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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3. 13. 4
스마트폰 본체와 화면·키패드·카메라의 분리 제조+인터넷·스마트폰은 죄로 타락한 마음판+혈액투석 방식으로
모든 질병에 혈액가열 치료+가축 전염병 발생 때에 집단 매몰·폐사에 대한 대안+α
(2013. 03. 19. 3. 부분 보완)
(사용 단어 참고-음절·발음 구분: 아드·암[아담: Ad·am]/ 소드·옴[소돔: Sod·om]/ 고·모르·라흐[고모라: Go·mor·rah]/ 노·아흐[노아: No·ah]/ 예·수스 크흐리스트[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님)
마지막 날들의 마지막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시대, 곧 영적 천년 왕국인 마지막 은혜의 시대에 우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이용한 문명의 발달로 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옵서 창조하신 전기와 전파와 빛을 이용한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엄청난 기술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죄나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사용되고,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풍요롭지만 상대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경쟁과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생활고로 탈북하지만, 또 다른 모양의 수고와 고생인 경쟁에 내몰려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문명 속의 상대적 갈증을 겪고 있습니다.
전기와 전파와 빛은 정신이나 영과 혼 등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이지만, 정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파괴시키고 위협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기와 전파는 정말 상업적인 돈벌이 수단과 생존에서 살아 남으려는 개인이나 국가 간의 엄청난 혈투 속에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입니다. 스마트 폰의 등장은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세상을 이웃으로 만들고 정보의 홍수로 인하여 사람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폰은 더 편리하게 더 육신의 만족을 충족하게 하기 위해 국가나 기업 간에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보를 캐내고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회사의 존립마저 흔들리는 시경에 이르렀습니다. 거대한 기업도 신기술에 도태되면 뒤로 밀려나는 시대입니다. 소프트 웨어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정밀 기계 뿐 아니라, 대형 기계를 만드는 기계나 중장비 기술의 개발도 국가적으로 육성해야만 장기적인 저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밀 기계를 만드는 정밀 기계나 거대한 기계를 만드는 기계 등을 만드는 원천 기술이 앞선 미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의 기술을 거울로 삼고 잘 살펴서 국가적으로 꾸준히 육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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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본체와 화면·키패드의 분리 제조
스마트 폰은 하루가 다르게 기능이 향싱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 오던 것들입니다. 먼저 스마트 폰의 본체와 화면을 포함한 기 패트[자판]의 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휴대폰은 본체와 화면과 키 패드를 하나로 하여서 무게가 많이 나가고 떨어뜨릴 위험과 함께 파손의 위험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화면의 크기의 한계로 인하여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구부러지는 물질의 개발로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폰의 본체는 기술의 발달로 지금도 소형화 되었습니다. 더욱더 발달할 것입니다. 입체적으로 반도체를 집적하는 기술도 이미 개발되어 상용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 폰의 본체는 가장 쉽게 손목 시계 형태가 좋을 것입니다. 이미 여러 회사에서 개발했으나 화면의 크기 문제로 인기는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체를 수첩 형태로 할 수도 있습니다. 지갑 형태로 할 수도 있습니다. 허리에 차는 바클이나 삐삐 형태도 될 수 있습니다. 모자 형태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걸이 형태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루투스나 광 케이블을 이용해서 무한한 자료를 전송하는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서 분리하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화면은 모서리를 라운드 처리하여 수첩 식으로 접어서 크기를 다양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화면은 기존의 스마트 폰의 형태로 키 패드를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화면 속에 감추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접는 화면이 상용화 되기까지는 접는 부분을 라운드화 해서 손상 없이 축소해서 사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또한 광 케이블을 이용한 유선을 사용하여 본체와 화면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개발 되었다면 불루투스와 같이 무선으로 일정 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화면 송출 때에는 현재의 기술에서 허용하는 최대 화면으로 방출하여 화면 축소 때에는 선명하지만, 화면을 키우면 화면이 손상되는 것을 미리 막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사장 사업화 되어 가고 있는 시계와의 접목입니다. 폰의 본체도 지금처럼 자체에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화면과 키 패드만 떼어내어서 겸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시계는 보편적으로 사람이 차고 다니기에 일반화된 시절이 있었습니다. 향수가 있습니다. 