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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규 <시인> |
청력을 잃고도 전문 분야에서 열렬한 삶을 펼쳐나가는 이들에겐 강한 힘이 있어 보인다. 자신의 취약점으로 인한 노력은 미래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엄마 젖을 찾는 아기 울음소리, 병석의 노부모 기침소리는 얼마나 절대적인가. 그 중요성을 전달해주는 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고마워요. 우리 다시 만나요.” 38년 부부로 살았던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부부는 건강검진차 병원에 갔다가 부인이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져 그 자리에서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다. 남편은 격리치료 중인 아내에게 보고 싶다고 애타는 마음의 편지를 써 담당간호사에게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간호사는 ‘마지막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침상의 환자는 경청하듯 들은 후에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애오라지 인사가 주변에 안타까운 여운을 남겼다. 아마도 끝까지 지켜주었던 귀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몇 해 전 병원집중치료실에서 자원봉사를 자청한 일을 계기로 귀의 신비스러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인공호흡기와 수액라인이 연결된 응급환자의 피범벅으로 굳은 귀부터 조심스레 털어내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는다. 다른 손들이 발 빠르게 맥을 체크하는 동안 귀의 통로가 보였다. 귀에 바투 말했다. “젊은 분, 잠들지 말고 들어 봐요.” 계속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밖엔 벚꽃이 활짝 피었다니까요.” 환자의 손끝이 떨렸다. 따뜻이 발을 감싸며 잠들지 말라고 부탁했다. 찰나, 환자 발가락 움직임에 따라 의료진의 손길이 바빠졌다. 우연이긴 해도 그야말로 귀의 힘이었으리라. 며칠 후 환자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갔다.
귀는 생김새로도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한다고 알려졌다. 사람 찾는 일에 지문보다는 귀 모양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댈 경우, 전면 카메라가 귀 모양을 인식해 잠금을 해제해 주는가 하면 사무적 기능 등이 실행된다는 놀라운 소식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이 응급상태일 때도 귀는 들린다고 한다.
난치병과 귀머거리로 ‘영웅교향곡’을 남긴 베토벤은 오직 귀의 기억 하나로 마지막 작곡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귀의 중요성이 일깨워지는 오늘이다.
이자규 시인
첫댓글 염천에 글 쓰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소중한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