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듯 캔 내 친구들~~
우부형
재학시절 3-1반 우리반 반장이었고 당시 교사였던
1반 30여명의 주소록을 주며 동창회보 10여부의 발송을 부탁 받았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회보를 구하려고 회보에 적힌 총동창회에 연락했더니, 마침 분당에
사시는 유청영(15기)총동창회장님께서 삼성플라자에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회보는 얼마든지 주시겠다며 차마시는 동안, 19기에서 제발로(?) 연락한 후배에게
'동창회 일은 누군가가 해야하고,
고구마캐듯 한 친구가 나오면 그 친구가 만나는
친구들이 따라 나오는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 이라며 19기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습니다.
내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하시며 동기들과 곧 떠나시는 해외여행서 쓰실 모자를 구입하려는데
봐달라고 하셔서 함께 쇼핑도 하고 댁에도 데려 가셔서 회보도 챙겨주시며 참 많은 얘기를
해주셨지만, 내가 할 일이란 생각은 전혀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받아온 회보를 발송하기 위해 주소확인차 전화하던 중, 키가 커서 뒷자리에 앉았던
중환자실에 있으며 가족면회도 안된다는 아들의 말을 들었는데,
회보 발송 후, 다시 전화했을땐 그 사이 사망한 영애의 소식을 듣게 되니,
1982년11월 53세(당시 내 나이 33세)에 세상을 뜨신 친정어머니와 세 외삼촌과 맏딸이셨던
얼굴도 모르는 이모님까지 모두 환갑을 못넘기신 것도 생각나면서,
'나도 이젠 그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과 (1반;6명, 2반과 5반 한명씩) 1반 반창회도 참석,
2005년엔 개교 60주년기념 행사 중 ‘꽃음식 축제’, ‘선후배가 함께 창덕궁과 옛 모교 걷기’에도
참석했었는데, 걷기대회를 마치고 참가자 모두 식사할 때, 우리는 유청영 회장님께서 함께 앉을
자리까지 마련해주셔서 선배님들과 대화중 이영배담임선생님 소식도 듣고 연락처도 받았으나
오래된 전화번호라 더 알아보니 선생님은 재혼하신 부인과 충주에 계셨기에,
바로 반친구들에게도 알려 선생님께 안부인사들을 드리던 중,
마침 며칠 후, 정기모임이 있어 당시
동서울 터미널로 모시러 가서 차를 대기중에 선생님은 나를 금방 알아보시고 궂이 뒷좌석
마다 하시고 조수석에 앉으시며 대뜸
'괘씸한 니 얼굴좀 자세히 보련다. 왜 임마~' 하시며 아예 옆으로 돌아 앉으셨습니다.
(?...)
'내가 남학교는 많이 근무해 제자들이 많이 찾아주는데, 여학교는 창덕과 무학여고뿐이고
무학에서 은퇴했건만, 한놈도 안 찾아줘서 여제자는 소용없구나 하고 무척 서운했다.
그런데 너희가 먼저 찾아줬으니 용서해줄께...' 하셨습니다.
정기모임 장소에서
보내신 며칠 후, 교통사고 후유증과 지병 진료차 서울대병원에 다녀 가실때도 모임에 못나온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지셨건만,
철원의 ㈜그래미 연수원에서 있을 '졸업40주년 행사'를 앞두고 연락드렸을때는 이미 거동이
어려우셔서 아드님이 철원에 사시는데도 못 오신다셔서 행사 일주일전 친구들과 찾아뵈었는데
베란다 창문에서 배웅하시던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아드님께 부고소식을 듣던 날(향년88세)이 마침 바깥사돈상을 치루느라 쌍동이손자들 돌보고
있을때라 마지막 가시는 길도 뵙지 못하고, 뒤늦게 친구들과 사모님한테만 몇차례 다녀왔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주로 친정엄마없는 친구들과 가게되니 아마 편안히 대해 주셔서인듯,
그나마 올해는 아직도 못 찾아뵙고, 문자안부만 드리고 있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개교 60주년이었던 해.
