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터지기 전에 사과하라.
본 문 / 마태복음 5장 25∼26절
주 제 / 그리스도인은 사과를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작성일 / 2024년 6월 30일. (№ 24-26)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5∼26)
Ⅰ 살인하지 말라. (마 5:21∼26)
2024년 신앙생활의 목표를 외치자. “예수의 법으로 살자!”(롬 8:1∼2)
우리에게 팔복을 가르치시고, 천국을 품게 하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해석’과 ‘예수님의 율법해석’을 비교해주심으로써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지는 길을 제시하셨다.
그 첫 번째 주제가 ‘제 6계명’ 즉 ‘살인에 관한 규례’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제 6계명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서 “신체적 살인을 하지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렇지만 예수님은 제 6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해석하여서 “마음의 분노도 살인이다. 이웃을 모욕함 역시 인격적 살인이다”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살인을 예방하는 길은 ‘화목’이니, “예물보다 화목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살인을 예방하는 또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신다.
Ⅱ 급히 사과하라. (마 5:25∼26)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5장 25절을 보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 5:25) 예수님은 살인을 예방하는 또 하나의 방안은 ‘사과’(유노에오)라고 말씀하신다. ‘친절하다’, ‘타협하다’란 뜻이다. 덮어놓고 화부터 내지 말고, 차분하게 대화하여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면 결코 살인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누군가 우리를 고발하려고 재판관에게 나아가는 장면이다. 아마 우리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고 기한이 지나도록 갚지 않았거나, 혹은 물질적, 신체적 피해를 입히고도 사과하지 않고 배상도 하지 않으면서 “어쩔래?”라고 당당하게 대적했을 것 같은 장면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못 없는 사람을 나무란다.’는 뜻이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딱 이런 경우인 것으로 보인다.
‘적반하장’이란 말은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말이다. 왜일까? 사람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난 경우 서로 고함치며 다투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고, 당신이 잘못했다”는 내용이다. 말로만 다투면 다행인데, 서로 치고받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의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은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지하고, 빨리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지는 길이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는 길이다.
그러니 다툼이 발생하면 친절한 태도로 대화를 해야 한다. 친절한 태도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미안합니다.’ 먼저 사과하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도 “오히려 내가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하게 된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5장 25∼26절을 보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5∼26) 예수님은 사과가 늦어질 경우 감당치 못할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다. 그러니 일이 터지기 전에 사과하라는 말씀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재판관’은 ‘세상의 재판관’일 수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재판관은 뇌물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재판관으로 묘사되지 않고 사건의 잘잘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결하는 재판관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6b)는 말씀은 마치 ‘지옥의 형벌’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재판관에게 가기 전에 사과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사과해야 한다. 친절한 태도로 타협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 ‘사과’는 ‘사회적 생명’과 ‘영적 생명’을 지키는 바위와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Ⅲ 사과와 용서를 위한 사도들의 조언 (엡 4:31∼32; 약 3:13∼17)
그렇지만 사과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우리에게 사과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야고보서 3장 13∼18절을 보니, 사도 야고보가 ‘지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지혜 중에는 ‘땅 위에 있는 지혜’가 있는데, 이 지혜는 ‘시기’, ‘다툼’, ‘자랑’, ‘거짓말’을 잘하게 하는 지혜라고 말한다. 승리를 위한 지혜일 것이다. 나보다 잘 난 사람 시기하고, 그와 다툼을 일으켜 이기게 하는 지혜이다.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하여 한껏 자랑할 수 있게 하는 지혜이다. 야고보는 이런 지혜는 ‘정욕의 것’, ‘귀신의 것’이라고 말한다(약 3:14∼16).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될 지혜이다.
또한 지혜 중에는 ‘하늘에 있는 지혜’가 있는데, 이 지혜는 ‘성결하게 하는 지혜’, ‘양순하게 하는 지혜’, ‘화평하게 하는 지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지혜는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지혜’라고 한다(약 3:17∼18).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은 ‘하늘에 있는 지혜’로 살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러면 다툴 일이 없다. 친절하게 말하고, 지혜롭게 타협하고, 금방 사과하니 다툴 일이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싸워서 이기게 하는 ‘땅의 지혜’는 버리고, 성결하게 하고, 화목하게 하는 ‘하늘의 지혜’를 취해야 한다. 예수님의 율법해석, 즉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그런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일이 터지기 전에 금방 사과하는 사람이 된다.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조언을 한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을 보니,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은 ‘악독’(피크리아)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잔인한 성질’이란 뜻이다. 이 성질을 버리지 못하면 사사건건 이웃을 찌른다. 당장 버려야 할 성질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것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친절’, ‘긍휼’, ‘용서’는 우리가 취해야 할 것들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절하시듯, 우리도 이웃에게 친절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듯, 우리도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도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 그러면 이웃과 다툴 일도 없다. 설령 다투었더라도 금방 사과한다. 재판 받을 일이 없게 된다.
야고보의 조언과 바울의 조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화평’이다. “양순하여서 화평을 이루라.” “친절하여서 화평을 이루라” 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그것이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들의 삶이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조언을 흘려듣지 말아야겠다.
Ⅳ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
우리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일이 터진 다음에야 행동을 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이 터진 다음에는 백약이 무효이다. 깨어진 독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 그러니 일이 터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분노하기 전에 감정을 다스려야 하고, 모욕하기 전에 자신의 인격을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와도 화목한 인생을 살게 되고, 그래야 재판관에게 끌려가는 일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그것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로 사는 인생, 소금과 빛으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 일이 터지기 전에 사과하고 화목하여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