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후집/고문관지] 03.諫逐客書(간축객서) - 李斯(이사)
<객경(客卿)을 추방하는 것에 대하여 간한 글>
諫逐客書(간축객서)는 이사(李斯)가 진(秦)나라 왕 영정(嬴政)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의 내용이다. 전국시대 한(韓)나라가 진(秦)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정국(鄭國)을 파견하여 치수(治水)사업을 진행시키던 중 정국(鄭國)이 간첩인 것이 발각되어 진왕 정(政)은 외지인 출신 관리들을 모두 진나라 밖으로 추방시키라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 초(楚)나라 출신의 객경(客卿) 이사(李斯) 역시 쫓겨나면서 진나라 왕에게 축객령을 거두어달라는 내용을 담아 올린 글이 간축객서(諫逐客書)이다. 진왕 정(政)은 결국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축객령(逐客令)을 취소하였다. 이 글은 축객령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글로 중국 역대 산문 가운데서도 명문장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이며,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또는 상서간축객(上書諫逐客)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과 <고문관지(古文觀止)> 진문(秦文)에도 실려있다.
[史記列傳(사기열전)] 권87 李斯列傳(이사열전) (2/8) <간축객서:諫逐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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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지(古文觀止)<4권秦文,楚辭>15.諫逐客書(간축객서)>
https://blog.naver.com/swings81/222432466353
※주석 및 해설은 <고문관지(古文觀止)> ‘諫逐客書(간축객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문진보후집> 03.간축객서(諫逐客書)/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 이사(李斯)
<斯乃上曰(사내상왈)>: 臣聞吏議逐客(신문리의축객),竊以為過矣(절이위과의)。 昔穆公求士(석목공구사),西取由余於戎(서취유여어융), 東得百里奚於宛(동득백리해어완),迎蹇叔於宋(영건숙어송), 來丕豹、公孫支於晉(내비표공손지어진)。 此五子者(차오자자),不產於秦(불산어진),而穆公用之(이목공용지), 并國二十(병국이십),遂霸西戎(수패서융)。 孝公用商鞅之法(효공용상앙지법),移風易俗(이풍역속),民以殷盛(민이은성), 國以富彊(국이부강),百姓樂用(백성락용),諸侯親服(제후친복), 獲楚、魏之師(획초위지사),舉地千里(거지천리),至今治彊(지금치강)。 |
<이사가 이에 진왕 영정에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관리들이 유세객들을 내쫓기 위해 논의를 한다던데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니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옛날 목공(繆公)께서는 인재를 구해 서쪽으로는 서융(西戎)에서 유여(由余)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완(宛)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 건숙(蹇叔)을 맞아 왔고
진(晉)나라에서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가 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 출신이 아니지만 진 목공께서 그들을 등용하여
20개의 나라를 합병하고 마침내 서융(西戎)을 제패하였습니다.
효공(孝公)께서는 상앙(商鞅)의 변법을 채택해 풍속을 바꾸니 백성은 번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즐거이 부역에 나섰고, 제후들은 몸소 복종하여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사로잡아 점령한 땅이 천 리에 달하며, 지금까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惠王用張儀之計(혜왕용장의지계),拔三川之地(발삼천지지), 西并巴、蜀(서병파,촉),北收上郡(북수상군),南取漢中(남취한중), 包九夷(포구이),制鄢、郢(제언영),東據成皋之險(동거성고지험), 割膏腴之壤(할고유지양),遂散六國之從(수산육국지종), 使之西面事秦(사지서면사진),功施到今(공시도금)。 昭王得范雎(소왕득범저),廢穰侯(폐양후),逐華陽(축화양),彊公室(강공실),杜私門(두사문),蠶食諸侯(잠식제후),使秦成帝業(사진성제업)。 此四君者(차사군자),皆以客之功(개이객지공)。 由此觀之(유차관지),客何負於秦哉(객하부어진재)! 向使四君卻客而不內(향사사군각객이불납),疏士而不用(소사이불용), 是使國無富利之實而秦無彊大之名也(시사국무부리지실이진무강대지명야)。 |
혜왕(惠王)께서는 장의(張儀)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三川)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巴蜀)을 합병하고 북쪽으로 상군(上郡)을 거두고 남쪽으로 한중(漢中)을 취하였으며,
여러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언(鄢)과 영(郢)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城皋)의 험난함에 의지하여 기름진 땅을 떼어 받아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깨뜨려서
이들이 서면(西面)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니 공적이 지금까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소양왕(昭襄王)은 범저(范雎)를 얻어 양후(穰侯)를 폐하고 화양군(華陽君)을 내쫓아 왕실을 강하게 하고 사사로운 가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하여 진나라가 제왕의 대업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 네 군주는 모두 유세객들의 공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로 보건대 유세객이 어찌 진나라를 저버린다고 하십니까!