화면만 따로 떼어낸다면 디지털 시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 시계로서 편리할 것입니다. LG나 애플과 같은 회사에서 개발하여서 알려져 있지만, 화면의 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면과 키 패드의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화면을 기존의 노트 북이나 패드와 같이 대형화 할 수도 있고, 극장과 같은 대형 화면을 특정 목적에 따라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체와 화면을 분리한다면, 텔레비전이나 극장의 대화면이 필요 없을 것이며, 어디든지 필요에 따라서 화면을 키워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화면 송출 때부터 현존 기술의 최대 화면으로 방출하는 것과 연관된 것입니다. 허무 맹랑한 생각일지 저는 기술적으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스마트폰, 아니 인터넷으로 인해서 사양사업이 된 것이 얼마나 많습니다. mp3로 인한 타격으로 인한 음향기기 회사도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 있고, 또한 사진관 같은 사업과 각종 영상과 음향 테이프 제작 기업도 엄청탄 타격을 받았고, 더욱 심할 것입니다. 문명의 발달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서 기존 제조업체는 더욱 명암이 엇갈리는 발전과 도태를 겪을 것입니다. 안경에 화면을 넣어서 사용하는 것도 개발되고 있으나 상용화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궁극적으로 화면이 필요 없이 공간에서 필요한 화면을 보여주는 쪽으로도 개발된다고 합니다. 이미 레이져로 공간에 홀로그래픽을 연출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는 보는 화면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옵서 주신 지혜로 육신적인 유익을 위해 개발하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저도 모릅니다. 마지막 날에 이 하늘들과 지구가 원소까지 녹기까지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서 약육강식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간판은 상생과 공존 평화와 사랑이지만,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이 우선이므로, 더욱 삭막해지고 자기 사랑이 심해져서 이기적이 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욱더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면, 이 세상은 노아흐의 홍수 이전과 같이 타락의 극치를 달릴 것입니다. 아니 지금이 이미 소드옴과 고모르라흐보다 더한 성적인 타락과 부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적인 타락이 그 사회의 타락의 척도입니다.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 묻어두고 있을 뿐, 성적인 타락은 한계를 넘었습니다. 인터넷은 성적인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의 육욕은 이제 공개적으로 타락의 정도를 넘어서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은 노아흐 이전의 상태가 되었으며, 소드옴과 고모르라흐를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더욱 타락의 가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점차 공개적으로 공영 방송에서조차 성적 타락을 묵인하는 단계를 넘어. 상업주의와 더불어 방조하는 단계를 넘어, 조장·장려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연속극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양심을 굳게하고 기본적인 율법인 도덕의 관념까지 허물고 있습니다. 아이돌이라는 인기인을 이용해서 누드에 가까운 문화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남녀 평등을 구실로 남자와 여자의 기본적인 질서까지 국가적으로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남녀 평등은 성경적 질서에 입각해서 질서 있는 가운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재산과 상속의 분배에 있어서, 기본적인 도덕마져 무너뜨리며 피보다 돈이 앞서는 문화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발달은 더욱더 심한 성적 타락과 도덕마져 붕괴되는 정도를 더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답이 없습니다. 문명의 발달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복음의 국가인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난 것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복음과 지혜는 같이 갑니다. 이용하는 목적과 과정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마지막을 향한 인류의 문명의 발달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을 준비할 때입니다. 노후대비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후대비를 해야할 때입니다. 인터넷, 곧 스마트폰을 성경의 진리를 아는데 잘 이용해서, 마음이 타락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사용되겠지만, 필요에 따라서 영적인 목적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 공부나 설교를 듣거나 영적 책이나 자료를 보는 데 사용한다면 유익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유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용 목적에 따라서 필요한 것을 취하고, 절제하고 금하는 개인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한 자기 자신의 마음의 타락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남이 아닙니다. 사람은 선을 원하지만, 죄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선을 행하기도 하지만, 그 선 속에도 죄가 섞여 있으며, 그것은 선의 모양일 뿐입니다.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것은 죄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성경의 영적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잘 이용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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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스마트폰은 죄로 오염되어 타락한 사람 마음판
