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1일(주일)입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강조하는 이들은 예수님 편에 선 것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편에 서지 않고 세상의 윤리도덕에 바탕해 있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은 예수님의 편에 서야 하고 원수라도 예수님이 사랑하신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만 예수님이 떠나라고 하면 부모, 형제, 친척, 자녀에게서라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초기에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불신 가정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는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에게 윤리적인 측면만 강조하여 부모공경을 강조했다면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진실 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부모나 형제들에게서 핍박의 대상이 됩니다. 세상에 빠져 살며 믿음에 세속적인 것을 섞어 타협한 사람들은 온전하게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반대하고 핍박하기에 부모라도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부모와의 양자택일의 상황이 주어지면 우리는 부모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공경, 자녀사랑, 형제우애는 예수님 안에서 행해져야 하며 예수님을 떠나 육신적인 정에 매이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모공경, 부모순종의 기본은 “주 안에서”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이 부모요 이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가 떠날 때 아버지가 따라 나서는 바람에 그는 가나안으로 갈 수 없었고 아버지가 하란에서 죽기까지 하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만 축복의 대상으로 부르셨지 그의 아비인 데라를 부르시지 않았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열국의 아비와 어미로 세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부가 낳은 자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고 육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떠난 아브라함을 그 누가 비난합니까? 우리는 제대로 아버지를 떠나지 못해 하란에서 지체한 그를 통해 온전한 믿음의 교훈을 얻지 않습니까?
또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이삭은 아브라함이 25년간 기도해서 낳은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이 노쇠하고 남자와 여자의 기능이 다했을 때 하나님이 능력으로 주신 아들이며 오랜 기간 순종으로 얻은 믿음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제물로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아들을 죽이는 부모를 생각해보십시오. 주신이가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원하실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제로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자 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육신적인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영적인 것을 떠나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을 버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비난하고 돌 던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섬긴 것이라고, 마귀에게 잡히지 않았다면 어찌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려고 하며 또 진짜 하나님이라면 부모와 자식을 떼어놓게 하겠는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25년 전이나 25년 후나 동일하신 분이셨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송하면서도 아브라함처럼 살지 않는 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계보, 믿음의 반열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부모도 믿음의 시험을 받고 자식도 믿음의 시험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택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택하며 말씀에 따른 고난을 택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다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1-5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출 32:27)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 3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