만약 네 군주께서 유세객을 물리쳐 받아들이지 않고 인재를 멀리해 등용하지 않았다면,
나라의 부귀와 이익을 얻을 수 없었고 진나라는 강대국의 명성도 없었을 겁니다.
今陛下致昆山之玉(금폐하치곤산지옥),有隨(유수)、和之寶(화지보), 垂明月之珠(수명월지주),服太阿之劍(복태아지검),乘纖離之馬(승섬리지마),建翠鳳之旗(건취봉지기),樹靈鼉之鼓(수령타지고)。 此數寶者(차수보자),秦不生一焉(진불생일언),而陛下說之(이폐하열지),何也(하야)? 必秦國之所生然後可(필진국지소생연후가),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즉시야광지벽불식조정), 犀象之器不為玩好(서상지기불위완호),鄭、衛之女不充後宮(정위지녀불충후궁), 而駿良駃騠不實外廄(이준량결제불실외구),江南金錫不為用(강남금석불위용),西蜀丹青不為采(서촉단청불위채)。 |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昆崙山)의 옥과 수후(隨候)와 화씨(和氏)의 보물을 모으고 명월주(明月珠)를 드리우고 태아검(太阿劍)을 차셨으며, 섬리마(纖離馬)를 타시며 취봉기(翠鳳旗)를 세우고 영타고(靈鼉鼓)까지 지녔습니다.
이 여러 보물들은 단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이를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야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야광벽(夜光璧)으로 조정을 꾸밀 수 없을 것이고
무소 뿔이나 상아로 만든 기물들을 즐길 수 없으며,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미녀는 후궁에 채울 수 없고
결제(駃騠)와 같은 뛰어난 준마로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도 사용할 수 없고, 서촉(西蜀)의 단청(丹青)으로 채색할 수 없을 것입니다.
所以飾後宮(소이식후궁), 充下陳(충하진), 娛心意(오심의), 說耳目者(열이목자), 必出於秦然後可(필출어진연후가) ; 則是宛珠之簪(즉시완주지잠),傅璣之珥(부기지이), 阿縞之衣(아호지의),錦繡之飾(금수지식), 不進於前(부진어전),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不立於側也(이수속아화가치요조조녀불립어측야)。 夫擊甕叩缶(부격옹고부), 彈箏搏髀(탄쟁박비),而歌呼嗚嗚快耳目者(이가호오오쾌이목자),真秦之聲也(진진지성야); 鄭(정)、衛(위)、桑閒(상간)、<昭虞(소우)>、<武象(무상)>者(자),異國之樂也(이국지악야)。 |
후궁을 꾸미고 진열해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하는 것도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면 완주(宛珠)의 비녀와 부기(傅璣) 귀고리, 아호(阿縞)의 옷과 금수(錦繡)의 장식도 폐하의 앞에 바쳐지지 못하며,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정숙한 조나라 여자도 폐하 곁에 서지 못합니다.
