무공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계집애가 저토록 고강한 암기를 지녔으니 가히 당가의 실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군.' 당삼고도 상대의 내공에 깊은 두려움을 가졌다. '백화산장의 주, 둘째 장주가 어째서 검문쌍영에게 태도를 공손 히 취하나 했더니 과연 높은 무공을 지닌 자들이로구나. 무림에서 는 이들의 검술만을 알고 있는데 내공까지도 대단하니 모두가 놀랄 만하구나.' 이렇게 서로 상대를 두려워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반감도 어느 정 도 사라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웃었는지도 모르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 다. "허허허... 낭자, 미안하오이다." "호호호... 서로 수를 배웠군요." 주조룡은 회심의 미소를 띤 채 당삼고를 연회석으로 안내하여 소 영의 건너쪽 자리에 앉혔다. 소영은 맹랑한 상대를 유심히 살펴 보며 자신을 생각하여 보았 다. '저 여자의 내공이 고강한데 나에게도 그런 내공이 있을까? 난 아직까지 내공을 쓰지 않았으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 어야지.' 더 생각을 하려는데 주조룡이 입을 열었다. "삼낭자에게 친구 하나를 소개시켜 드리겠소." 당삼고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인데요? 소개를 시키더라도 우선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아주 강호에서 유명한 인물이오. 그러니 삼낭자께서도 그분의 명성을 많이 들었을 것이오." "그래 그가 누구란 말이오?" 주조룡은 천천히 손을 들어 소영을 가리켰다. "바로 낭자의 앞에 앉은 분이오. 그분의 대명은 소영이라고 하 오." 당삼고는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상대를 유심히 쳐다 보았다. 소영은 낡은 옷에 얼굴이 온통 먼지로 뒤덮여 있어 꼴불견 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체는 매우 늠름하게 보였으며 먼지 투성이 의 얼굴도 자세히 살펴 보면 영준함이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었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소영이라는 사람은 검술이 귀신같고 용모가 단정하여 귀공자답다더니 뭐 그렇지도 않군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이라든가 먼지 투성이의 얼굴은 지금까지 듣던 것과는 틀린 것 같소." 소영은 여자에게 이같은 말을 듣자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지금 나는 밥얻어 먹기도 바쁜데 무슨 복으로 좋은 옷을 입고 다니겠소. 더군다나 나는 항상 떠돌아 다니는 신세인데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러나 이런 생각만 하였지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저 싱겁게 히죽 웃어만 보였다. 당삼고는 정중하게 포권을 하고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소이다." 검문쌍영은, 뜻밖에도 당삼고가 말과는 달리 부드러운 태도로 소 영을 대하자 대뜸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소영에게 시비를 걸려고 했으나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당삼고는 곁눈질로 소영을 쏘아 보고는 탁상에 놓인 술병을 들어 그의 잔에 가득히 술을 따랐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