위에 언급한 내용도 인터넷을 통해서 단시간에 알 수 있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드암의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으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이 세상은 모든 면에서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첫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탄의 말을 따른 아내의 말을 따름으로서 세상은 모든 면에서 원소까지 세세하게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죄의 씨는 사탄까지 자랄 수 있는 무서운 것으로서, 영원히 유황 불 호수에서 소독해야 하는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죄를 가벼이 여기는데서 출발합니다. 모두 사탄의 악령으로 오염된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필요에 따라서 사람의 생각을 속이고 또한 들어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모든 것들 위에 거짓된 상태로 있으며, 또한 절망적으로 사악합니다. 선의 모양과 원함이 있고, 기본적인 양심과 기본적인 선이 있어서 그나마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멸망이 늦어지는 이유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기본입니다. 또한 성경이라는 진리의 책의 빛이 있어서 멸망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도에 따라 소금과 빛으로 세상을 소독해왔기 때문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기존의 깨끗한 물에 먹이 들어간 것이며, 농약 가루가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원래 깨끗한 물이 더 많습니다. 음료수 병에 90%의 물을 채운 후에 먹가루와 농약 가루를 10%로 채운 후에 비교해 보면 알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도시 주변의 연못 속과 시화 호와 부산 항의 포구가 인간의 마음입니다. 바로 저의 옛 사람의 마음입니다.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
인터넷은 타락의 온상이기도 합니다. 음란물의 집하장이기도 합니다. 각종 육신적인 상술과 상품의 시장이기도 합니다. 각종 죄와 유혹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썩은 마음이 나타난 세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세상에는 성경 KJV 이외에 완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세히 영적 현미경인 성경으로 들여다보면, 원소 하나하나까지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세상은 사람 마음의 축소판입니다. 인터넷은 사람 마음입니다.
반대로 인터넷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중요성과 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기도 합니다. 손가락 끝 하나에 죄와 진리가 갈립니다. 자기 지은 죄들로 인한 통회의 마음에 주님의 피 흘려 죽으심을 통한 구원을 받고, 수많은 죄악되고 육신적인 사이트를 이기고 영적인 양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음의 방향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유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사랑 속에 안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원히 유황 불호수 속에서 고통 속에 몸부림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 아파하는 통증이 있어야 마음이 영적으로 바뀝니다. 죄에 대해 둔감한 마음은 신학교 교수라고 할지라도, 종교교회에서의 수십년간의 영적 설교자라고 할지라도, 지옥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마음의 책입니다. 영적인 책입니다. 머리의 지식도 과정으로서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양심이 죄에 민감하지 않으면 결코 성경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될 수 없습니다.
왜 옆에 남들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데, 혼자 있으면, 은밀한 장소에서 인터넷을 하면, 평소에 거부하고 엄격히 금기시하던 보다 은밀하고 보다 자극적인 것에 쾌감을 느끼고 빠져들까요? 혼자 있으면, 평소에 거부하고 극구 말리던 것에 더욱 빨려들까요? 왜 하지 말라고 말리는 그것에 더욱 집착하고 더욱 깊은 쾌감을 느끼고 중독될까요?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금기시되는 것을-이방인들의 율법은 양심, 곧 도의심-어길 때에 더욱 깊은 쾌락을 맛보고 중독될까요? 커피나 담배나 술과 마약류만 중독될까요? 왜 혼자만 있으면 평소에 근처에도 가지 않는, 평소에 아주 목숨을 걸고 금기시하는 내용에 빠질까요? 평소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근친 상간이나 수간이나 동성애나 윤간이나 강간 등의 내용에 빠져들까요? 당신께서 그러한 내용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면, 당신께서는 그 내용의 주인공이십니다. 바로 당신께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대리 만족을 떠나서 당신께서 그러한 내용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그것을 좋아한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당신께서 가장 좋아하는 내용을 보고 있고 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께서 그토록 금기하고 거부하는 것을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께서 성경에서도 양심에서도 금하는 내용을 더욱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당신께서 죄를 극도로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양심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며, 죄를 이기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거룩한 책인 성경에 그러한 죄들을 미리 기술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말리면 말릴수록 그런 내용과 글들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왜 전염시킬까요? 국가에서도 막지만 뿌리뽑지 못할까요? 누가 시킵니까? 누가 죄를 짓도록 부추깁니까? 아무리 양심이 말려도, 아무리 국가에서 말려도 왜 자꾸 그러한 죄를 짓는 걸까요? 왜 자꾸 거부하면서도 심취할까요? 왜 보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중독될까요? 지금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것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첫사람의 말씀 불순종으로 인한 죄들이 들어와서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타락했기 때분입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지금 당신의 모습입니다. 