무릇 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면서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러 귀과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참다운 진나라의 노래이고,
정(鄭), 위(衛), 상간(桑間), <소우(昭虞)>, <무상(武象>은 타국의 음악입니다.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금기격옹고부이취정위),退彈箏而取<昭虞>(퇴탄쟁이취<소우>),若是者何也(약시자하야)? 快意當前(쾌의당전),適觀而已矣(적관이이의)。 今取人則不然(금취인즉불연)。 不問可否(불문가부),不論曲直(불론곡직),非秦者去(비진자거),為客者逐(위객자축)。 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연즉시소중자재호색악주옥),而所輕者在乎人民也(이소경자재호인민야)。 此非所以跨海內(차비소이과해내), 制諸侯之術也(제제후지술야)! |
지금 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를 취하며, 쟁을 타던 것을 물리치고 <소우(昭虞)>를 취하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눈앞에 마음이 즐거워지고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을 얻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굽음과 곧음을 논하지 않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 보내고 유세객은 내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여색, 음악, 주옥만 소중히 여기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천하에 군림하고 제후를 제압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臣聞地廣者粟多(신문지광자속다),國大者人眾(국대자인중),兵彊者則士勇(병강자즉사용)。 是以泰山不讓土壤(거이태산불양토양),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故能就其深(고능취기심); 王者不卻眾庶(왕자불각중서),故能明其德(고능명기덕)。 是以地無四方(시이지무사방),民無異國(민무이국),四時充美(사시충미), 鬼神降福(귀신강복),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차오제삼왕지소이무적야)。 今乃棄黔首以資敵國(금내기검수이자적국),卻賓客以業諸侯(각빈객이업제후), 使天下之士(사천하지사), 退而不敢西向(퇴이불감서향),裹足不入秦(과족불입진), 此所謂(차소위)「藉寇兵而齎盜糧(차구병이재도량)」者也(자야)。 |
신이 듣기에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사들은 용감하다고 합니다.
이에 태산(太山)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거대함을 이루었던 것이며,
황하와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으며,
왕은 뭇 백성을 물리치지 않았으므로 그 덕을 밝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땅은 사방으로 끝이 없고 백성은 다른 나라가 없으며 사계절에 아름다움이 가득하고
귀신도 복을 내리니, 이는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에게 적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금 백성을 버리면 적국을 돕는 것이고 유세객을 물리치면 제후들에게 종사할 것이며,
천하의 선비들을 물러나게 하면 감히 서쪽 진나라로 향하지 못하고 발을 묶어서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夫物不產於秦(부물불산어진),可寶者多(가보자다); 士不產於秦(사불산어진),而願忠者眾(이원충자중)。 今逐客以資敵國(금축객이자적국),損民以益讎(손민이익수),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내자허이외수원어제후),求國之無危(구국지무위), 不可得也(불가득야)。 |
무릇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도 보물이 많으며
진나라 출신이 아닌 선비 중에도 충성을 하고자 하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유세객을 내쫓아 적국을 돕고 백성을 버려 원수에게 이익이 되게 하여
안으로는 저절로 비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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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諫逐客書/上書諫逐客/ 作者:李斯 秦
本作品收錄於《古文觀止》和《全上古三代秦漢三國六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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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後集[卷一] 목차
번호 | 제 목 | 작가 | 출전 |
1 | 離騷(이소)/離騷經(이소경) | 屈原(굴원) | 楚辭, 文選 |
2 | 漁父辭(어부사)/漁父(어부) | 屈原(굴원) | 楚辭, 文選 |
3 | 諫逐客書(간축객서)/上秦皇逐客書(상진황축객서) | 李斯(이사) | 古文觀止, 史記 |
4 | 秋風辭(추풍사) | 漢武帝(한무제) | 文選 |
5 | 過秦論(과진론) | 賈誼(가의) | 古文觀止, 史記 |
6 | 弔屈原賦(조굴원부) | 賈誼(가의) | 賈誼集, 史記 |
7 | 聖主得賢臣頌(성주득현신송) | 王褒(왕포) | 文選, 漢書 |
8 | 樂志論(낙지론) | 仲長統(중장통) | - |
9 | 前出師表(전출사표) | 諸葛亮(제갈량) | 三國志,文選注 |
10 | 後出師表(후출사표) | 諸葛亮(제갈량) | 古文觀止 |
11 | 酒德頌(주덕송) | 劉伶(유영) | 文選 |
12 | 蘭亭記(난정기)/蘭亭集序(난정집서) | 王羲之(왕희지) | 古文觀止 |
13 | 陳情表(진정표) | 李密(이밀) | 文選 |
14 | 歸去來辭(귀거래사)/歸去來辭並序(귀거래병서) | 陶淵明(도연명) | 陶淵明集 |
[출처] [고문진보후집/고문관지] 03.諫逐客書(간축객서) - 李斯(이사)|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