2005년 11월 19기 정기모임을 앞두고 가진 임원회의에서
(결혼 앞둔 큰아들 '함'들어가는 날이기도 하고 임원도 아니니 안간다고 했습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총무로 지명되었다며
사양하는 내게 정기모임에 모인 십여명이 박수치며 등떠밀려 총무가 되었고,
전임회장까지는 연 1회 정기모임만 있었고, IMF 국가부도위기로 어려울때라 30주년
(1998년), 35주년을 조용히 보냈으나 40주년에는 행사를 치룰 수 있게 준비해 보자며
1. 가벼운 산행으로 건강과 함께 친목을 다지는 ‘월례모임’을 만들고
2. 연회비는 5만원으로 책정하고
3. '사진으로 보는 창덕60년' 을 발행한 총동창회에서 19기에 보내진 100부중
각 반별 10부씩 70부를 제외한 30부에서
미국서 살다온 경험때문인지 고국과 모교를 그리워하며 지낼 주소가 확인된 12명의
해외친구들에게 발송하자고 했습니다.
30여만원이나 들인 발송비는 무리한 비용이었지만, 우편물을 수령한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작은 사진들이 무수히 실린 책이건만 어떻게 얼굴을 알아봤는지?
'그냥 아는 이웃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창덕선배, 후배였더라...'하며
'많은 비용들여서 이렇게 챙겨줘서 고마운데, 회비라도 보내고 싶다.'
'우리도 동창회 하는거니?' ...등등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와 했습니다.
당시 몇 안되는 해외친구들중
통화도 가끔했고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의 근황을 알려주며 연락처도 보내줄때마다
'사진으로 보는 창덕60년'과 동창회보를 발송해줬습니다.
(물론 국내의 친구들도 지난 회보들까지 챙겨서 보내주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창덕60년'은 모두 소진하고 한권만 남았습니다. )
마침 아틀란타에 사는 외사촌 동생이 분당차병원서 수술도 받고 우리집에 머물며 넉달간
요양하고 떠난 뒤, 그 동생의 언니(외사촌 언니-일리노이즈 거주; 웨딩관련 사업운영)께서
수고했다면서 널 위해 한달간 비워놓을 테니, 다녀가라면서 초청해주셨는데, 이 소식이 규미랑
뉴욕쪽 친구들에게 알려져 언니네 도착하자마자 일러준 언니의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수시로 울렸습니다. (얼마전 규미의 외동딸 웨딩드레스 고르는데 언니와 상의를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체류 막바지에 언니의 권유로 한인들만의 미동부여행 신청을 했다니까 비상연락망이
가동되었는지 규미네 집에서 재워줄테니 하루 먼저와서 친구들도 만나고 가라고 해서
시카고 관광, 멤피스의 엘비스프레슬리의 집 그레이스랜드, 아틀란타 관광후, 나혼자
인디애나폴리스공항에서 뉴욕으로 보내지고 언니는 형부가 기다리시는 일리노이즈 집으로
귀가하셨습니다.
뉴욕공항에는
맨하탄 한인거리의 고려당으로 나혼자 또 보내져서 전화나 이메일만 주고받았던
통근기차를 타고 규미와 함께 맨하탄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여 부근의 한인식당서 아침식사 후,
규미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여행가방을 보관, 규미가 나도 모르게 준비한 샌드위치와 음료수,
맨하탄지도까지 들고 혼자 맨하탄 관광을 한 후, 규미네 빈 사무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여행사와
합류하기 위해 아쉽지만 규미랑도 헤어졌습니다.
맨하탄 쇼원도우에 규미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고가구들과 함께 전시되어있어 참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
버릇이 보여 희자임을 확인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같은 반도 안해봤고 얼굴도 전혀 모르던
친구들이었는데도 한국에서 온 동창이란 이유로 환대를 받은 것 같아 두고두고 고마웠습니다.
친구들 만날 때 집에서 챙겨간 3권의 ‘사진으로 보는 창덕60년’을 못받은 친구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니,
‘무거운 것 여기까지 챙겨왔네?~’하면서 선뜻 연회비들을 내주고, 주소록에 없던 친구들
연락처도 받아왔습니다…
귀국 다음날이었던 월례모임에서
‘총무되자마자 미국뉴욕까지 다녀와 덕분에 대표로 대접 잘 받고 왔네.’ 면서 연회비 받아왔다고
하니,
‘거기까지 가서 회비 받아온거니?’ 라고 했었습니다.