혼자 있을 때 하고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는 모습이 당신의 본모습니다. 저의 본모습입니다. 그것을 시인하고 통회해야 합니다. 생각과 행동, 곧 눈과 혀와 손 등의 몸으로 지었고 짓는 모든 것들이 죄입니다. 성경에서는 생각으로 지은 죄들도 죄라고 단언하십니다. 혼자 있을 때, 은밀할 때에 당신께서는 평소에 거부하고 금기시하던 것들을 찾아서 인터넷을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더욱 자극적인 내용을 찾아 깊이 인터넷으로 잠수하시지는 않습니까?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금기시하던 내용에 쾌감을 느끼시지는 않으십니까? 혼자 있을 때, 은밀할 때에 당신께서 찾는 그것이 당신께서 죄를 좋아하는 본성입니다. 바로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죄가 싫지만, 더욱 자극적인 죄를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성적인 내용만이 아닙니다. 성경과 양심에서 금하는 내용에 빠져드는 모든 행동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죄의 종이 되어서 이기지 못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지금 마음을 스캔해 보십시오. 그리고 통회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돌이켜야만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근친 상간, 동성애, 수간, 윤간, 강간 등의 간음[간통]의 음란함과 온갖 난잡하고 문란한 성적 타락을 통해서 영적으로 악성 교리 등과 세상과 간음하는 영적 타락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음란함이 목적은 아닙니다. 음란함은 영적 타락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사탄의 사상에 미혹되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성적 타락에 대해서도 엄히 경고하십니다. 성적 타락을 허용하는 마음은 영적 감감 자체가 없는 무서운 마음입니다.
반대로 성경 얘기나 죄지적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굴에 있는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동굴 속에 있는 기형적인 흉측한 생물체는 반드시 햇빛으로 나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총천연색의 본연의 색을 회복하고 원래의 삶을 삽니다. 물론 동굴 속이나 동굴 밖이나 적은 있게 마련입니다. 성경이나 죄지적을 싫어하는 마음은 당연합니다. 벌레가 빛에 노출되면 타 죽는데 스스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와야만 합니다.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빛을 볼 수 없은 암흑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불 소독의 고통을 받아야만 합니다. 스스로는 나올 수 없지만, 이미 나온 복음 전도자를 통한 성경 말씀으로 마음이 동굴 속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자의 안내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나와야만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선을 행하고 싶지만,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타락한 비참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싶지만, 죄가 함께 있어서 마음이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선을 원한다고 해서, 선의 모양이 있다고 해서 선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죄가 싫지만,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처절하게 비참한 존재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바로 저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정말 비참한 현실입니다. 예수스 크흐리스트님을 만나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죄들의 사면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스님의 피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서 원래 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이전에, 선을 행하고 싶지만 반대로 자기 자신의 지은 죄들에 대한 뼈저린 통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자기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한 통증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은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인터넷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기 자신이 지은 죄들에 예민한 통증으로 인하여 인터넷을 이기고, 영적으로 이용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소독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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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병에 신부전증의 혈액투석[인공투석: 신장투석] 방식으로 혈액가열 치료
성경에도 많이 언급되지만, 피는 정말 중요한 사람의 기본 생존 요소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피는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호흡을 하는 공기도 중요하지만, 공기도 피를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옵서는 성경에서 피를 통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해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피 자체의 중요성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피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저는 의학 전문인이 아닙니다. 문외한입니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성경 말씀대로 병들고 늙는 것은 물론 죄 때문입니다. 기후로 인한 인체의 적응의 문제도 있습니다.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환경의 변화도 인간의 수명과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그것은 노아흐의 홍수 이전과 이후의 인간의 수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노아흐의 홍수 이전에서는 인간이 약 천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옵서 만년을 살게 하실 수도 있지만, 영적 숫자인 1,000을 통해서 인간의 수명을 한정하셨습니다.
