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 수업에 들어가며>
배움 코스 : 팔각정--> 송악산 진지 동굴-->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셋알오름 고사포 진지--> 섯알오름 제주 4・3 유적지 --> 알뜨르 비행기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활주로--> 중식--> 티타임
4월 17일,
6주차 문화역사탐방 수업을 위해 아침에 서쪽으로 향했다. 황사가 심했다. 1시간 반을 차달려 송악산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동기분들이 벌써 도착해서 팔각정에 모여 있었다. 동쪽 중산간에서 제주의 서쪽 끝에 온 것이다. 이곳은 오름 과정 할 때 오기도 해서 완전히 낯선 곳은 아니었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경치는 환상적이었다.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형제섬이 해안선과 어우러져 황사 속에서 아련히 보였다. 오늘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일제가 남긴 아픔을 배울것이다.
송악산은 절울이 오름이라고도 부른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주도 말로 절은 파도를 의미한다. ‘절친다’는 파도가 친다는 말이고, ‘절이 울고 있다.’는 파도 소리가 마치 우는 것 같다고 표현한 말이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파도치는 소리가 우는 것 같기도 하였다. 옛날에 송악산은 후박나무, 동백나무가 많았는데, 이 곳에 뱀이 많아서 불을 지른 후에 소나무가 산을 덮게 되어 송악산이라 불려진다고 하셨다. 송악산 해안가 곳곳에 일제가 파놓은 동굴 진지가 보였다. 공격용 배를 숨겨두는 곳이었다.
이제 우리 일행은 알오름으로 향했다. 송악산 동쪽 주차장 가까이에 동알오름, 동알오름 반대편에 섯알오름, 그 사이에는 셋알오름이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인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본토가 위험에 빠지자 일본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결1호 ~ 결7호 작전을 수립했다. 그 중 결7호 작전이 제주를 기지로 미군과 전투하여 일본을 지키겠다는 작전이다. 그래서 일제는 제주도를 요새화하였다. 이 작전을 위해 1945년 제주 주둔 병력을 1,000명에서 75,000명으로 증원하고, 제주에 비행장과 격납고, 대공포 기지, 진지 동굴 등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일제가 송악산 및 알뜨르 일대에 1926년 ~ 1945년까지 일제가 구축한 군사시설들은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20개), 비행기 정비고(2개), 대공포 진지(4개), 어뢰정접안시설(1개), 해안어뢰정 동굴(15개), 내륙참호(6개), 방공호(1개), 탄약고(2개) 등이 있다.
-->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이번에 찾아간 셋알오름 갱도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중국 본토 공격을 위해 구축한 알뜨르 비행장 부속 지원시설들로 구축되어 있다. 제주도내 동굴진지 가운데 동공의 크기가 가장 커서, 자동차가 들어가서 회전하고 나올 만큼 넓다고 말씀하셨다. 일제 강점기 이후 지역주민들이 농산물보관 창고 등으로 사용했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 관리되고 있다. 전쟁 유적이자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의미가 크다. 일본의 침략욕과 지배욕을 느끼고 고생한 주민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진지 동굴 바닥에서 위를보면서 동굴의 잘려진 단면을 살펴보니, 화산송이층이 있고 그 위에 응회암층이 있어서 셋알오름 분화 후에 송악산 수중분화 화산재가 날려와 쌓였다는 것을 교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동굴은 단단한 응회암 밑에 화산송이를 들어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하, 알오름이 송악산보다 먼저 분화 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또한 나무 뿌리가 깊이 4~5m 동굴진지 바닥까지 뻗어 있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무가 살려고 물과 영양분을 찾아 얼마나 노력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갱도진지는 제주도 내에 700 여개가 있고,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 셋알오름 고사포 진지
동굴진지를 보고 숲속으로 걸어서 고사포진지로 향했다. 이 것은 당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군사시설이다. 미군 B29 폭격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360도 돌아가면서 포탄을 터트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1945년 무렵에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구축된 고사포 진지로, 5기의 진지 중 4기는 완공되고, 1기는 미완공 상태이다. 일본군 군사 시설의 하나로 태평양전쟁,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일본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 섯알오름 제주 4・3 유적지(양민 학살터)
고사포 진지를 뒤로하고 들판을 지나서 섯알오름으로 향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탄약고였는데, 1945년 이후 미군이 폭파시켜 웅덩이가 남게 되었고, 1950년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섯알오름은 6・25전쟁 발발 후인 1950년 8월 한림에 구금되었던 지역주민 63명과 모슬포 고구마 창고에 구금되었던 한림, 한경, 대정지역 132명의 주민들을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해병대(제3대대)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던 장소이다. 이후 유족들에 의해 학살된 시신 중 한림지역 63명의 희생자들은 한림 만벵디 공동묘지에 묻혔고, 132명의 희생자들은 신원확인이 안되고 시신이 서로 엉켜져 수습이 어려워 대강의 뼈를 추슬러 사계리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백조일손(百祖一孫: 신분이 파악되지 않은 유골의 유족들은 서로 다른 132명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에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비석을 세웠고, 매년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6・25 때 예비검속으로 집단학살과 암매장되었던 현장을 보고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희생자 추모비, 추모정, 게양된 조기를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예비검속: 전시에 적에게 동조하여 아군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자를 사전에 분류하여 신병을 확보하여 잡아놓는 일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시상황으로 전환되면서 이승만정부가 긴급조치령 제1호로 내린 것에 근거하여 적군에게 협조한 자로 간주하여 사람을 잡아들이게 된 것이 바로 예비검속이었다.
