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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예수님의 시험 승리하심과 공생애의 개시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1:1-4:11절까지 연속된 공생애 개시 이전의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1:1-2:23) 및 공생애 개시 준비(3:1-4:11)를 보도하는 일련 기사를 일단 종결하고 또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음도 보여 주는 장이다.
이런 문맥에서 전반부 1-11절은 전장에서 공생애를 개시하시기 위한 준비로서 땅과 하늘 모두로부터 메시야이심을 인정받은 예수가 하나님의 섭리로 사탄(the Satan)과 대결하여 이를 이기심으로써 스스로도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입증하고 공생애 개시 준비를 최종 마무리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후반부 12-25절은 복음전파를 시작하시고 제자들을 모으시기 시작하는 등의 기사를 통해 공생애에 대한 보도를 개시하는 단락이다.
본장 전반부의 예수의 사탄에 대한 시험 승리는 실로 중대한 구속사적 사건 그 자체이다. 예수는 다름 아니라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아 타락한 첫 아담(the first Adam)과 그의 피를 타고 태어나 모두 다 죄인이된 인류 중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구속 희생을 하러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우리의 구주셨다. 즉 그는 원래 의롭게 창조된 첫 사람이요 우리의 옛 대표인 아담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감으로 야기된 모든 죄와 질고(疾苦)를 구속 희생사역을 통하여 해결하러 오신, 죄로 물들지 않은 두 번째 아담(the second Adam, 고전 15:45)이신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예수에게 다시금 사탄이 유혹의 시험을 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의 구주 예수는 그 옛날 첫 아담과 달리 그 사탄의 유혹을 능히 물리쳐 이기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옛날 첫 아담을 이긴 이래 현 세상의 공중 권세(엡 2:2)를 잡고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다 모든 인간의 육적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에 물들게 하던 사탄은 최초로 예수에 의하여 패배하였던 것이다. 구속사적으로 이것은 먼저 예수 자신은 죄와는 무관하신 절대 순결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사 우리의 구속사역을 수행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 준다. 나아가 성도는 이제 이후로는 그가 예수 안에 있다면,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생활한다면 사탄을 물리쳐 이기신 주님의 도우심으로 사탄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사탄은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처음 인간을 이긴 후에 계속하여 모든 인간 위에 군림(君臨)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본 사건으로 인하여 사탄의 패배는 시작되었고 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의 성취(成就)로 사탄의 패배는 결정적이 되었으며, 나아가 세상 끝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든 원흥이며 모든 죄의 기원이기도 한 그의 패배와 형벌은 최종 실현될 것이다. 이 상을 종합할 때 예수의 시험 승리는 예수 자신의 구속주(救贖主)로서의 절대성을 입증한 것이며 나아가 사탄과 그가 주도한 죄에 대한 예수 안에서의 사람의 승리가 시작되게 된 출발점이 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본장 후반부인 예수의 공생애 개시 기사는 예수의 공생애가 갖는 구속사적 교훈을 응축 제시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마태는 예수의 행적을 결코 시간 순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역사 순 원칙을 지키면서도 주요 주제별로 예수의 행적을 요약 정리하는 독특한 편집 방식을 구사하였다. 여기 마태가 제시한 예수의 공생애 개시 기사도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생애 개시 사건에 대한 보도이기보다는 이제 공생애 개시를 위한 준비를 마친 예수가 개시한 공생애 사역의 기본 요소들을 요약 제시한 것이다. 그가 공생애의 기본 요소로 제시한 것들은 말씀 전파, 제자 양육, 병자 치유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훗날 골고다에서 성도를 위한 십자가 구속 희생 사역을 치르심으로 결정적으로 당신의 구속사역을 성취하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개시 이후 십자가 수난까지의 약 3년 간의 공생애 기간에는 당신이 치루실 구속사역이 가져올 구원의 기쁜 소식 곧 복음의 본질을 미리 계시하시고 또한 이를 널리 선포 전파하는 일과 자신의 천국 구원의 예표인 각종 치유 이적의 시행 그리고 당신의 사후 당신의 재림 때까지 이 땅에서 성도들의 신앙 중심지가 될 교회의 초석(礎石)이요 건립자 역할을 수행할 제자 양육에 당신의 혼신을 바치셨음을 알 수 있다.
당신께서 이를 이루시기 전에 먼저 가르쳐 주셨고 훗날 그분이 양육한 제자들의 중언(證言)으로 전해진 예수 구속의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된 우리는 이 같은 예수의 구속 사역 성취 이전의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대하면서 예수의 구속사역은 이미 그 이전부터 궁극적으로 이미 태초 에덴동산에서 세워진 구속의 원리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계획되고 추진된 신적 사건으로서 우리에게 참 구원을 가져다 줄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또한 그 구속사역의 노고(勞苦)를 욕심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시고 때로는 땀 흘려 가르치시고 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외울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의 공생애 사역 개시
12 ○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의 처음 네 제자들
18 ○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의 갈릴리 초기 사역 요약
23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본문 & 자료노트
도표-4:1-11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훼방했던 자들의 주요 실례
훼방자 | 내 용 | |
1 | 하갈과 이스마엘 | 이삭을 괴롭힘( 창 21:9-21) |
2 | 에 서 | 야곱을 죽이려함(창 27:30-45) |
3 | 애굽왕 바로 | 모세를 죽이려함(출 2:1-10) |
4 | 아도니아 |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방해함(왕상 1:5-10) |
5 | 아달랴 | 다윗 가문의 씨를 멸하려함(왕하 11:1) |
6 | 하 만 | 유대 민족을 멸하려함(에 3:7-15) |
7 | 헤롯대왕 | 아기 예수를 죽이려함(마 2:13-18) |
8 | 사 단 | 예수를 시험에 빠뜨리려함(마 4:1-11) |
원어연구-4:1, 마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를 지칭하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불로스'( )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37회 쓰였는데, 영역 성경의 '데빌'( )은 이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디아'( )는 '~사이에'라는 뜻의 접두어이고, '볼로스'( )는 '던지다'라는 뜻의 '발로'( )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디아블로스'의 일차적인 의미는 '사이로 던지는 자'이다. 실제로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상과 비방을 일삼는다(욥 1:9-11). 또한 거짓의 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려 우리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불순종하게 한다(창 3:4,5). 이와 같이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간질하는 '중상자'요 '비방자'(딤후 3:3; 딛 2:3)이다.
