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5章 劍闕의 奇人들
검(劒).
하나 같이 피를 머금은 혈검(血劒)이었다.
도합 칠십칠 자루인데 그것을 쥐고 있는 인물들은 최소한 오십년 이상을 마도혈검예(魔道血劒藝)에 바친 마검호(魔劒豪)들이었다.
-칠십칠(七十七) 혈왕마검대(血王魔劒隊)!
그들은 그런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잔인검(殘忍劒)을 극도로 연성한 자들로 잔인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산자를 잡아다 칼질을 하고, 그 인육(人肉)을 씹었으며, 피를 마신 혈마(血魔)들이다.
물론, 그자들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살인병기들이었다.
백장 지저에 마련된 지저동굴에서 생활해오던 피의 전율자들.
"크크크크!"
"카카카!"
"케케케케!"
그런 피에 굶주린 악귀같은 자들이 능비헌에게로 섬뜩한 혈소를 흘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
능비헌은 피의 해일같이 밀려오는 그자들을 주시하며 스산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검(劒)이란 말이지?"
그것은 비겁한 상대에 대한 조소였다. 이어, 그는 신비검후 하여옥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늘어져 있는 신비검후 하여옥의 손엔 애검(愛劒) 무적천검(無敵天劒)이 들려 있었다.
검은 검도(劍道)를 수행하는 검수들에게 있어서는 제이의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목숨보다 더욱 소중히 해야만 한다.
신비검후 하여옥은 혼절했는데도 자신의 병기만은 쫙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보아도 그녀의 검도수련이 상당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능비헌은 그녀의 손에서 무적천검을 빼어 들었다. 이어,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아 천중(天中)을 찌른 채 우뚝 섰다.
등엔 철혈염희 하미홍을 업었고, 어깨엔 신비검후 하여옥을 메고 있는 것이다.
"오라! 진정한 검(劒)의 도(道)를 보여 주리라!"
우르르르!
대기가 떨어올릴 정도로 웅혼한 사자후가 터졌다.
잠시 주춤하던 혈왕마검대는 서로에게 눈짓을 한면서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켈켈! 놈은 혼자다!"
"크크크! 놈이 일검(一劒)을 휘두를 때 놈은 칠십칠검(七十七劒)을 맞으리라!"
"키키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망동을 부려?"
"흐흐흐흐! 젊은 놈이니 심장맛도 각별하리라!"
범인(凡人)들은 항시 중대한 착각을 범하곤 한다. 그건 숫자의 우위를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해도, 들개(野犬)들이 패거리로 몰려든다 하더라도, 어찌 힘센 어른과 강맹한 맹호(猛虎)를 당할 수 있겠는가?
칠십칠 혈왕마검대!
그자들은 그저 잔인한 마검수들일 뿐이었다.
검을 휘두를 줄만 알았지 검에 대한 진정한 도(道)는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단순한 도부수와 진정한 검호(劒豪)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가장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치- 치치치칙!
무적천검이 벼락이라도 작렬한 듯 시뻘겋다 못해 파랗게 일변되고 있었다.
"검도의 극치를 보여준다! 철혈검탄화(鐵血劒彈花)!"
웅후한 대갈일성이 토해졌다.
쩌 - 쩌쩌쩌쩡!
작렬해가는 수천, 수만 송이의 꽃잎들은 나약한 들판에 핀 매화(梅花)송이는 아니었다.
검화(劒花)였다.
검의 정기(劒精)가 폭발하여 피어오른 검도의 극치였다.
그것이 터져 오른 것이다.
파파파팟!
비명? 그런 것은 아예 튀어나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
"……"
칠십칠 혈왕마검대는 튀어오른 자세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눈은 경악과 불신으로 흡떠져 있다.
뚜벅…… 뚜벅-!
능비헌은 그들의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지옥(地獄)으로 가리라!"
그는 뱉듯이 중얼거렸다.
능비헌은 그자들을 뒤로한 채 사라져갔다.
빠가가가각!
돌연, 뼈골이 으스러지는 균열음이 섬뜩하게 울렸다.
이마의 사이에서 시퍼런 꽃잎의 문양으로 두개골이 으깨어지고 있는 소리였다.
주르르……!
그 사이로 허연 뇌수가 기름처럼 흘러내렸다.
-철혈검탄화!
검의 정기를 폭발시켜 그 검화(劒花)로써 두개골을 강타하여 뇌수를 완전히 휘저어버리는 가공할 대살인검도였다.
