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진 사자.
계시록3:7.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8.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9.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11.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사 자
이 시대의 사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요한 웨슬리였습니다.
웨슬리는 1703년6월17일 엡워쓰에서 태어났는데 사무엘과 수잔나 웨슬리의 열 아홉 자녀 중 한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영국 교회에서 목사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마음을 종교적 방향으로 돌린 것은 그의 부친의 신앙보다는 모친의 모범적인 삶으로 인해서 였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총명한 학자였습니다.
그와 찰스가 교리를 표준으로 삼기보다는 체험적으로 진리를 실천함을 기초로 삼으며 영적으로 예배드리는데
노력하는 한 무리의 일원이 되었던 것은 요한이 옥스포드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환자들과 죄수들을 방문하는 것들 같은 행위에 대한 영적 안내서를 썼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규칙쟁이(Methodist, 감리교인)와 기타 냉소적인 뜻을 담은 직함들로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비젼(Vision)에 쑥 빠져들어 인디언들을 위해 선교사로
미국의 조지아주로 갔습니다.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그 배의 승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모라비아교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온유하고 평화스럽고 용감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지아주에서의 그의 수고는 자기를 부인하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나는 인디언들을 회심시키려고 미국에 갔었다. 그러나 아! 누가 나를 회심시킬 것인가? 하고
외치며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런던에 돌아온 그는 다시 모라비아교인들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었던 사람은 피터 뵐러였습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진실로 거듭났고, 그것은 요한처럼 영적인 사람이 전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었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요한의 형제 찰스에게 당혹감과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후 오래지 않아 찰스 역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웨슬리는 그가 이전에 설 수 있었던 런던에 있는 여러 설교단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를 쫓아냈습니다. 이때 그의 오래된 친구인 죠지 휫필드가 그를 힘껏 밀어 주었습니다.
휫필드는 요한을 초청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있던 야외에서 설교하도록 도왔습니다.
처음에 웨슬리는 건물이 아닌 야외에서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들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복음이 역사하는 것을 보자 전심을 다해 열렬히 설교했습니다.
그 역사는 곧 요한이 수많은 평신도들을 말씀을 전하도록 내보내기 시작할 정도로 유세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사람들을 권능으로 세워 거의 밤새도록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게 했었던, 오순절의 역사와 맞먹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요한의 사역에는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들은 강력하게 표명되었고 종종 뉘우침의 영이 크게 사람들을 사로잡아 힘이 빠지게 하고 바닥에
엎드려 자기들의 죄를 심히 괴로워하면서 울게 만들곤 했습니다.
웨슬리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여섯 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고 사역 기간 중 거의 매일 다섯 시에
설교를 시작하기 위해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하루에 네 번 정도까지 설교를 해 일 년에 평균 800개 이상의
설교를 하는 셈이었습니다. 웨슬리는 복음을 가깝고 먼 곳에 전달했던 그의 순회 사역자들처럼 수천 수천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실제로 웨슬리는 말을 타고 연평균 4,500마일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였고 큰 믿음으로 아픈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놀라운 결과들을 낳게 했습니다.
그의 집회 중 많은 곳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이 표명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조직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연합회(United Society)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경건의 능력을 구하는,
함께 기도하고, 권면의 말씀을 받고, 구원을 이루는데 서로 돕기 위해서 서로를 사랑으로 보살피기 위해서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가입하려는 사람들의 한 가지 조건은 그들이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고자 하며, 자기들의 죄에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자기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한 자기 훈련에 사용되는 엄격한 규칙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자기가 죽고 나면 그 운동이 조직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그들을 죽은 형체로 남겨두고 떠나실 가능성을 깨달았습니다.
웨슬리는 한 번은 자기는 감리교의 이름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성령이 떠나실 것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생존시 막대한 부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돈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가 말하기 좋아하는 말은, 최선을 다해 벌어라, 최선을 다해 저축하라,
최선을 다해 구제하라 였습니다.
웨슬리가 돌아와 오늘날 감리교라 이름하는 종파를 본다면 얼마나 이상한 느낌을 받을까요.
이제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자입니다--거부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요한 웨슬리의 삶과 능력은 없습니다.
웨슬리는 결코 교파적인, 당파적인 뜻으로 역사를 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한 언급 해야겠습니다.
그는 아르미니우스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리 때문에 자신을 형제들에게서 분리시키는건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야고보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신조나 교리적인 진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믿음과 행위들 또는 삶으로 실천하는 것에 그의 영생의 기초를 두었습니다.
웨슬리는 아무나 감히 자기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섬기고 88세에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빌라델비아 성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75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리디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고 유명한 포도 재배 지역인 여러 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곳의 주화에는 박카스와 박칸테 여제사장의 머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성의 인구는 유대인들과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교에서 개종한 자들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은 잦은 지진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계시록의 일곱 도시 중 가장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사실 이 성은 아직도 터어키식 이름인 하나님의 도시라는 뜻의 알라세히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동전의 각인은 이 성의 신이 박카스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카스는 니누스나 니므롯과 똑같은 인물입니다.
대부분은 술 마시고 흥청대고 술취 한 박카스를 떠올리지만 박카스는 “애도를 받는자”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깨닫게 해줍니까? 여기 한 쪽에는 남신, 다른 한 쪽에는 여제사장 또는 여 선지자가
새겨진 동전이 있습니다. 이제 동전을 돌려보십시오.
동전의 어느 면이 땅에 떨어지든지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같은 동전이니까요. 그것은 로마식 예수와 마리아 숭배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렸습니다. 그 큰 음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음행으로 어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딸들은 이제 같은 각인을 가진 동전들입니다.
거기에 동전 한 쪽에는 예수에 대한 경배를, 다른 한 쪽에는 그들의 여제사장 또는 여선지자도 새겨놓았습니다.
그녀는 신조들과 독단과 교의들을 써서 자기만이 참 빛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위해서 그것을 팝니다.
이 시대가 그 동전으로 특정 지워진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미와 딸들은 다 하늘가는 길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피가 아닌 것이 매입 가격입니다.
돈과 성령이 아닌 것이 그들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재물) 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망으로 그들이 다루는 행위는 곧 끝날텐데 이 시대는 성령이, 보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 라고
외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옵소서, 주 예수님, 속히 오시옵소서!
시 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는 1750년에서 1906년 경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그 도시의 이름이 뜻하는 것 때문에, 형제 우애의 시대라고 불려왔는데,
빌라델비아는 형제들의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