한편 마귀의 또 다른 이름은 '사탄'( )인데, 이것은 '공격하다' 또는 '대적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사탄'( )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약에서 36회 쓰였다. 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대적자' 혹은 '성도들의 원수'이다. 이로 볼 때 '디아볼로스'는 마귀의 역할'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간질하는 역할을 강조한 용어인 반면에, '사탄'은 마귀의 신분을 강조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도표-4:1-11 예수가 받으신 시험
내 용 | |
장 소 | 광야(1절) |
시 기 | 40일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2절) |
동인(動因) |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하심(1절) |
성 격 |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사단에게 받으신 시험 |
종 류 | . 1차- 육신의 약점을 이용한 것 . 2차- 정신적 허영을 이용한 것 . 3차- 신앙적인 문제에 관한 것 |
특 징 | 점층적이고 포괄적임 |
극 복 |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심(엡 6:17) |
결 과 | 첫째 아담의 실패로 인해 온 인류가 사단의 종노릇하게 되었으나,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인류를 구속할 확실한 근거를 세움 |
지도-4:12-25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곳
막 1장 자료 노트 참조.
지도- 4:12-25 예수의 초기 사역지
주요 주제-4:23-25 예수의 치유 사역
눅 10장 자료 노트 참조.
보감-4:23-25 예수 공생애 사역의 3요소
1 | 회당에서 가르치심 |
․ 예수는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일깨워 주는 선생이심(마 7:28,29) ․ 교회는 말씀 교육의 사명을 가짐(마 28:2) ․ 각 성도는 예수의 제자로서 또 다른 이를 제자 삼는 일에 힘써야 함 (마 28:19) | |
2 | 천국 복음을 전파하심 |
․ 예수는 만민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는 복음 전도자이심(마 9:35) ․ 교회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가짐(행 1:8) ․ 각 성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증거해야 할 사명을 가짐(눅 24:48) | |
3 | 모든 병자들을 고치심 |
․ 예수는 영육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의원이심(마 8:3) ․ 교회는 봉사의 사명을 가짐(고전 12:9,30) ․ 각 성도는 항상 선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함(마 5:16) |
도표-4:18-22 네 제자와 마태의 소명 장면 비교
시몬과 안드레(4:18-20) | 야고보와 요한(4:21,22) | 마태(9:9) | |
장 소 | 갈릴리 해변 | 갈릴리 해변 | 어느 세관 |
시 기 | 제 1차 갈릴리 전도 중(AD. 27) | 제 1차 갈릴리 전도 중(AD. 27) | 제1차 갈릴리 전도중(AD. 27) |
직 업 | 어부 | 어부 | 세리 |
부르심 | 나를 따라 오너라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나를 좇으라 | |
반 응 |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음 |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음 | 즉시 일어나 예수를 좇음 |
주요 주제-4:4,6,10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과 점진성
본권 신약 총론 특별 자료 참조.
4:1-11 사탄의 시험과 예수의 승리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와 하늘로부터 성령 세례를 받아 사람과 하나님께 매 시야로서 인정을 받으심으로써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1차적인 준비를 마치신(마 3:13-17) 예수께서는 이제 그의 공생애 사역에 필요한 마지막 준비 단계로, 광야로 가셔서 47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 대한 마귀의 시험은 세 차례에 걸쳐서 행하여졌다.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덩이를 만들어 금식으로 인한 굶주림을 면하라는 것이었고(3절),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으며(5,6절), 세 번째 시험은 전하 만국과 그 영광을 줄 테니 마귀 자신에게 경배하라(8,9절)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험을 분석해 보면 첫 번째 시험은 인간의 육신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시험이었고, 두 번째 시험은 명예를 자극하는 정신적인 약점을 이용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험은 메시야의 사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종교적, 영적인 약점을 이용한 시험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마귀의 시험은 보다 원초적인 문제에 관련된 시험에서부터 영적인 문제에 관련된 시험까지 삶의 전 부분을 총망라한 포괄적인 시험이자 점층적으로 발전된 시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험의 순서, 내용, 성격, 결과 및 의의 등에 대해서는 본장 8절 주석에 나타난 도표를 보다 참조하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시험에도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마귀를 물리치셨는데,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승리는 단 한 차례의 시험에 그만 맥없이 마귀에게 굴복한 인류의 조상 아담의 실패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따라서 본문은 첫째 아담의 실패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게 전가된 죄와 죽음의 문제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45)께서 완전히 해결하고 온 인류로 하여금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롬 5:12-21).
한편 광야에서 세 차례에 걸친 시험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저지하려다가 실패한 마귀는 이후 갖은 방법으로 예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며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이로써 하나님의 인류 구속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는 마귀의 의도는 달성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마귀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자초하게 된다(창 3:15).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이 세상에서 마귀의 통치권의 쇠퇴와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도래를 알리는 전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① 성도들은 시험을 당할 때, 친히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해야 된다(히 4:15,16). 예수께서는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시험과 고통을 친히 당하셨지만 마귀의 시험을 물리쳐 승리하셨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을 의지한다면 어떠한 악의 세력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롬 8:31-39; 히 2:18).
②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로 무장하되 특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엡 6:11-17; 딤후 2:3,4). 예수님께서 세 차례에 걸친 마귀의 시험을 능히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4,7,10절).