그 앞에 무엇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쿵! 쿵! 쿵!
연이어 칠십칠개의 시체가 머리를 지면에 박는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뭣이! 놈이 신비검후 하여옥과 부상한 철혈염희 하마홍까지 데리고 있음에도 사사십이흑풍영과 칠십칠혈왕마검대를 몰살?"
천라제왕 헌원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말하는 그의 표정엔 차라리 어이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옥기린이란 철부지와 싸울 땐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떻게?)
그것이 의문인 것이었다.
옥기린 모용성과의 일전에서 보여 준 능비헌의 무예는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대적했다면 옥기린 모용성은 일초는커녕 반토만으로도 그 기세만으로도 즉사시킬 수 있었다.
옥기린 모용성이 후기지수중 최강인 신주구룡와 중의 일인이긴 했으나, 그같은 고수자는 진정한 천라제왕부의 인원들 중엔 이류급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일류엔 사사십이흑풍영이나 칠십칠 혈왕마검대가 있었다. 한데, 그런 그들이 씨몰살을 당한 것이라고 하니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땐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천라제왕 헌원천이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전투력(戰鬪力). 곧, 가장 효과적으로 확실하게 적을 죽이는 실전무예(實戰武藝)는 오직 목숨을 건 대전(對戰)을 통해서만 상승될 수 있는 것이다.
옥기린 모용성을 상대할 때까지 사실상 능비헌의 전투력 수준은 그같은 초인이 보기에는 미흡한 허점 투성이였다.
그는 자신의 눈을 확신했고, 능비헌이 잡혀있으리란 것도 그런 뜻에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나, 그가 모르는 것 한 가지는 능비헌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고 있는 중이란 것을 간과한 때문이었다.
더욱이, 싸움을 할수록 어려움 속에서 전투의 생리를 몸으로 터득해 가는 능비헌의 무서운 잠재력(潛在力)을 말이다.
"흐흐흐! 아직은 학살마병(虐殺魔兵)이 있다! 도검(刀劒)도 뚫을 수 없는 철갑괴물(鐵甲怪物)들! 놈이라도 삼십육 학살마병을 뚫고 탈출(脫出)하진 못하리라!"
천라제왕 헌원천은 또다시 확신하고 있었다.
한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휘익!
하나의 인영이 쏜살같이 대전으로 뛰어들었다.
"지, 지존! 그 놈이……"
그는 숨이 차듯 헐떡이며 침을 삼켰다.
"놈이 어쨌단 말이냐?"
"삼십육 학살마병이 완전히 박살나고 놈은 정문(正門)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갔다고……"
보고하는 자는 거리를 좀 멀리 떨어지며 섰어야만 했다.
"이놈!"
쾅!
신경질이 천장을 치솟은 천라제왕 헌원천이 태사의의 손잡이를 내리쳤고, 백금강으로 재련된 그곳이 박살났다.
쐐 - 액!
그 파편 하나가 보고하는 자의 앞으로 벼락처럼 쏘아져갔다.
퍼억!
"크악!"
그자는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온 백금강의 파편이 후두부까지 뚫고 나가자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병신 같은 놈!"
헌원천은 그런 부하를 치료해줄 생각은 않은 채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군림을 하면서 충성받기를 원하는 권리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수하에 대한 따스한 정은 아예 그런 의무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위인이었다.
"흠! 유령마계의 일이 있으니 놈도 떠벌리고 다녀 혼란을 일으킬리는 없을테고 그렇다면……흐흐."
헌원천의 입가로 스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찌됐든 황금제국의 일이 급선무다. 다른 놈들이 세력확장에만 눈이 벌개져 있을 때 그곳을 먼저 차지한다면 천하군림은 당연히 들어오는 전리품이지."
웃는다.
"흐흐흐……하하핫!"
야망(野望)의 달성을 위한 미친 웃음(狂笑)이다.
천라제왕부가 멀리 굽어보이는 산의 정상엔 세개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능비헌과 그의 등과 어깨에 걸쳐진채 늘어진 철혈염희 하미홍과 신비검후 하여옥이었다.
"다시 오는 날! 이곳에 있는 기와 한 장이라도 온전하다면 내 성을 갈아버린다! 천라제왕! 기다려라! 으득!"
아예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갈아붙이고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느닷없이 찾아오게 된 것까지는 좋았고, 저 가이없이 도도하고 콧대높은 헌원옥봉과 헌원옥교가 스스로 옷을 벗고 안겨든 그 황홀함까지도 좋았다.
