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송월은 1949년 설립돼 2019년 70주년을 맞았다. '100년 기업'을 준비하며 이 시기를 전후로 변화의 씨앗을 많이 뿌렸는데, 내부 혁신을 위한 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은 2018년부터다. 즉 노사문화대상 수상은 2018~2019년 도입된 제도들이 조직 내부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간 송월이 기울인 여러 노력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송월타올 경영지원팀 이재민 차장을 만나 들어봤다.
'SW Innovation'과 '실패 박물관'
내부 혁신을 꾀하며 경영지원팀을 포함한 관리직 구성원들은 다른 기업의 우수한 방식이나 제도,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타 기업 사례를 참고하고 때론 더 깊이 있게 연구해 송월만의 방식으로 재탄생한 두 가지 사례로 도요타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SW innovation', 삼성전자 애니콜 공장의 일화를 모티브로 삼은 '실패 박물관'을 들 수 있다.
◆ 개선제안제도 SW Innovation
2018년 후반부터 시행된 SW Innovation의 다른 이름은 '개선제안제도'다. 현장 근로자들은 현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내용을 상시로 제안할 수 있고, 관리직에서 논의 후 해당 사안을 실제로 개선한다. 우수 제안에 대해서는 월별, 연말 포상이 있다.
개선제안제도는 본래 도요타의 운영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요타 생산공정 관리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는데, 이를 가능케 한 비결 중 하나로 우리말 '개선'을 의미하는 '가이젠'이 꼽힌다. 2018년 송월타올 노사 대표위원들은 도요타자동차의 모체 도요타자동직기 현장을 직접 견학했고, 이후 송월에 맞는 시스템으로 재탄생시켰다. 제도의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도입 취지와 효과에 관한 사전 교육도 시행했다.
▲도요타자동직기 워크샵
▲제도 시행 전 해당 제도의 취지와 방향성을 공유하는 사내 교육
◆ 실패 박물관
▲실패박물관에 전시된 불량 타올을 확인하는 근로자들
현장직 구성원들은 특별한 형식 없이 상시로 아이디어를 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 사전 교육 당시 정형화된 양식에 제출하는 것은 불편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 아이디어는 간단히 포스트잇에 적어 전달되기도, 구두로 전달되기도 하는데, 내부적으로는 이로써 참여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각 공정 관리자에게 전달된 내용은 경영지원팀에서 모두 취합해 해당 사안을 의논하며, 제안 아이디어는 월마다 CEO에게도 직접 보고된다. 부서장들이 CEO에게 매달 사업 현황을 보고하고 논의하는 시간이 있는데, 보고 내용 중 그 달에 나온 개선제안 아이디어도 반드시 포함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민 차장은 "보고 주기를 한 달 단위로 함으로써 관리자들도 지속적으로 이 부분에 관심을 갖게 하고, 매달 우수 제안을 선정하고 포상하는 과정을 통해서는 현장직 근로자들의 경쟁 심리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개선제안제도를 통해 도입된 대표적인 업무 효율 개선 사례는 '1등 타올'과 '2등 타올', 즉 정상품과 불량품을 50장 단위의 비닐 포장까지 완료된 상태에서 쉽게 분류하는 바코드 차별화 방법이다. 타올 생산 후 창고에 보관하는 과정에서 일등품과 이등품의 바코드 색을 달리해 이등품이 자칫 정상품으로 대리점이나 고객에게 판매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대표 사례다.
개선제안제도의 한 갈래로 현재 준비 중인 '아차 사고' 개선제안제도는 자칫 '아차' 하면 일어날 뻔한 사고를 방지해 사고 예방률을 높이자는 아이디어다. 경영지원팀에서는 국내 제조업체에서 발생하는 사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끼임 혹은 넘어짐 등 단순 사고를 방지할 방법을 늘 고심해왔는데, 해외 사례를 참고했더니 사고가 발생할 뻔한 지점을 미리 점검하고 개선하면 예방 효과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현장직 근로자들은 가령 '기계가 너무 낮아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는 점에 대해 개선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계를 높이는 방법 혹은 혹시나 부딪히더라도 다치지 않게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방법 등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 박물관'은 각 공정 입구에 해당 공정의 불량품을 전시해 근로자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이재민 차장은 이를 "현장 교육의 한 방식"이라 설명했다. "어느 제조업체나 불량률 저감을 위한 교육은 하겠지만 수치나 그래프 등 각종 데이터를 동원한 교육이 사실 현장 근로자들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데 "자기 자신이나 옆 동료가 낸 불량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때의 효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모티브는 1995년 삼성전자 고 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이다. 약 15만대의 애니콜 휴대폰 불량품을 공장 앞에서 불태우며 불량 발생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것으로 알려진 이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송월타올은 생산을 담당하는 이들이 불량품을 직접 보게 하는 방식이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실패 박물관 조성 후의 반응에 대해 이재민 차장은 "물건을 보면 어느 공정에서 나온 불량인지 바로 알 수 있는데, 연속 공정이기에 중간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이전 작업은 전부 헛수고가 되는 셈이라 동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같은 실수의 발생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현장 교육을 향한 열의, '기술학교'와 '하이테크 활동'
◆ 기술학교
2013년, CEO의 강력한 추진에 따라 '기술학교'란 이름의 TF가 출범했다. 과거에는 공업고등학교와 전문대학 내 섬유학과가 있어 섬유 기초기술을 배울 수 있었지만 이제 섬유 기술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박병대 회장은 송월이 약 70년간의 섬유업 운영으로 쌓아온 기술 지식과 현장 노하우를 집대성해 자료화하고 내부 교육자료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성을 설정했다. 이에 출범한 '기술학교' TF는 섬유 생산의 준비, 제직, 염색, 봉제 등 전 공정의 기술을 자료화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문서화된 자료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체계화해 현장 직군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정상 타올과 불량 타올을 비교해 오류를 점검하는 현장직 근로자들