③ 성도들은 어떤 위기와 궁핍에 처하게 되든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크신 능력에 자신을 의탁해야 된다. 예수님께서 40일간의 금식으로 인해 몹시 굶주렸지만 결코
돌로 떡덩이를 만들지 않으신 것은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물질적 소유의 유무(有無)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다(4절:신 8:3,4).
④ 성도들은 심지어 마귀조차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명심하여,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영(靈)들에 대한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요일 4:1). 마귀는 시 91:11,12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듯이(5,6절), 오늘날에도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미혹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마 24:24).
⑤ 성도들은 우상숭배로 인해 그 어떤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된다 할지라도 단호히 그것을 배격하고, 오직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신 6:5,13; 마 22:37). 예수님께서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에게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로 물리치셨다(10절; 약 4:7).
4:1 그때에. - 예수께서 시험 받으신 때를 본절에서는 '그 때에'(토테, Then)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이와 병행 구절인 막 1:12에서는 '성령이 곧(유두스-immediately) 예수를 광야로․․․․'라고 말하고 있으며, 눅 4:1에서는 '그리고(카이-and) 예수께서․․․'라고 말하고 있다('그리고'는 우리말 성경에 번역 안됨).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시험이란 중요한 사건이 바로 그 이전에 있었던 세례 받은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예수께서는 돌발적으로 시험받으신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세례 받으신 직후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 성령이 예수의 구속 사역에서 행한 최초의 사역은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성령이라고 밝히고 있다(막 1:12; 눅 4:1). 이러한 사실은 역시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것이 우연이나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께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수동적으로 시험받으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에서 시험에 수동적이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본문은 예수께서는 수세 사건(마 3:13-17) 이후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발적으로 시험에 임하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귀. - '마귀(디아볼로스)'는 '참소하는 자', '살인자'라는 뜻으로 구약의 '사탄( )'과 동일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마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며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을 번식시키는 타락한 영의 우두머리이다. '마귀'에 대해서는 본서 제 1권 성경 교리, '신론' 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시험을 받으러. -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페이라조)'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이다. 이때 '시험(test)'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충성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주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요구한 시험이다(창 22장). 또 하나의 시험은 마귀 혹은 사탄에 의한 시험이다. 이때 '시험(temptation)'은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 이끌기 위해 주어지며 그 대표적인 예는 본장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시험 사건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에 의한 시험의 성격은 주로 '시련'으로 나타나고, 사탄에 의한 시험의 성격은 주로 '유혹'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자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사탄의 시험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주어지며(욥 1:12; 2:6) 모든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들의 순종 여부를 알아보고 또한 그들의 신앙을 연단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험에 대해서는 출 15장 자료노트, '시험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한편 모든 인류의 조상인 첫 아담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그에게서 난 모든 사람을 사망의 길로 인도하였다(창 3장; 롬 3:23). 그러나 둘째 아담 되신 예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의 본을 보이심으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근거를 마련 하셨으며, 또한 성도들이 그 안에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광야로 가사. - 본문과 막 1:12, 눅 4:1을 보면 시험 장소는 아무도 없는 고적한 광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시험 받으신 장소인 '광야'의 위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학자에 따라서는 그곳을 ① 여리고 서북쪽의 산지(Bengel, De Wette, Meyer), ②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 장소인 시내 산(Alford), ③ 다볼 산(히브리인의 복음) 등으로 추정한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직후 시험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곳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요단강과 가장 인접했던 여리고 서북쪽 산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예수의 시험 받으신 곳에 대해서는 막 1장 자료노트의 지도를 참조하라.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 성경에는 40일에 대한 기록이 많다. 일례로 창 7:12에는 노아 홍수 때 40일간 비가 쏟아졌고, 출 24:18에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간 있었으며, 왕상 19:8에는 엘리야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40'이란 숫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에서 추론하여 '40일'을 '준비 기간', 혹은 '인내와 완성의 기간' 등으로 이해하며 예수의 금식 기간이 꼭 40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계 14장 연구자료, '성경에 나타난 주요 숫자의 상징적 의미와 용례' 참조. 그러나 본문에서는 '밤낮'이라는 말의 수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문자적인 '40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눅 4:2에서는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라고 하여 예수께서 음식을 일체 드시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수께서 굶주린 상태, 즉 육신적으로 절박한 상태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이처럼 사탄은 인간의 약한 면을 공략하여 자기의 악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4:3 시험하는 자가‥‥나아와서. - 마귀를 가리켜 '시험하는 자(호 페리아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마귀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막 1:13; 눅 4:2; 고전 7:5; 살전 3:5). 즉 마귀의 주요 활동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며 불순종하게 하여 반역하게 하는 일이다. 1절 주석과 본서 제 1권 성경 교리 '신론' 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예수에 대한 사탄의 시험은 모두 세 번에 걸쳐 시행되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시험과 두 번째 시험에는 모두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가정이 나와 있다. 이는 사단의 시험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의 충성을 꺾어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메시야 사역을 중단케 하려는 것임을 암시한다. 첫 번째 시험에 있어서도 사탄은 예수로 하여금 그에게 부여된 메시야적 권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대속 사역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당면한 문제인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먼저 사용하게 유혹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송두리 채 수포로 만들어 보자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한편 여기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은 사탄이 예수의 신성(神性)을 몰랐거나(Clarke), 예수로 하여금 그의 신성을 의심하게 하려는 것(Weiss)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하늘의 음성과 연결된다. 즉 사탄은 만일, 40일 전 수세 시 하나님의 음성을 상기시키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능력으로 굶주림을 해결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의도로 이 말을 한 것이다.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 사탄은 예수로 하여금 정당치 않는 방법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게 하는 시험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게 하려고 시도했다. 한편 '떡'은 유대인들이 평상시 자주 먹는 둥굴게 구운 밀로 만든 빵을 가리킨다. 우리는 여기서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을 먹는 문제로 시험한 사탄이 같은 문제로 둘째 아담되신 예수를 시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4 기록되었으되. - 사탄의 유혹에 대한 주님의 대처 방법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기록되었으되(게그라프타이)'는 수동태 직설법 완료형으로 쓰여 기록된 상태가 오늘날도 보존되고 있으며 그 효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여기서는 이어 인용된 신 8:3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효력이 영원성과 현존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결국 본절은 마귀의 궤계를 이기는 방법은 오직 정확 무오하게 기록되었으며(딤후 3:16)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음을 시사해 준다(엡 6:7; 히 4:12).