한데, 이 엄청난 충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일대일(一對一)이거나 깨끗한 정공법이라면 아무리 당해도 실력이 모자라거니하며 포기할 수도 있는 일이다.
저 가장 치사한 살인기관 매복진식에다가, 하나같이 기습이나 해대는 치졸한 인간들과 암기들은 천라제왕부가 대정(大正)의 하늘(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대정지존(大正至尊)
- 천라제왕 헌원천!
그는 광명(光明)의 지존이 될 없는 위인이었다.
최소한 능비헌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그는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그가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천라제왕부를 다시 찾아올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때엔 기와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부숴버릴 것임을 굳게 결심하고 있는 능비헌이다.
"가자!"
능비헌은 미련없이 신형을 돌렸다.
"음산(陰山)이라고 했던가?"
그의 눈길이 북천(北天)으로 향했다.
둥실……!
그의 신형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쐐애액!
삽시간에 그의 신형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저 북쪽 하늘로 까마득하게 쏘아져 나간 것이다.
흥안령(興安嶺).
만주 서북부에 있는 구릉형의 산. 보통 대흥안령을 가리키나 소흥안령도 있다.
대흥안령은 흑룡강이 크게 휘어지는 부분의 남쪽에서 발원하여 몽고 고원과 중국 동북대평원의 경계를 이루며 남하하여 내몽고 중부에서 서쪽으로 전환하여 음산(陰山)산맥이 된다. 곧 북북동에서 남남서로 달리고, 소흥안령은 이와 거의 직작으로 서북에서 동남의 방향을 취하여 대흥안령의 북쪽 끝에서 갈라져 흑룡강과 송화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동북지방을 달린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지형으로 최고봉이 2,000미터이하이며, 험준한 부분이 적어 넘기에 용이하다. 대체적으로 낙엽송과 자작나무의 삼림으로 덮혀있다.
음산산맥(陰山山脈).
서쪽은 하란산맥에 이어지는 낭산(狼山)으로 되고 동쪽은 흥안령에 잇는다. 높이는 완만하게 올라가는 구릉같아서 최고봉이 구백척 정도에 불과하다.
남면은 급단애, 북면은 느린 경사로 되었다. 옛부터 농경, 유목 양민족의 경계선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음산은 북망의 황량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험악한 대산(大山)이었다.
그저 풀뿌리만 듬성듬성 있을 뿐, 온통 날카로운 기암괴석으로 둘러진 산이었다.
그 깊은 곳에 하나의 계곡이 있었다.
단검곡.
칼(劒)이 부러져 꽂혀내린 듯하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었다.
칼날같이 예리한 암석군들이 자리한 그곳이 검(劒)의 성역(聖域)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화르르르!
단검곡의 입구로 떨어져 내리는 두 줄기 인영이 있었다.
"이곳입니다! 지존!"
깊숙히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신비검후 하여옥이었다.
"음……!"
고개를 끄덕이는 미청년은 당연히 능비헌이다.
철혈염희 하미홍은 여전히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상태였다.
신비검후 하여옥은 이곳까지 오는 반나절 동안 대충 그의 치료를 받아 거의 칠할정도는 상처를 회복하고 있는 상태였다.
"들어가시지요."
"음……"
신비검후 하여옥과 능비헌은 동시에 신형을 날려 단검곡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곡의 입구는 좁았으나 그 내부는 호리병같이 넓었다.
흡사, 병풍처럼 사방이 단애로 둘러싸여 있는 형세였다.
분지(盆地) 위로 서 있는 저 엄청난 고루거각들은 고아하면서도 육중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으로 단층의 거대한 조각을 중심으로 에워싸고 있는 열 두 개의 거택들은 장엄함 속에서 뼈골을 도려낼 듯한 어떤 가공할 예기(銳氣)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중앙 전각의 편액,
<검궐(劒闕).>
그런 글귀가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검궐!
천하의 검도비급이란 것은 모조리 비장되어 있다는 검문(劒門)의 성역(聖域)이다.
검을 들어 검도예를 배우는 검호라면 누구라도 손에잡을 꿈에 그리는 성역이었다.
그 이름만이 알려져 있을 뿐, 그 위치나 구성인원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검문(神秘劒門)이 바로 그곳이다.
일천인(一千人)!
도합 일천명의 검수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이미,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날아 내리는 능비헌과 신비검후 하여옥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능비헌은 흠칫했다.