철원의 ㈜그래미 연수원에서 진행된 졸업40주년 기념행사에 캐나다의 강호정과 미국에서는
지난 4월 9박11일간의 '졸업 45주년기념 미주문화탐방' 에서는 10명의 미동부거주 친구들을
만났는데…
뉴욕뉴저지 前창덕 총동창회장
그리고 늦게 도착해 제대로 말도 못나눠보고 스카프선물만 한보따리 안겨준
모두 반갑고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45주년 기념여행을 다녀온 후, 캐나다 벤쿠버의 4명의 친구들과 미서부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다음엔 꼭 우리들 있는 곳으로도 왔으면 좋겠다.’고 성화입니다.
현재는 26명의 해외친구들과 이메일이나 국제전화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가장 편리한
카카오톡은 거의 매일 주고받고 있습니다. 보이스톡 덕분에 통화까지...
그 동안 모국 방문길에 오르는 친구편에 * 연회비를 모아 보내줘 전달받았었는데,
요즘은 개인적으로 * 평생회비를 보내오고 있으니,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11월이면 만 8년간이나 총무일 해보니 가장 안타까운 것은 투병중인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
처음 소식을 들은
졸업하고 40여년간 소식없다가 불쑥 하게되는 두세번의 통화로 속내까지 드러낼 수는 없을터,
아직도 진행중인 010으로의 휴대폰 번호변경과 매년 발간되는 동창회보와 공지사항 전달을 위해
(국내:현재 208명)일년에 한두번 보내는 우편물은 5~10여통씩 반송되어, 확인차 전화했을 때
가족들 통해 친구의 사망소식과 함께 친구의 오랜 투병생활, 사망도 몰랐냐?는 원망내지는
자식잃은 설움에 대성통곡하시는 친구 어머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수 있을지?
'사진으로 보는 창덕60년' 은 330페이지로 10권이라해도 사진집이라 한권의 무게도 무거워서
반대표모임서 10권씩 나눠줬으나 반대표가 불참한 반은 마침 분당이매동과 수지에 살고 있어
오가며 경비실에라도 두고올 요량으로 싣고 다니다가 6반
내려놓고 갈 테니 찾아가~’ 라고 전화를 했더니,
'수고했는데 올라와 차마시고 가지~' 하기에
'같은 반도 안해서 난 널 모르는데~(어떻게 집에 들이냐?)' 했더니, 명희는
'동창이면 다 친구지 뭘그래. 어서 올라와~'
낯을 잘 가리던 쑥스러움이 멀리 날아가는 순간이었고, 그 후로
8년여 총무를 하면서 서로 낯설어하는 친구들에게 많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너의 그 말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라며
힘들거나 마음 다치는 일들이 생기면 풀어놓고 투정도 부리는데 모두 다 받아주는
착한 '우리 명희씨~'
명희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낯선 친구들에게도 먼저 다가갈 수 있었고,
또 기왕에 총무일을 맡았다면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해 벌써 총무 8년차가 되어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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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전회장은 앞에 설명한 것처럼 3년 후 있을 '졸업40주년행사'를 앞두고
월례모임(마지막 토요일)을 만들어 가벼운 산행과 식사로 친목을 다지며 8년동안 이어져왔고,
후일 제주도여행 다녀와 만든 ‘뚜벅이(셋째 월요일)’와 함께 여러행사 참여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2012. 2월까지 연인원1070명이 참가:’뚜벅이’와 번개모임은 포함안됨)
연회비(5만원: 2013년도 3명)제도는 많은 국내외 친구들의 협조 덕분에 경비를 쓰고도 5,596,171원을
김경옥전회장에게 전달했고, 이원묘 현회장의 제안으로 평생회비(20만원:
제도와 함께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졸업40주년행사를 앞두고 선배님들의 추천으로 19기 회장을 맡게 되자 특유의 추진력과 사명감을
갖고 40주년행사를 성공리에 치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선 행사추진위원장에 김원자동문을 비롯 행사 사회는 성우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임원들을 선임하고,
특별회비를
회장 200만원, 임원들은 50만원~100만원, 기본 30만원을 책정,
국내외 90명이 협조하여 3274만원이 모였습니다.