사람이‥‥말씀으로 살 것이라. - 예수에서는 신 8:3을 인용하여 사탄의 시험에 대응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즉 주님은 '내가 지금 주려 있지만 주린 상태를 벗어나는 육적 요구가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의 법, 즉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특별히 예수는 '떡'만을 강조하는 사탄에게 땅의 양식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시면서도 사람에게 떡보다 더 필요한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육신의 약점을 이용한 사탄의 간교한 시험을 분쇄하셨다. 한편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사탄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 하여 예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했으나 예수께서는 답하기를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여 어디까지나 인간의 대표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시고 인간이 당하는 시험에서 이기는 본을 보이기 위하여 당신의 사람된 신분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같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을 나타냄으로 사탄의 간교한 시험을 이기셨다.
4:5 이에‥‥데려다가. - 본장 5-10절에 기록된 두 번의 시험 순서가 눅 4:5-12에서는 세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이 뒤바뀌어 나오고 있다. 이런 사실을 내세워 혹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사이에 모순점이 있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마태는 각기 새로운 시험이 시작되는 본절과 11절에 '이에(토테)'라는 말을 사용하여 시험의 순서 사이에 내적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마태는 확실한 시간적 순서를 따지기보다는 시험의 성격에 따라 시험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누가는 세 차례의 시험들을 단순히 시간적 순서에 따라 '또'(눅 4,5,9)라는 접속사로 연결시키고 있을 뿐이다(Hendriksen). 이에 대해서는 8절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데려다가(파라람바네이)'라는 말은 마귀가 강압적으로 예수를 시험 장소로 끌다시피 하여 데려간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탄에게는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다룰 권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절의 '데려다가'라는 말은 '권유하다(conduct)', '안내하다(lead)', 또는 '수행하다(accompany)' 아니면 기껏해야 가도록 '유도하다(induce to go)' 정도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민 23:14; 마 17:1; 20:17). 즉 사탄이 예수를 강압적으로 내몰아 간 것이 아니라 유도하여 동행하였던 것이다.
거룩한 성‥‥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 여기서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말한다(마 27:53; 눅 4:9). 그러나 '성전 꼭대기'는 성전의 어디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다. 가장 자연스럽게는 성전 지붕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성전 지붕은 새들의 접근을 금하기 위하여 온통 금으로 된 바늘 못으로 덮혀 있어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꼭대기(프테뤼기온)'라는 말이 '작은 날개'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성전 중에서 작은 날개라고 불리우는 '남쪽 망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eyer, Tayer, Vincent). 또 어떤 이들은 '지성소' 또는 '솔로몬 행각'의 꼭대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Bengel). 그러나 마귀의 시험 장소는 여호사밧 골짜기 위에 세워져서 성전 가운데 가장 지표와 멀리 떨어진 '남쪽 망대'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4:6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3절 주석 참조.
뛰어내리라. - 사탄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아래로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하고 있다. 이러한 사탄의 시험은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약점을 이용하여 예수를 시험한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은 유대의 정치 ․ 종교 ․ 문화의 중심부였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현장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러한 예루살렘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린다면 그는 단번에 군중의 갈채를 받으며 당시 메시야 사상이 팽배했던 무리들에게 메시야의 확실한 표징을 보이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말 3:1). 사탄은 바로 이러한 명예심을 자극하여 예수를 시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익히 알고 있던 사탄은 예수께 인류를 구속할 메시야로서의 희생적 삶을 통해서 메시야 사역을 완성하기 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세상의 환대 속에 영웅적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 너를 위하여‥‥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 본절은 시 91:11,12의 인용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뢰하는 자를 기적적으로 보호하시는 섭리를 찬양한 시이다. 그러나 본절은 시 91:11,12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 즉 본절에는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1)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그 까닭은 여기서의 '길'이 하나님께서 지정한 길, 곧 '하나님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사탄이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예수님을 유혹하기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Tretach, Bernard, Weiss). 아무튼 사탄의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통해 그의 아들을 보호하여 상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일이 그대로 된다면 예수께서는 당시 표적을 구하던 군중들(마 16:1)에게 단번에 메시야로 환영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영웅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야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자 아니었다. 그리고 스스로 위험을 자청하면서 하나님의 이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죄악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 예수이셨기에 그는 다시금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던 것이다(7절). 한편 우리는 본절에서 사탄의 교활한 면을 다시 볼 수 있다. 즉 사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시험에 대처하자 그 역시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여 예수님을 무력화시키려한 것이다. 이처럼 말씀을 교묘히 이용한 사탄의 유혹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을 대상으로 시도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4:7 또 기록되었으되. - 예수께서는 첫 번째 시험에 이어 두 번째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처하셨다. 그런데 '또 기록되었다'는 표현은 마귀가 인용한 성경 구절 자체에 잘못이 내포되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절의 '또(팔린)'란 말은 앞의 말을 반대하는 의미를 갖지 않고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의미를 갖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비록 사탄이 인용한 성경 구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인하시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사탄이 말씀을 잘못 인용하였음을 지적하여 바르게 해석하여 주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의 말씀을 잘못 오용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 신 6:16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실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대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만홀히 여기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위험과 시련 가운데 빠진 자신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악용하여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은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교묘하게 예수를 시험했지만 예수께서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함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한다면 사탄의 어떠한 시험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음을 교훈 받게 된다.