"호호. 제가 이미 천리전음술(千里傳音術)로 지존께서 오심을 알렸습니다."
신비검후 하여옥이 사람좋게 웃으며 그를 밀었다.
차- 앙!
경쾌한 소성이 일며 일천 자루의 검이 뽑혀지고, 그들은 허공에서 서로의 검극(劒極)을 마주한 채 붙었다.
터져 오르는 우렁찬 함성엔 일천 개의 벼락이 작렬하는 것 같은 날카로움과 웅혼한 기상이 실려 있었다.
"지존(至尊) …… 출세(出世)!"
"검황지존(劒皇至尊)…… 영광으로 군림하소서!"
검문(劒門)에 든 자로서 검도(劍道)의 명인이라면 누구라도 감격에 겨워할 대검군례(大劒軍禮))가 펼쳐진 것이다.
-일천(一千) 무적검왕군(無敵劒王軍)!
검벌(劒閥)과 검궐을 지켜오는 수호검왕(守護劒王)들이다.
그 최고의 검호들이 최대의 예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능비헌의 눈에서 묘한 감회가 교차되고 있었다.
무림이라는 곳을 알기 이전, 그는 최하(最下)의 인간이었다. 한데, 지금 그는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검황전(劒皇殿)은 단아하면서도 육중한 기운이 서려있는 대전이었다.
그 앞으로 세 명의 노인이 조용히 서 있었다.
-검옹(劒翁)!
-검노(劒老)!
-검령(劒靈)!
이것이 삼인의 이름으로 검황삼로(劒皇三老)라 불렀다.
당금의 나이는 이백 오십 이세였고, 그 장구한 세월은 오직 검(劒)을 들어 검도일도(劍道一道)에 바친 진정한 검문의 수호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앞으로 다가온 능비헌은 내심으로 찬탄했다.
(음! 진정한 무도인(武道人)이로군.)
진정한 무도인(武道人)!
그것은 사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무인(武人) - 무림세계에 속해 무공을 연성하는 강호인(江湖人)은 모래알처럼 많다. 거기에 도(道)를 추구하는 진정한 강호인들은 참으로 적다는 것이 문제였던바, 칼 들었다고 무조건 살인이나 하겠다고 휘두르는 살인검수라면 그리 무서울 바도 없는 일이다.
무도인이라면 무도(武道)의 극치점을 위해 일도매진함을 최우선으로 잡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야망무인(野望武人)!
힘이 있고 세력이 있는 무인들은 군림의 야망을 꿈꾼다.
건드리지도 않는 타인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힘이 약하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도 죽음을 내리고, 흐르는 시뻘건 피를 보며 흐뭇해 하는 피의 무인들이 담금천하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검황삼로!
그들은 틀렸다.
야망의 빛은 한점도 없었다.
그저 전통을 수호하고 자신의 호신(護身)과 무도(武道)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만 있는 것이다.
그들의 눈망울은 어린아이같이 맑았다.
검황삼로는 능비헌이 다가오자 한걸음씩 앞으로 나섰다.
"어서 오시오!"
"검궐에 들어오신 것을 축하드리오이다!"
"검황(劒皇)의 지존도(至尊道)에 들 초인이시여……검도의 성지에 오신 것을 앙축하나이다."
그들은 단지 가벼운 목례만으로 능비헌을 맞았다.
"삼로 어르신"
신비검후 하여옥이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 그도 검황삼로에겐 두 배분이 낮은 어린아이였다.
(검황지존에 대한 예우를 다하시지 않으시다니.)
그것이 그의 불만이었다.
능비헌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검황삼로를 주시하며 물음을 던졌다.
"세분께선 아마도 절 시험하고 싶으신 듯한데……?"
검황삼로 중 검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사실 이 나이가 되어 한낱 쇠붙이 조각이나 다름없는 영혼없는 신물(信物)에게 허리를 굽힌다는건 낯간지러운 일이지 않겠는가?"
그의 말뜻은 명백했다.
신비검후 하여옥이 보낸 전음술에선 그간의 모든 얘기가 들어 있었다. 아울러,
-철혈무적필(鐵血無敵筆)!
철혈검문(鐵血劒門)으로 통칭되는 검궐과 검벌의 지존신물이다. 그 권위는 이미 신비검후 하여옥이 확인한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정하되 실력이 있어야만 허리를 굽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른 인물이라면 화가 날 법도 한 일이다.