총동창회에 40주년기념 기금 300만원
행사참여한 63명(57명+스승님&귀빈6명)을 1박2일간 숙식제공은 물론 철원일대 관광까지
도맡아해준
㈜ 그래미연수원에 기념식수 100만원
관광버스2대 대절 200만원, 기념품 가방 맞춤 200만원,
행사안내장, 초대장발송, 행사기념책자+주소록(인쇄)발송
행사 불참자(기본회비이상):기념품가방 발송,…등 행사 마무리 후,
양가 부모님喪에 쓰일 ’19기 근조기’제작(20만원)과 핸드마이크(18만원)도 장만,
45주년기념행사를 성공리에 마치자 마자 14명이 울릉도&독도로 기념여행을 다녀왔고,
그 해 정기모임(
뒤풀이겸 회계감사&보고도 마쳤습니다.
변양신&
2009년 10월 총동창회(졸업30주년되는 기수가 주관함)행사인 ‘창덕인 걷기대회’
('운동회'로 명칭변경)부터는 기에서 20명분의 회비(20만원)를 부담하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 만70세가 되는 해까지 내야하는 총동창회 연회비도 2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대폭 인상되었습니다.
울릉도&독도여행을 시작으로 김경옥전회장의 4년 연임기간 동안 여행붐이 일어
2009년 4월 17명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 해외로 나가자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비행기 예약관련 준비기간을 여유있게 해야하는데, 막상 마감일까지 8명만
신청하여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도 망신스러워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김경옥전회장이 결단을 내려 여행비의 1/2을 기회비에서 보조키로 공지하자 곧바로
30명을 채울수 있었으나 부득이 입원하는 친구가 생겨 항공권(22만원*2명=44만원)할인 혜택은
22만원+ 통신비조 10만원=32만원으로 마무리되고 29명이 잘 다녀왔으나, 지금까지도 여행에
동참을 했든 안했든 많은 친구들에게 김경옥전회장은 큰 행사를 잘 치루고도 기회비 남용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포기했더라면……’
당시 보조금은 (친지 제외 26명*1인당25만원=650만원)이었습니다.
올봄 다녀온 ‘45주년 미주여행’에 7배 가까이 되는 여행경비(1인당 340만원)와 훨씬 긴 기간
(9박11일)임에도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고 중국황산 여행때가 생각나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당연히 김경옥전회장은 변양신 감사에게 여행보조금 단독처리에 대한 주의를 받았고,
이원묘회장은 취임당일 각종소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10~20만원씩 지원하기위해 300만원을 희사금으로 쾌척하였습니다.
넘치는 위트로 분위기를 아우르는 재주까지 갖춘 이원묘 現회장은 40명을 인솔 경주까지 KTX를
타고 경주-부산-통도사-거제...재학시절 다녀온 곳을 다시 가보는 '추억의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담임선생님들과
성대하게 치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12월 정기모임 이틀전날 송수남선생님께서 소천하셨고,
우리가 모이는 날이 마침 발인일 이어서 선생님 생각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졸업 45주년인 올해는 해외거주자가 가장 많은 뉴욕에서 미동부, 중부지역 친구들과 합류,
뉴욕,뉴저지 창덕총동창회
여행에 동참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45년만에 만나 잠시 묵은 회포를 풀었고 (함께 여행 못한 것 후회할 정도) 인옥이네 집에서 만난
있어서 더 반갑고 기뻤습니다. (
귀국전날
뷔페를 준비, 미동부 뉴욕뉴저지동창회 선후배님들까지 (부부동반) 우리를 맞이해 주시니
긴여정의 피로가 싹~ 풀렸습니다.(멀리 보스톤의 이혜경부부도 참석)
인옥이네 집정원에서 선후배님과 함께 졸업45주년 기념식도 하고 식사 후, 우린 선배님들 앞에서
여행중 갈고 닦은 재롱잔치를 보여드리고, 선후배님들은 예쁜앞치마와 머그잔을 선물로 주셨고,
우리가 뉴욕, 뉴저지총동창회에 전한 찬조금 $300을 귀국길에 오른 우릴 공항까지 배웅나온
김윤희회장편에 19기에 찬조금으로 주셨습니다.