4:8 본절에서 10절까지는 예수께 대한 사탄의 세 번째 시험 장면이다. 이러한 사탄의 세 번째 시험은 궁극적으로 영적이요, 종교적인 것이었다. 이로 보건대 사탄의 시험은 점층적일 뿐만 아니라 삶의 전 부분을 총망라한 포괄적인 시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예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병행 구절인 눅 4:1-13과 비교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 4:1-11 | 눅 4:1-13 | |
시험의 내용 | ①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 | ①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의 순서가 같음 |
②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정신적이고 명예적인 것 | ② 내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리라- 마태와 순서가 다름 | |
③ 내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리라 -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 | ③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마태와 순서가 다름 | |
저자의 기술 특징 | 시간적인 순서에 관계 없이 시험의 성격에 따라 점층적으로 기록함 | 시험의 성격보다 순서에 따라 사실적으로 기록함 |
시험의 성격 | 삶의 전 부분을 총망라한 포괄적인 시험 | |
시험의 결과 및 의의 | ① 첫 아담이 에덴에서 실패한 시험을 둘째 아담되신 예수께서 말씀으로 분쇄하심으로 온 인류에 대한 구속의 근거를 마련하심 ② 예수께서 사단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주 안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을 여심 |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 본절에 언급된 '높은 산'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헬몬 산(2,814m)이나 모세가 임종 직전에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던 '느보 산'(신 34:1-3)으로 추정하지만 확실치 않다. 한편 문자적으로는 지구상에서 세계만방을 볼 수 있는 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의 산을 예루살렘 근처의 산으로, 그리고 아래에 나타난 예수께서 보신 천하
만국은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 학자에 따라서는 본절의 '만국'을 ① 유대 지역(Clarke), ②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이방 세계(De Wette' Meyer), ③ 문자적으로 온 천하(Bruce) 등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본절의 '만국'은 지역적 의미가 아니라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이란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즉 예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마귀가 왕 노릇하는 이 세상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4:9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 여기서 '경배하다(프로스퀴네세스)'란 말은 본래 지체 높은 자나 권력자에게 경의와 숭배의 표시로 꿇어 엎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로 보건대 결국 사탄의 요구는 예수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탄에게 경배하는 것은 신앙 세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뜻한다. 여기에 사탄의 세 번째 시험이 종교적이며 영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지상 통치 계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지상 통치를 실현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로 하여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나게 하셨다. 그런데 사실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은 사탄이었다(눅 4:6; 요 12:31; 고후 4:4). 이로 보건대 사탄은 결국 예수께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형벌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방해하고 대신에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이 세상을 주겠다는 미끼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유혹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4:10 사탄아 물러가라. - 예수께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에 대해서는 단순히 말씀으로 물리치시는 것으로 끝내셨다. 그러나 세 번째 시험에서는 아주 강경하게 대응하셨다. 그것은 세 번째 시험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자 간교한 유혹의 차원을 넘어 주님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치명적이고도 결정적인 상처를 남길 최후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사본(베자 사본, 바질 사본, 레
기우스 사본)에는 본절에 '내 뒤로(오피소 무)'라는 말이 첨가되어 예수의 사탄에 대한 단호한 감정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와 동일한 표현은 마 16:23에서도 발견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 사탄의 유혹에 쐐기를 박는 마지막 결정타도 예수께서는 기록된 말씀에서 찾으셨다. 즉 예수께서는 신 6:13을 인용하여 하나님만이 홀로 경배와 섬김을 받을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심으로 타협을 제시하는 사탄의 유혹을 깨끗하게 물리치신 것이다.
4:11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예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물리치심으로 마귀는 패배하여 도망하였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사단의 유혹에 빠져 선학과를 따먹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마귀의 패배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시험에 패배하여 마귀에게 다스림 받던 인류는(창 3장) 둘째 아담 예수 안에서 마귀를 정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본절과 병행 구절인 눅 4:13에서는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후에도 마귀가 계속해서 예수에게 유혹의 화살을 던졌음을 시사해 준다. 즉 사탄은 예수께서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했을 때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 마옵소서'라고 유혹했는가 하면(마 16:22),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도 광야에서의 두 번째 시험에서처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눅 23:35-37)고 유혹했던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구속 사역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유혹이 있었고 그때마다 주님은 단호히 물리치셨던 것이다. 한편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영육 간에 힘을 더 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4:12-l7 예수의 공생애 사역 시작
세례를 받으시고(마 3:13-17) 40일 동안 금식하시며(1,2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심으로써(3-11절), 메시야 사역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보여 주는 단락이다.
그런데 본문을 비롯하여 마가와 누가의 기록(막 1:14.15; 눅 4:14,15)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지가 갈릴리 지방을 위시한 당시의 소외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과거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방에서 잠시 사역하셨음을 알 수 있다(막 1:29-4:42). 사실 예수의 세례와 시험 사건은 A.D. 27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본 단락의 갈릴리 사역(A.D. 20년경)과는 약 1년여의 간격이 있다. 이 사이가 이른 바 공관복음에서 생략되고 있는 예수의 초기 유대 사역 기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사복음서 개론, '사복음서 대조표'를 보다 참조하다.
한편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과의 이와 같은 차이점은 요한복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구약 성경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 마태복음의 기록자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15,16절; 사 9:1,2). 다시 말해서 본문은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의 약속대로 흑암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빛을 밝히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소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초기 유대 사역을 생략한 채 곧바로 갈릴리 사역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미 세례 요한이 외친바 있는(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17절)는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결국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든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모든 죄악과 불의를 떨쳐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믿음과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4:12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 마태는 본절에서 예수의 공생애 시작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즉 그것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투옥된 상황은 마 14:3-12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마태가 여기서 세례 요한의 투옥 사실을 언급한 것은 메시야의 선구자였던 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감으로써 본격적으로 예수의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 '물러가셨다(아나코레인)'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어떤 위기에 직면하여 일시적으로 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당시 복음 선포에 있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던 유대 지역의 제사장 무리들과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갈릴리로 가셨다고 볼 수 있다(Barnes).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응하며(사 9:1,2) 소외된 갈릴리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함이다(14-16절).