능비헌은 달랐다.
(어떤 유형(有形)의 권위에 고개를 굽이지 않는 것……진정한 무인혼(武人魂)을 보는군!)
그는 내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자의로 얻진 않았지만 검궐의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보이겠습니다!"
능비헌은 품에서 한 자루 철필을 꺼내들었다.
"음! 철혈무적필……"
"천년 전의 철혈검존께서 갖고 나가셨다던 본문의 지존신물이 맞군!"
감회가 서린 듯 검황삼로의 눈가로 따사로운 빛이 떠올랐다.
"어디 보겠네!"
"그대가 우릴 꺾고 진정한 검도의 끝을 보여준다면 검황지존으로 모시겠네."
츠츠츠츠-!
눈에서는 번갯불같은 뇌광(雷光)이 번져 오르고, 그들의 전신에서는 폭발적인 검예(劒銳)가 폭출해 올랐다.
만일, 이 자리에 평범한 인물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정도로 가공한 예기(銳氣)였다.
"역시……!"
능비헌은 침음성을 흘리며 자세를 취했다.
"선공(先攻)을."
검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검황삼로의 손엔 검이 없었다.
(무검의형극도예(無劒意形極道藝)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최강의 대검호들……)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단언하지만 분명히 검황삼로에겐 검이 있었다.
어떤 신병이기보다 더욱 무서운 의형심극검(意形心極劒)이다.
아니나 다를까?
쩡! 스으……팟!
검황섬로의 손이 올라가자 그 장심(掌心)에서 검형(劒形)의 기세가 폭출되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단 일초! 그 안에 끝을 내야만 한다. 저들이 없는 검궐은 종이호랑이일 뿐이니……)
능비헌은 바싹 긴장한 채 최강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츠츠츠츠!
그의 손안에 쥐인 철펼무적필의 끝은 쇠털(鐵毛)로 만든 것이었다.
그 길이는 불과 일촌여다. 한데, 그 끝에서 수백가닥의 검강이 무려 이장(二丈)의 길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능비헌은 삼백개의 검을 들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허어……!"
"음……!"
흠칫하는 검황삼로를 앞에 두고 능비헌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쐐액!
삽시간에 그의 신형은 허공 백장을 치솟아 오른다.
"우! 철혈검풍(鐵血劒風)!"
사자제왕의 폭갈이 대기를 떨어울린다.
쩌- 쩌쩌- 쩡!
붓 끝에서 폭발해 낙뢰(落雷)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서운 검기의 폭우(暴雨).
그것은 광란이라는 표헌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찻! 철혈탄(鐵血彈)!"
"차앗! 무적폭(無敵爆)!"
"우! 검탄참(劒彈斬)!"
츠파파파팟-!
폭발해 오르는 세줄기 검형강이 낙뢰의 폭우를 휘저으며 뻗어오르고 있었다.
카카카카 - 캉!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딪하며 튕겨지는 화려한 검화(劒花)는 방원 일천장을 뒤덮고, 그 섬렬한 파열음은 대기를 갈가리 찢어발긴다.
"으……!"
"아……!"
"검신(劒神) 들이시다!"
곁에서 관망하고 있던 일천 무적검왕군은 급급히 천장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걸친 의복이 예기에 펄럭이다 못해 옷자락 여기저기가 잘려나간다.
서……걱!
실로 가공할 검예(劒藝)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찬란한 검투(劒鬪)는 촌각의 순간만에 멈춰지고 말았다.
"……"
"……"
일소삼로(一少三老)는 먼저의 그 자리에 대치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걱……!
능비헌의 소맷자락이 길게 잘리워지며 떨구어진다.
"아……!"
무적검왕군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지셨는가?"
신비검후 하여옥의 봉목으로 안타까운 기운이 서렸다.
"역시 무리셨는가? 검황삼로 어르신은 사갑자를 오직 검도연마에 바쳐오신 분이시니 나이어린 지존께서 감당하시기엔……"
그렇게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쿵!
쿠……웅!
그런데 승리자라고 생각했던 검황삼로가 오히려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깊숙히 머리를 조아리며 외치고 있었다.
"삼가 검황지존을 뵈오이다!"
"지존께 충성을!"
"검궐과 검벌 철혈검문의 유일지존이시여!"
패배를 인정하는 검황삼로다. 그런 그들의 옷자락……
푸스스스스스-!
수백,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져 옷자락이 모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검황지존(劒皇至尊)!
그 위대한 탄생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