노아흐의 홍수 이전에는 지금의 구름의 자리에 실제의 물이 있었습니다. 두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 지구 상의 물의 거의 반 정도가 하늘의 구름 자리에 있어서 지구를 보온하였던 것입니다. 태양의 빛을 적정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서 환경이 최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상적인 추리가 아니라, 실제의 역사입니다. 화석의 발견이나 극 지방의 얼음 속에서 발견되는 수천년 전의 거대 동물의 화석과 사람과 동물과 식물의 기름이 홍수로 인한 급작스러운 일로 석유가 된 것과, 식물이 석탄이 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사실인 것과 같습니다. 석유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의 기름의 압축입니다. 결과적으로 기름입니다. 얼마나 많은 인류가 살았겠습니까? 구백 년 이상을 살았으니 엄청난 숫자였을 것입니다. 그것도 환경이 최적이라 병도 거의 없고, 자연도 풍족하니 죄만 없었다면 천국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물론 죄가 없더라도 변하는 육신을 입고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늙어간다는 것은 즐거운 상상이 아니라, 끔찍한 일입니다. 지금의 몸으로 늙으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위해서 주님께옵서 육신을 입고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늙지도 않고 병도 없은 새롭고 영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새롭고 영원한 육신을 입게 하실 목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가 있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옵서 만드신 사람에서 하나님께옵서 하나님의 아들로 낳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피는 사람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몸 속의 기름과 뼈도 중요합니다. 피가 문제가 생김으로 사람이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는 수없이 듣습니다. 특히 사람은 기온의 변화에 예민하며 몸이 이상 징후를 냅니다. 추위가 오면 호흡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고 여러 인체의 기관에 문제가 생깁니다. 고온의 지역에서도 그 고온 보다는 밤이나 계절에 기온이 내려갈 때에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도 부근의 지방에도 기온이 높지만, 고온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몸의 기능에 해를 주는 기온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기온이 내려 갈 때에 신체에는 감기를 비롯해서 여러 이상이 생깁니다. 몸도 움츠려 들고 기능도 위축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서울중앙침례교회의 목자이신 서 달석 형제님께서 언급하셨는데, 멕시코에서는 실제로 피를 가열해서 치료를 하는 예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늘 피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피의 온도를 높이는 것은 기존 피의 엄청난 자체 면역 시스템을 높일 것입니다. 피는 자체적으로 자기 방어적으로 병균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백혈구나 적혈구 등은 엄청난 몸의 방어 군대입니다. 피의 기능을 올리려면 피의 온도를 올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거나 이상이 생기면 떨려서 이불을 덮고 몸을 데워 줍니다. 그러면 몸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학자 분들이 피를 가열하는 적정 온도를 연구해야 겠지만, 피는 병의 정도나 신체의 면역 정도에 따라서 끓는 이전의 상태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적정 온도를 연구하여 가열하였다가, 인체에 다시 주입할 때는 무리가 없는 온도로 낮추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질병의 정도에 따라서 혈관에 연결하는 이동용 혈액 가열기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연구를 해 보았으면 하는 차원으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 신부전증 환자 분들에게 단순히 피를 걸러서 재 투입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피를 걸러는 것과 병행하고 약물을 투입하는 것과 병행해서 혈액을 필요에 따라 가열하여 피 자체의 기존 면역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신장 투석 보다 도 더 간편하게 피를 가열하는 개인적인 기계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업적으로 모든 것을 개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공기업을 수없이 봅니다. 국가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국가적인 근간 기업은 민영화를 막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참고로 저의 선친께서도 신부전증과 심장 계통의 병으로 그 마지막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시다가 그 마지막에 혈액 투석의 와중에 돌아가신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장티푸스라는 병에 걸리신 후 수 십년을 맹인으로 사시다가, 고통스런 간경화증으로 인생의 종말을 맞으셨습니다. 시신경이 죽어서 시력을 회복하시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고통의 인생을 다하셨습니다. 시신경이 살아 있다면, 여러 겹의 렌즈를 망원경 식으로 길게 하여 확대하면 물체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인생은 수고와 슬픔과 고생을 위해 태어난다는 것을 부모님의 마지막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몸에 마음을 옮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마지막의 고통은 몸의 질병은 약과였습니다. 자식된 저의 잘못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병은 몸의 병의 고통 그 이상이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입니다.
피는 정말 위대한 생명의 기본 요소입니다. 그 피 속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피를 잘 활용하여 병을 다스리고 몸의 기본 기능을 잘 살려야할 것입니다. 피의 가열을 통한 치료는 제가 의사라면 반드시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병은 기본적으로 기존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고로 망가지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서 기존의 면역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병이 오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모든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무문별한 약물과 검사로 기능을 약화시키는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소금과 설탕도 지나치게 막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소금과 설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희석시키는 물이나 과일아니 자연의 식품을 배로 늘이면 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두어서 약과 기계의 노예로 만들어 오히려 약화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치료하여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약화시키는 경우도 병원에서 상존합니다.