4:13 나사렛을 떠나‥‥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유대 지역을 떠나 고향인 나사렛으로 가셨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셨다. 본절에는 그 직접적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으나 다른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눅 4:29-31)과 갈릴리 사람들의 환영(요 4:45)을 그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가버나움으로 이주한 근본 이유는 메시야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15,16절; 사 9:1,2)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이후 가버나움은 이후 예수의 초기 사역의 전진 기지가 된다. 예수의 초기 사역지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 '지경(호리오이스)'이란 '경계'나 '구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불론과 납달리는 여호수아 시대 이래로 이 지역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두 지파로서 그 당시에는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갈릴리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스불론과 납달리의 지경에 대해서는 수 14장 연구자료 및 수 19:38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가버나움. - '나훔의 마을'이란 뜻을 지닌 가버나움의 위치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견해가 있다.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약 8km 정도에 위치한 오늘날의 '칸 민예(Khan Minyeh)'라는 견해(Stanley' Carr)와 '칸 민예'에서 북동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텔 훔(Tell Hum)'이라는 견해(Thomason, Robinson)가 있으나 후자의 견해가 보다 지지를 받고 있다. 가버나움의 위치에 대해서는 마 8장 자료노트의 지도를 참조하라. 한편 가버나움은 인구가 조밀하고 어업이 왕성할 뿐만 아니라 동서 상업의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수께서 그의 복음 사역을 하기 위한 곳으로는 최적지였다. 본서 저자 마태가 바로 이곳 세관에서 부름을 받았다(마 9:9). 가버나움에 대해서는 마 9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4:14-16 본문은 구약 70인역(LⅩⅩ) 사 9:1,2(히브리어 본문은 사 8:23-9:1)의 인용이다. 그런데 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본래 이스라엘 제 18대 왕인 베가(B.C. 740-732)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5-727)가 갈릴리 지방을 침입하여 그곳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왕하 15:29)을 배경으로 한 말씀으로' 장차 갈릴리 사람들이 비참한 포로 생활에서 자유케 될 것을 예언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태는 본
문에서 예수의 가버나움 이주를 바로 이 예언의 성취로 묘사하였다. 이로 보아 마태는 결국 불신과 죄악 등의 영적 암흑 상태에서 살던 자들이 세상의 빛 되시는 그리스도(요 1:7; 8:12)로 말미암아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암에 않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빛이 비취었도다. - 여기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란 하나님을 모르므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알지 못하여 영적 사망의 상태에 있는 자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이런 흑암에 속한 사람들에게 빛이신 예수에서 오심으로(요 3:19; 벧전 2:9; 요일 1:5; 2:8) 구원의 빛이 비추어지고 그들이 참 생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주님은 죄악 가운데서 이미 죽었던 자들에게 참 소망과 구원의 빛이시되 단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한 빛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분 안에 있으면 구원과 참 생명을 얻게 된다(요 3:16).
4:17 이때부터‥‥비로소 전파하며. - '이때부터(아포 토테)'라는 말은 본서에 3번 등장하는 표현으로 예수의 공생애에 있어서 역사적인 분기점을 제공해 주고 있는 중요한 표현이다. 즉 본문에서는 예수의 공적 전도의 시작을 보여주며, 16:21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과 더불어 사용하여 주님의 활동의 새로운 국면을 소개하였다. 또 26:16에서는 가룟 유다의 주님 배반을 묘사할 때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나타내 준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마태복음을 세 부분으로 구분해 본다면 1:1-4:17까지는 메시야이신 예수의 인격을 설명하며, 4:17-16:20까지는 메시야이신 예수의 선포를, 끝으로 16:21-28:20까지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 1:1-4:16까지는 예수의 공생애 활동을 소개하기 위한 서론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예수의 공생애 활동으로서 일반 대중을 상대하시며 공개적으로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하심을 알려 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에서 대중 앞에서 외친 일성(-聲)은 세례 요한의 외침과 똑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의 선포는 구약적 맥락과 관련하여(사 40:3) 오실 메시야를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예수의 선포는 자신이 바로 메시야로서 이미 천국이 도래하여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나타낸다는 점(15,16절)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본절과 병행 구절인 막 1:14,15과 눅 8:1을 통해서 보다 분명해진다. 실제로 '하늘나라'의 선포는 주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사실 예수님의 첫 번째 전파 내용도(막 1:15)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고' 마지막 설교도 '하나님의 나라'(행 1:3)에 관한 것이었다. 또 주님의 비유들이 '천국은 마치‥‥과 같으니'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전복음서를 통해서도 볼 때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100회 이상 사용되었고(요한복음에서는 '생명', '영생'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됨), 또한 제자들을 파송할 때도(눅 1:16) 천국의 임박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복음의 열쇠가 '하늘나라'에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는 본서 13권 눅 서론 특별 자료를 참조하도록 하라. 한편 본문의 '가까왔다(엥기켄)'라는 말은 '도착했다'는 뜻인데, 이는 곧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을 나타내 준다(마 10:23; 막 9:1).
4:18-22 예수의 처음 네 제자들
마태는 앞단락 12-17절에서 예수께서 구약의 예언(사 9:1,2)을 성취하시기 위해 갈릴리 지역에서 공생애 사역을 진행하셨음을 언급했다. 이어 본문에서는 갈릴리 바닷가의 비천한 어부로 살아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및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사도로 부르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에 언급된 이들 네 제자에 대해서는 행 서론 특별자료 '12사도의 행적'을 참조하라.