▲2019년 70주년을 맞아 떠난 오사카 여행송월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비단 최근 수년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IMF로 부도 직전까지 갔던 송월은 위기의 순간 오히려 노사화합을 다질 수 있었는데, 비결은 노사협의회에서 사측과 근로자가 서로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서로의 고충을 이해한 데 있었다. IMF 위기를 버티며 송월타올 노사는 단기간의 성과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켜가자는 비전에 합의했으며 이는 지난해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행사 기념품이나 답례품으로 인기가 많은 송월타올은 코로나로 모든 종류의 외부 행사가 줄자 코로나 직후 매출이 30% 급감하더니 급기야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일발의 순간에 오히려 더 잦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수시로 상황을 논의했고, 사측은 인원 감축을 하지 않고, 노조는 임금동결을 수용함으로써 무사히 위기를 타개했다. 올해 경영이 정상 수준을 회복했을 때 회사는 임금을 평년 대비 높은 폭으로 인상해 근로자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송월은 수출 전진 기지로 베트남에 3만 3천 평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근로자 수 600인 이상에 설비 수준도 국내보다 훨씬 좋은 공장을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에 두고 있으면서도, 내수 목적으로 국내 생산기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송월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재민 차장은 말했다.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해온 근로자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상생을 지향하는 송월타올은 앞으로도 근로자 만족도와 복지를 위해 크고 작은 것들을 도입하고 재정비해나갈 계획이다.
◆ 하이테크 활동
기술학교 활동 이후 근로자들의 작업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음을 체감할 때쯤, 이제는 고가의 설비를 더 잘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3~2015년 시행된 하이테크 활동은 한 마디로 기계 사용법을 고도화하는 작업이었다. 이재민 차장은 "100억에 호가하는 기계를 들여도 정작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해 늘 쓰는 기능만 쓰면 1억짜리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활동이라 설명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매뉴얼 번역이었다. 섬유 제작용 선진 기자재는 대부분 유럽이나 일본 제품이기 때문이다. 매뉴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1차 번역한 후에는 현장직 근로자들과의 소통으로 용어를 현장화했다. 번역의 결과가 현장과 동떨어진 학술적 용어라면 이 활동의 의미가 없었기에, 1차 번역한 표현을 실제 근로자들의 언어로 바꾸는 한편 고쳐 부를 필요가 있는 용어에 대해서는 현장 교육을 병행했다. 대표적인 단어가 '드로퍼Dropper'다. 걸려 있던 실이 끊기면 기계를 멈추게 하는 장치인 드로퍼를 현장에선 일본식으로 '드로빠'라 부르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드로퍼'라는 정확한 명칭으로 이를 부르자고 알린 것이다.
기계의 어떤 버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일이 살피고 활용하게 된 하이테크 활동의 효과로 이재민 차장은 이제 최신 설비의 기능을 최소 90% 이상은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요타자동직기 관계자가 송월 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도요타 에어제트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런 수준의 RPM으로 기계가 돌아가는 곳은 전 세계에서 송월밖에 보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재민 차장은 "기계 사용법을 명확히 알고 그만큼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빨라질 수 있었던 것"이라 설명했다.
본사에 포장 물류센터 개설로 대리점과도 상생 추구
송월타올 본사에는 2019년 '포장 물류센터'가 들어섰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인 송월타올 대리점주들이 납품에 수고를 들이는 대신 영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개설됐다. 한 대리점에서 타올 3매입 1만 세트를 주문받았다고 가정할 때, 필요한 것은 포장에 들어가는 타올 3만 장과 이 재고를 보유할 공간, 포장에 필요한 박스, 포장지, 쇼핑백 등 부자재 3만 개씩과 이를 포장할 인력 및 공간이다. 게다가 포장을 담당할 이들에게 타올 접는 법, 넣는 법, 포장 후 스티커를 붙이는 위치 등에 대해서도 교육해야 한다.
이재민 차장은 "개인 사업자인 대리점주들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다 보면 영업 활동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겠단 판단하에 본사에서 포장과 납품에 드는 수고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송월타올 본사에 400평의 공간을 확보해 포장에 필요한 자동화 설비와 컨베이어 벨트를 들이고 담당 직원 11명을 채용해 포장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도입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는 아직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사안이다. 송월타올에서는 일찍이 2018년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정년을 62세로 연장했으며 64세까지는 촉탁직 채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발 빠른 고용 연장이 가능했던 점에 대해 이재민 차장은 "송월타올이 속한 섬유산업의 특성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입사자로 들어와야 할 청년 세대 중 요즘 '섬유업계에서 비전을 찾고 꿈을 펼쳐보겠다'는 이들을 찾기 어렵고, 채용 후 숙련 인력이 되기까지 양성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숙련된 인력을 좀 더 오래 고용할 수 있다면 사측에도 좋은 일일 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으니 노사 간 이해관계가 일치해 상호 실리 있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란 게 이재민 차장의 설명이다.
단 모든 인원을 대상으로 정년 연장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직의 경우 현장의 1차 추천을 바탕으로 관리직에서 검토 후 최종 판단해 연장을 제안하는데, 정년 이후에도 기능을 꾸준히 유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어 최소한의 선별 과정은 필요하다. 직군의 제한은 없이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정년 연장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