여행을 다녀와 바로 스승의 날, 수련회, 월례모임, 뚜벅이 생일...어제는 미국여행때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준
내일은 8년여만에 처음으로 15명이 1박2일간의 월례모임을 소양강부근에서 가진답니다.
나이들어 친구들 특히 여고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더 마음 편하고 좋아서인지
지난 7.12~13일 수련회에는 35명이나 참여, 숙소였던 콘도예약도 추가하고 많은 식구들의
식사준비는 물론 승용차 몇대 동원하려던 계획이 버스대절까지 하게 되어 여행자 보험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출발 당일 아침에 참석한다는 전화한 친구까지 있어 좀 당황했습니다만, 당일코스도 아니고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만큼 행사참여 마감일전에 신청을 해줘야 차량, 숙소, 식사, 관광지
예약관련...준비가 원활한데....
결국은 모임, 행사, 국내외 여행의 연속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열심히 참여하는 친구들도 많아 고맙지만, 건강이 허락함에도
아직도 낯설고 쑥스러워 선뜻 참여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을테니 더 늦기 전에
그런 친구들의 동참에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19기 총 432명중 국내 203명, 해외 26명만 연락이 가능하고 주소불명이 많으니, 주소록에 없는
친구들 연락처도 알려주고 핸드폰 번호이동이나 주소변경시에도 꼭! 총무에게 연락주길 바라며,
자녀들의 결혼과 배우자의 사망…등으로 점점 혼자있는 친구들이 늘고 가끔 입원이라도 하는 경우,
핸드폰 연락도 안될 경우가 종종 있어 다른 친구가 걱정된다며 총무에게 다른 연락처를 찾는
친구들이 있으니, 자녀들이나 가족의 연락처를 알려줬으면 합니다.
회비 관련해서는
감사들에게 회계감사를 받은 결과는 수련회(상반기), 정기총회(하반기)에서 감사가 직접 보고하고,
큰 행사를 마치면 바로 행사관련 결산보고를 카페에 올리고 있는데
'스승의 날'과 '1박2일 수련회' 행사 같은 경우에는 기회비에서 지원금이 나가지만,
그 외 모임은 당일 회비나 찬조금등으로 '제로상태'를 만들고 있습니다.
8월30일 현재 평생회비는 79명이, 2013년도 연회비는 3명이 냈으며, 명단은 카페의 공지사항과,
회비납부관련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뉘어 정기예금에, 나머지는 운영통장에 보관중입니다.
총동창회 규정상 만70세까지는 총동창회에
♣연회비(50만원)
♣총동창회 주최 운동회(매년10월 2째 토요일)회비 ( 20명분 20만원씩: 기회비에서 부담하면서까지
동참을 권유해 왔어도 20명을 초과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원묘총동창회장과 함께 19기
친구들이 임원진이 되자 총동 행사때마다 전체 기수들 중 '최다 참가상'을 받을 정도로
우리동기들이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 졸업 45& 50주년 기념행사 및 총동창회에 내는 5단위 주년 회비
♣2015년 '개교70주년'기념 기수별 배당되는 특별회비와
♣'동창회관 건립기금' 모금도 있습니다.
*공지사항으로 마무리하게 되려고 하는 등~ 어떻게 정리가 안됩니다.
가감할 것들 알맞게 편집하여 마무리 좀 해주세요...미안합니다!~수고하셔요~~
첫댓글 '풍선할머니'랑 둘중 하나만 골라주세요...
제목은 고구마 캐듯 캔 내 친구들...글의 끝은 ~니다로 끝을 맺으면. 모두~니다로 ~합니다는 ~니다로 통일시키면 더 깔끔한글이 된단다.
이글을 다듬으면 꼭 필요한 동창회 발전사가 되니 필요한글이다.....내생각이야. 너만큼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창회역사를 잘 아는 친구가 없거든.
나도 동감
동창회 역사라니 좀 부담스럽지만...
~니다.
로 수정하고 좀더 보완해서 다시 올리겠슴다
조금 글을 줄여야 겠다.
박명희네 올라간것 까지 쓰고 너의그말부터 가녀린까지 빼. 너무 주절주절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