한편 본문을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았으며 야고보와 요한보다 일찍 부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먼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를 좇고 이어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께 인도한 것으로 나타난다(요 1:35-42). 따라서 두 기록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기록은 자기 다른 시기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정식으로 부르시기 이전에 이루어진 제자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기록한 것인 반면, 본서는 예수께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을 직접 찾아와 정식으로 제자로 부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은 개인적이며 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부각된 것이며, 본서는 예수의 메시야로서의 주권적인 부르심과 이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이 부각된 기록이다.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막 1:16-20과 눅 5:1-11에도 본문과 다소 다른 듯한 묘사가 발견되나 이에 대해서는 해당 본문의 주석' 특히 마가복음의 주석을 참조하라.
하여간 예수님께서 친히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을 선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훈련시키신 것은 자신의 지상 사역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즉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미리 제자들을 택하셔서 3년간의 훈련 기간을 거치게 하신 것이다(행 1:8).
한편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자들을 자신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부족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도록 하신다(고전 1:26-28).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로 살아가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하나님 나라의 사도로 부르신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우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교만과 어리석은 자기 자랑을 버리고 오로지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전 1:29,31; 4:1,2; 계 2:10).
②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람을 낚는 어
부가 되게 하리라'(19절)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서 힘써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배 안에 가득 채우듯이, 성도들 역시 세상에 나가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여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함으로써(딤후 4:2), 하나님 나라의 곳간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③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즉각적인 순종과 헌신이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을 때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의 뒤를 좇았다.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지 못한다(수 24:14-16; 눅 14:33; 16:13; 18:28-37).
4:18 갈릴리 해변. - 갈릴리 바다는 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수 12:3; 13:27)로 불리웠다. '긴네렛'은 '비파'란 뜻으로, 그 바다 모양이 비파와 비슷했기 때문에 유래된 명칭으로 보인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 후로는 '게네사렛 호수'(막 6:53; 눅 5:1)로도 불리웠으며, 신약 시대는 주로 '갈릴리 바다' 혹은 헤롯이 건설한 인근 도시 이름을 따라 '디베랴 바다'로 불리웠다. 이에 대해서는 막 4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베드로라 하는 시몬. - 대표적인 사도 베드로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베드로'( )는 헬라식 이름으로 그 의미는 '반석'이며' '시몬( )'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들음'이란 뜻으로' 베드로의 본명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붙여주신 '베드로'라는 이름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베드로가 수행할 사도적 사명과 관련된 것임을 이후에 전개되는 그의 역할을 통해서 알게 된다(마 16:18). 베드로에 대해서는 벧전 1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안드레. - '안드레( )'라는 이름은 순수한 헬라식 이름으로 '용감한 남자'라는 뜻이다. 원래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요 1:35-40). 그러나 후에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알고 그의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로 인도했다. 안드레에 대해서는 요 1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그물 던지는 것. -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즉 자신들의 생업에 충실하고 있을 때 부르셨다. 이처럼 주님께서 자신의 삶에 충실한 자에게 찾아가셔서 함께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동역자로 부르신 것은 오늘날 주님과 신앙을 핑계 삼아 자신의 삶을 송두리 채 팽개치는 그릇된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한편 눅 5:1-11에서는 본문과 다소 다르게 많은 무리가 등장하고 예수께서 어부 시몬의 배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며 그 후에 시몬에게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후 시몬 베드로가 안드레, 요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를 좇은 것으로 나온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시간의 차이에 따라 이루어진 사실을 성경의 저자가 선택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은 가장 자세한 정황이 기록된 누가복음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다른 기록과 보완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본절은 눅 5:2에 기록된 그물을 씻기 이전에 베드로와 안드레가 어로 작업을 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4:18 나를 따라 오너라. - 이 말은 단순히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항상 따라 다니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현재의 삶의 방법, 목적 등 자기중심적인 모든 삶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지속적으로 모시고 따를 것을 요구하는, 철저한 자기 헌신의 의미가 내포된 신적 권위에 입각한 강권적 명령이다.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베드로와 안드레의 직업과 관련하여 앞으로 그들에게 새롭게 주어질 사명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즉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여 사망의 깊은 바다에 빠져 있는 영혼들을 구원해 내는 선교 사역을 '사람 낚는 어부'로 표현하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을 주님 에게로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 전파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행 2:37-42).
4:20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 예수의 부르심에 대한 베드로와 안드레의 태도는 즉각적인 순종이었다. 특별히 본문의 '곧(유데오스)'이라는 말은 지체 없이 즉각적인 실행을 나타내는 말로, 그들이 예수의 부르심을 듣는 순간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졌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문의 '그물(디크뒤온)'은 18절의 '그물(암피블레스토론)'과 마 13:47의 '그물(사게네)'과는 다른 것이다. 즉 본문의 '그물'은 '던지다(디케오)'에서 온 낱말로 '일반적인 그물에 대한 총칭'이며' 18절의 그물은 '돌리며 던지다(암피발로)'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이는 넓게 펴서 던지는 투망식 그물을 말한다. 또한 마 13:47의 것은 '싣다(사토)'에서 온 말로 긴 줄로 연결하여 끄는 저인망식 그물을 말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그들은 즉각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생업의 수단을 버리고 전적으로 헌신하며 따랐음을 알 수 있다.
4:21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부르시니. - '세베대( )'는 '여호와께서 주심'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식 이름으로, 예수의 이모였던 살로메의 남편이다(마 27:56; 막 15:40; 16:1). 따라서 그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 요한은 예수와 이종사촌 간이며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의 가장 중요한 제자들이었다. 한편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헬라식 이름으로. '발꿈치를 잡았다'(창 25:26)는 뜻이다. 그는 12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하였다(행 12:2). 야고보에 대해서는 막 10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그리고 '요한'은 '여호와의 은혜'라는 뜻으로 그의 형 야고보와는 반대로 12제자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으며 요한복음 및 요한 서신, 그리고 요한 계시록 등을 저술하였다. 요한에 대해서는 요일 2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그들 역시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고 있을 때, 즉 그물을 깁고 있는 중에 부름 받았다. 행 서론 특별자료, '12사도의 행적' 참조. 한편 '그물을 깁는 것'은 보통 어로 작업을 마치고 그물을 수선하는 것을 가리킨다.