--> 알뜨르 비행기 격납고
이 시설물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군용 비행기격납고이다. 모슬포 바닷가의 자갈과 모래를 철근, 시멘트와 혼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1945년까지 만든 격납고 38기중 현재 19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시설들은 일제가 제주도를 일본군 출격 기지로 활용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제주도민 강제 노역 현장을 보여주고 있는 군사 유적이다. 격납고 안에는 비행기 조형물이 있었고 격납고 앞에는 보리가 활짝 펴서 바람에 평화롭게 흔들리며 익어가고 있었다. 이 아픔의 땅에서 감자도 꽃을 피우며 무심하게 자라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 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시설들을 남겨 둔 것은 역사를 잊지 말라는 교훈일 것이다.
-->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격납고를 살펴보고 비행장 활주로로 들어섰다. 활주로 길이 1400m, 폭 70m 규모로 일본 해군이 건설한 제주도 최초의 비행장이다. 해당 비행장 건설로 인해 저근개, 골못 등 여러 마을이 사라졌다고 한다. 제주도는 잃어버린 마을이 참으로 많음을 알게 되었다. 잃어버린 마음이 치유되길 기원해본다. 1926년부터 20만평 규모의 비행장이 1937년 40만평, 1944년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66만평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알뜨르비행장은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 쪽의 너른 벌판에 제주 도민등을 동원하여 건설한 군용 비행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 기지로 삼아 약 700km 거리의 중국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해군 항공대의 전투기를 ‘알뜨르’에서 출격시켰다고 한다. 1938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해군 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알뜨르비행장은 연습비행장으로 남아서, 나중에 미군 공격을 막으려 했다.
< 탐방수업을 마치며>
오늘은 이곳은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옅게 보였다. 맑은 날은 눈이 시리드록 아름다와 그림 같을 이곳이 역사의 아픈 현장이라는 사실에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이 곳 알뜨르 비행장 터는 국방부 소유로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무는 수확이 끝난 듯했다. 길옆 밭에서 농부가 마늘 순을 따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작은 비닐 하우스 속에 단호박이 잘 자라고 있었다. 농작물은 거저 농부의 손길에 따라 무심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 곳에서 자라는 농작물이 이 땅의 아픔을 보듬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어서 출발지로 회귀하는 내내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믿음을 경계하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된 날이었다.
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과거부터 몽골, 고려, 조선, 미국 등 외세가 제주도를 무척이나 힘들게 해 왔다는 사실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래에는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하루 큰 배움을 얻게 되었다.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과 함께 한 동료들에게 큰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 탐방을 기대해본다.
첫댓글 샘 후기를 읽으니 "내가 그날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들었었나?" 싶게 알차고 꽉 찬 내용이네요. 곳곳에 표기된 숫자들을 보니 꼼꼼함과 정확도가 느껴지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배선생님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그날 들었던 수업을 잘 정리한 것은 물론이고, 수업과정에서 우리가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을 잘 표현해주셨어 진심으로 공감되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더 이상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하지 않길 기원합니다.
형식과 내용을 잘 갖춰서
치밀하고 세심하게 정리하셨네요.
간간이 심성이 따뜻한 베드로니님의
마음도 읽을 수가 있구요…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함께 다녀온 듯 상세한 감흥이 따르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하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