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고 있는 길이 더 아름답다.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혹여 두 갈래 길에서 망설이다 한 길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설 때면 두 가지를 다 섭력하고픈 소유욕이 발동하여 흔들리곤 했다. 굳이 한 길을 포기해야만 할 때면 선택한 길의 만족보다는 미지의 길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을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마음에 매달 곤 했다. 살면서 내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는 편이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교훈을 머리에 입력하며 살다가도 문득 불거지는 욕심은 그때마다 숨길 수가 없다.
오늘도 항상 다니던 큰 도로를 놔두고 언젠가는 가보리라 맘먹었던 산촌 위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택하여 접어들었다. 여름 한낮의 열기로 이글대는 도심과는 달리 숲으로 이루어진 산길은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 향기까지 안겨줘 된더위에 지친 여인의 마음을 이내 빼앗았다. 산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자족감에 흐뭇해하며 산속 정경에 삶의 찌든 마음을 씻고 싶었다.
산하의 청정한 기운에 마음을 내리며 천천히 걷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인적이 드문 소로(小路), 아니 오랫동안 사람의 발자국이 나지 않은 듯한 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언제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곳도 길이다. 언제부터 이 산속에 어떤 사람이 첫발을 내디디며 길을 내놓았을까. 앞에 펼쳐진 두 길 중 어떤 길로 가야만 현명한 선택일지 또 저울질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단축하는 시간의 이득을 얻거나 산의 아름다움에 더 많이 흠뻑 취할 수 있는 선물을 그곳에서 얻을 수 있을까. 두 갈래 길 앞에서 선택의 혼란이 또 머릿속을 헤집는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두 오솔길은 다 아름다웠다. 한쪽엔 가을을 맞이하러 나온 연보랏빛 구절초 꽃 무리가 어우러져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한쪽은 돌 틈 사이로 흘러나온 빗물이 작은 계곡을 이루어 여울지고 있다. 왼쪽 길을 택하든, 오른쪽 길로 나서든 포기한 한쪽 길에 대한 미련이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또 내 가슴을 옭아맬 거란 심산은 뻔했다. 살면서 선망하던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을 항상 놓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어디 길뿐이던가. 경험 못 한 직업에 대한 동경이나 하늘과 맞닿은 만큼의 수십 고층 아파트의 안주인 생활도 그곳을 지날 때면 문득문득 궁금했다. 나보다 작은 것이나, 가까운 곳보다는 크고 먼 곳을 향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늘 삶에 갈증만을 남긴다는걸 알면서도 쉽게 떨칠수없는 것은 덜 여문 심성일게다. 현실을 직시하며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다가도 갑자기 나와는 먼 나라의 길이 궁금해질 때면 올라가지 못한 큰 나무 밑에서 왠지 더 작아지고 가슴은 참 많이도 허허롭다. 진정한 행복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 했건만…….
내가 걷는 길에서 만족을 얻기보다는 남들이 가는 길을 더 기웃대고 더 아름다울 거란 상상을 하며 열망하는 이내 마음에 자리한 지나친 허욕을 어찌 잠재워야 할지. 구불거리는 오솔길이든 도심의 고속도로든 앞을 향해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이든 지나가야 하는 길일진대.
두 갈래 길에서 망설이다 어느 한쪽 길을 택하든지 그것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감내해야만 하는 운명일 것이다. 낮과 밤이 공존하듯이 만족과 아쉬움은 늘 삶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왔으니까.
길은 어디서든 하나로 연결된다 했다. 태초부터 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사람이 선택하여 가기를 원했을 때 길이 생겨났다고 한다. 낯설고 좁은 소로라 할지라도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큰길과 연결돼 있다 한다. 행복을 염원하며 최선을 다해 달려가면 다다를 수 있는 인생 여정의 고지처럼.
오늘도 늘 다니던 큰 도로를 마다하고 오솔길을 택한 덕에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 길에서 사색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고 그로 인해 또 하나의 행복이 쌓인 날이 되리라
정상옥 약력:
2000년 문예한국 겨울호 수필등단
저서(수필집): 1. 우리 지금 이대로
2. 꽃진자리
3. 칸나의 계절
첫댓글 저 역시 가지 않은 길을, 가지 않을 길을 많이 생각하고
후회, 반성하고-.
오늘도 지나던 길에 샛길로
'교육문화회관'이 보여 그곳에 들러 30여 분을 머물다 왔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