4:22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 야고보와 요한 역시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지체 없는 순종으로 헌신의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라 나섰는지는 그들이 아버지를 버려두고 좇은 것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본절과 20절에서 '버리고', '곧', '따르는 것'이란 동일한 문구가 반복되고 있어 이 말들이 '제자됨'의 도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4:23-25 예수의 갈릴리 초기 사역 개관
마태는 사탄의 세 번에 걸친 시험을 물리치신(1-11절)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사실(12-17절)과 네 제자를 부르신 사실(18-22절)을 언급한 데 이어 이제 본
문에서는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을 종합적으로 요약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사역의 핵심은 가르치는 사역과 전파하시는 사역, 그리고 고치시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역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역동적으로 임하셨음을 증거하는 것들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고치시는 사역'이 강조되고 있는데 본문에 소개되는 치유의 이적들은 결국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 받는 인류를 구원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실 메시야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마 11:2-5; 고후 5:17). 이와 관련해서는 마 8장 자료노트, '치유의 상징적 의미'를 보다 참조하라.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예수의 3대 사역은 제자들에게도 위임된 바 있는 것으로(마 10:1,7; 28:20), 오늘날 예수를 머리로 하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3대 사명, 즉 교육(디다스칼리아), 전도(케뤼그마), 봉사(디아코니아)를 실천하신 것이라 하겠다.
한편 우리는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① 성도들은 자신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염려와 문제거리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기만 하면 참된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빌 4:6; 벧전 5:7). 온갖 병에 걸려 신음하던 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신들의 처지를 아뢰었을 때, 그들은 즉시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 누구든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다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결코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마 11:28-30; 요 14:27).
② 치유의 이적은 복음 전파를 위한 중요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그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기 위해 각종 치유의 이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어떤 이들은 이적 그 자체에만 관심을 쏟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병 고침을 받거나 신비 체험을 하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으로 배를 불리기 위해 그 뒤를 따라다닌 자들의 태도와 전혀 다를 바 없다(요 6:15.26).
4:23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 예수의 제 1차 갈릴리 전도 여행을 가리킨다(막 1:35-39; 눅 4:40,41). 그러나 본절은 예수께서 갈릴리 전 지역을 조직적으로 순회하셨음을 의미 한다기보다는 갈릴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신 것을 의미한다(Williams).
회당. - '회당(쉬나고게)'은 바벨론 포로기부터 유대인들의 종교 교육과 예배의 중심지였으며, 예수 시대 당시는 유대인이 거주하는 주요 지역에는 거의 회당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며 비교적 자유롭게 가르치며 토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음 전파의 장소로 사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뿐만 아니라 후에 사도들도 회당을 거점으로 하여 복음 전파를 하였다(행 14:1; 17:10). 따라서 회당은 성전과 더불어 신약 교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회당에 대해서는 본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보다 참조하라.
가르치시며‥‥전파하시며‥‥고치시며. -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의 핵심을 말한다면 '가르치시는(디다스콘)' 사역과, '전파하시는(케뤼손)' 사역, '고치시는(데라퓨온)' 사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절의 세 표현은 주님의 공생애 활동을 잘 요약하여 설명하는 전형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마 9:35에서도 반복되는 것으로 이 세 가지 사역은 오늘날 참된 교회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들이다. 본장 자료 노트 '예수 공생애 사역의 3요소'를 참조하라.
천국 복음.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7절; 마 3:2)는 말과 같이 복음의 중심이 '하늘나라'임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Williams). 즉 복음은 궁극적으로 천국의 구원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 여기서 수리아(Syria)는 정확한 행정 단위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동서로 유브라데와 지중해' 그리고 남북으로는 갈릴리와 타우르 산 사이의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생각된다(Barnes). 본장 자료노트, 지도 참조.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예수의 소문이 퍼진 것은 주님의 사역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가히 짐작케 한다.
모든 앓는 자‥‥중풍병자. - 여기서 '모든 앓는 자'는 일반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 자의 총칭이며 뒤에 나오는 구체적인 병명은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고치기 어려웠던 대표적인 질병이다.
각색 병. - 비교적 가벼운 육신의 질병을 가리킨다.
고통에 걸린 자. - 심각한 상태의 질병을 가리킨다.
귀신들린 자. - 본래는 정신적 질환이 있는 자를 지칭하지만 육체적 기능이 일부 또는 전체가 손상되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적 질병의 명칭이 되기도 한다(마 12:22; 15:22; 17:18).
간질하는 자. - 일반적으로 중추 신경 이상으로 발작성 경련과 함께 졸도를 일으키는 병으로 신약에서는 본 구절과 마 17:15에만 나타난다.
중풍 병자. - 일종의 마비를 동반한 전신 및 반신불수 병이다. 특별히 신약에서는 광범위한 증세의 여러 병들을 한데 묶어 중풍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는 눅 10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고, 성경에 나타난 주요 질병에 대해서는 막 2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4:25 데가볼리. - '열'이란 뜻의 '데카( )'와 '도시'란 뜻의 '폴리스( )'의 합성어로 10개의 도시로 구성된 지역의 이름이다. 이 데가볼리는 다메섹' 거라사 등 요단 동편의 여러 도시들과 스기도볼리(벧스안)와 같은 요단 서편의 도시들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 외의 도시명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예수께서 활동할 당시에 이런 도시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주로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들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조차 허다한 무리가 예수께 나아와 좇았다는 것은 예수의 구속 사역이 유대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데가볼리'에 대해서는 막 5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요단 강 건너편. - 헬몬 산에서 아르논 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요단 강 동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Weiss, Meyer). 신 3장 자료노트 '요단 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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