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엿보다
-신설동 풍물시장에서-
자운/ 배성희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놀라
세상을 향하여 창을 열고 나온 물건들
풍물시장 손때 묻은 물건들이 모였다
예전에는 번쩍였던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좌판에 나와 줄지어 있다
우유사탕, 얼음사탕을 혀끝으로 녹이면
씁쓸한 마음을 녹여줄 것 같아 집어 들어본다
백여 년의 시대를 뛰어 넘은 도자기는
그 시대를 알고도 모른 척 침묵한다
우렁찬 구령소리가 들리는 듯한 예비군복이 할 일없이 빈둥거리고
주인을 기다리느라 지쳐 잠든 탁상시계
새벽을 깨우느라 따르릉 큰 소리로 울었을 시계들
꼬마대장처럼 불룩한 알맹이가 빠져나간 훌쭉한 가방
공부하느라 지쳤을까
아직도 누군가의 외투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새벽잠을 깨워주고 싶은 짱짱한 목소리도 저장 되었는데
눈맞춤 기다리고 기다리며
엿보는 창틈이 닫힐까 초조하다
열정을 끓이다
배성희
열정을 바글바글 끓여
불꽃으로 타오르는 날 있었다
단단한 힘줄을 자랑하며
드리운 그늘은 자취를 감추고
붉고도 노랑 물길로
가슴 촉촉해지던
밤새워 피운 이야기꽃으로 지루하지 않고
해종일 걸어도 고단하지 않아
달을 굴리며
무지개를 쫓아
사라질까 움켜쥐고
우수수 떨어질까 마음 졸이며
차오르는 빛살 속에서
햇살을 녹여 뿜어내던 날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다
모네의 색채를 훔치다
자운/ 배성희
내 속에 언제나 웅크린 색채가 있다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건드리면 풀썩 삭아져 내릴 것 같은
연초록 양산을 쓰고 긴 드레스는 바람에 날리는 듯
물살을 터치하면 수련이 피어나고
빨강 노랑 물감이 닿으면 이름 모를 꽃들이 자라나는
환상의 세계
여린 듯 부드러운 듯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가득 차오른다
그 색에 끌리어 꽃이 피는 들길과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을 그려본다
채워지지 않는 시간을 건너
색채의 선에 접근해도 잡히지 않는
몽환의 색
화르르 사라질 것 같은
실바람에 기품을 갖춘 옷이 나부끼는
그 파스텔 톤의 색채를 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