피의 가열을 통해서 몸의 기존의 창조 시의 기능을 살리고 몸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피를 냉동시키는 것은 보존을 위해 많이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피의 가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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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전염병 발생 때에 집단 매몰·폐사시킴의 안타까움에 대한 대안
우리들은 소나 돼지가 점염병 등으로 집단 발병하면 전염을 막는다는 핑계로 강제 매몰시키거나 폐사시키는 안타까운 뉴스를 자주 접합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이 발병하면 특정 지역으로의 이동이나 반입과 반출을 막는 것과 병행해서 아예 모조리 묻어서 폐사시키는 것을 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일정기간이 지나야만 그 병이 소멸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잘못된 처리라고 봅니다. 생명체에는 자연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피의 역할도 있지만, 어느 병에 걸리면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회복되고, 또 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보온에 신경을 쓰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되는 것을 봅니다. 사람도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도 어느 정도의 날짜가 지나야만 낫습니다. 반대로 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신체가 병을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의 전염병도 치명적인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어릴 적에 보았습니다. 약을 아무리 써도 낫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약을 써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지나면 회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병 자체도 연관이 있지만, 기후나 환경에 따라서 동물이 면역력이 떨어져서 병에 단체적으로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톨릭을 연구하고 경계하는 곳에서는 앞으로 사람도 전염병이 걸리면 단체로 모아서 폐사시킨다고 경고합니다. 마치 소와 돼지가 전염병에 걸리면 집단 매몰시키거나 폐사시키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짐승 매몰이나 폐사에 익숙해지면, 사람을 집단 폐사시킨다고 해도 자기 방어를 위해서 허용하는 양심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카톨릭은 세상 권력과 야합하는 매춘부로 계속 존재할 것이지만, 짐승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성경의 구절은 없기 때문입니다. 용의 로마 제국이나 짐승의 카톨릭의 세상 권력을 쥐었던 시대는 역사의 과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상 권력과 손잡고 세상을 악성 교리로 오염시키는 매춘부[창녀]로서 카톨릭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전염병에 걸렸을 때는 환경이나 기후가 특정 병균의 증식이나 전염에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격리를 해야 하고, 이동이나 반출과 반입을 엄격히 통제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퍼진다면 어느 정도의 시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병에 걸린 동물들은 비닐류나 그와 유사한 것들을 이용하여 보온을 하여야 합니다. 겨울은 물론이고 환절기에 병에 노출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습니다. 보온이 중요합니다. 위 피의 가열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도 감기에 걸리면 여름에도 춥고 몸이 떨립니다. 여름에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문제만 다르지 똑같이 흙으로 만든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개발된 약을 사용하면서, 또한 열을 내는 먹이를 먹이면서 어느 정도의 시일이 지나면 짐승도 회복될 것입니다. 세상의 기온이 문제입니다. 변덕이 심한 환절기에는 짐승도 면역 기능이 떨어지고, 병균이 왕성하게 공격할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연 환경의 변화나 기온에 따라서 몸이 반응하여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폐사난 매몰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매개체인 철새들이 물러가거나 기온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첫째는 보온입니다. 같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잡아 먹으려고 키우는 짐승이지만, 어차피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의 식탁에 오를 상품이지만, 살아 있는 짐승의 생명을 강제로 처분하는 것은 도살장의 도살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또한 짐승은 생명체이기 이전에 개인이 소중히 여기는 자산입니다. 자연 치유에 기대를 걸고 어느 정도 기다리면 자연 치유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 고유의 자연 치유에 기대를 걸고 보온과 먹이로 일차 치료를 하면서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치유의 면역력에 기대를 걸고 철저히 격리하고 반입·반출을 통제하면서 기다리십시다.
사스나 신종플루같은 전염병이 사람에게도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콜레라나 장티푸스나 흑사병 같은 점염병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도 나병이나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병이 있습니다. 앞으로 환경의 변화로 얼마나 많은 치명적인 병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예방 접종을 하여서 많이 준다고 하지만, 현대의학이 치료하지 못하는 병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극도로 죄로 타락하면 하나님께옵서 치료불가한 병을 내리실지도 모릅니다. 암이 전염병이라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혹 보시는 분들께 하나 묻고 싶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도 치명적인 전염병이 걸리면 가축의 전염병 발생 때처럼 모두 강제·집단 폐사나 매몰에 동조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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